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78)
878. 에라 모르겠다
그저 자리에 서서 덜덜 떨고 있는 이넬디아를 내려봤다.
녀석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건물의 옥상의 난간에 기대서 달빛을 받고 있으니, 정체를 숨긴 악역같기도 하고 말이야.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아무튼.
사고를 쳐서 수습하기 힘들면, 아예 더 크게 쳐서 주변 모두를 말려들게 만들라는 금언은 헛되지 않았고, 고심 끝에 나는 이넬디아, 혹은 대외적으로 이브에게 협력할 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로 했다.
이넬디아 녀석이 신의 영역에 다다른 대장장이를 궁금해 했으니 우선은 그것부터 제대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어째 대장장이라고 하면 웃통 까고 근육 우락부락하고 대장장이 망치 들고서 남들이 가져오는 전설의 광석으로 ‘칼 한번만 찍어내게 해줘. 제발!’ 하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런건 식상하다고 느꼈고, 겸사겸사 이넬디아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을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수를 썼다.
지옥의 키높이 깔창을 사용해 키를 2m가 넘게 만들었고, 태초의 루비로 내 마력을 탐지할 수 없게 했다. 끝으로 충격적인 첫 등장 연출이 필요했는데 그건 쉬웠다.
“꽤 즐거웠다.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협력하지.”
“음.”
방글방글 웃으며 내 옆으로 파닥파닥 날아온 엘피라네와 가볍게 주먹을 부딪치고는 씩 웃었다.
엘피라네의 초월을 쓰면, 세계 안에서 ‘아 저긴 가지 말아야지’ 하고 인식을 꼬아버리는 일도 가능하다고 한다. 아니 ‘사람을 물리는 마법’ 이런 게 아니라 초월 능력이었다고?
아무튼.
그렇게 최대한 내 외모를 바꾸고, 가면을 쓰고 로브를 입고, 보이스 체인지 아이템으로 목소리를 바꾸고…. 세상에 나와 이넬디아 둘 만 있게 만드는 착각을 심어주고 그렇게 등장했다.
녀석이 저기 멍청하게 서서 몸을 떨고 있는 것만 봐도, 그 효과는 대단했다 단언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포기했겠지.
돌아가서 자자.
내일이면 이넬디아가 바짝 쫄아 들 것이고, 이브도 많이 편해지겠지.
“울프람. 좋은 술 없나요? 이 정도로 노력했더니 목이 칼칼하네요.”
“괜찮은 물건이 있다. 따라와라.”
그리 생각하고 내 뒤를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요정여왕과 함께 귀가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오전 일과를 끝내고 나니 메시지창이 터질듯 갱신되기 시작했다.
-울프람.
-대체 뭔 짓을 한 거에요.
-그 신묘한 대장장이는 또 누구고
-뭔 짓을 했길래 이넬디아 언니가 한 번만 더 만나게 해달라는 거에요.
-제가 진짜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당신 이러면 편하게 못 죽어 내가 당신 죽이고 죽을 거야
-아무튼 신묘한 대장장이니 어둠의 울프람이니 알아서 처리하세요.
-안그러면 진짜 죽어요.
엥.
***
이넬디아는 눈 앞에서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여동생을 채근했다.
“그 신묘한 대장장이와 어떻게든 만나보고 싶구나. 아니 만나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름이라도 알려주지 않겠니?”
“글쎄요. 후후.”
반대로 이브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울프람이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했고, 그 결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넬디아가 말하는 용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울프람이 직접 만들법한 것이었으니까.
허나 반대로, 자신이 말 한 번 실수해서 그가 생각한 설정이, 계획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경멸하는 그 시선을 버틸 수 있나? 그러긴 쉽지 않다.
결국 이브가 선택한 것은 그저 웃는 것.
그게 이넬디아의 화를 돋웠는지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역시나 똑똑한 아이구나. 가장 중요한 손패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말아야지. 허나 손패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미 그건 비장의 수단이 아니란다.”
“후후. 어떨까요.”
“이브….”
그녀가 빠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정말 어디서부터 말해야 될지 모르겠는걸.
일단은 웃자.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저 웃으면 된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비장의 손패는 이미 나와 접촉했다. 즉. 내가 직접 찾아도 될 일이다. 이브…. 네게 훌륭한 조력자가 있고 숨기고 싶은 건 알겠지만…. 나중에 빼앗겨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후후. 글쎄요.”
이브는 끝까지 웃었다.
그저 웃었다.
속으로 울프람을 죽이는 101가지 망상을 하면서 말이다.
***
그 뒤.
이넬디아가 은밀히 제프린을 헤집고 다닌다는 정보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건…. 꽤 안 좋다.
일단 잘못 대응하면 제1황녀의 가신을 핍박해 척을 질 수 있다.
거기에 이넬디아가 쉽게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초월종들의 힘을 쓰자니, 이 대장장이 캐릭터가 초월종과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안겨줄 수 있다.
이넬디아는 그 눈치가 빠르고 인간이 졸렬하니 망상이 어디까지 퍼져나갈지 모르는 노릇.
여기서는 그냥 그 기묘한 대장장이로 한 번 더 나서는 수 밖에 없나.
어쩔 수 없다.
한 번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힘을 써볼까 싶어 사대 정령왕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이넬디아가 묵는 방의 허공에 하나의 쪽지를 던져 넣는다. 공간을 가지고 노는 엘피라네의 힘이라면 누구의 눈에도 들키지 않고 밀어 넣을 수 있다.
“허공에서…. 쪽지가…. 그것도 위에 단검이…. 이건 대체, 이게 가능해?”
화아아악! 바람의 정령왕 아인의 힘으로 쪽지가 허공에서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소환되고, 그 위에 내가 만들어낸 조잡한 단검이 소환되어, 쿡 하고 책상에 꽂힌다.
‘황녀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
‘나를 찾지 말라 했으나, 그 뒤 너의 행보에는 의문을 금할 수 없다.’
‘그리도 나를 보고 싶다면 찾아가도록 하마’
‘홀로 기다리고 있어라, 많은 이들이 말려드는 게 싫다면 말이다.’
이넬디아는 쪽지를 다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기에 있는 필체와 단검의 제작 방식으로 나를 추적하려 들겠지.
허나, 화르륵 소리를 내며 쪽지는 불타버리고, 단검은 얼어붙어 깨졌다.
이걸로 내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나는 네 앞에 쪽지나 칼을 만들어내고, 그걸 불태우고 얼릴수도 있다니까?
“역시…. 후후. 그런가. 그리 나와야지.”
허나 이넬디아는 주먹을 꽉 쥐곤 웃었다.
역시는 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
그리고 며칠 후 저녁.
이넬디아는 혼자 산책을 하고 싶다며 그 어떤 호위도 동반하지 않았고, 그건 내게 보내는 하나의 신호가 되었다.
한적한 공원.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없는 곳.
나는 불꽃을 일으키며, 어둠 너머에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오래간만에 만나는군. 귀공과 꼭 만나고 싶었어”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래. 그랬지. 하지만 귀공도 알아줬으면 좋겠군. 우리들 황손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가치 있는 것에 집착하고, 무료함을 달래줄 것이 있다면 쉽게 빠져들거든…. 그런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시점에서부터, 나는 귀공에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
이넬디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돌아가라…. 그 아이의 가족을…. 베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귀공에게 말을 걸고, 귀공을 캐내도 당장은 죽을 위험이 없다 봐도 되겠나?”
이 무슨 이득충 마인드.
죽지 않으니까 물어볼게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물어본다고, 작전을 쓰겠다고?
안되겠다.
제대로 설정도 정립되지 않았는데 질문을 받을 수야 없다.
【듣고 싶은 것은…. 이것이겠지….】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를 이용해, 이미 담금질해둔 수 천 자루의 검을 소환했다.
콰가가가가가각!
검은 우리를 감싸듯, 원을 만들었고 멋대로 바닥에 꽂힌 검들에서 나온 마력이 검명을 울렸다. 우우우우웅. 소리를 내는 수 천 자루의 검명은 음울하고 기괴했다.
그저 인벤토리에 있는 것을 꺼냈을 뿐이나, 이넬디아의 눈은 더할나위 없이 강하게 빛나며, 검 한자루를 뽑아들었다.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다른 손으로는 날을 쓰다듬으며, 입김을 내뿜는다. 마치 환호하듯, 경외하듯.
솔직히.
많이 기분 나쁘다.
“역시…. 이 모든 것을 귀공이 만든 것인가. 이 수 천 자루가 전부, 하나하나 다 마검이야. 대단하군…. 이 힘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어.”
【…….】
“나는 귀공에게 많은 것을 약속해 줄 수 있어. 전면 협력한다면 내가 황제가 되는 날 세상의 절반을 주도록 하지. 어때. 괜찮지 않나?”
【……】
“필요 없다는 거겠지. 물론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어. 이만한 무력을 가진 이라면, 혼자서도 세상의 절반은 얻을 수 있겠지.”
【…….】
아 잠깐만 좀 조용히 해봐.
설정이 제대로 안 잡혀서 잘못 말했다가 실수라도 하거나, 울프람이랑 엮이기라도 하면 진짜 귀찮아진다고.
다 던지고 포기할까.
여기서 관심, 곤란. 이라고 말한 뒤 도망치는 건 무척이나 쉽다.
하지만, 내가 던진 쓰레기는 내가 다시 주워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법.
어떻게든 수습해야지.
나는 손을 들어 허공에서 한 자루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 검은 별의 가루와 여신의 숨결. 태양의 반짝임과 달의 고요함을 가지고 빚어졌다.
아름다움의 극한. 이 이상 아름다운 무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외형.
“그…. 검은 대체.”
이넬디아는 손을 덜덜 떨며 검을 향해 내밀었다.
【진 초마도무신패황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신검】
【스킬 나의 휘광에 굴복하라를 발동합니다】
매력치 22로, 주변을 홀리게 만드는 ‘의장용’ 신검이 천지사방으로 빛났다.
실 성능은 아예 없는 일종의 최면 토템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빛날때가 있는 법.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은 나의 휘광에 굴복하라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신검과 그 소유자에게 강하게 매료됩니다】
이 검의 마성에 저항하지 못하면, 나를 천하최강의 무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세계의 절반을 주겠다느니 하는 것은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되는 법. 또한 내가 가진 수 천 자루의 검도 고작 이쑤시개 한 뭉치로 받아들이겠지.
아무튼, 내가 최강이고 내가 검도 막 만들어내고 신검도 하나 들고 있으니까, 앞으로 귀찮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라는 의사표현이다.
【돌아…가도록. 너에게는…자격이 없다. 너의 색채는…빛나지 않는다….】
여기서 영문 모를 말을 던져서, 철벽을 치면 끝.
자. 알아 들었으면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주렴.
“아, 아아…. 그렇군. 이 빛은…. 나는 이 검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된 건가…. 모두 알았다. 전부 알아버렸어…. 드디어 이 지루한 인생에서 벗어나는가…. 드디어….”
【……】
“그래. 귀공의 말이 맞아. 지금의 나에게는 자격이 없지. 그래. 그 색채에 닿을 자격이 없어. 허나 돌아오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돌아오도록 하지. 그때는 그대를 손에 넣고야 말겠어.”
응?
저기요?
***
그 뒤.
이넬디아는 기묘한 대장장이를 쫓지 않았다.
허나 때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겨났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야, 그 대장장이를 쫓지 않는 대신 나를 불러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이라면 바라는 대로 주지. 자. 울프람. 그 분의 정보를, 작은 것이라도 좋다. 말해 줄 수 있겠나.”
“그 분이 누구지?”
“그야. 천지사방을 감싸는 빛의 검을 가지신 분이다. 어서 말해다오. 조금의 정보라도 좋다. 크게 사도록 하지.”
음…. 어쩐다.
저렇게 눈이 형형하게 빛나는데 ‘아무것도 몰라요.’ 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짰던 설정이 물거품이고, 다른 것보다 나도 ‘기묘한 대장장이’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듯 했으니까, 잡아떼면 떼는 대로 이상하고….
“이름…. 이름은 알고 있다.”
“오오. 무엇이지. 그 분의 이름을 말해다오!”
“슈퍼….”
“슈퍼?”
“듣기로는…. 그래. 슈페리어 리. 라고 했다.”
“슈페리어 리…. 멋진 이름이군….”
에라 모르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