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89)
889. 나쁜 어른
레지나와의 데이트는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으로 녀석을 집에 바래다주고는, 그대로 나와 편의점으로 돌아가는 길.
솔직히 침대는 무척 편했고, 하루정도 더 쉬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감정이 피어 올랐다.
무언가, 무언가 큰일이 날 것 같았기에 빠르게 돌아 나섰고 뒤에서 타오르는 눈빛을 받았다.
그렇게 어둠 속을 거닐며 편의점으로 가는 길.
이미 수 백 번은 오갔던 길이기에 아무리 어둡더라도 별 문제 없이 걸을 수 있다.
물론, 어둠속에서 이쪽을 응시하는 시선과 인기척은 수 백 번 걸어도 익숙해지지 않지만 말이다.
“자. 거기서 그렇게 볼 거 없이 나와서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자꾸나.”
“…….”
어둠을 향해 소리치자, 저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치 채고 계셨어요? 몰래 보고 있었는데.”
“물론이다. 내가 네 마력파장을 못 알아볼리가 없잖나.”
“언니와 똑같지는 않죠?”
“음. 아일라의 마력파장이 바다처럼 거대하게 퍼진다면, 네 마력파장은 폭포처럼 찌르는 구석이 있지.”
“아하하. 알 거 같아요. 저는 한 점에 집중해서 파고들고…. 언니는 시야를 넓게 펼쳐서 세상을 보니까요.”
양갈래머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방긋 웃는 녀석에게 마주 웃어줬다.
이 정도 웃음은 황실 혈통이 제어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 이 녀석 앞에서는 웃어도 큰 문제가 없는 건가.
“스피카. 좋은 밤이구나.”
“네. 오라버니. 좋은 밤이에요.”
어둔 밤이라고 해도, 같이 걸어갈 사람이 있다면 두렵지 않고 즐거운 법.
내 옆에 꼭 붙은 녀석과 함께 밤의 공터를 걸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왔지?”
“음…. 오라버니.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질문을 해도 될까요?”
“괜찮다.”
“최근 여러 분들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 그렇군요. 깔끔하게 인정하시네요.”
“그걸 숨기면, 데이트를 함께 한 녀석들에게 미안하지 않나, 숨길 필요도 말을 돌릴 필요도 없지.”
“으흠. 그러면…. 언니가 아니라 다른분들과 데이트 한다는 건, 그 분들이 오라버니를 좋아한다고 전한 거죠? 그래서 소문대로 누구와 사귈지 정하기 위해 맛을 보고 계신 거죠?”
“소문이 굉장히 편중된 것 같지만…. 틀린 말은 없구나.”
“우와…. 그, 그러면…. 그러니까.”
스피카는 내가 담담하게 인정하자 오히려 당황하고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왜 그러지 스피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저, 저와도…. 데이트 해주실 수…. 있을까요.”
흠.
스피카와 데이트라.
즉, 내가 다른 사람들과 노는 게 신경쓰여 같이 놀아달라는 건가.
그거라면 괜찮다.
애들이라면 또 그런 질투를 할 수 있는 법이지.“
“알겠다. 같이 노는 거라면 하루 정도 시간을 내도록 하지.”
동생이랑 하루 놀아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일까.
“아뇨! 진짜 데이트에요. 말 돌리지 않고, 진짜 데이트!”
“그건 안 된다.”
스피카의 단호한 의지를 웃으며 걷어찼다.
“우….”
“데이트는 안 된다. 하지만 둘이서 노는 것은 가능하다.”
“제가 골렘 공장 총 파업을 한다고 해도…. 안 되나요?”
“안 된다.”
진짜 어마어마한 패를 꺼내드네, 데이트 한 번에 총 파업?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러면…. 그냥 둘이서 노는 건 괜찮죠…?”
“말했다시피, 아주 괜찮다.”
“그러면 그렇게 할 게요. 내일 봬요….”
어느새 편의점 앞에 도착해, 스피카는 기숙사로 들어갔다.
애 어깨가 축 쳐져 있긴 한데, 어쩔 수 없지.
***
다음날 아침.
약속대로 스피카가 찾아왔고, 우리는 녀석의 골렘 캐리어 192호기를 타고 제프린 외곽으로 나갔다.
“그래서 스피카. 오늘은 어디서 놀 생각이지?”
“으음. 그러니까요. 오늘 데이트는 얼마 전에 만든 정원이에요. 자 어서 제 슈퍼 스피카에 올라타세요!”
“정원을 만들었다고? 슈퍼 스피카?”
“네! 이 아이의 이름이랍니다!”
골렘 캐리어가 아니라, 바퀴가 달린…. 귀여운 카트였다. 앞에 스피카의 얼굴이 데포르메 화 되어 양각되어 있다.
그 얼굴은 양손 따봉을 올리고 있었으며 눈은 빛나고 있고 입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마스코트였다.
“이 얼굴 문양은 뭐지?”
“귀엽죠?”
그리 말하고 에헤헤 웃는 녀석.
아니 귀엽긴 한데….
설마 마스코트로 만들 셈인가.
아무튼 스피카의 슈퍼 스피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정말 공원이었다.
규모도 꽤 되는 편이고, 스피카 말로는 걸어서 돌아다니려면 한 시간은 너끈하다고 하다.
“물론 제 슈퍼 스피카를 사용하면 최고 속도 기준 십 분이면 주파할 수 있답니다.”
“그렇군. 꽤나 빠르구나.”
시속 30km정도까지 되는 건가, 부딪치면 위험하겠는걸.
“급제동장치도 있고, 사람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자동으로 해체되게 만들었어요!”
“…….”
이 아이는 대체.
어째서 이런 세계에 이런 아이가 있는 걸까, 현대로 갔으면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고도 남았을 거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비운의 천재 아닐까.
“허나 이 공원도 몬스터들의 침공이 있는 날에는 무너질 텐데 말이다. 괜찮나.”
“네. 어차피 전부 부숴질 걸 감안하고 만든 시험장소에요.”
“…….”
“골렘을 이용하면 이 정도 공원 일주일도 안 걸린답니다. 향후 서부에 어떤 관광지를 만들지 고민하던 차에 나온 시험작이에요.”
그 말에는 나도 정말 놀랐다.
스피카는 이 제대로…. 말끔하게 가꾸어진 공원이 시험장이라고 했다.
거기에, 공원을 인조로 만든데 더불어 카트를 이용해 움직이는 관광지로 쓰겠다고?
“어마어마한 발상이구나.”
“전부 다 오라버니가 시작한 거잖아요? 저는 그냥 소꿉놀이에요. 열차를 만든 것도 오라버니, 그걸로 관광지를 개발하겠다고 한 것도 오라버니…. 저는 규모를 작게 해서 놀고 있는 것뿐이죠.”
“아니. 그렇지 않다. 발상은 분명 내가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공원과 카트라는 개념, 그리고 그 위에 얼굴을 양각한 인상적인 모습까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구나.”
“가, 감사합니다. 에헤. 아, 오라버니. 저기 보세요. 호수도 만들고 있어요.”
그 뒤.
스피카는 최선을 다해 공원 안내를 했으며, 나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슈퍼 스피카는 무척 귀여운 디자인이지만, 좀 더 탑승감과…. 안전 벨트를 만드는 게 좋을 거 같구나.”
“아. 급제동이 걸렸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죠?”
“그렇다. 벨트의 디자인은…. 이렇게 하면 효율적이지 않겠나?”
“아, 한 줄로 시작해서 어깨랑 허리를 감싸듯…. 네. 그렇네요. 좋네요.”
우리 둘은 이 공원을 어떻게 개조할지 산책하면서 협의하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노동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스피카와는 죽이 잘 맞아 대화는 끊이지 않고 즐겁게 이어졌다.
“언니가 만드는 놀이공원과는 완전히 다른…. 휴양으로서의 공원이라, 우선 몬스터를 배제해야겠네요.”
“그래야겠구나. 강한 결계를 치고 골렘 수호자를 세워야 할 것 같다. 휴양지에서 몬스터 사고가 나면 인식이 추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계 유지의 수익성을 생각하면 입장료를 많이 올려야 해요.”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교통편을 정리해서 쉽고 빠르게 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그 뒤에 근처 부지도 전부 사들여 숙박업과 요식업을 함께 하면 꽤 괜찮은 수익을 거둘 수 있지 않겠나.”
“과연…. 그렇군요….”
이 아이는 사업에 있어서 만큼은 나와 시선이 대등할 정도다.
훌륭한 소질, 심지어 다수의 골렘을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마법 특성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자 정신. 끝으로 평가를 수용하는 포용력과 냉정한 자기분석까지.
말 그대로 회장님이 되기에 최적화된 인재 아닌가.
“오라버니! 호수. 호수를 만들어요! 어마어마하게 좋을 거 같아요!”
“인공으로 만드는 건가. 물을 길어오고, 정화까지 한다고 생각하면 꽤 힘들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면 호수 근처에 공원을 만들어요! 물고기들도 잔뜩 볼 수 있을거에요. 재밌겠다!”
그리 말하며 카트에 몸을 기대 흔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애지만 말이야.
***
스피카와의 노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즐거웠다.
다른 녀석들과의 데이트와 대등할 정도로 말이야.
“아, 즐거웠다…. 그러면 공원에서 파는 요리는 이렇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 위주로 하죠.”
“좋은 생각이다.”
기본적으로는 고기와 피클을 잔뜩 올린 핫도그를 만들되, 소스에 차별점을 둬서 동선을 아낀다던가, 음료수는 직접 과일을 갈아서 만드는 모습을 보여줘서 시선을 빼앗는다던가 등.
공원 내부에서 먹을 간단한 식사와, 공원 외부에서 먹을 제대로 된 요리 등. 서로의 아이디어가 끝없이 샘솟았다.
“그래서, 그래서 말이죠.”
“알겠다. 진정해라.”
녀석의 머리에 툭, 하고 손을 올리자 뚝. 하고 멈춰섰다.
“에헤.”
“천천히 이야기 해도 괜찮다. 앞으로 시간은 많다.”
“그건…. 아니에요. 오라버니. 시간은 얼마 없어요. 졸업까지 이제 몇 달 안 남으셨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렇구나, 그러면 오늘 최대한 이야기 해 두도록 할까. 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지? 사업? 아니면 숙소…. 요리도 괜찮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뭐든 말해보도록.”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내가 살짝 허리를 숙여 녀석과 시선을 마주하자. 스피카는 새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제, 제가 오라버니를 좋아한다고 하면, 저, 저도 받아들여 주실 수 있나요!”
“안 된다.”
“아.”
***
내 칼 같은 거절에 스피카가 그대로 쪼그려 앉아서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전부 들었는지 모르겠네, 아니. 아니지…. 파티원들이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안 이상 그 정도 눈치는 챌 수 있나.
“어째서 안 되는 건가요…. 어린애라서? 애라서 진지하게 안 대해 주시는 건가요….”
“스피카.”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했다.
눈물이 망울지는 흑수정빛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왜 데이트라고도 안 해 주시고…. 노는 거라고 하시고…. 진지하게 안 대해 주시고….”
“진지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선을 그은 거다.”
“네…?”
“어른이 애들을 편하게 대하는 방법이 뭔지 아나? 그건 바로 약속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크면 알려줄게, 나중에 돌려줄게,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어.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진지하게 말해주마. 안 된다.”
이런 건 바로바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사고가 난다.
내가 희망의 집에 있을 때, 그렇게 뒤로 미뤘다가 한 번 크게 사고가 날 뻔 한 이후에는…. 설령 상대가 아이라 할 지언정, 아니 아이이기에 더더욱 제대로 마주보기로 했다.
“어째서인가요? 제가 언니 동생이라서?”
“아니. 네가 어려서다. 좀 더 크고 오도록.”
어딜. 꼬맹이가.
내가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스피카는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린다.
“커서 오라고 하셨죠? 그러면, 진짜 커서 갈 거니까요…. 그러면 그 때 제대로 대답해 주실 거죠? 저 포기 안 할 거에요!”
“그건 좀 더 크고 난 뒤에 이야기 하자꾸나.”
“대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 어른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