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01)
901. 심박수
전투는 끝났으니, 당연히 보상 화면이 나와야 한다.
이 게임에서 마왕이라는 이름은 쉽게 붙는 게 아니다.
그 아일라마저도 고작해야 마녀가 전부였다.
그런데,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사실 마왕의 소질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개화했다?
뭔가 보상이 나와도 큰 게 나올거다.
뭐가 나오려나. 혈운부나 마도격참이나…. 음. 파티 전체의 스펙을 보면 아무래도 혈운부쪽이 나을 거 같다. 초당 Hp 감소는 있지만 그래도 딜량이 충분해지니까. HP가 부족해지면 후방으로 돌리고 강제 휴식을 취하게 하면….
잠깐.
지금 무슨 생각을 했지?
누구의 HP를 깎고, 누구의 딜을 올린다고?
짜아아아악!
귀가 얼얼해 질 정도로,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내 볼을 후려갈겼다.
“우, 울프람?!”
“선배님?!”
주변의 파티원들이 경악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경악하고 있는 건 나 아닐까.
나는 아주 잠시나마 파티원의 HP를 깎아도 좋으니 딜을 올리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그리고 이건, 지나치게 이영진스러운 생각이었다.
파티원 중 누구도 죽지 않게 할 자신이 있으니, 반대로 극한까지 줄타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허나, 그게 옳은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방금 전 마왕 울프람과의 싸움으로 머리가 조금 맛이 갔나보다.
“울프람. 괜찮아요?”
“괜찮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안 괜찮은 거 알아요.”
“…….”
아일라는 나와 시선을 빤히 마주하다가 이내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곤, 다른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다들 야영 준비를 하죠.”
“아일라, 지금 여기서 야영을 하는 건 바깥 녀석들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
“맞아요. 그러니까 하루 푹 쉬고 최대한 빨리 나아야겠죠?”
“…….”
“우리 파티의 리더이자 중심은 울프람이에요. 울프람이 빨리 낫지 않으면 파티는 움직이지 못해요.”
그도 그런가.
“알겠다. 쉬도록 하지.”
조금만, 조금만 쉬고 나면 돌아 올 거다.
***
흑흑 맛있었다. 오늘 밥은.
아일라와 밀푀유, 네프티가 몰려서 만든 요리는 굉장히 잘 나왔다.
허나 다른 것 보다 즐거운 것은, 이렇게 다들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대에서는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맛있었어요!”
“그렇구나.”
내 옆에서 방긋 웃는 아일라.
“그래서 왜 여기에 있지?”
“식후 소화 겸 찾아왔어요!”
“…….”
여기는 내 텐트.
정확히 말하자면 내 전용 텐트다.
다른 녀석들은 2인 1조로 텐트를 쓰는데, 아무래도 나는 그럴 수 없으니 말이다.
“제대로 설명해줬으면 한다.”
“울프람의 상태가 이상하니 제가 대표로 가서 이야기를 듣고 왔으면 좋겠다. 라고 들었어요.”
“그렇구나.”
그렇게나 걱정을 끼친 건가….
“울프람. 그럼 이야기 해 줄래요? 뭘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어째서 그렇게 괴로워했는지 말이에요.”
“그건….”
“안 돼요. 나중에 때 되면 이야기 해 주겠다. 같은 말로 넘어가지 않을 거에요. 울프람은 그렇게 괴로운 거 슬픈 거 전부 쌓아두고, 또 쌓아두다가…. 끝내 혼자서만 식히잖아요?”
“…….”
녀석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욕이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정말 아프게 찌르고 들어온다.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힘든 부분은 전부. 이야기 해 주세요.”
“알겠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구나. 저 울프람은 내가 맞다.”
“그렇…군요.”
자기 객관화를 했을 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만약 5막에서 부활해서 망자의 군세를 이끌고 제프린을 침공했다.
그 결과 운 좋게도 켈터스를 죽이고, 이브를 죽이고 어둠의 군세로 만들었다고 치자.
그러면 제프린에서 그 울프람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루디카는 이미 졸업했고, 애당초 군세라는 것 자체가 암살자와 상극이다. 십 만 대군 vs 암살자 집단. 보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암살 집단의 뼈는 추스를 수 있나?
즉. 제프린은 울프람의 손에 들어간다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켈터스를 이용해서 친분을 쌓았던 녀석들을 기습만 해도 여러 강자들이 손에 들어온다.
그 결과 제프린은 죽음의 섬이 될 것이다. 포털을 통제하고 제프린을 탐색하는 것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힘이 손에 들어오겠지.
“다행인 건, 녀석이 진짜 강자들을 소환할 틈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네프티. 이브. 켈터스. 그 외에도 여러 강자들이 녀석의 군세에 껴 있었겠지.
그걸 소환했으면 진짜 위험할 뻔 했다. 아무리 하급 마법이라도 녀석들과 싸우는 건 내키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게 아니라요. 울프람이 왜 힘들어 하는지 듣고 싶다고 했잖아요.”
녀석을 바라보니, 볼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저렇게 비뚤어지는 것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거짓말이죠? 울프람은 저런 가짜 때문에 힘들어하는게 아니잖아요?”
“…….”
날카롭다.
맞다.
나는 저 울프람이 진짜든 가짜든 별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재미있는 설정이구나 싶을 뿐. 전혀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말할까. 어디까지 말할까. 전부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황실 혈통이 내 진짜 감정을 감추었다. 이건 알고 있겠지.”
“네. 그랬죠. 그래서 저희보고 기다려달라고 했잖아요?”
“그래. 그리고 지금 그 황실 혈통이 고장나서…. 내 본심이 드러났다. 끝없이 추악한 본심이 말이다.”
“어떤데요?”
“모든 것이 하찮게 보인다.”
잘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말 하찮게 보였다.
가짜 울프람을 베어낼때도, 그 팔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었고 심지어 보상을 가지고 고민 할 때도 파티원의 체력을 좀 희생시켜도 괜찮지 않나. 라고 생각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건…. 이영진의 마음일 것이다.
당연하다.
몇 년이나 밥먹고 폐인처럼 했던 게임이다.
그저 딸깍거리며 조종했던 캐릭터들을 고작 일 년 남짓 한 시간에 정말 대등한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내 인간성을 무너트리던 황실 혈통이 반대로 내 인간성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지독한 농담이다.
“그렇군요. 울프람의 본성은 인간이 아닌 것 같다. 라는 건가요?”
“음? 음…. 그렇게 되겠구나.”
“저희가 다가간 것 만으로도 부끄러워했는데도?”
“…….”
그리 말하며 방실 웃는 녀석.
아니 갑자기 훅 찌르고 들어오네.
“그것과 이건 다르다.”
“다른가요? 즉. 황실 혈통일 때도 인간미가 없었는데, 황실 혈통이 꺼진 지금도 그래서 당황하고 있다. 맞죠?”
그렇게 요약하니 또 맞네.
대체 오늘 몇 번이나 아일라한테 당하는 거지.
“그래. 맞다. 나는 너희를 희생시켜서라도 이 던전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
“음. 그건 그럴 수 있어요.”
“뭐?”
“그 정도 희생은 시켜도 결국 위험하지는 않을 거다. 라는 확신이 있었죠?”
“있었다만….”
“좋아요. 좋아요. 그럼에도 자신이 없다. 울프람은 지금 인간미가 없다?”
“그렇게 되는구나.”
“그렇군요. 그걸 알아 볼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답니다.”
“어떤 방법이지?”
“이런…방법이죠!”
아일라는 강하게 소리 치면서 내게 양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이런 근거리에서 아일라를 강하게 내치면, 녀석이 다칠지도 모르니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내.
와락. 소리를 내며 녀석이 끌어안았다.
좋은 향기, 부드러운 감촉. 따스한 온기. 그리고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목소리.
“울프람. 그거 알아요?”
“뭘…말이지?”
“지금 울프람의 심장 고동이, 엄청 빨라졌어요. 두근. 두근. 두근…. 하고 말이에요.”
아일라는 입으로, 내 심박수 따라 소리를 냈다.
귀에 울리는 녀석의 목소리는 심박수와 공명했고,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 이렇게 두근거릴거 같진 않은데요?”
녀석은 씩 웃고는, 포옹한 팔을 풀고는 살짝 물러섰다.
녀석의 얼굴이 어마어마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얼굴도 새빨갛게 변했을 것이다.
몇 번 숨을 고르고, 겨우 입을 열었다.
“꽤나 대담해졌구나. 아일라.”
“어머. 서부의 여자들은 원래 대담하답니다. 그 곳에 광산이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파고 드는데에는 주저함이 없죠.”
그리 말하고 혀를 빼꼼 내민 아일라는, 이내 붉어진 채로 화사하게 웃으며, 혀를 빼꼼 내밀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슬슬 잘 시간이라…. 저는 가 볼게요. 울프람. 내일부터 다시 잘 부탁해요.”
그리 말하고 휙, 하고 텐트를 나간 녀석.
자리에 드러누워, 손으로 눈을 가리고는 몰려오는 큰 숨을 내쉬었다.
“하하. 진짜, 제대로 설득 당했군.”
심장의 고동이 더럽게 시끄러웠다.
좀 멈춰주면 안 되나.
***
다음 날 아침.
지저귀는 새 소리나 따스한 햇살은 없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자. 그러면 다음 번 보스전으로 가기 전. 회의를 하자.”
“선배님. 괜찮으세요?”
“완벽하게 괜찮다고는 말 할 수 없구나, 하지만 많이 괜찮아졌다.”
내 말에 다른 파티원 녀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 황자님께서 약한 소리를….”
“울프람 서, 선배니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인정 해야지.
지금 ‘정신 안정’이라는 부분에서는 황실 혈통이 없기 때문에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까딱 잘못하면 이 현실을 게임 시스템으로 봐서 미친듯이 날 뛸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씩 바꿔가려고 노력할거고….
“부족한 점이 드러났기에 때로는 의지도 할 생각이다. 잘 부탁하마.”
“오, 오오…. 그, 그래.”
루디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리고.
저 끝에서 이쪽을 보면서 픽 하고 웃는 짜증나는 녀석.
“이제야 좀 사람다워졌네요.”
“그래 보이나?”
“네. 인간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지금이 훨씬 낫네요. 좋아요. 얼마든지 의지하세요.”
“그거 고맙구나.”
“자, 그럼 아침 식사를 하고 움직이죠. 어차피 다음 전투가 한 두시간 늦어진다고 해서 별 일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브의 그 말은 지당했다.
“알겠다. 오늘 아침은 내가 차리도록 하지. 전원 얼마든지 먹고 싶은 걸 말하도록.”
“선배님. 저, 저도 도울게요.”
“아니다. 앞으로 내가 끼칠 민폐의 선금이라고 생각해라.”
밀푀유는 내 말을 듣더니 잠시 당황하다가 끝내 웃어버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버터를 넣은 크림 스튜로 할게요.”
“음. 다른 녀석들도 주문을 정하는 대로 말해줬으면 좋겠군.”
“아, 저는요!”
그렇게 하나 둘 메뉴를 받아 적고, 요리를 시작했다.
분명 내가 요리를 하겠다고 했건만, 이 녀석 저 녀석이 참여해서 돕기 시작했고, 결국 전원이 아침식사를 만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하하호호 웃으며 뒷정리를 하고 다음 번 보스 방 문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이번 보스는 뭐라고 했죠? 그러니까….”
“유령이거나 마족이라고 했죠. 기억이 나네요.”
음? 그렇지 않은데?
아.
이 던전은 무조건 에스컬레이트 방식으로 보스가 강해진다는 설명을 빼먹었구나.
“아니. 그렇지 않을 거다. 두 번째 방에서 마왕급이 나왔다.”
“네 그랬죠.”
“그러니 세 번째에선 거의 확정적으로 우리가 만난 초월종이 나온다.”
“…….”
“저희가 만난…초월종이라고 하면. 그러니까….”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 아인 플뤼겔. 샤르. 그랑펠리시에. 필티아 블루브리즈.”
내가 거기까지 말하고.
마지막으로 이브가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엘피라네 오웬….”
그래.
문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세상을 강제로 변화시키는 폭력’의 정수.
압도적인 초월의 마력을 느끼며, 나는 파티원을 보고 웃었다.
“자. 최악의 절망을 만나러 가자.”
“시, 싫어….”
이브의 단말마가 작게 울렸으나,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얼마든지 의지하라고 했으니, 있는 힘껏 의지 해 줘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