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06)
906. Villain
그 뒤.
제프린에 퍼져나가는 공기는 우리가 예상한 것과 아주 조금 달랐다.
내가 바란 것은 그러니까….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우리 손으로 저 강적들을 쓰러트렸다.
우리는 강하다.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
제프린의 현 세대가 몬스터 웨이브를 이겨내고 승리의 포효를 외치며 실전의 자신감을 쌓는다.
용기와 신념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원정조는 누구나 문을 두드리는 곳이 된다.
그런, 우정과 신념과 용기의 이야기를 기대했다.
허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 다음 원정지는 북쪽이다!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곳에 가서, 최고의 보물을 가져온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샌님은 빠져라! 두렵다면 도망쳐라! 허나 전사라면 따라와라!”
“가자아아아아아!”
원정조 안에서 그럭저럭 상위권에 위치한 파티의 환호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아무래도…. 좀 너무 과하지 않나.”
“그러게요. 기사학부가 아니라 용병학부가 된 거 같은데요.”
“전문적으로 용병공부를 하는 건가, 용병이 공부가 필요한지는 차치하고, 이 녀석들을 제프린으로 보낸 부모님들이 오열하겠군.”
“당신이 저지른 일이잖아요.”
이브는 뚱하게 답했고, 나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야 맞는 말이니까.
우정이나 신뢰. 승리와 보상 이런 게 아니라…. 모험. 전투. 역경. 그리고 포상으로 눈이 돌아가 있다.
그야 사대 정령왕에 요정여왕까지 합세해 펼친 군단 단위의 전쟁.
그 안에서 한 명도 죽지 않고 돌아왔다는 압도적 성취감.
신화의 한 장면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한 착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음…. 이건 어쩔 수 없다.”
“잠깐만요. 뭘 하려고요? 설마 현실을 알려준답시고 전부 때려 눕힐 건 아니죠?”
“그럴리가 있나. 일단 내버려 두는 쪽으로 갈 생각이다.”
“네?”
“이제 저 녀석들은 내 기준에서도 진짜 전투를 겪어봤다. 나는 녀석들의 보모가 아니다. 성장할만큼 성장했어.”
“…….”
“이 뒤로 방심하다 죽더라도, 본인의 잘못임을 알아야 할 때다. 아니면 내가 언제까지 봐줘야 하지? 제프린을 졸업하고 나서 기사나 용병이 되었을때도, 죽을 거 같을때는 내가 나타나서 구해줘야 하나?”
“그건 아니죠.”
“그렇다. 나는 몇 번이고 자만하지 말고, 성실하고 충실하게 전투를 벌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면…. 이제 스스로 책임져야겠지.”
“평소보다 많이 냉정하네요.”
“문은 앞으로 하나 남았다. 그리고 나는 세 달 남았지. 그 뒤로 나는 이 땅에 없다.”
내 말에 이브는 잠시 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깜빡했네요.”
“음. 거기에…. 마지막 문을 생각하면 이제 저 녀석들을 감쌀 틈이 어딨겠나. 그 둘을 꺾을 것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오는군.”
“둘…. 이라고 확신하나요?”
“둘이다.”
내 단언에 이브는 한숨으로 답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저도 내버려 두도록 하죠. 저들은 뭐….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야죠.”
“호오. 너 답지 않은 선택이구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요.”
고작 세 달에 지나지 않지만,
이브 폰 로엔그린은 제프린을 지키는 학생회장보다 마계의 문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의미다.
즉.
전교생보다 내 편을 들었다는 의미.
“잘 부탁하마.”
“흥. 저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거든요?”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구만.
***
그래 이제 애들도 알아서 크라고 버려뒀다.
물론 켈터스에게 ‘너는 지금부터 원정조 총대장이니 네 눈 닿는 곳에서 학생들이 죽지 않게끔 적당히 케어하렴’ 이라고 어깨에 뽕을 심어줬다.
배틀마스터나 워로드로 직군을 선택했다면, 군단을 지휘하는 경험은 녀석의 미래에 크게 도움이 될 거다.
켈터스는 경례를 올리고 물러났다. 나를 완전히 상급자 대하듯 대한다.
“울프람. 그거 들었나요? 저희가 제프린 칠장군이래요.”
“칠장군?”
“네. 저희 파티 일곱 명이 제프린의 무력의 상징이라나요.”
앉아있는 내 등 뒤로 와서, 목에 팔을 걸고 끌어안은 아일라가 귓가에 그리 속삭였다.
“일곱이 아니라 여덟 아닌가. 실피아도 포함해야 할 듯 싶다만.”
“아, 실피아는 이미 졸업해서…. 아무튼 그런 칭호도 준비한다고 하네요.”
“재밌구나.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지?”
“네? 이전처럼 울프람이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고 있는데요.”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몸을 밀착하는 아일라.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느끼고 있지 않다.
“아깝게 됐구나, 나중에 또 도전해보도록.”
“네. 그래야 할 거 같아요.”
웃으면서 팔을 풀고 아일라는 빙글 돌아 내 앞으로 왔다.
“그래서 지금부터 뭘 할까요? 이제 휴일인데 어디 가서 놀까요?”
“음. 좋은 질문이다. 지금부터 해야 할 건 정해져 있지.”
그리 말하고 아일라의 손을 잡아 끌었다. ‘와아!’ 하고 기뻐하는 녀석을 끌고 제프린 중앙구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요정 여왕의 양조장.
“엘피라네.”
“오래간만이네요. 울프람. 오늘은 무슨 일로 왔나요?”
“네 세계에서 시간을 최대한 늦추면, 안과 밖의 시간이 얼마나 차이가 나지?”
“안에서 1년이 밖에서 하루…. 까지는 가능한데요. 왜요?”
정신과 시간의 방이로군.
아주 잘 됐다.
“그러면 아일라를 그 안으로 끌고 가서 훈련시킬 수 있나?”
“가능하답니다.”
“그거 잘 됐군.”
“네?! 갑자기요?!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는데요?!”
그야 이야기 안 했으니까.
만약 1년간 훈련만 하자고 하면 안 따라올 거 같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그 상태로는 8문에 들어가는 그 순간 죽는다.”
“그, 그건 그렇지만…. 우, 우우…. 휴일 준다고 해서 울프람이랑 놀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죄책감은 들지만,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
아.
그렇군.
이게 그 부모님들이 느끼는, 애들 돈가스 사주겠다고 끌고 치과 가는 기분인가.
***
엘피라네와의 협의 끝에, 일단 겨울방학 도중까지 최대한 파밍한 후.
파티원 전원을 모아 엘피라네의 이세계에서 1년간 보내기로 약속했다.
그 때 전원을 최종 각성 시키면 아마 파워 밸런스에서는 얼추 맞을거라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네가 지금 초대 황후 앞에 서면, 죽는데 1초가 걸리지 않는다.”
내 말에 이브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요. 직접 만나봤으니까요. 그야…. 그냥 죽어버리겠죠. 픽 하고 말이에요. 뭐. 그래요. 여기선 하루밖에 안 지나는 거니까 1년정도면…. 아니 지금부터 보내면 100년은 훈련할 수 있는거 아니에요?”
“그럼 밖에 나왔을 때, 너의 정신 세계는 100살이 훌쩍 넘은 할머니겠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몇 배를 훈련으로만 가득 채운 인간이 되겠어.”
“윽…. 그건 싫어요….”
“알면 됐다.”
***
엘피라네가 1년간 자신의 세계를 열어준다는 약속을 해 준 덕분에 향후 대책이 생각보다 무척 빠르게 세워졌다.
처음에는 일주일은 쉬게 해주려고 했지만, 그렇게 여유 부릴 시간도 없어 파티원을 전원 모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원정을 나선다.”
내 말에 모두의 표정에 작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주 좋은 표정이다. 생각보다 긴장하지 않고, 들뜨지도 않았다.
정련된 열기가 아주 보기 좋다.
대표격으로 아일라가 나서서 물었다.
“어디로 가나요?”
“이번 원정은 조금 다르게 출발할 예정이다. 우선 파티를 2인1조로 편성한다. 그리고 초월종 한 명을 붙여, 3인 1조로 제프린의 구석구석…. 가장 위험한 부분까지 탐험한다.”
“네…? 그, 그렇게 한다고요?”
물론 그 안에서 나오는 보스를 잡으라는 건 아니다.
보스방까지 가는 길을 뚫어놓는걸 주 목적으로 하는 길뚫기 맵이다.
“내가 없어도, 자체적으로 얼마나 전투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나, 그걸 중시하고 싶다.”
“아…. 네. 알겠어요!”
전원이 납득해줬고, 파티를 분배를 시작했다.
이브는 네프티와 엮었고, 레지나와 루디카. 밀푀유와 아일라가 한 팀이 되었다.
탱커 뒤에서 탱커를 믿고 싸우는 방법을 익히고, 퓨어 메이지를 수호하는 방법을 배워라.
최고의 재주를 가진 암살자의 보조를 맡고, 피아구분없이 지형을 짓누르는 아군 마법사와 보조를 맞춰봐라.
다채롭고 지혜롭게 싸우는 후배에게서 여러 수단을 배우고, 가장 굳건하게 싸우는 배틀 메이지에게서 효율적인 돌파와 전법을 배워라.
“이번 원정은 꽤 길어질거라 생각한다. 어디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다 짚어줄테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보고하도록.”
“네, 네!”
한동안 파티원들과 조금 거리를 둬야하니 쓸쓸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 7문에서 느낀거지만, 이 녀석들은 상호 연계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나를 통해서 합을 맞춰는 봤어도, 본인들끼리 맞춰 본 적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 울프람은요?”
“나는 혼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중에 연락하도록 하마. 그럼…. 무사히 돌아와라. 기대하고 있겠다.”
그렇게 사대 정령왕까지 분배했고, 저마다 원정 준비를 마치러 떠났다.
“부모 곁을 떠나야 하는 애들을 보는 기분이군.”
“후후. 벌써 그럴 나이야?”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싸움의 기본도 모를 때 부터 내가 키운거나 다름 없으니 말이야.”
【흐응 그래 나는 잘 모르지만 말이야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네】
“그랑. 건방진 소리 하지 마세요. 머리를 터트려 버리는 수가 있어요?”
【예 예 죄송합니다 예 아줌마】
“죽여주마.”
【지금 머리 터트렸지?! 지금?! 진짜로 주먹으로 쳤지?!】
“그걸로 죽을 거라면 고생 안 했어요.”
이브와 네프티는 기동력이 부족해 아인 플뤼겔이 붙어줬다.
레지나와 루디카는 아무래도 탱킹이 부족해 샤르가 따라붙었다.
아일라와 밀푀유는 날씨마저 바꿀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운용에 능한 라이아가 붙었다.
즉.
여기에 남은 초월종들은 필티아. 그랑펠리시에. 그리고 엘피라네.
전원이 싸움이라면 죽고 못 살며, 초 광역 전투에 능하다.
이런 최고의 패를 놀릴 생각은 없다.
나도 나 나름대로 최악의 전장에서, 더욱 더 단련해야 한다.
파티원들만 단련 시키고, 나는 물러서 있다니 이 얼마나 웃기지도 않은 일인가.
“그래서 우리들은 뭘 하면 되니. 울프람?”
“좋은 질문이다. 필티아 누나. 당연히 이런 면면이 모였는데, 가볍게 보드게임이나 한 판 하자고 할 생각은 없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것은…. 부족함 없는 싸움이다.”
“어머나…. 두근거리는 소리인데요. 그만한 적이 있나요? 우리끼리 혹시 8문으로 들어가나요?”
“아니다.”
나는 검지만 펼쳐서, 조용히 하늘을 가리켰다.
그래.
지금부터 향하는 곳은 마계의 문과는 정 반대.
저 하늘 위에 있는 드높은 천상.
도도하게 지상을 내려보면서, 이것저것 더러운 일은 죄다 획책하는 간계의 쓰레기들.
“향하는 곳은 오직 하나. 천상”
“찬성…. 찬성이요….”
【아하! 아하하하! 그거 정말 두근거리는 소리잖아아아아아!! 최고오오오옷!!】
“울프람. 지금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되나요?”
모두의 열기가, 전장에서 살아온 초월종들이 뿜어내는 투기가 대지를 뒤흔든다.
블루드래곤, 요정여왕. 불의 정령왕. 그리고 나.
솔직히 이 조합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겠다. 한 번도 맞춰본 적 없는 조합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
결코 조용히 끝날리는 없다는 거다.
“내가 허락하마. 전부 헤집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숴도 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