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94)
894. 똑같은 하루를 지키기 위하여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브에게 필티아에게도 고백 받았다고 말하니 경악하고 나를 바라봤다.
“하프 드래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 말하고 시선을 피하는 녀석.
“하프 드래곤이라…. 만약 내가 필티아를 선택한다면 불가능하진 않겠구나.”
“진심이에요?”
“나는 언제나 진심이다.”
“…….”
이브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부족한 건 각오와 결단이지, 만약 내가 선택한다고 하면…. 평생 함께 살 각오를 해야 한다.
“뭐, 수 천 년을 살지도 모르겠구나.”
“생각보다 많이 침착하네요.”
“이렇게 된 이상 허둥대서 어쩌겠나.”
“어른이 된 척 하기는….”
“너보단 어른이다만.”
“어른은 생각없이 남을 홀리고 책임은 커녕 눈치도 못채진 않아요.”
이 비겁한 녀석. 갑자기 사람을 두드려 패다니.
“아무튼. 슬슬 밀푀유도 다 나은 거 같고, 마지막 데이트를 할 시간이죠?”
“그리 되겠구나.”
“그럼 7문 공략. 전에도 잠깐 들었지만 어마어마한 곳이네요. 저희 전력으로 상대가 될지….”
“안 되더라도 해야지.”
“그건 맞는 말이에요.”
이브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두렵나?”
“아뇨. 그 뒤에는 8문이구나…. 그리고 당신은 졸업이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에요.”
“당연한 이야기를 하니 갑작스럽구나.”
“그러게요. 갑작스럽네요.”
이브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고, 나도 그 시선을 따라 학생 회장실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봤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누군가는 향후 오 천 년을, 누군가는 당장 몇 달 후의 졸업을 생각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잘 모르겠군.”
“잘 모르겠네요….”
오래간만에 뜻이 맞았다.
***
감기가 다 나은 밀푀유는 양 손을 꽉 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정말 다 나았어요!”
“그래. 고생이 많았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내 손길에 따라 함께 움직인다.
“그러면 이제 데이트…. 해 주실 거죠?”
“약속 했으니 말이다. 반드시 지키도록 하지.”
“으흠. 그러고 보니 제가 마지막이라고 들었어요. 서, 선배님…. 참고 삼게 다른 분들과의 데이트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얼굴이 새빨개진 밀푀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녀석과의 데이트를 어떻게 했는지, 차분히 설명했고, 밀푀유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전부 다 들어줬다.
“그렇군요. 휴식 같은 데이트에…. 캠핑…. 으음. 다들 대단해요. 저는 꿈도 못 꾸는 데이트라….”
“밀푀유는 하고 싶은 게 있나?”
“아, 없진 않은데요…. 너무 평범해서 그러니까….”
꼬물거리는 녀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네가 하고 싶은 걸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뭐든 내가 최대한 맞추도록 하지.”
“하지만 선배님이 재미 없다고 생각하시면….”
“그렇지 않다. 밀푀유와 함께 있는데 재미 없을리가 있나.”
“으….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그리 말하고 녀석은 힐끔 이쪽을 보더니, 결국 자신의 요구를 솔직하게 입에 담았다.
“방과 후 데이트?”
“네. 방과 후 데이트요…. 강의가 전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하는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
“첫 데이트인데 괜찮겠나? 너만 괜찮다면 그러도록 하지.”
“네, 네! 그러면 내일 오후에 뵐게요! 교복을 입고 마중 나와주시면 돼요!”
“알겠다.”
밀푀유가 그걸 바란다면 그러지 뭐.
어려울 거 뭐 있겠나.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밀푀유는 나오지도 않았고, 다른 녀석들이 먼저 나왔다.
-죄송해요. 선배님. 조금 걸릴 거 같아요.
-교수님께서 잡으셔서….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런 사유라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았다.
“저기 울프람 황자님 아냐?”
“왜 2학년동에….”
“아 혹시 수석님이랑 만나려고 온 걸까?”
“와아…. 나 처음 만나. 황손분은 진짜 실존했구나.”
다른 학생들이 이쪽을 보고 수군거린다. 그만둬.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아니란 말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리도 만무하다. 여기서 눈치를 줬다가 무례를 사죄하겠다면서 소동이라도 일어나면 밀푀유가 나왔을 때 괜히 복잡해진다.
그러니 지금은, 이 치욕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허나 오해하지 마라, 오늘 나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저 물러선 것뿐이다.
언젠가 반드시 이 치욕을 되갚고 말리라….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오늘의 주인공이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선배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 얼마 기다리지 않았다. 일은 무사히 마쳤나?”
“네, 네! 마쳤어요! 후후.”
“뭐가 그리 기쁘지?”
“오래 기다리셨죠와 얼마 안 기다렸다. 이런 대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아, 기다리게 만들어 죄송해요.”
밀푀유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도 입으로는 호를 그렸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좀 연인 다운 대화일지도 모르겠네.
“그럼 어디로 갈지 정했나?”
“후후. 선배님. 그런건 지금부터 정하면 돼요!”
“그런건가.”
“네. 걸어요. 자!”
그리 말하고 녀석은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평소보다 활동적인 녀석에게 잡아 끌려 제프린 거주구를 걸었다.
“아. 선배님. 여기 어떠세요? 요새 애들에게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있다고 해요.”
“간식 전문 카페인가. 들어가도록 할까.”
“네. 선배님 입맛에 맛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가게에 들어가 케이크와 음료 세트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다른 학생들도 복작이는 와중, 우리를 보고 흠칫 놀란 애들도 있지만 밀푀유가 가볍게 웃어주자 그대로 물러섰다.
무섭구나. 이 근처는 완전히 평정했다 이건가. 이쪽을 힐끔 곁눈질만 할 뿐 누구 한 명 대놓고 바라보지도 못한다.
“주문하신 케이크와 음료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주문을 받아 들고 한 입, 그리고 한 모금.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맛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나요?”
“조금 비싸긴 하지만 재료 수급이 힘들었을텐데, 이 정도의 품질이라니. 놀랍구나.”
“네. 그래서 인기가 많아요. 학생들 용돈으로는 조금 비싸지만요.”
케이크 한 피스와 음료 한 잔 세트로 약 만 팔천 린. 확실히 학생들이 먹기에는 조금 고급지긴 하다.
그럼에도, 충분하고 남을 정도의 품질이다.
내가 이 제프린에 재료를 공급한게 이점으로 작용하는 걸까, 이런 가게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좋은 가게구나. 언제 이런 곳을 알아봤지?”
“후후…. 이런 데이트를 꿈꾸면서 사전 조사를 좀 했어요. 아 맞다. 선배님. 최근 2학년 기사학부 사이에서 유행하는 건데요….”
그렇게, 평범한 대화를 약 한시간 정도 했다.
그 뒤로는 관람물을 보기 위해 제프린 중앙구 쪽을 향했다.
“평일에는 여기에서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마법 시연을 해요. 연말에만 있는 진풍경이죠.”
“4학년이 그런 일을 한다면 마지막 취직을 위한 발버둥이겠지만 2학년들이 그러면 생기 넘치는구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학년에 따른 격차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걸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졸업을 앞둔 4학년이 거주구에서 마법 시연을 한다는 건 ‘저는 취직을 못했지만 이 정도 능력이 있으니 부디 좋게 봐주세요.’ 라고 어떻게든 어필하는 비참함이다.
“아. 선배님. 마법을 쓰는 거 같아요.”
“가서 보도록 할까.”
“네!”
인파가 넘쳐나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데 좀 시간이 걸렸지만, 어떻게 우리는 꽤 앞 열에 설 수 있었다.
밀푀유가 인파에 쓸려가지 않게끔 어깨를 꽉 잡자, 하으, 하고 녀석이 소리쳤다.
“괜찮나.”
“네, 네…. 괜찮아요.”
“그나저나…. 훌륭한 마법이구나.”
학생은 불꽃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지, 스스로의 불꽃의 색을 변화시켜가며 선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얀 불꽃이 알의 모양을 하다가, 이내 노란색 병아리가 되고, 점차 그 불빛을 붉게 만들어 한 마리 불사조로 피워낸 후. 그 끝에 다시 알로 돌아가는 마법은 예술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학생은 들고 있는 모자를 내밀며 수금을 했고, 다들 손을 꺼리는 와중 인벤토리에서 보석 하나를 집어서 모자 안에 던져줬다.
“가, 감사합니다!”
“좋은 걸 봤다. 정진하고 노력하면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네!”
반짝이는 눈으로 이쪽을 보는 시연자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역시 선배님이세요. 그렇게나 멋지실 줄이야.”
“내가 뭘 했지?”
“보석을 넣어주고, 어깨도 두드려주셨잖아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애들이 말하는 ‘대단하다’ 라는 감각은 잘 모르겠다.
“그럼 공연도 봤으니 저녁 식사로구나.”
“네! 가요. 선배님!”
오늘따라 몇 배는 더 활기찬 밀푀유의 손에 이끌려, 다시 제프린을 돌아다녔다.
***
그렇게 도착한곳은…. 평소 다니는 초 고급 레스토랑이나 노점이 아니라 깔끔하고 트랜디한 레스토랑이었다.
이 세계로 들어오기 전으로 치면 한스밸리라는 이름의 패밀리 레스토랑을 떠올리게 했다. 깔끔하고 먹을 만 했는데 어느새인가 하나 둘 종적을 감췄지.
“여기 크림 치즈 파스타랑 칠리 쉬림프 하나 주세요. 그리고 음료는….”
서로 메뉴판을 돌려보면서 의견을 합치고, 주문한 요리가 나올 때 까지 다시 떠들었다.
별거 없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학생’으로서의 데이트는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괜찮구나.”
“네. 맛있어요!”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가 천천히 잦아들고, 식사 대신 대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늦가을답게 해는 이미 졌다.
카페, 그리고 길거리 공연. 그리고 식사.
오후에 시작했던 데이트 치고는 충만했지만, 동시에 그만큼 끝나는 시간도 빠르다.
살짝 아쉬움이 남지만, 서로 입에 담지 않았고 레스토랑을 나와, 한적한 공원을 걸었다.
이대로 쭉 걸으면 밀푀유의 기숙사에 도착한다.
“밀푀유. 오늘 데이트는 만족했나.”
“네. 무척 만족 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가. 음….”
“아, 혹시 뭔가 부족하지 않았나…. 그 정도로 만족했나…. 하고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그렇다. 거기에 오늘 지나치게 밝은 모습이…. 뭔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나 싶어서 말이다.”
내 말에 밀푀유는 방긋 웃고는, 내 팔짱을 꼈다.
“아뇨. 정말, 정말 크게 만족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제 첫 데이트는 이게 좋아요.”
“그런가…. 이유가 있나?”
“사실 많이 고민했어요. 뭐가 좋을까. 어떤 데이트를 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그 때…. 선배님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 거 있죠. 무능하고 나약하고…. 울기만 했던 그 시절요. 다음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퇴학이었던 그 때요.”
“그런 시절도 있었지. 지금은 어엿한 수석이지만 말이다.”
“네. 후후. 그런데요. 모든 학생 커플이 한 번쯤은 해봤을 이 데이트는…. 원래라면 제프린에서 쫓겨났을 제가, 꿈도 못 꿨을 데이트라고 생각하니까…. 이게 제일 소중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가.”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지만 원래라면 밀푀유가 맛보지 못했을 행복이라.
“네. 그래서…. 평범하게 간식을 먹고, 공연물을 보고, 그리고 식사를 하고…. 선배님이 바래다주는 이 하루가 저에게는 최고로 특별해요.”
정말 만족한 듯 웃는 녀석.
어느새 발걸음이 천천히 잦아들며,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밀푀유.”
“네. 선배님.”
“돌이켜보니 나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이런 데이트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해주마.”
“정말요? 약속 하신 거에요?”
그래.
약속 하고 말고.
녀석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쓰다듬어주고, 웃으며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는 녀석을 보면서 그날의 데이트가 끝났다.
돌아가는 길.
팔에 남은 온기를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전원 데이트도 끝났고…. 또 다른 쪽 준비도 끝났다.”
이번 주 내로 일곱 번째 문에 들어간다.
그리 각오를 다지고, 몇 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