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05)
905. 야성의 부름
참전 인원 중 총 사상자 합 팔백 오십 남짓.
경상 칠백이십. 비전투손실 삼십. 중상 백.
사망자.
없음.
이것이 우리가 제프린으로 돌아왔을 때 받은 통지서였다.
***
“우우와아아아아….”
“음.”
파티원 전원이 제프린의 참상을 보면서 입을 떡하니 벌렸고, 나도 어깨를 으쓱했다.
어마어마한 참상이다. 다행인 건 대부분 몬스터쪽의 참상이고, 학생들은 대다수 무사해보였다는 점이다.
“왔어. 울프람?”
“고생 많았다. 실피아.”
“그러게…. 정말 많았어…. 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는 다 죽어가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만큼의 격전이 있었을 터.
핏물이 흘러 강이 될 정도의 전투니 말이다.
“보고서는 나중에 서면으로 받지. 부하를 시켜 사대 정령왕과 요정여왕을 소집해주고…. 실피아는 조금 쉬는게 어떻겠나.”
“응. 그렇게 할게…. 조금 눈 좀 붙여야겠다.”
그리 말하며 실피아는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갔다.
이윽고 사대 정령왕. 그리고 엘피라네가 모습을 드러내고, 전용 막사를 하나 세워 그 안에 파티원과 녀석들을 전부 밀어넣고….
【주의. 심각한 저주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황실 혈통의 권한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제거하시겠습니까.】
잠시 손을 멈칫했다가, 이내 저주의 정화를 눌렀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감정이 가라앉는다.
이영진이 사라지고, 그 안을 울프람이 채워넣는다.
“좋은 기분은 아니군 그래.”
둘 다 나지만, 그건 ‘서로 다른 모습’을 받아들였을 뿐 융화된 것은 아니라는 실감이 든다.
그나저나.
“저 저주받은 문 안에서…. 나는 정말 이브를 귀엽다고 생각한 것인가…? 정말?”
인상이 찌푸려지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영진 너 인생에 문제있어?
***
지금 이 제프린 최고 전력을 모아둔 막사에 들어갔다.
필티아도 마계의 문을 닫고는 합류했고, 아인과 엘피라네에게 지시해 주변의 공간을 격리하고 그 어떤 음성도 새어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도, 동생….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야?”
“해야 할 일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추론이지만 동시에 극론이다. 밖으로 새어나가 하나도 좋을 일이 없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마. 이 일을 타인에게 꺼내는 이는 설령 파티원이라 해도 그 죄를 엄중하게 다루겠다.”
그래.
최소한 한 달간 밥을 주지 않을 거야.
내 말에 모두 침을 꿀꺽 삼킨다.
“좋아요. 그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는 걸 보고 왔나 보군요. 어디 말해보세요. 기대된단 말이에요.”
엘피라네가 주먹을 꺾으며 웃는다.
“그래. 그러면 지금부터 저 안에서 본 것, 그리고 내 추론을 전부 말하마.”
우리가 만난 보스. 그리고 그 끝에 있던 여덟 번째 문.
그 문을 열고 만났던 초대 황후. 린디 폰 로엔그린.
그리고 그녀가 지키고 서 있는 문.
그 문 너머에서 느껴지던 끔찍한 마력.
황후가 지킨 문 너머에 있는 것은 틀림없이….
“그 개새끼가 거기에 있다고요?!”
“여왕님?!”
“잠깐만요. 어디 갔나 했더니 그 앞마당 풀 키우는데도 쓸모가 없는 그 새끼가?!”
엘피라네가 화들짝 놀랐고 가식 없는 순수한 감상을 내놨다.
“음. 네 말에 전부 찬동하긴 힘들지만, 그 입에도 담기 험한 욕설의 대상이 위대하신 선조님이라면…. 아마 틀림 없겠지. 마계8문의 마지막 보스는 마족이 만들어낸 그분이라고 생각한다.”
“아. 복제품이라…. 음. 하르크의 복제? 그게 가능한가? 그만큼 강한, 초월중의 초월을 복제해낸다…?”
엘피라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안에 있는 하르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리는 그를 쓰러트려야 하고, 그래야만 필티아의 봉인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번 전투에는 전원이 들어갈 생각이다.”
“전원…?”
“그래. 이자리에 있는 전원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분류하고, 지시를 내리마. 그 사이는 휴가 기간이라고 생각해다오.”
결전(決戰)
모든것을 끝낼 싸움이 다가온다.
***
해산을 명령하고, 나는 각 문의 전투 현황을 살폈다.
사대 정령왕은 자기 이름값답게 모든 부분에서 날뛰어줬다.
허나 전장의 주역은 전사뿐만이 아니다.
좋은 보급을 한 친구들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군량미 제작부터 골렘으로 만든 밥차까지 모든 부분에서 지휘한 에밀리를 만나고 대화를 나눴다.
“아. 스승님! 그간 격조했습니다!”
“에밀리. 고생이 많다. 중상인 학생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괜찮나.”
“음. 그건 구호소 쪽으로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그래. 이 힘든 전장에서 정말 고생 많았다. 이걸 받도록.”
“네, 네?”
에밀리에게는 퀵 크리에이트로 만든 전설의 조리도구를 건넸다.
“새, 생선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식도, 바로 숙성되는 항아리…. 건조된 재료를 바로 신선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통, 뭐, 뭐든 썰어주는 통에….”
에밀리가 몸을 덜덜 떤다.
“자. 그럼 구호소 쪽으로 가볼까.”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발키리 시스터즈와 대화를 나눈 후. 구호소를 나와 기지개를 폈다.
다른 녀석들은 쉬어도, 나는 해야 할 뒷정리가 아주 많이 남았다.
무엇보다.
“일이라도 해야 잊고 싶은 기억을 빨리 잊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마계 7문 안에서 내가 보였던 추태를 떠올렸다.
이브가 귀엽다고 생각했다고?
지금 당장 목에 검은 단검을 꽂아버릴 생각을 내가 정말 했다고?
“하….”
***
“으, 으으…. 우으으아아아아악!!”
침대에 얼굴을 묻고, 배게를 끌어안은 채 이브는 그대로 발버둥쳤다.
마계의 문 안에서 벌였던 그 추태. 치태!
굴욕적이야! 목에 성광창을 꽂아버리고 싶어!
밖에는 절대 새어나가지 않게끔 이세계에 들어가 자신의 방에서 침대에 얼굴을 묻고 그대로 포효했다.
현대로 나오자마자 울프람에게 스멀스멀 적대감이 피어오르더니, 막사에서 회의할 때는 완전히 평시로 돌아갔다.
밉다. 싫다. 때리고 싶다!
허나, 그렇게 반발할수록 마계의 문에서 자신이 했던 일들이 떠올라서 당장이라도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 같다!
“어떻게 된 거야…. 전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잖아….”
이전.
격전 상황이나 특수한 상황일 때. 울프람에게 적의가 사그라들었던 적은 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황실 혈통의, 서로 미워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이 모종의 사유로 가라앉았던 거겠지.
허나 그게 전부다.
가라 앉았을 뿐, 호의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마치 마계의 문 안에서 자신은…. 울프람에게 호의를…
“아으아아아아아아악!”
이브는 다시 포효하며 침대를 내리쳤다.
옆에서 쿵. 하고 벽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여기는 이세계일텐데….
“그 남자가 들어왔군요….”
울프람이 옆 방에 있다.
그래 여기는 원래 울프람의 집. 그가 와서 이상할 건 없다.
평소라면 거실로 나가거나 혹은 퉁명하게 굴었을 텐데, 지금은 그와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순수하게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옆에서 이브의 이불킥과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마 저 녀석도 그 안에서 있던 일을…. 어마어마하고 끔찍했던 그 사건을 반추하며 발버둥 치는 거겠지.
물론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그래.
잘 생각해봐라.
이 세계에도 태양이 있고, 태양이 있다는 건 이 세계도 우주가 있다는 거다.
우주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언젠가 수축기가 오면 모든 우주의 생명체는 죽는다.
그렇다면 나의 그 치태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전부 죽는다는 이야기다.
“결국은 시간 문제지.”
맞다.
내가 아무리 부끄러운 짓을 했어도,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
【황실 혈통이 상상할 수 도 없는 수치심을 강제로 정상화 시킵니다】
【상태이상 혼란 부끄러움 자조감 모멸감 자괴감이 삭제됩니다】
“그래. 결국 모든 생명은 죽는다….”
【황실 혈통이 상상할 수 도 없는 수치심을 강제로 정상화…】
아 진짜.
방금 전부터 더럽게 시끄럽네.
***
그 날 하루를 이세계에서 보냈다.
이브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가끔 녀석의 오열소리에 ‘흥. 결국 모든 생명은 죽는다.’라며 마음 속으로 회답하니 다음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제프린에서 어떤 몬스터들이 주로 나왔고 어떻게 싸웠는지 상세한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켈터스였다.
녀석은 확실하게 군기가 들어간 모습으로 경례를 올렸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동작은 절도있고 눈이 깊어졌다.
“이상입니다!”
“고생이 많았다. 켈터스. 다들 괜찮게 싸웠구나. 훌륭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사망자가 없는 것은 사대 정령왕이 구해줬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정령왕들도 대부분 전투를 했지, 애 돌보기를 한게 아니란 의미다.
즉 파티 단위의 전투를 훌륭하게 해냈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부상자는 대부분….
“원정조에 속하지 않았던 녀석들이거나…. 마법학부 녀석들이구나.”
“그렇습니다.”
“음. 알겠다.”
원정조에 속하지 않는 기사학부생이나, 마법학부생 녀석들이 ‘우리도 제프린을 지키겠소!’ 하는 열의에 불타올라 전장을 향했다가, 멋대로 돌출되고는 그대로 박살났다는 이야기다.
절대로 나오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이브가 이미 공지를 다 했을텐데도…. 끓는 피를 멈출 수 없었나.
“그래서 현재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원정조에서 중상을 입은 학생들은 대부분 탱커로, 그런 돌출 행동을 한 외부인을 지키다가 다친 일입니다.”
파티의 탱커는 오직 파티만을 봐야 하지만, 옆에서 멍청한 놈이 죽으러 달려나가는데 그걸 내버려 두고 있으면 그게 인간이냐, 게이머지.
“알겠다. 고생 많았다. 다음번 전투도 잘 부탁하마.”
절도있게 경례를 올리는 녀석.
은은하게 오라가 피어오르는게, 아무래도 정말 크게 발전한 모양이다.
외형적 변화는 없고, 마력 패턴이 깊고 넓은걸 보니 전투지휘관 쪽 진화인가보네. 워로드쪽을 가려나.
“아, 황자님. 그리고 이것….”
“음?”
“다른 사람들의 무구는 전부 바스라졌는데, 제 검은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그야 너는 앞으로도 더 굴러줘야 하니까, 다른 놈들은 칼쥐어주면 사고치지만 너는 그럴 일이 없잖아. 그러니까 잘 쓰렴…. 이라고 하기엔 멋이 좀 없다.
무려 각성까지 한 녀석이다.
이 녀석의 자존감도 좀 채워줘야겠지.
“이번에 전원에게 나눠 준 검에는 한 가지 마법이 걸려 있다.”
“마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전장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이의 무기는 사라지지 않고 영구 귀속된다. 즉, 이번 전투에서 누구보다 크게 성장한 것은 너다. 그 검은 너를 선택했다.”
검지로 녀석의 명치를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뭐. 신검은 아니더라도 전설급은 될 거고…. 녀석의 성장에 따라서 신검에 준하는 성장을 보일수도 있겠지.
앞으로 켈터스가 어떻게 성장할지도 기대되는걸.
***
이후 가장 격렬했던 남문을 향했다.
스으으읍!
숨을 들이키자 상쾌한 공기.
그리고 이를 완전히 헤집는 피내음. 당연하다. 전투가 있었으니까.
“이겼다! 이겼어!”
“우리가 이겼어! 으하하하! 마법사 놈들이 멍청하게 나자빠지는 사이에 우리가 다 해냈다고!”
“그 멍청한 샌님들이 전투를 알겠어? 으하하하하하!”
승리를 자축하는 전사들의 포효.
그런데 아무래도 쌓인게 좀 많은 거 같다.
“그레이트 오크 고기가 싸요!”
“그냥 바로 물마법으로 피 빼고 구워먹읍시다! 배고픈데!”
“술 없나? 곧 졸업인데 지금 마셔도 괜찮지 않나?”
신선한 고기들이 넘쳐흐르고, 정육점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술을 찾는다.
“음….”
옆에서 부어라! 마셔라! 흐하하! 마법사 샌님놈들! 자 고기가 싸요! 형씨 술 찾아? 괜찮은 거 있는데, 페어리 퀸 양조장의 하품인데…. 어때? 이거 봐라! 몬스터가 버리고 간 무구들 괜찮지 않나! 등등. 승리를 자축하는 함성이 울려퍼진다.
이게 제프린이야 투기장이야….
한 번 전투를 겪더니 전사의 혼이 깨어났나…?
이런 부작용은 생각한 적 없는데 말이야.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수습을 생각해야 하지?
“석 달 후면 졸업인데 말이다.”
거기에 이런 건 학생회장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