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15)
915. 마지막 계절
그 뒤.
시험삼아 아일라는 밀푀유와 한 번 대련을 하기로 했다.
울프람이 정의한 ‘초월’은 결코 마력의 양이 좌우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 치면 세상 모든 초월은 마법사만 가능했을테니까.
재능 있는 사람 중 신념을 가진 사람이,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돌입하게 된다.
“제, 제가…. 선배님과 대련을…. 감히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하는 거에요? 정말…. 전력을 다하는 게 아니니까요.”
초월에 들어온 이상, 아일라와 밀푀유는 사용처가 다를 뿐, 서로 같은 등급의 힘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일라가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전투용으로 특화된 아일라와 유틸리티로 특화된 밀푀유. 서로 대련하면 아일라가 압승할 것이다.
두려워하는 밀푀유를 보며, 아일라는 생긋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제 초월은 삐약이한테는 못 써요.”
“네…?”
“가볍게 손을 겨뤄본다는 느낌으로 해보죠. 삐약이. 무서워할 거 없답니다.”
“네, 네!”
아일라는 양 주먹과 관절. 그리고 무릎과 발목 등에 흑수정을 ‘감았다’
말 그대로 흑수정으로 만든 슈트…. 라고 말 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까지 전신을 뒤덮지 않았다.
아일라 칭하길. 반역의 변신 소닉 폼.
교복 위에 흑수정의 아대를 비롯, 너클을 덧댄 고속 이동형 변신. 이라고 한다.
“자. 삐약이. 언제든 들어오세요!”
“네, 네!”
밀푀유도 꽤나 진지하게 자세를 잡았다.
오른손을 위로, 왼손은 아래로,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위빙. 전신의 근육에 적당한 긴장을 품은 상태에서 언제든 폭발적으로 질주할 준비를 갖췄다.
“삐약이는 감히 제가…. 라거나 자기 자신을 얕보는 경향이 있어요.”
“제, 제가 정말 약하니까.”
글쎄.
아일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중거리 배틀 메이지.
근접으로는 루디카와 울프람에게 미치지 못하고, 마법으로는 레지나와 이브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마법과 격투를 같이 쓴다는 종합적인 개성. 빠르고 부드러운 몸놀림과 파괴력 있으며 단단한 마법의 활용이라는 점에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
전력을 다 한다면, 파티 내에서도 분명 최강에 근접한 인물.
그런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상대로. 자신을 상대로.
주먹을 들어올리고,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덤벼들겠다는 저 자세.
저 아이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 눈빛이 얼마나 빛나는지.
***
아일라는 밀푀유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생각했다.
“전환이 빠르네요. 대단한걸요?”
“가, 감사합니다, 하…아!”
밀푀유는 숨을 몰아쉬지만, 아일라의 공격에 조금이라도 늦게 대처한 적이 없다.
이전부터 저 아이는 주변 모든 것을 계산에 넣고, 자신의 패를 꺼내 쓰는 전법을 즐겼다. 아일라와는 또 다른 만능 계열.
허나 지금은 장비 전환에 시간이 조금도 소요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장을 지배하는 느낌.
아일라가 어떤 공세를 취하든 밀푀유는 최적의 대처를 보여 줄 것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힘의 파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기에 저 아이가 자신의 초월을 보조로 개화했을 때, 조금 씁쓸함을 느꼈다.
보조만으로는, 결코 주역이 될 수 없으니까.
허나.
“…….”
“하…윽.”
또다.
또, 아일라의 공격이 기묘하게 막혔다.
힘을 실어 내지른 왼 손 정권.
밀푀유는 이를 오른손으로 잡고, 자기쪽으로 잡아당긴다. 그 다음 왼 다리로 다리를 걸어오며, 동시에 왼 손으로 시야를 가렸다.
이러면 아일라는 주먹이 막히고, 몸이 굳으며, 동시에 시야까지 가려진다.
즉 아일라를 홀딩하고, 빈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허나 본질적으로 연계가 들어오지 않는 빈틈은, 그저 자멸일 뿐이다.
아일라에게는 자유로운 오른 손이 있기에 그대로 훅을 날리면 밀푀유는 나가 떨어지겠지.
“과연…. 그렇게 개화했나요.”
“네?”
“후후…. 엄청나게 신뢰하고 있나 보네요.”
“선배님…?”
강적을 상대로도, 결코 굴하는 일 없다.
마음을 정련하고 빈틈을 찔러줄 누군가를 믿고, 한계를 넘어선 줄타기를 해서 상대의 방심을 유도한다.
이제 와서 밀푀유의 공세를 반추하니, 밀푀유가 틈을 만들 때 마다. 한 사람이 찌르고 들어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누군지는 말 할 것도 없다.
검은 단검이든, 신화 포식자든, 아니면 맨손이든…. 그는 이 빈틈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게 밀푀유의 서포팅.
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고, 그것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흔들림 없는 신뢰를 담은 공세.
자신이 옆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면, 이 아이는 등 뒤에 서서 그 등을 바라보며, 언제든 지지해주기 위해 걸어왔다.
그렇기에.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옆에 있음을 알면서도, 그와 자신의 관계를 알면서도…. 밀푀유 폰 사브레는 망설이지 않는다.
“이쯤 하죠. 강하네요. 삐약이.”
“가, 감사… 감사합니다….”
“후후.”
쓰러지는 밀푀유를 받아들고,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아일라의 보고서를 받아 들고, 파티원 상태창을 보며 검진한 결과 밀푀유의 큰 성장이 확인되었다.
그 외에 네프티도 초월을 좀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레지나의 초월 또한 완벽히 개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루디카는…. 말 할 것도 없지. 저 녀석은 진짜 괴물이야.
아무튼.
제 8문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 준비를 어느정도 마쳤다. 여기에 초월종들을 더한다면 내가 없어도 린디는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내가 바란 성장은 여기까지였다.
아스칼론을 수납하고 제프린으로 귀환.
제일 먼저 편의점에 도착했고, 할 게 없어 종이를 들고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지금까지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느낀것들, 그 외의 많은 가설들 등.
“이것 참. 돌아버리겠군.”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은 말을 입에 담고, 입술 끝을 매만졌다.
내가 걷는 길이 황실의 길이 된다. 라고 했던가.
“그러면 내가 이브를 미워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게 황실의 길이 되는 건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으나, 실험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저 녀석은 이쪽을 혐오하는데, 내가 멋대로 친하게 굴면 그것만큼 구역질나는 결말도 없을테니까.
“이제 곧 8문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온다.”
8문은 그 특성상….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뭐야. 먼저 왔었나.”
“방에 갔는데도 없으니까요. 후우. 지친다….”
편의점 의자에 기대서 한숨을 내쉬는 이브, 합숙이 끝나고 혼자서 바로 온 건가.
그렇다면…. 궁금한 게 있나.
“씻고 왔나?”
“당연히 씻고 왔죠! 무슨 미친 소리를 해요?!”
“그렇군. 꽤 빠르게 온 거 같아서 말이다.”
“방에! 갔다! 왔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거기서 씻었겠죠!”
“아. 그렇게 되는군. 내 불찰이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갸웃했다.
“뭐 잘못 먹었어요? 이상하네.”
“이상하다니?”
“그러니까…. 평소처럼 재수없는 말투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이전 저주에 오염됐을 때 처럼….”
“음….”
눈치 하나는 빠르네.
어쩔 수 없이 이브에게 지금 내 몸…. 정확하게 스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설명해줬고,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실 혈통의 각성이라…. 300년 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건데…. 혹시 축복에 오염된 거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 축복받은 황손 사살…. 구국의 결단….”
“재미있는 추론이구나, 너 혼자 재밌어서 문제지.”
“으, 음…. 그렇게 말하는거 보니 진짜 평소 말투는 아닌데…. 진짜 그런 일이 존재할 수 있나…?”
이브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검지로 가리켰다.
“이렇게 하죠!”
“뭘 말이지.”
“그러니까 그 때. 저희가 이상해졌던 것 처럼…. 그게 의도적으로 가능해요?”
“서로 미워할 수 밖에 없는, 로엔그린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냐는 건가?”
“맞아요. 진짜 그 기술이 강화됐다면…. 당신이 걷는 길이 황족의 길 그 자체라면, 300년간 이어진 족쇄조차 지우거나, 되살리거나 자유자재로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
생각보다 설득력 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해볼까.
【황실 혈통을 제어합니다】
【당신이 걷는 길이 황손의 길이 됩니다】
【당신을 대상으로, 혹은 당신이 대상으로 하는 황손은 서로 증오하지 않습니다】
【능력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해, 하루 세 시간. 한 명 밖에 지정할 수 없습니다】
【이브 폰 로엔그린을(를) 대상으로 사용하겠습니까?】
“이런 식인가….”
“어때요? 되나요?”
“하루 세 시간은 된다고 하는 군.”
내가 설명을 마치자, 이브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해요. 안 하고?”
“정말 하라는 건가?”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스킬창에 떠있는 예. 라는 버튼을 터치했다.
그리고.
“오, 오오…. 진짜네…. 별로 안 밉네요….”
“음…. 그렇군.”
서로 빤히 마주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놀랍게도 나도 이브가 별로 밉지 않다.
자주 삐지긴 해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나.
“방금 전까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는데 말이죠.”
“그러게나 말이다.”
처음과는 달리, 이브도 이런 상태에 익숙해졌는지 당황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울프람.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일 거 같아요?”
“진짜라니. 뭐가 말이지?”
“뭐긴요. 이렇게…. 300년의 관습이 풀려서, 그럭저럭 잘 지낼 거 같은 저희랑. 항상 치고 받고 나쁜말만 오가면서도 황손으로서 역사와 관습을 받아들이는 저희 중에, 어떤 게 진짜일 거 같아요?”
“…….”
어렵다.
아마.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라면 후자가 맞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녀석과 이브가 친해질 일은 없다.
이렇게 이브와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울프람 안에 있는게 이영진이고, 그 내용물이 울프람의 껍데기도…. 그리고 황실도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쪽일까.
“아직 답을 내릴 수 없겠군 그래. 너는 어떻지?”
“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열릴 졸업식 까지는 어떻게든 답을 내려야죠. 가급적 당신도 그때까지는 답을 내렸으면 좋겠네요.”
“그러도록 하지.”
앞으로 몇 달 남지 않은 졸업식.
그 때 답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
“이로서 공식적인 강의는 모두 마치겠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계절학기도 없으니, 다들 편하게 지내세요. 이상.”
필티아의 종강 선언을 끝으로 나를 중심으로 하는 필티아의 마법학과의 올해 공식적인 강의가 전부 끝났다.
종강일.
즉. 이 제프린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날.
다들 귀성하거나, 아니면 직업 실습을 나가지만…. 오늘은 사뭇 달랐다.
“종강일이다! 오늘 저녁부터 일정대로 원정이다!”
“네! 선배님!”
“올 겨울은 제대로 한 몫 벌어서, 내년 학비를 낸다! 알겠냐!”
“네에에엡!”
삼삼오오 짝 지어 집에 가는게 아니라…. 많은 학생이 제프린에 남기를 바랐다.
그야 얼마 전에 그 대군과도 싸워 봤고, 어깨에 힘도 들어갔을 것이며, 무엇보다 돈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야.
“부럽다…. 진짜….”
“응…. 우리도 1년만 빨리 알았으면….”
반대로 졸업 예정자들은 그런 후배들을 부럽다는 듯 바라봤다.
당연하다.
이미 취직이 내정되어 있는 녀석들은 이 겨울방학부터 실무에 들어간다.
마법학부 학생들의 비싼 학비를 지금까지 충당해줬으니, 몇 달이라도 일찍 뽕을 뽑고 싶은 고용주의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낙오자들이 오히려 한탕을 목표하고, 성공한 인텔리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역전 세계. 아아. 레볼루숑이 별거 있나, 이게 레볼루숑이지….
“제프린이 이대로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그 또한 시대의 흐름 아니겠나.”
이런 시대의 흐름은 싫어…. 하고 이브는 고개를 젓고는 강당을 나섰다.
자.
나도 이 겨울 방학이 통째로 비었는데 말이지.
훈련을 할지, 그도 아니면 세계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올지….
파티원 전원이 모이는 것은 개강일 전 날.
그 전에는 서로 가급적 자유롭게, 마지막 제프린의 겨울방학을 지내자고 했다.
“눈이 오는군.”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가 아니라 하얀 눈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마지막 방학이 찾아왔다는 실감을 강하게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