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77)
877. 수수께끼의 히어로 X
이넬디아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며, 회유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회유라기보다는 협박. 혹은 그 뭐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가스 라이터…. 아니 가스라이…라이? 뭐 아무튼.
“이브는 언젠가 너를 내칠 것이다. 그러니 내 손을 잡아라. 내 휘하로 들어온다면 너에게 안락한 삶을 약속하마.”
“호오. 우선 이브가 나를 버린다는 그 전제의 근거가 궁금하군. 어째서지?”
내가 단어 하나 제대로 떠올리지 못 할 정도로 이넬디아의 말이 무척이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아, 안돼…. 여기서 웃으면 끝장이다. 일단 다 듣고…. 혼자 있는 곳에서 웃는 것이다. 알겠지. 이영진…?
“네가 어떤 재주로 이브 폰 로엔그린 곁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종합해서 듣기로는 어느 정도 손재주가 있다 들었다. 응당 황족이라면 갖춰야 할 심미안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게 무엇인지 알겠지?”
그리 말하며 녀석은 한 자루의 검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잘 만들어진 검이다. 무게중심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안에 들어있는 마법이 예사롭지 않다.
삼백 년 전. 기사들에게 보급된 가장 기본적인 마검이지만, 아무튼 마검이다.
아무튼, 잘 모르겠지만 일단 칭찬해보자.
“훌륭한 마검이군.”
“호오. 그저 잘 빚어낸 검이 아니라 마검임을 알아보는 건가. 그러면 이야기 하기 쉽지. 이건 현재 국보로 정해진 마검 중 한 자루다.”
“국보급…. 마검.”
세상에.
저게 국보라니, 무구 꼬라지봐. 혹시 국책사업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프로젝트라도 했니? 아니면 국가에 있는 모든 무구를 모아다가 한 데 모아서 의자라도 만들었니?
내 감탄을 보고 이넬디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맞다. 네가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수준의 마검. 허나 이브 폰 로엔그린은 그런 마검을 몇 자루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네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검도 보이지 않는군, 혹시 너는 모르는 일인가?”
“뭐, 라고….”
이브가 그런 쓰레기 마검을 가지고 있다고? 대체 무슨 일이야. 언제부터 그런 불량식품에 맛을 들린거지? 하여간 이 뱃살 폰 로엔그린 녀석….
“없나 보군. 그렇다면, 너는 이미 소외 되었다 볼 수 있다.”
“나를 소외….”
“그렇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국보급 마검 중 한 자루도 받지 못 한 채, 너는 그저 한낱 장난감으로 놀아날 뿐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겠는가.”
“그런…가. 내가 이브 녀석의 장난감이라…. 하.”
“오늘은 이 정도만 말하도록 하지. 좋은 대답을 기다리겠다.”
그리 말하고 이넬디아는 사라졌다.
음.
이거 이브랑 만나서 한바탕 웃어보고 싶은데, 나한테 추적이 붙어 있어서 그러긴 힘들고, 일단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장난감으로 쓰고, 여러 자루의 진짜 마검을 숨기고 있다. 이거죠?
-음. 그렇다. 지금은 이세계에 갈 수 없어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만, 어떻게 생각하지?
이브가 잠깐 침묵했다. 몇 번 불렀으나 반응이 없다.
그렇게 약 5분 후.
-미안해요. 그…. 너무 웃는 바람에 대답이 늦었어요.
-그렇군.
그러고 보니 우리 메시지 창에는 ‘ㅋ’이나 ‘ㅎ’같은 인터넷 용어를 쓰는 애들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지. 아무튼 올바른 채팅문화를 준수하는 녀석들이라 웃는 것도 채팅이 아니라 현실에서 배를 잡고 웃었나보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요?
-일단 네가 무기를 보여준 게 확실히 깊게 파고 든 것 같다. 그리고 너와 나를 이간질하려는 수까지 쓰는군, 허나 아직 어설프다.
-어설퍼요?
-음. 만약에 내가 마검을 받았으나, 아까워서 소중히 보관했다 하면 어쩌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내 천성이 아직 모자라고 비열하다 생각하는 듯 하군. 마검을 받았으면 당연히 허세 넘치게 패용하고 다닐거 라 믿은 건가. 어느 쪽이든 그 변수를 생각하지 않은 시점에서 어설프다.
-그렇군요.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당신이 너무 깐깐하다는 생각도 들지만요.
-적진의 간부 하나를 포섭하는 일이다. 준비는 해도 해도 부족해.
-동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거에요?
-일단은 저쪽의 장단에 맞춰서 놀아주려고 한다. 어떻게 나올지 너도 궁금하지 않나.
-그야…. 그렇죠. 음. 알겠어요. 놀아준다는 거죠? 뭐 노는 거면 상관 없어요.
이브의 말에서 아주 조금 위화감이 느껴졌다.
혹시.
-내가 진짜 배신하고 이넬디아 편으로 붙을까 걱정인가?
-미쳤어요? 누가요? 제가요? 왜요? 당신을요? 어째서요? 더군다나 당신이 붙건 말건 저는 관계 없거든요? 하. 진짜 자의식 과잉이야. 믿을 수 없어.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거죠? 진짜 세상 편하게 사네요. 부럽네요! 네!
-믿어라.
내 말에 잠시 녀석의 메시지가 멈췄다.
이것 참.
귀찮은 녀석이로고.
-믿을 수 없다면, 믿지 않아도 된다. 내가 행동으로 나서마 네가 흔들린다면 믿음을 심어주는 일은 무척이나 간단하니 말이다.
-뭐라고요? 뭘 할 생각이에요?
-내일 아침까지 이넬디아를 울고 불고 질질 짜게 만들어서 네 앞에 무릎 꿇리도록 하지.
-잠깐만요.
-걱정 마라. 죽이지 말라고 했으니 그 목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사지 멀쩡히 끌고 가마.
-잠깐만요? 저기요?
-네가 의심했으니 내가 증명할 뿐이다.
-아뇨. 제가 의심한 건 당신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짓은 하지 마세요!
-그러면 누굴 의심했지? 대답해라. 누굴 의심했지?
-윽.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저에요.
-저? 이브 폰 로엔그린 말인가?
-그렇다고요. 아 진짜. 무슨 말을 하게 만드는 거에요! 아무튼, 제가 지금 당장 가진 힘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상대는 계승권 2위의 황녀라고요? 저는 레이스에 끼지도 못한 막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 말하고 메시지는 다시 끊겼다.
요컨데 내가 강한쪽에 붙을거라 생각했다기 보단…. 자신이 모자라서 자책했던 건가.
하여간 이 녀석의 땅파기 스킬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알겠다. 신뢰의 증거로서 내일 아침까지 이넬디아의 수급을 이세계로 가져가도록 하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어쩌라는 거야 진짜.
***
아무튼 놀아주는 것 까지는 해도 되는 듯 하니, 다음날 이넬디아를 찾아갔다.
“나를 찾아 온 것을 보니, 마음을 정했나 보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브 폰 로엔그린이 나를 배신했는지 말이다.”
“그래. 너무 쉽게 배신하는 남자는 믿을 수 없지. 그렇다면 네가 찾아내면 된다. 이브 폰 로엔그린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마검…. 그리고 그 마검을 만든 이를 말이다.”
“마검을 만든 이?”
흠.
마검뿐만이 아니라, 나를 이용해 그 배후에 있는 제작자까지 파헤치시겠다.
이런 점은 똑똑하네.
“그래. 이브의 진영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제작자가 있었나?”
여기서 ‘그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라고 하기로 했어요.’나 ‘모르겠다.’ 라고 대답하는 건 하수중의 하수.
“이브가 가끔 회동을 가지는 이가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이다?”
“정말인가!”
“음. 그 때의 이브는 마치 존재 자체가 사라지듯…. 이 세계에서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가 누군지도, 아니 그녀일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모르겠다. 그런 녀석이 있다는 것만 안다.”
“좀 더 자세히 파고들 수 있나?”
“거기까지는 어렵구나, 네가 제공한 정보에 맞춰 나도 무언가 알아낸 것을 말해준 것뿐이다. 이 이상은 일방적으로 손해보는 거래 아니겠나.”
“내 군문에 들어온다면….”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 잘 들어라. 나는 아직 이브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마치 부하가 된 것 마냥 취급하지 말도록.”
“알겠다. 이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이넬디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떠나갔다.
혼자 남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 구상했다.
일단 이넬디아는 내가 마검의 제작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수수께끼의 인물이 있다고 구라도 쳤다.
들키면 큰일나는 일이지만…. 아니 큰일이 나나?
“실존하기만 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래.
옛 성현들도 가르쳐 주셨잖아?
수습할 수 없으면, 판을 키우면 된다고 말이야.
***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브를 만나러 갔다.
“이넬디아 언니. 제프린에 내방하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뵙네요.”
“그래. 내 자랑스러운 동생 이브. 잘 지냈니?”
“네. 일이 바쁜것만 제외하면 말이죠.”
그리 말하는 이브에게 자상하게 웃어준 이넬디아.
울프람처럼 딱딱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황제가 되는 날에는 이브 또한 손패에 넣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구나. 일도 쉬엄쉬엄 하렴. 이 언니는 걱정이 크다. 어릴때부터 과로하는 버릇을 들이면 안 된다.”
“염려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나요?”
“지난 번. 이시스와 함께 만났을 때. 네가 보여줬던 무구들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어 왔단다.”
“아…. 그거 말씀이군요. 그때 전부 실물로 보여드렸는데 아직도 의심하시나요?”
“아니. 그게 전부 제대로 된 마검이라는 사실도, 국보급 무구라는 것도 전부 인정할게. 그런데 그건 대체 누가 만들었니?”
“누가…. 만들었냐고요?”
당황하는 이브의 모습에 이넬디아는 작게 주먹을 쥐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표정관리의 중요성을 모른다.
숨겨야 할 정보가 드러났다.
검을 만드는 이는 실존한다. 그는 이브 폰 로엔그린에게 있어 숨겨야 하는 인물이다.
두 개의 손패가 들어왔고 이를 가지고 다시 한 번 대화에 나서기로 했다.
“대장장이가 무척이나 능력있는 인물이고 네가 아끼는 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있니? 언니는 그게 두렵구나.”
“네. 믿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에요.”
그 단언에 살짝 놀랐지만, 이 또한 정보다.
이브는 그를 맹신하고 있다. 신뢰를 넘어서서, 아예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다.
저쪽이 이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렇구나. 신뢰란 무척이나 좋은 일이지만…. 언니는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이 동생의 옆에서 칼을 만드나는 사실이 걱정된다. 황실이 존재하는 것은 모든 무력 수단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브는 부드럽게 웃었고, 이넬디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 의심을 부추길 필요는 없다.
이브의 마음 속에 작은 파문 하나가 일었다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약병에 독약을 타듯. 한 방울씩 떨어트릴 뿐이다.
“알겠어. 이브가 믿는다면 언니도 같이 믿어볼게 그럼 이만 일어날게.”
“조심히 들어가세요. 언니.”
이넬디아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도 그 머리는 최고 속도로 돌아갔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어떻게 그 정도의 무력을 손에 넣었을까. 그런 무기를 만들 수 있다면, 내 수하가 되어주지 않을까.
이브와의 대화가 꽤 길었는지 밖은 어두웠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제프린을 혼자 걷고 싶은 기분이었고, 그렇게 잠시 걸었을 때. 이변을 깨달았다.
주변이 조용하다.
밤이니 그럴 수 있지만 도를 넘어서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 사람을 물리는 마법인가…. 나에게 용건이 있는 자인가?”
허공에 소리치자, 이넬디아의 물음에 대답하듯 무언가가 저 너머에서 걸어왔다.
“…….”
키가 큰 남성이었다. 자기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다.
전신은 로브로 가리고 있어 체형은 보이지 않고, 얼굴에는 가면을 썼다.
허나, 이넬디아는 깨달았다.
이 남자. 보통 강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저 타오르는 듯 한 마력 파장은 마치 원시의 불꽃 그 자체 같다.
어마어마한 불을 다루는 이.
자신을 숨기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것은 한 명뿐이다.
“혹시 묻겠다만…. 네가 그 대장장이인가? 나는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이라 한다. 이 제국의 제1황녀를 맡고 있다. 잠시 대화를….”
남자는…. 아니 그 존재는 이름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다 갈라져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 마라.】
“뭐…?”
이넬디아가 반문하자마자 바람이 불어왔고, 그 강풍에 눈을 감았다 뜨니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느새인가 돌아온 소음.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 평온한 제프린 그 자체.
허나 이넬디아의 등에는 식은땀이 미친듯이 흐르고 있었고, 그녀의 손은 꽉 쥐어졌다.
“그렇군…. 저런 이가 곁에 붙어있었단 말인가…. 이브 폰 로엔그린….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하. 더욱 더 가지고 싶구나…. 너는 누구지? 나는 너를 손에 넣고 싶다…!”
상상하지도 못한 강자와의 만남.
제국 1황녀의 눈은 욕망과 열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