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20)
920. 흔한 해결
밖으로 나오니 시야에 다 안 들어오는 여성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독 개체로서 시야에 전부 포착이 힘든 인간이다.
인간이라기보단 정육면체 큐브같이 생긴 것.
지독할 정도의 화장품 떡칠로 얼굴에 잔주름 하나 없이 기괴한 플라스틱 인형같은 재질을 자랑했으며, 그 화장품 냄새와 향수로 코가 썩어버릴 것 같다.
“당신들은 뭐에요? 이 근방에서는 못 보던 얼굴인데.”
“오늘부터 만뢰장과 전속계약을 한 사람들이다.”
“뭐라고요? 만뢰장은 우리 봉천부와 계약했어요!”
“계약서는 있나?”
“그걸 왜 당신이 묻죠? 당신이 뭔데요?”
그야 있을리가 없지.
아니 있어도 별 상관 없나.
“말하지 않았나, 만뢰장과 계약하러 온 사람이다.”
“이게 건방지게…! 만뢰장은 우리랑 계약했다고 했잖아! 너 어디 살아! 몇 살이야!”
“나는 정육면체와 대화하고 자기소개 하는 취미는 없다.”
“뭐? 정육면체?”
“애들을 착취해서 부피를 키웠나. 사료는 적당히 먹도록.”
내가 비웃자 정육면체는 이내 말 뜻을 깨닫고 분노로 얼굴을 붉혔다.
“이 애새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새로운 종족의 체현자 아닌가. 그 어려운걸 해내는 군.”
“야!!”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부적인가. 적혀있는 술식은…. 음. 그렇군.
“움직이지 마라.”
“닥쳐! 건방진 애새끼!”
정육면체는 나를 향해 부적을 찢었다.
날아오는 술식은 폭뢰.
일반 마법으로 치면, 초급의 서브스펠도 없는 기술이다.
다만, 얼굴에 직격으로 맞으면 화상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저 폭뢰는…. 틀림없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고 있군.
퍼어어어엉!
얼굴 바로 앞에서 폭뢰가 터졌다.
“꼴 좋다. 너, 넌 오늘 죽었어. 이걸로 끝날 거 같아? 폭….”
서걱.
정육면체가 움직이기 전에, 무언가가 먼저 움직였고, 가볍게 휘두르고 베는 소리에 이어, 정육면체가 손에 쥐고 있던 부적 다발이 찢겨 나갔다.
“움직이지 말라 하지 않았나.”
“주군의 명을 지키지 않은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저런 공격에 내가 다칠리가 없지 않나.”
“그걸 알더라도, 주군의 위험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방패는, 벽에 걸린 예장보다 못합니다. 한 번 참은것도 필사적으로 인내했다는 걸 알아주세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또 반박할 말이 없네.
“너, 너희 뭐야…. 넌 또 뭐야악!”
“움직이지 마라.”
“너, 너 내 부적을 잘랐지? 고소, 고소할거야. 너희 년놈들 싹 다 잡아 넣어서 콩떡 먹게 해줄거니까!”
흠.
성왕국은 감옥에서 콩떡이 나온다. 메모.
일련의 소동으로 저 멀리서 경비병이 달려왔다. 아니 성왕국이면 포졸인가?
“무슨 일입니까!”
“이 외간년놈들이 나를 겁박했어요! 내 부적 봐요. 이렇게 싺둑! 소, 손도 베인 거 아냐? 나 어떡해?”
“그, 그러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저쪽에서 먼저 부적을 찢었다. 공격 의도가 있던 부적이다. 자.”
바닥에 떨어져내린 잿더미. 그리고 반쯤 찢어진, 뢰 라는 글자.
“으, 음…. 그러니까 저 분이 먼저 공격하셨다는 거죠?”
“그랬지.”
“음….”
경비병도 할 말을 잃고는 이쪽을 바라봤다.
“얘. 너 뭘 모르나본데…. 이 나라에서는 내가 공격해도 합법. 너희가 반항하는건 위법이야. 알겠니? 포졸. 저 년놈을 싹 다 잡아 쳐넣어요.”
“네가 공격한 건 인정하겠다는 건가?”
내 물음에 정육면체는 있는 힘껏 비웃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그 웃음에 얼굴 위에 굳어 있던 화장품이 깨져서 가루로 흘러내렸거든.
“그래. 그래서 어쩔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냐고! 포졸 뭐 해! 빨리 잡아 쳐넣으라고!”
“잘 보아라 네프티. 으레 이런 시골 마을, 자체적인 문화, 폐쇄적인 풍습을 가진 곳은, 지주와 공권력이 한 패다. 지주가 경비병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사병처럼 쓰는거지. 권력이 옆에 붙어주니 자본가들은 법을 사유화 하여, 착취와 핍박을 권리처럼 여긴다.”
“그렇, 군요…….”
“잘 봐둬라, 이게 권력에 취한 인간의 말로다.”
네프티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를 묶으려고 다가오는 포졸도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들이 수호자가 아니라 똥개라는 사실을 지적당해서인가, 어지간히 불편한가보다.
“손 내놓으시고, 저항하면 많이 아픕니다.”
“감당 가능하겠나?”
“네?”
“내가 누군지 알고, 나를 묶으려 드는가 이 말이다.”
포졸이 흠칫 떨고, 옆에 있던 정육면체가 비웃었다.
“어디 중앙에서 나온 귀족 같은데, 상관 없어. 여기는 성왕국이야. 묶어서 한 달정도 치도곤을 치면 조용해 지겠지. 그대로 귀가할 수 없는 몸이 될 수도 있고.”
“그런가. 역모죄도 성립이군.”
“하, 고발할 사람이 없는데 역모…. 역모?”
“네프티.”
“네. 선배님.”
네프티는 포승줄을 베고, 포졸의 한쪽 무릎을 발로 차서 꺾어버린 후. 검을 뽑아들어 그대로 정육면체에게 겨눴다.
“너, 너…. 이러고 무사할 줄 알아? 여기는 성왕국이야!”
“외교법 제1항. 모든 국가는 외교에 있어 대등하다.”
네프티는 다른 쪽 손을 품 안에 넣어서, 그것을 꺼내들었다.
이 대륙에 살고 있는 이라면 모두가 알아 볼 물건.
로엔그린 황실의 인장.
“1조 2항. 로엔그린 황실의 권위는 이하 모든 법 조항보다 우선시 된다.”
정말. 엿같은 조항이다.
외교는 대등하지만, 로엔그린은 결코 대등하지 않다.
“현 로엔그린 황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의 로열 가드 네프테리안의 이름으로, 두 죄인을 역모죄로 압송한다.”
“로, 로엔그린…?”
그 말에, 끄르륵 소리를 내며 정육면체가 뒤로 넘어갔다.
쿵! 소리를 내며 그 거대한 육신이 지축을 울린다.
음.
정육면체는 넘어가도 정육면체네.
***
이후 취조 중에 그녀가 찾아왔다.
성천화.
이 나라의 차기 국왕 후보이자, 국본.
대뜸 찾아온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무겁고, 동시에 처절한 목소리로 얼굴을 땅에 박았다.
“제 목 하나로 용서해 주실 수 없습니까?”
“저 돼지랑 그렇게 친했나?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친구는 가려 사귀도록.”
“아닙니다!”
뭐?
그러면 뭘 용서해 달라는 거지?
“서, 성왕국의 침공을….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 모든걸 바치겠습니다. 제발…. 이 목 하나로….”
아니.
그게 그렇게 되나?
침공까지 할 생각은 없….
아니. 아니지. 여기서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면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네프티가 나섰다.
“우선 죄인 둘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일까?”
“그건 성천화 선배님께서 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주군께서 정하실 일이죠.”
“알겠다. 내 목과 같이 바치라고 한다면, 그대로 바치도록 하지.”
성천화는 꽤 진심으로 보였다.
네프티에게 손짓하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중요한 건 그 여자 한 명과 포졸 한 명이 아니다. 이 성왕국 전체에 뿌리내린 고착화가 문제겠지. 만뢰장 이야기는 들었겠지?”
“그렇…군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두 가지를 약속 받고 싶군.”
“알겠다. 말씀 해주세요. 그건 반드시 이뤄내겠습니가.”
“두 가지라고 했다만?”
“하나는 제 목 아닌가요?”
아냐.
죽으면 곤란하다고.
나는 두 가지 조건을 말했고, 성천화는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 평생의 숙원사업으로 알고, 그리 진행하겠습니다. 관대하신 대처, 감사합니다.”
***
내가 성천화에게 명령한 것.
첫째는 이브가 재위하는 동안 성천화도 옥좌에 올라, 서로 문호를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교류할 것.
이로서 폐쇄 집단의 성향이 강했던 성왕국이 로엔그린 아래로 들어오는 모양새가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주권을 보호해 줄 생각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첫 시작으로, 몇 가지 특산품의 관세를 철폐하고, 즉각적인 교류에 집중할 것.
이것은 국본의 위치에서 밀어붙이자면 해볼만 한 작업이다.
아무튼, 두 번째 특산품의 중심에는 당연하지만 부적이 있다.
“만뢰장의 뜻은 대륙 전역에 뻗어나갈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
소녀의 할머니는 성왕국 최고의 의사와 간병인들이 간호해주기로 했다.
소녀는 추천에 의한 제프린 입학 확정. 거기에 새로운 부적의 개발 등, 앞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당장 가정교사가 붙어서 제프린 입학에 필요한 기초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머리는 똑똑한 편이라고 한다.
내 앞에서 주먹을 꽉 쥐고 울던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묻는 것을 깜빡했구나 이름이 어떻게 되지.”
“소연이라고 합니다….”
“작은 연꽃인가, 예쁜 이름이구나. 크게 피어나도록.”
“네…. 네!”
그렇게 소녀를 다독여주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성왕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
나는 네프티와 함께, 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봤다.
***
네프티는 이쪽을 빤히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뭘 그리 웃나.”
“아뇨. 제가 반한 분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서요. 말 한 마디에 나라의 방향을 바꾸는 그런 분이구나….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자비심 깊은 분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네프티의 칭찬은 언제나 기쁘게 들었지만, 오늘은 그 진의를 좀 더 깊게 파고들기로 했다.
“그 정육면체와 포졸…. 그 외에 봉천부라 불리는 기업을 무르게 대처했다 생각하나?”
“아하하….”
“정육면체와 포졸은 태형 100대 이후 광산에 유배. 봉천부는 성왕국 자체의 ‘내사’”
“죽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았으니까요. 특히 이런 나라에서 내사는….”
“뭐, 제대로 조사하지 않으면 성천화의 목이 날아갈 판인데, 대충 할 것 같진 않다만…. 그렇구나. 네 말이 맞다. 좀 더 확실하게 내 손으로 끝내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습니다.”
“정육면체와 포졸을 사형에 처하고, 로엔그린의 힘을 빌려 수사에 들어가고, 관련자를 전원 엄벌에 처하고, 국가 전체가 내게 무릎꿇고 납작 조아리게 만들 수 있었지. 하지만 하지 않았다.”
“네. 즉시 처형하라고 말씀하시면 제가 검을 휘둘렀을 겁니다.”
“맞다. 너에게 일임해 로열 나이츠를 끌고 와 조사하라고 하면, 확실한 결과가 나왔겠지.”
네프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외부의 힘으로 때려봐야, 더 깊게 더럽게 부패할 뿐이다. 그러니 차차 공을 들여 전원의 인식을 바꿔야만 한다. 자신들이 우물 속 개구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게 중요하지.”
뭐.
전제군주제의 중세 월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무른게 맞다.
황제는 신이고 황손은 신족이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역시 선배님의 심계는 엄청 깊네요.”
네프티는 눈을 반짝 빛내며 나를 바라봤고, 녀석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녀석은 웃으며 내 손에 딸려왔고, 서로 잠시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이런 괴짜랑 평생 붙어서…. 호위해야 하는 건 너다. 앞으로 고생문이 열렸다고 생각하도록. 네가 배운 로열 가드의 지침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언젠가, 반드시 피를 볼 때가 온다. 나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누군가의 목을 칠 때가 오거나, 너에게 명령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나는 싫다.”
“네?”
네프티는 멀뚱멀뚱 내 눈을 바라봤고, 양 손을 들어 녀석의 볼을 살짝 잡아당겼다.
“나는 싫다고 했다.”
“선배임?”
“저런 쓰레기의 목을 베는 데, 네 검을 더럽힐 생각도 없다. 네가 누군가를 베는 날이 온다고 해도…. 최대한 그걸 뒤로 미루고 싶다. 네가 피에 익숙해 지는게 싫다. 알겠나. 네 그 웃음에 피비린내가 섞인다고 생각하니 내키지 않는다.”
“아….”
어리광이다. 억지다.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각오는 언제나 가지고 있되, 함부로 휘두르지 마라. 잊지 마라. 너는 내 방패다.”
“네….”
좋아.
알아들은 듯 하군.
그렇게.
녀석의 볼을 한참 누르다가, 이내 손을 떼고는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이렇게 부끄러운 말을 직접 입에 담을 줄은 몰랐다.”
“쿡…. 후후. 정말. 선배님 얼굴이 새빨간 건, 저도 처음 보네요.”
“네가 할 소리는 아니다. 나보다 더 빨갛구나.”
“그럴리가 있나요. 제가 어떻게 주군을 앞서갈 수 있겠어요?”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 그러니 네가 더 붉다.”
보름달이 뜬 정원.
한참동안 웃기지도 않는 말싸움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