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09)
909. 약자의 생존방식
낡은 단검은 이제 나무 단검까지 내려왔다.
어떻게 나무 단검으로 사람을 벨 수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다.
허세나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뇨? 라고 하기엔, 내 초월적 특성은 ‘먹어치우고’ ‘변화시키는 것’ 즉 신화 포식자가 아니더라도, 내 손에 쥔 무기를 그 연장선으로 느낄 경우 베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물론 신화 포식자가 없으면 완전 쓰레기같은 효율을 보이긴 하는데, 어쨌든 베는 건 베는 것 아닌가.
아무튼.
내가 왜 이렇게…. 모든 무기를 버리고 고작 허접한 무기를 가지고 휘두르느냐 하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으로 확실히 알았다. 나는 약하다. 지나치게 약하다.
이전의 나였다면,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린디를…. 그 너머에 있는 하르크까지 죽이겠다며 홀로 들어갔을 것이다.
헌데 지금은 어떤가.
준비를 더 해야한다느니, 파티원의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느니…. 심지어 사대 정령왕을 상대로는 그냥 안 하고 말지 같은 소리도 했다.
이전의 나라면 그랬을까?
아니다.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사대 정령왕? 하나하나 풀링해서 잡으면 그만이다. 지형과 꼼수를 좀 쓰면 1:1존을 갖추고 싸울 수 있다. 대마법사? 최강의 무신? 알게 뭐인가. 나는 이영진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망설였다.
즉. 나는 약해져 있는 것이다.
카페 마스터 시절. 무적이자 최강이었던 나는 언제나 정점에 서 있었으나, 무조건 최상의 컨디션을 뽑아냈던 것은 아니다.
란드그리스를 상대로 1피격을 허용한다거나, 맨주먹으로 아일라와 싸워서 흑수정 저스트 프레임 패링놀이를 하다가 1노트 굿을 띄워서 HP가 떨어진다거나…. 남들 보여주기에 부끄러운 실수를 했다.
그럴 때 마다 내가 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기본 장비만 들고 1막부터 천천히 피격데미지 0으로 클리어해본다거나 하는…. 기초중의 기초.
스탯을 줄일 수는 없기에 나무단검.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을 상대로 하나하나 싸워보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약하니까.
더 강해지기 위해서 말이야.
“고맙다. 너희들의 열기, 그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 질 수 있다.”
【히익….】
“자. 어서 덤벼라. 나약해진 나를 연마하기 위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약해진 마음을 강철처럼 연마하고, 느슨해진 기교에 윤활유를 바르며, 연해진 육신을 재연마한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 약하다. 허나 맹세하마…. 지금부터 그런 추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
이제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나.
나는, 더 강해지겠어.
내가 쌓아 올린 천족의 시체에 맹세했다.
***
하나의 세계를 전부 불태워버린 그랑펠리시에는, 다른 세계를 향했다.
강한 천족은 없지만, 어차피 유충이든 성충이든 전부 태워야 벌레 없이 평온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법 아니겠나.
하여, 결계의 격벽을 부수고 불꽃의 정수가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본 것은, 한 명의 인간과 천족들의 전투였다.
【왜 저렇게 오래 걸린데? 저럴 인간이 아닐텐데?】
자신마저 승리를 점칠 수 없는 강한 인간이, 고작 수 천의 천족을 쓸어버리는데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뭐, 그래도 차근차근 죽이고 있으니, 그랑펠리시에는 멀리서 그저 주저앉아 그 전장을 바라봤다.
【오?】
이내 그랑펠리시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접한 나무 단검에 교복만 입었음에도, 피가 튀지 않는다.
발 아래에는 끈적하게 천족의 성혈이 흘러내림에도, 울프람의 몸에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지 않았다.
천족이라 해도 기본적인 구조는 생명체이기에 혈압이 당연히 존재하고, 한 번 베면 그 핏방울이 튀어올라야 하건만, 한 방울도 묻은 부분이 없다.
즉.
자신이 베는 각도와 그로 인해 나올 출혈의 각도까지 완전제어하고 있다는 의미.
【정교하네….】
허접들의 싸움이 해봐야 뭐 대단하겠냐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였다.
공간 전체를 지각하며, 그 안에서 최적의 동선으로 살육을 벌이고 있는 울프람을 보펴, 그랑펠리시에는 그저 자리에 주저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름답다.
말 그대로 장 재련된 전투기계를 보는 것 같다.
공간 전체를 불사르는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의 전투이기에 더더욱,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이나 공연을 감상하듯.
그랑펠리시에는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공연을 즐겼다.
***
싸움이 끝났을 때, 서 있는 것은 나 혼자였다.
저 멀리 앉아서 이쪽을 히죽거리며 보고 있는 그랑펠리시에도, 서 있지는 않았으니 나 혼자가 맞다.
“사람의 싸움을 허락도 안 받고 관망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다.”
【아, 응? 그렇네…. 응. 그렇구나.】
“왜 그러지?”
평소라면 쓰레기 주제에 누구한테 훈수질이야. 죽어. 허접. 병신. 같은 소리가 들렸을 텐데 말이야.
【울프람 폰 로엔그린 그 싸움은 어디서 배웠어?】
“배웠냐니…. 자작이다.”
【그, 그래? 그렇구나…. 잘 싸우더라.】
“아직 부족하다.”
【뭐?】
이전의 나였다면, 게임 시절의 나였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었을 거다.
맨주먹 노 데미지 클리어나, 발로 클리어하는 영상도 찍을 수 있었겠지.
허나 끝까지 내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이 정도로 어떻게 만족하겠나.”
【여기서…. 더….】
그랑펠리시에는 내게서 시선을 돌린 채 뭔가 중얼거렸다.
지금은 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든 중요한 게 아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나는, 너무나 약하니까.
***
아일라와 밀푀유. 그리고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는 울프람이 말한 니플헤임의 심연을 향했다.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저, 저도 처음 와요….”
니플헤임의 심연.
포영의 설원의 끝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얼어붙은 지하동굴이다.
【저도 하르크가 이런 곳을 만들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여왕님 영토 근처인데도 그런가요?”
【네 여왕은 자신의 영역에서 떠나기 힘드니까요】
“아하.”
엘피라네와 아일라는 태연하게 담화를 나눴지만, 그 사이에 껴 있는 밀푀유는 바짝 굳은 채 주위를 살피며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기에 바빴다.
【저 아이는 무척이나 말수가 적군요】
“그런 아이는 아니에요. 다만…. 여기는 꽤 어려운 전장이니까요. 근면 성실해서 언제나 전장을 파악하고 있는 거랍니다.”
【그렇군요 좋은 싸움을 기대하겠어요】
“네.”
저 너머에서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허나 그것은 자만이나 허세가 아니라…. 진짜 강하기에 표출할 수 있는 여유였다.
초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서 세계의 근원과 닿는다고 하는 영역.
그것은 한 줌 재능을 가진 존재만 도달 할 수 있다고 한다.
파티 내에서 확실하게 초월에 도달한 이들은 울프람 선배님. 이브 선배님.
아일라 선배님과 네프티 선배님. 루디카 선배님은 이제야 초입.
레지나 선배님도 묘하게 감을 잡고 있다고 한다.
즉.
오직 자신만이 초월에 대한 그 어떤 감도 잡고 있지 못하다.
재능이 모자란 것도 알고 있다.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허나.
대체 언제쯤 되어야 도착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평생 도착할 수 없다는 불안감. 그리고 곧 실전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촉박함이 그녀를 몰아넣고 있었다.
“전방에 적…. 입니다.”
“어머. 진짜네요. 프로스트 트롤이네요.”
【저런 나약한 몬스터에게도 이름이 붙어있나요】
“네. 프로스트 트롤…. 아마 부서지면 주변의 얼음을 뭉쳐서 재생하는 귀찮은 몬스터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건 아이스 골렘과 뭐가 다른 거죠】
“으, 으음…. 글쎄요?”
밀푀유는 무기를 꽉 쥐었고, 눈 앞의 몬스터를 노려봤다.
“저 정도 몬스터는 삐약이도 혼자 처리 할 수 있어요. 자. 힘내봐요.”
“네, 네!”
그리 말하며 밀푀유는 앞으로 나섰고, 이내 슬쩍 뒤를 돌아봤다.
지금 ‘힘 내 봐요.’ 라고 하셨나?
그러니까 즉.
“도와주지 않으시겠다는….”
“어머. 저 정도 몬스터에게 도움은 필요 없잖아요?”
【그렇구나 지나치게 약한데 도움이라니】
“아, 네….”
어쩔 수 없다.
잔뜩 들고 온 자신의 무구를 손에 들고, 밀푀유는 프로스트 트롤과 맞섰다.
***
라이아는 밀푀유의 싸움을 바라보며, 내심 감탄했다.
능력으로는 프로스트 트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말이야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나약한 몬스터’라고 했지. 저 밀푀유보다는 당연히 강하고, 상성도 안 좋다.
프로스트 트롤의 특징은 깨진 육체가 주변의 얼음을 흡수해 다시 몸에 달라붙는 형질.
그리고 자신을 공격한 무기를 조금씩 얼려서 망가트리는 점이다.
즉 근접계 밀푀유와는 무척이나 상성이 안 좋다.
허나 보라.
“하앗!”
휙! 콰악.
우선 거리를 벌리고, 화살을 매겨 프로스트 트롤의 발목 부분을 맞춘다. 발목이 깨져나가고 프로스트 트롤이 기우뚱하고 무너진다.
원래라면 그대로 발목이 붙여야 하지만, 바람의 마력을 잔뜩 먹은 화살은 얼음이 달라붙는 것을 방해하고, 발목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그렇게 기동력을 빼앗은 후, 근접으로 달라붙어 둔기로 몸을 내리친다.
“적확한 공격을 하네요.”
【전술과 전략에 특화된 아이군요 훌륭한 판단이에요】
“네. 저도 공감해요. 다재다능하죠. 아마 웬만한 적들도 다 공략할 수 있을거에요. 그렇기에 더 걱정이에요”
【그렇네요 저걸로는 안 되죠】
아일라와 라이아는 똑같이 턱을 괴고 밀푀유를 바라봤다.
초월이란.
자신만이 가진 하나의 장점을 극한까지 단련해, 세계의 근원까지 간섭하는 것이다.
세상에 자신의 고유함으로 도전장을 내민다고 해야 할까. 자신만의 가치증명을 할 수 없으면 초월은 그리 쉽게 열 수 없다.
“음…. 이번 훈련에서 삐약이가 초월에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그러게요 정말 장하고 참하게 싸우는데 말이죠 저런 노력이 보답받지 못하면 너무나 안타까울 듯 하군요】
어느새인가 밀푀유를 아끼는 아일라에게 동조해, 엘피라네도 손으로 턱을 괴며 함께 고민했다.
밀푀유 특유의 약하지만 노력하는 그 모습이, 두 사람을 의기투합하게 만든 것이다.
이 둘의 전폭적 지지와 훈련이 있다면, 밀푀유는 무언가를 깨닫고, 더 크게 성장할지도 모른다.
“선배님! 여왕님! 쓰러트렸어요!”
“그렇군요. 잘 했어요. 삐약이. 그러면 다음 번에는 이렇게 해볼까요?”
【일단 무기중 딱 하나만 골라서 싸우는 습관을 들여보죠.】
“네, 네…?”
물론, 그 훈련이 그리 쉬울리는 만무했다.
***
네 개의 천족집단을 지워버리고, 좀 더 앞을 향했다.
하급 지역과는 다르게, 중급 천족이 기거하는 지역은 건물도 더 화려하고, 도시 정경도 더더욱 멋들어졌다.
그리고 다른 것 보다, 천사놈들이 도망치지 않는다.
【거기 서라! 이대로 돌아가면 죄는 묻지 않겠다!】
“라고 하는데요?”
필티아가 말하자, 싱긋 웃고 엘피라네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천사는 창끝을 이쪽으로 향하며 다시 소리쳤다.
【멈추라고 했다! 들어오지 마라! 진짜 죄는 묻지 않을 테니 돌아가라!】
“정말 죄를 묻지 않는다고요?”
【그렇다! 그러니 어서….】
그리 말하며, 엘피라네는 쑥. 천족이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죄를 물으세요.”
하여간 양아치 같다니까.
물론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우리 전원이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