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91)
891. Broken Flag
이번에 들어갔던 미완공 지하공동을 이브에게 말하니 녀석은 의문을 표했다.
-그런 공사장 자체가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데…. 어떻게 거기에 마족이 나타난 걸 까요?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 짐작 가는 부분은 있다.
-뭔데요?
-심해에 마계의 문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내 말에 이브의 메세지가 잠시 멈췄다.
-그거, 엄청 위험한 거 아니에요? 심해에 마계의 문…. 언제든지 침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음. 그럴 수도 있다만, 여기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구나.
-뭔데요?
-첫째로, 문이 심해와 심해로 이어져 있을 경우가 있다. 이건 심해를 조사해 봐야 할 일이겠지만 삼백 년간 심해를 통해 마족이 습격한 일은 없었다. 그러면 두 번째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바로 이쪽의 문은 심해에 있는데, 저쪽의 문은 지상에 있을 경우다.
-그게 뭐 어쨌다고…. 아.
-그래. 저기서 문을 여는 순간 난리가 나겠지. 바다가 그대로 마계의 지상에 몰아쳐서….영지 하나를 날려먹는 건 일도 아닐 거다.
-음. 그 사이를 역류해서 마족 몇 마리가 들어왔을 가능성은 있다…. 라는 건가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우선 심해에 진짜 문이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알아보긴 힘들 거 같네요.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요, 머리맡에 송곳을 두고 자는 기분이에요. 싫다….
-아리엘을 통해서 알아보면 된다. 크게 걱정하지 말도록.
-아. 그래요. 맡길게요. 그럼 이쪽도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공동 조사팀은 파견할게요. 괜찮겠죠?
-부탁하마.
그렇게 이브와 메시지를 끄고, 내 옆에서 멍하니 공동을 바라보는 아일라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뭘 그리 보고 있나.”
“아뇨…. 굉장히 불길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안 그렇다고 생각해서…. 으음. 잘 모르겠어요.”
“괜찮아졌나?”
“네? 네…. 엄청 무서웠는데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무서웠지?”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픽 하고 웃어버렸다.
“괜찮다. 무섭지 않을 거다. 앞으로도 계속 괜찮을 테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도록.”
“네!”
***
원작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광산에 대량의 몬스터가 출몰. 집이 망해서 어떻게든 출구를 찾으려고 한 아일라가 도서관에서 정보를 수집하다 린디의 저서를 읽고, 마력을 넓게 펼치던 와중 저 공동을 발견했다. 거기서 마족을 물리치고 저주를 손에 넣었다. 정도가 되겠지.
그래서 원작 기준으로 그렇게나 저주를 잘 썼던 것 같다.
이전이라면 저런 현실에 꽤 무게를 뒀겠지만, 지금은 글쎄. 그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이제 마지막 데이트만 하면, 일곱 번째 문에 들어갈 예정이고 나는 그 대상, 밀푀유와 독대했다.
“괜찮나.”
“괜찮…아요.”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푸석해진 머리, 다크서클이 짙게 생긴 눈. 말 그대로 ‘저 과로에요,’ 라고 말하는 모양새.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최근 일과를 말해보도록.”
“그러니까…. 학생회 임원 수습에, 시험 준비, 원정조 대표, 동부 축산업 협의랑…. 편의점 2호점 신상품 설계, 편의점 후임 관리…. 학년 수석으로서 동기 관리랑 수석 회의…. 그리고 또….”
사람은 그렇게 일하면 죽는단다.
“그 중 몇 개는 거절할 수 있지 않나. 학년 수석 회의 정도는 얼마든지 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제가 해야 하는 일인걸요….”
이 녀석은 항상 이렇다.
부탁 받으면 거절하질 못한다.
“수석 회의는 차석에게 맡겨라. 학생회령으로 지정하게끔 이브에게 이야기 해 두도록 하지.”
“그럴 수는 없어요.”
“밀푀유. 네 체력은 나와 같다. 그리고 나는 내 한계를 아주 명확히 알고 있다. 그렇게 일하면 금방 쓰러진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지?”
“시험은 없고요…. 학생회 임원 업무랑 원정조 일이 있네요. 그런데 원정조 쪽 업무가 조금 트러블이 있어서….”
“알겠다. 학생회 임원 수습은 이브에게 말해서 빼도록 하고, 원정조는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그럴 수는 없어요. 제, 제가 할게요. 선배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 말에 번뜩 일어서려는 밀푀유는 그대로 피가 쏠렸는지 휘청였고, 넘어질 것 같아 그 허리를 잡고 지탱했다.
하여간, 허리는 얇아가지고…. 애가 밥은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다시 한 번 말해보도록. 걱정하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선배님…. 허, 허리 좀 놔주세요….”
녀석이 새빨개진 얼굴로 부탁했다.
“제대로 혼자 설 수 있으면 놔주도록 하지.”
하여간.
혼자 서지도 못하면서 강한 척은.
***
녀석을 대충 재워놓고 그 업무를 대리하기로 했다.
오늘 네프티는 비번이라 내 독박이지만 상관 없다.
무슨 트러블이 있는지 궁금해서, 사전 정보는 묻지 않았다.
가서 확인하고 해결하는 재미가 또 있거든.
그래서 제프린 원정조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묘한 공기를 감지했다.
정말 두 패로 나뉘어서 견제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불편한 분위기가 있다.
“아…. 황자님. 어서오세요.”
이 사무실 안에서 느껴지는 찌릿거리는 공기에 오직 접수대 직원만이 쓴 웃음으로 나를 반겨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
“대단한 건 아닌데요. 지금 원정조 분들이 두 개 파벌로 나뉘어 계세요. 하나는 신중론, 하나는 급진론…. 이라고 해야 할까요.”
“호오. 어떤 의미지?”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 있는 곳에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부류와, 조금 무리해서라도 금역에 들어가 강적과 싸워야 한다는 부류…. 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아하.
뭔가 대단한 이론인가 했더니 그런 거였나.
“물론 어려운 곳에 가면…. 더 좋은 물건들도 얻을 수 있을 거고 일확천금의 기회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신중한 녀석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는군.”
“네. 그래서…. 저 두 분이 중심이 되어 싸우고 계시거든요.”
“두 분?”
뒤를 슬쩍 돌아보니, 두 분이 정말로 싸우고 있었다.
베이지색 머리에 땡글한 눈동자를 한 애 한 명과, 붉은 머리에 강철검을 찬 남자애 한 명.
“그러니까, 쫄터스. 니가 안 된다는 거야! 좀 더 나가서 싸울 생각을 해야지!”
“몇 번이고 말하지만 집단전에서 무모함은 생명의 위기로 이어진다. 지금 전장으로 충분해.”
“내가 다 막으면 된다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잖아!”
“네가 없을 때를 생각하면 모험은 허락할 수 없어.”
“이 멍청한 쫄터스! 내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잖아!”
유즈나엘과 켈터스.
원작 기준으로는 서로 하하호호 하고 있었을 녀석들이 으르렁거리면서 싸우고 있다.
음.
어린애들은 본디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지만, 저건 친해질 가능성이 아예 안 보인다. 애들 싸움을 매일 말려봐서 아주 잘 안다.
“보셨죠? 켈터스 군은 신중론, 유즈나엘 양은 급진론이에요.”
“아주 잘 알겠다. 저건…. 답이 없구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좋지만…. 이게 또 돈이 얽혀있어서요.”
“자세히 말해보도록.”
“그러니까 유즈나엘 양이 가려고 하는 곳은 고철의 협곡인데요…. 거기서 어마어마한 귀금속들이 나오는 바람에.”
아.
알거 같다.
고철의 협곡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전부 물리 공격이고, 드랍하는 건 대부분 귀금속이다. 즉 물리 관통 세팅만 제대로 갖춰졌으면 귀금속들을 얻어서 떼돈을 벌 수 있다.
물리저격팟의 중반부 파밍장소로 꽤 괜찮지.
그리고 유즈나엘은 이 D/Z SAGA의 세계에서도 내노라하는 물리방어의 정점.
당연히 고철의 협곡은 녀석에게는 일확천금의 땅인 셈.
“그러면 또 유즈나엘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구나.”
“반대로 켈터스 군은 그런 곳이 얼마나 더 나올지도 모르고, 전장의 변수까제 계산하면 아직 이르다. 라고 신중론을 펼치고 있어요.”
그렇군.
그 또한 옳은 말이다.
밀푀유가 머리를 싸맬만도 하다. 여기서 둘 다 옳구나, 같은 말을 했다간 ‘박쥐 새끼 나가 죽어’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다가왔겠지.
“알겠다. 이 건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켜보고 있도록.”
나는 슬쩍 접수대에서 물러나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갔다.
한창 싸우던 와중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선 충격적인 말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지.
“이봐라. 제대로 칼 쥐는 법도 모르는 초심자 녀석들 아까부터 시끄럽다.”
“뭐라고요? 아?”
“말이 심하네요. 누구십니까. 아?”
그래.
이 뉴비 녀석들아.
꿀 파밍처 하나 찾았다고 신나가지고는 막 싸우고 말이야.
뉴비 때 돈벌이 하나 알았다고 거기에 매몰되면, 엔드 컨텐츠는 언제 가려고?
진짜 돈은 엔드 던전 사냥으로 버는거 모르나?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따로 둘을 불러낼까 싶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이야기는 접수대에서 들었다. 지금 문제삼고 있는 건 고철의 협곡인 것 같은데, 나쁜 사냥터는 아니다. 다른 것 보다 거대 골렘들과 싸우기에는 최적화된 전장이다. 너희들의 숙련도에 알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즈나엘의 방어력과 최근 탱커들의 숙련도를 생각하면 크게 다칠 일은 없지.”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시 착한 울프람. 쫄터스는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유즈나엘이 콧바람을 불면서 방긋 웃었다.
쫄터스라니 그런 멸칭을?
반대로 켈터스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켈터스의 고민도 타당하다. 그런 골렘에게 한 번이라도 공격이 튀면, 목숨이 위험해 질 수 있지.”
“마, 맞습니다.”
켈터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유즈나엘이 볼을 부풀렸다.
“모험가는 원래 목숨 걸고 하는 직업이에요!”
오.
유즈나엘의 높은 직업 정신.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의 본질을 잘 알고 있다.
“유즈나엘. 솔직히 말하도록. 네가 편하게 싸울 수 있는 장소에서 네 지분을 크게 요구할 수 있으며…. 귀금속이 나오기라도 하면 크게 한탕 할 수 있는 곳이라 더 강하게 나가는 것 아닌가?”
“아, 아닌데…요.”
“사람과 이야기 할 때는 시선을 마주하고 해라.”
“아니…거든요.”
시선을 슬쩍 피하는 녀석.
손가락으로 집게를 만들어 녀석의 코를 쿡 잡자 녀석이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머하는거에효.”
“고작 그 정도에 안주하지 마라. 어리석은 녀석. 고철의 협곡도 나쁘지 않지만 크게 봐선 너도 주저앉으려고 한 것 아닌가.”
“우.”
코를 집은 손가락을 풀었다. 손 끝에 유분이 하나도 안 남은 것에 살짝 놀랐다.
“켈터스, 그리고 너는 너무나 신중하다. 앞으로 이 제프린에서 너희가 진심으로 모험할 수 있는 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 그건 그렇습니다….”
“고철의 협곡에 가는 건 추천한다. 다만 거기에 매몰되지 말고 그 너머를 봐라. 내 지시는 이상이다. 만약 골렘의 공격에 목숨이 위험해 질 것 같다면 즉각 중단하고 도망치도록.”
“네. 알겠습니다.”
녀석은 그리 말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고 싸움이 그렇게 끝났다.
구경꾼들도 각자 파티를 짜기 시작했다.
내 옆에 남은 건 유즈나엘 뿐.
그러고보니 궁금한 게 있다.
“유즈나엘. 켈터스를 어떻게 생각하지?”
“근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신중론만 외치는 겁쟁이요.”
“날카롭구나.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만?”
“그런 건 없어요. 한 때 대학원이나 진학하려고 했던 녀석이 모험가를 하는 거부터 이상해요. 겁쟁이가 투사가 될 수는 없어요.”
와.
얼어 붙을 정도로 차가운 말이다.
원작 기준으로는 그래도 주인공과 히로인일텐데 말이지.
거기에 유즈나엘이 지상에 내려온 이유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데 말이지.
“정말 없나? 켈터스에게 그 어떤 호의도 없나?”
“없어요. 하나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지독할 정도로 차갑다.
“그런가….”
“네. 그래요. 그것보다 착한 울프람. 오늘은 편 들어주고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같이 밥먹어요. 밥.”
“그렇도록 할까.”
웬만하면 게임과 상이해진 현실을 추리할 자신이 있는데 이건 정말 어떻게 굴러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
내 옆에 바짝 붙어서 팔짱을 끼고 밥을 소리치는 속 편한 천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