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99)
899. 인간포탄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중2병에 빠질 수 있다.
중2병을 놀림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다.
한창 중2병을 앓고 있을 그 나이대의 아이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현실이다.
예를 들면 비가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본다거나, 머리를 감고 나서 거울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외모에 살짝 취해 웃어버리거나.
그도 아니면 무선 이어폰을 끼고 밤의 길을 걸으며, 세상은 따분해. 라고 생각하는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 한 밤중의 산책로에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한데 ‘거기 있지? 알고 있으니까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게 어때?’ 라고 허공에 말을 거는 초기 증세.
특히 락을 좋아하며 ‘락이 아닌 다른 음악을 듣다니, 저 녀석들의 귀는 저런 게 음악으로 들리는 건가? 정말?’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고 마이너한 락 그룹을 초기부터 좋아해서 ‘이 녀석들…. 분명 누구보다 빛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다가 정작 그룹이 성공하면 ‘녀석들의 음악도 변했어….’ 같은 생각을 하는 락찔 증세.
그 외에도 황금나무의 위키에서 룬어를 검색해 자신의 노트 구석에 룬문자를 그려, 타올라라. 모든 것을 태울 정도로. 같은 문장을 어줍잖게 만들어본다거나. 반 아이들의 랭크를 매겨서 ‘김철진. 체력A 민첩B 그리고 지능…E. 쓰레기로군’ 같은 메모를 적어본다거나 하는 후기 증세.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되어간다.
노트에 애들의 스펙을 적지 않고 자신의 스펙에 몰두하며, 황금나무의 위키에서 룬어를 검색하는게 아니라 연예인 가십을 찾아보기도 하고, 굳이 락이 아니라 다른 음악을 듣기도 한다.
허공에 말을 걸지도 않고, 비는 무조건 우산을 들고 맞는다. 끝내 남는 것은 씻고 나서 물기가 촉촉한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고, 픽 한 번 웃는 게 전부다.
그래.
그렇게 누구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
허나 만약.
그 아이가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주변 누구도 말리지 않았으며, 부족한 자존감을 채워주지 못해 중2병에 걸린 상태로 몸만 커지면 어떻게 될까.
소년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허나.
중2병은 마왕이 된다.
【짐의 영역에 온 것을 환영한다. 벌레들.】
저 앞에 있는 울프람은 ‘진짜’다.
이전에 만났던 허상이나 그런 게 아니다.
진짜 미래의 악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마왕 울프람이 등장합니다】
【모든 원한과 저주를 모은, 진정한 악입니다】
【주의하세요.】
내 공략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적.
그야, 원작 기준으로도 울프람과 만나 본 적은 없으니까 말이다.
매번 프롤로그에서 죽고 말지, 뭐 어디서 마주치기나 했겠는가.
정말.
처음 만나는 놈에게 몸이 떨린다.
【흠. 거기에 있는 벌레들, 짐이 직접 다가오라 말하고 있다. 짐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인가?】
쿵. 하고 뒷쪽의 석문이 닫힌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들어오지 않겠다면, 뭐 좋다. 짐이 움직이는 것도 볼썽 사나우니 여기에 앉아 있도록 하지】
그리 말하며 【마왕 울프람】은 옥좌를 소환해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저기요.
중2병이 개화한건 그쪽인데.
왜 부끄러움은 제 몫이죠?
***
내 목소리가 저랬나? 입으로 내뱉는 것과 녹음해서 듣는 건 좀 다르긴 한데, 이렇게 들으니 또 놀랍네. 그리고 좀 키가 컸다. 눈은 좀 더 날카로워졌고…. 몸은 여전히 빈약하구만 그래. 거기에 허리춤에 있는 마검은…. 흠. 내가 알던 천지 어쩌고랑은 좀 다르네.
“울프람…이. 이 세계 최악의 죄악….”
“그럴수가…. 선배님.”
“내 그럴줄 알았지.”
루디카와 네프티가 당황하는 가운데, 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이 진짜.
슬쩍 녀석을 보니, 픽 하고 웃고는 혀를 빼꼼 내밀었다.
후. 귀여우니 용서해준다.
아니.
잠깐 기다려.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했지?
지금 이브가 귀엽다고 생각 한 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거냐 울프람 폰 로엔그린.
손이 덜덜 떨린다. 내 생각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저건 울프람이 아니에요.”
“아일라…?”
우리 앞으로 나와, 녀석이 팔짱을 끼고는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는 포효했다.
“자. 일어나요. 울프람. 그렇게 당황할 거 없어요. 저는 당신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 모두가 그래요. 자!”
“맞아요. 울프람 선배님! 저희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황자님!”
모두의 격려가 나를 일깨워 주고 있다.
아니, 나는 그걸로 충격 받은 게 아니긴 한데, 아무튼.
그렇다고 여기서 사실 이브가 귀엽다고 생각해서 당황했어요. 라고 말 할 수는 없지 않나.
“알겠다. 고맙다. 다들….”
일단 음.
악당이 될 자신의 미래에 절망하다 동료의 격려로 일어난 척 해볼까.
“네. 울프람. 저 녀석에게 한 마디 해주자고요! 자!”
그리 말하고 나를 앞으로 미는 아일라.
하지마.
나는 지금 저 녀석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내 부끄러운 미래를 내게 보여주지 말란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파티원 전원이 나를 지켜보며, 내가 내뱉을 한 마디를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호오. 거기에 있는 건…. 핏덩이 시절의 나인가? 하하. 이거 유쾌하군. 이윽고 내가 될 네가 나를 가로막는다?】
그만 둬.
그런 대사를 치지 마.
나를 알아보고 나를 띄우지 마.
뒤에서도 가뜩이나 압박을 주는데 앞에서도….
어쩔 수 없다.
그럴듯한 대사로 어떻게든 얼버무리자.
“너는 내가 아니다….”
【뭐라?】
“나는 죄악이 되지 않는다.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너를 부정한다.”
【하, 재밌군. 좋다. 긍정도 부정도 오직 힘 있는 자만 가능한 것. 덤벼라. 핏덩이.】
그, 잘 했나?
최대한 어디선가 본 걸 떠올린건데….
슬쩍 파티원을 바라보자 녀석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다행이다.
잘 하긴 했나보다.
***
죽은 자의 소생이란 이 세계에서 금기다.
죽은 자는 죽은대로 흙으로 돌려보내야 하고, 산 자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렇다 해서 이 세계에 부활의 개념이 없냐면 그건 아니다.
입수 수단을 철저하게 통제했을 뿐. 부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제프린 명부를 조사해본 결과, 자동으로 부활을 습득할 수 있는 녀석들은 저마다 엇나가서 아예 다른 길을 걷거나, 적어도 부활을 습득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거기에 스태미너와 체력 회복도 어마어마하게 깐깐한 것을 보면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애당초 물약을 천 개쯤 들고 가서 먹으면서 싸운다는 개념도 불가능하다. 세 개쯤 먹으면 배불러서 못 움직일걸.
말이 좀 엇나갔는데, 요약하자면…. 부활은 금기다.
허나. 눈 앞에 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금기. 그렇기에 선을 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일어나라. 죽었음에도 충의를 다하는 나의 군세여.】
저 울프람이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어둠이 뭉치고 흩여져 인간의 형태를 이룬다.
허나 전원…. 아니 대부분이 비슷한 외형을 띄고 있다.
머리색. 얼굴은 제각각이더라도 의복이 같다.
전원이 제프린의 교복을 입고 있다.
“이건….”
“제프린의 학생들이구나.”
“아…. 아!”
전열에 선 밀푀유가 새된 비명을 지르고, 갑작스러운 반응에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눈이 죽은 채로, 검게 변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붉은 머리의 활기찬 녀석과 새침하지만 귀여운 후배들의 잔해.
“바닐라…. 요거트.”
“밀푀유. 내가 녀석을 부정했듯, 저것도 바닐라와 요거트가 아니다.”
녀석의 어깨를 다독였고, 겨우 마음을 다잡은 밀푀유도 무기를 꼬나쥐었다.
“자. 저런 쓸모 없는 진흙 인형들은 전부 쓰러트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네!”
방금 전 허세 가득한 말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을 입에 담았다.
***
격렬하다.
“와, 와아아아?!”
“아일라. 괜찮아요? 【늪 : 강제고정】”
“괘, 괜찮아요!”
빌어쳐먹을 소생 소환계.
당연하지만 저 가짜 울프람이 소환하는 학생들이 생전의 모든 힘을, 그것도 최종성장형의 힘을 쓰는 건 아니다.
그런 적이 있으면 지금 여기서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망쳐야지.
패황의 진격을 쓰는 켈터스랑 극천을 쓰는 이브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유즈나엘의 천신강림을 상대하라고? 그냥 혀 깨물고 자살한다.
즉. 저건 전부 다 어중간한 가짜들이다. 이것저것 쓰긴 하는데 그리 강하진 않다.
물론, 제프린에서 내노라 하는 강자들은 아직 등장조차 하지 않았지만…. 저 녀석의 역량을 생각했을 때 그리 강하진 않을 거다.
문제는.
많다.
너무나 많다. 지나치게 많다.
지금 상대한 것만 수 천이다. 아일라의 골렘이 날뛰고 늪이 묶고 성광창으로 쓸어버린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불사의 군대.
“으아아….”
【벌써 지친 것인가. 이 벌레들.】
“큭….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흥. 전장에서 왕이 직접 나서는 것 만큼 추한 일도 없지. 그저 짐은 보고를 들으면 된다. 승리의 보고를 말이다.】
그리 말하고 손을 휘두르니 방금 전 사그라 들었던 바닐라와 요거트의 허상이 다시 일어섰다. 돌겠네 진짜.
추측컨대 【마왕 울프람】의 초월은 지배. 평생 인정받지 못한 음울함이 이런 강제 지배로 나타난 거다.
죽이고 부활시키고, 또 죽인다음 부활시켜서 지배한다.
궁극의 네크로맨시. 죽은 자의 황제.
솔직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다.
“방법이 없을까요…?”
“없진 않다.”
“그, 그런가요?”
마왕 울프람은 처음 상대한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몇 번이고 상대해 본 적 있다.
아무래도 이만한 물량을 상대해 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
“네크로맨서의 가장 큰 약점은 근접전에 약하다는 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약점이지 소환수에게 모든걸 맡겨두고 자동으로 싸우게 만드니 말이다.”
“하지만…. 접근할 수 없는걸요. 길을 뚫을 수가 없어요. 흑수정과 성광창, 늪을 섞어서 저 군세를 뚫으려고 해도 출력이 부족해요.”
맞는 말이다.
저 놈은 지나치게 많이 소환한다.
더군다나 여기서 마력을 전부 소진하면 다음 보스에서 또 막힌다.
그러니까.
【무슨 장난을 하는지 몰라도, 너희의 그 잡담 또한 짐의 귀에 들림을 잊지 말도록. 하하하!】
이런. 감각까지 공유하고 있나.
그러면 마력을 집중해서 쏴 봐야 더욱 강하게 뭉칠 뿐이다. 정면에서 뚫는 건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다.
“아일라. 이전 천계에 갔을 때를 기억하나? 필티아의 등 위에 올라탔을 때 말이다.”
“아…. 기, 기억해요. 그런데…. 정말요? 그걸 여기서요?”
“그래. 정말이다.”
“아, 알겠어요. 그러면….”
아일라의 어깨를 툭 치고, 검지만 세워 입을 가렸다. 지금부터는 내가 다 설명할 테니 조용히 있으라는 신호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들어라! 작전을 설명하마! 지금부터 일점을 뚫어 놈에게 도착한다! 마력을 집중해라!”
【어리석구나! 통하지 않는다고 했거늘! 흐하하하하!】
입으로는 작전을 설명하며, 메시지에 딱 세 글자만 띄웠다.
-하는 척
그 말에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강한 기술을 준비했다. 네프티는 방패를 움켜쥐고, 밀푀유도 하르크의 무덤에서 가지고 온 장비를 최대한 활성화 했으며, 레지나와 이브 또한 최종 마법을 준비했다. 루디카도 리미트를 푸는 모습을 보였다.
건곤일척의 승부.
이 기술 하나로 모두 끝난다.
그렇게, 힘 대 힘. 강 대 강의 싸움이 펼쳐지기 직전.
“울프라아아아암!! 날아가세요오오오오!!”
퍼어어어어어어엉!!!
아일라가 전력을 다해 흑수정의 대포를 만들어 나를 사출했다.
난다.
더욱 높게, 더욱 위로, 더욱 빠르게.
“이게 우리의 진짜 계책이에요!”
【뭐라…?!】
“저렇게 하늘 높이 쏘아진 울프람은, 당신도 예측하지 못하겠죠! 가세요. 울프람! 끝내버려요!”
“울프람 선배님!” “힘내세요!” “황자님 믿고 있어요!” “가라! 울프람!” “전부 끝내버리고 와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일라의 응원.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의 격려를 등에 업은 채.
콰아아아아아아앙!
한 줄기 빛이 되어 내리 꽂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