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95)
895. 절망의 구체화
일곱 번째 문에 도전한다.
파티원 전원에게 통지했고,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방학 직전의 축제에 막을 내린다.
“우선 원정조 위무에 가야겠군.”
뭐 받아먹은 게 있다면, 녀석들도 알아서 잘 해야지.
원정조 사무실에 찾아갔고, 오래간만에 전원 소집을 걸었다.
그 숫자는 이제 천 명에 가까워서, 거의 일종의 사열식 같았다.
물론 나는 틀딱도 아니고, 교장 선생님도 아니고, 연대장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철저하게 현실을 때려박을 뿐이다.
천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본다.
저마다 이제 짬이 가득찼다는 듯 전사의 눈을 하고 있다.
좋아. 아주 좋아. 역시 현장에서 구르니까 느낌부터 다르네.
“이 자리에 모여준 전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한다. 너희들이야말로 이 제프린, 나아가 대륙을 위협하는 모든 악을 물리칠 영웅이라 확신한다.”
내 감사인사에 녀석들이 술렁인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다.
원정조에 들어와서, 가장 많은 훈련을 겪고…. 이제는 고철의 협곡까지 무대로 삼고 있다.
7문의 웨이브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말해주려는 것은 그저 말뿐인 위무나 격려가 아니다. 지금 이 제프린이 처한 위기. 그리고 그 진실의 편린을 말해주려고 한다.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으나, 거짓은 하나도 섞이지 않았다고 단언하마.”
내 말에 녀석들의 술렁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허나 그 직후 내가 내뱉은 말에 모두의 술렁임은 폭주에 가까워졌다.
“지금 이 제프린에는 마계로 향하는 문이 총 여덟 곳 있다. 그리고 그 문 안에는 저마다 마계의 군단장이 지키고 있다.”
숨을 삼키는 소리, 경악하는 목소리, 심지어 작은 비명도 울렸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초월종. 그리고 우리 파티가 힘을 합쳐 여섯 명의 군단장을 물리치고, 여섯 개의 문을 봉인했다. 남은 마계의 문은 두 개다.”
“어, 어째서 마계의 문이 이 제프린에 있는 겁니까?!”
“나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질문이구나, 무례는 용서하고 지금부터 그 질문에 대답해주마. 바로 이 제프린이 최고의 교육시설이며 동시에,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즉.
가장 강한 전사를 배출하는 곳이며, 설령 멸망한다 한들 섬에 지나지 않고 황궁이라는 최종 저지선이 있으며 끝으로는 온갖 기연으로 무장했다.
내 말을 들은 학생들은 탄성을 내지르거나, 상식을 뛰어넘는 진실에 경악했다.
“즉. 여기가 밀리면, 제국 전체가 밀린다. 여기서 마계의 문을 막아내면…. 마족들은 감히 이 대륙을 쳐다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그럼 저희가 마족과 싸우는 겁니까?”
“그건 아니다. 마족의 마력에 영향을 받은 몬스터들이, 거주구를 침범할지 모르니 이를 사수해주면 된다.”
그 말에 안색이 밝아지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녀석도 있다.
충격적인 진실은 이만큼 말해두고, 이제 슬슬 맛있는 떡밥을 뿌려야지.
“물론 너희들만 막는 것이 아니다. 제프린 중앙구의 동 서 남 북의 네 방위를 사대 정령왕이 막아줄 것이다. 그리고 요정 여왕 엘피라네 또한 수호에 참전할 것이니 큰 위험은 없다. 다만 적의 수가 많으니 너희들도 전장에 합류해주길 바란다.”
“그 네 분께서….”
“끝으로, 몬스터를 사냥해 나온 분배품은 나중에 최대한 정확하게 정산 할 것이니, 안심하고 전투에 임하도록. 강자들이 뒤를 지켜봐 주고, 마음껏 싸울 수 있으며, 돈도 벌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거기에 싸워야 할 이유까지 있지. 전사라면 망설이지 말고, 마음껏 환호해라.”
나의 그 말에, 녀석들의 눈이 빛나고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진다.
그래 그래.
정령왕들이 버스 태워줄테니까, 알아서 잘 타고, 나 없는 사이에 사고 치지 말고.
잘 좀 부탁한다.
그러라고 템 밀어준거니까.
***
하나 둘 주변에 이야기 하고, 오래간만에 친구도 제프린으로 불렀다.
“이미 졸업한 사람을 제프린에 부르는 건 좀 참아줬으면 한다.”
“친구지 않나, 필요할 때는 내가 나가서 돕도록 하지.”
“후우. 알겠다. 이번은 돕도록 하지. 모교의 위기는 막아야 하지 않나.”
그리 말하고 웃는 실피아와 가볍게 악수했다.
바람의 최상위 정령을 다루는 녀석이다. 아인 플뤼겔과 죽이 잘 맞겠지.
그 외에도 세실도 불렀다. 전장에 서지 말고 최대한 첩보나, 쓸데 없는 것을 생각하는 학생들을 처리해달라고 했다.
검은 깃발쪽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이브의 따까리로 전락한 둘에다가 심지어 데이지 세스티아도 합류했다. 우리집 야간알바나 불운하기 그지 없는 롯데, 거기에 가희도 합류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 외 다른 이들도 하나 둘 합류해줬다.
-울프! 나도 왔어!
“고맙구나.”
이제는 얼음 정령계의 훌륭한 간부가 된 릴리아 스노우 화이트도 참전해줬다.
바다에서 뭔가 일이 생긴다면 아리엘도 참전해줄거고, 에밀리가 밥차…가 아니라 보급을 맡아주기로 했다.
여기에 있는 전원이 제프린 방어전을 도맡아주고, 그 사이 우리는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제프린을 잘 부탁하마.”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줬다.
지금까지 선행을 쌓길 잘 했어.
***
그렇게 주말이 찾아왔다.
우리는 사전 정보 공지와 함께, 완벽한 채비를 갖췄으며 전원 전의에 불타는 상태로 마계의 문을 향했다.
“심해? 화산 속인가요? 아니면 빙산? 그도 아니면 협곡? 하늘?”
“그렇게 대단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지.”
이브의 물음에 대답하고, 나는 천천히 전장을 향했다.
“잠깐만요. 이동 수단을 써서 움직이는 게 좋지 않아요? 벌써부터 체력을 빼면….”
“그렇게 멀지 않다. 따라와라.”
“하지만….”
이브가 끝내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내가 도착했다고 알리자 눈을 껌뻑이고 나를 가리킬 뿐이었다.
“여기에…. 마계의 문이 있다고요?”
“그렇다. 자. 전투를 준비해라. 누나. 문을 열어줬으면 한다.”
“으, 응! 그러면 열게…!”
“잠깐만요. 진짜 여기라고요? 진짜로?”
이브가 놀라는 것을 무시하고, 증거를 보여주기로 했다.
필티아의 마력이 작동하자마자 마계의 문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내 이브는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것이 턱이 빠졌을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여기는 제프린 제 1 연무장.
여기가 주로 어디에 쓰였냐고 하면, 그야 관중들 앉혀놓고 학생들 싸움 붙이는데 쓰지 어디에 쓰겠어.
그래. 맞아.
연 초에 신입생과 3학년을 싸움 붙일 때 쓰거나 했지 아마.
생뚱맞은 곳이지만, 게임을 해본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작게 감탄마저 나오는 곳이다.
유저들은 켈터스를 조종해고, 그에게 이입했으니…. 여기서 켈터스로 아일라에게 한 방 먹이는 것으로 이브의 관심을 끌고, 제프린 생활이 시작된다.
즉. 켈터스와, 우리들 유저 입장에서는 ‘튜토리얼 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
“어, 어째서 여기에…. 이상하잖아요. 왜 여기에 문이….”
이브가 어버버 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고, 나도 몇 번이고 의문을 가졌다.
허나 이게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라고 하면 동시에 납득이 간다.
원래.
최종 보스가 사는 던전은 시작 마을이 뒤틀리면서 열려야 하는 법 아닌가.
오케스트라와 화음이 풍부하게 들어간 오프닝 타이틀이 연주되면서, 이 게임을 시작한 장소에서 마지막 던전이 열린다.
이보다 두근거리는 연출이 또 존재할성 싶은가.
하지만 이걸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모르겠군.”
“모르겠다뇨?!”
아니.
진짜 모르겠어.
하르크 녀석은 뭔 생각으로 여기에 문을 만들었지?
***
하르크 폰 로엔그린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문을 만들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문은 열렸고, 오프닝 브금은 오케스트라를 깔았으며, 마지막 던전에 입장할 시간만 남았다.
“말했지만, 여기서부터는 진짜 전장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줬던 것들이 여기서부터도 가능할거라는 확신은 없다.”
“…….”
모두가 긴장한다. 그도 그렇겠지.
게임에서는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면 제깍 딜도 해주고 버프도 걸어주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들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체 생존하고 협력이 요구된다.
“우선 필티아 누나와 협의한 것을 말해주겠다. 나에게는 소생권이 한 장 있다.”
이 던전에 들어오기 직전.
필티아와 만남을 가졌고, 몇 개의 테스트를 거친 후 협의까지 마쳤다.
-누나. 정말 괜찮겠나?
-나는 동생의 신념을 짓밟을 생각은 없단다. 그리고…. 설령 지금 실패한다고 해도, 동생이 함께 있어 줄 거지?
-약속하마. 반드시, 설령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려서라도, 혼자 남더라도 나는 누나를 해방시키겠다.
-응. 그러면 됐어. 아니 그 쪽이 좋으려나?
-뭐라.
-후후. 농담이란다. 그래. 누구 한 명 죽는 시점에서 소생권을 쓰고, 그 순간 도전은 종료. 누나도 동의했어. 모두 착하고 좋은 아이니까. 죽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어.
-고맙다.
필티아의 자애에 감사하며, 마지막 조건을 입에 담았다.
“설령 죽더라도 한 명 정도는 부활시킬 수 있으나, 그 시점에서 전투는 종료된다. 마계의 문은 한동안 닫고 십 년. 혹은 그 이후에 재 도전한다. 즉 죽음은 피할 수 있으나 전투는 실패다. 나도 필티아도 누군가를 희생시킬 생각은 없다.”
사망자는 없으나 도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또한 사망을 입에 담았다는 점에서 녀석들의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는 게 느껴졌다.
“다만 몇 개의 허점 또한 발견했으니 그 부분을 철저하게 이용하면서 재미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크게 걱정하지 말도록.”
자.
그럼 첫 번째 전투의 시작이다.
***
잡몹마저도 보스에 준할정도로 강하다.
최종 던전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몬스터들.
“선배님! 튕겼습니다!”
“울프람! 목을 긋겠다!”
거대 트롤의 팔을 방패로 홀딩하는 사이, 그 팔을 타고 올라가 루디카가 정수리에 칼빵을 놨고, 그 칼빵 사이로 흑수정이 콰그그극 소리를 내며 파고든다.
그렇게 한 마리의 트롤이 사망.
하나하나 풀링…. 즉 꺼내와서 처리하는 잡몹전은 지루하고 지긋지긋해야 정상이지만, 그 한마리가 보스에 가깝다보니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초월종 여섯 중 한 명이라도 있으면 편했겠지만, 녀석들에게 의지하면 결코 7문의 최종 보스에게는 도달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손으로 끝을 봐야 한다.
그렇게 트윈 헤드 트롤, 그레이 코카트리스, 헬버스터 울프등의 몬스터를 잡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가 봐도 보스방으로 보이는 첫 번째 문에 도착했고….
“자. 이 앞이 우리를 기다리는 첫 번째 절망이다.”
“솔직히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돼요. 이 안에 있는 건 군단장이 아니라…. 절망의 형상이라고 했죠?”
“맞다. 마족은 더러운 감정을 먹는다. 제프린 표면의 타락한 감정들을 흡수해, 인간의 절망의 형태로 구현화 한 것. 그게 첫 번째 강적이다. 주의해라. 어떤 녀석이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르니까 말이다.”
“……?”
이브는 끝까지 고개를 갸웃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알 수 있겠지. 자 따라와라.”
파티원들을 지휘하며, 첫 번째 보스 방 문을 열었다.
녀석은 후공 타입.
안에 들어가서 전투를 개시하지 않으면 전투를 걸어오지 않기 때문에, 어떤 보스인지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거대한 검은 것이었다.
겨우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유령이라고 해야 할지, 가스의 응집체라고 해야 할찌. 무척이나 기분이 나쁜 액체와 고체 사이에 있는 무언가였다.
하늘에 닿을 정도로 큰 그것은 끝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망의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교오수우우니이이이임…】
【이 이상 모……합니다………죽습니다아아……】
【바쁘기……싫어……힘들어……다싫어………】
【저에게도 일과가……있습니다아아……주말에……레포트를……월요일까지……올려두라고하시면……안됩니다아아……】
“…….”
그래.
제프린에 가장 깊게 남은 절망 중 하나라고 하면 이걸 빼놓을 수 없지.
1막의 보스.
기숙사의 악령의 거대화.
상태이상 【절망】과 【즉사】 그리고 거대한 물리력. 뛰어난 마법 저항력을 갖춘 ‘졸프’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끔찍하네요…. 이건…. 정말로 절망의 구체화에요….”
이브의 중얼거림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