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25)
925. 악마가 웃었다
이 방에 오기 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만약 황제가 나를 견제하거나 무언가 개수작을 부릴 경우.
내가 신화 포식자로 황제의 멱을 따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일단 우리는 황제 시해자로 몰릴 것이다.
국적이고 악적이다.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리겠지.
그러면 바로 이브와 이세계로 넘어가서 제프린으로 도주. 제프린을 거점삼아 농성을 시작하자.
파티원들 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초월종들 뿐. 허나 그거면 충분하다.
초월종들 중에서 엘피라네를 방어벽으로 세우고 8문을 공략. 모든 초월종을 해방시킨 다음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현 로엔그린 황실은 썩었으며, 우리는 악적 황제를 타도했을 뿐이다.
최대한 우리가 정의임을 포장하고, 그 근거로 초월종들의 지지를 내세운다.
그 뒤로는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이름을 빌려서 스스로가 정의임을 천명하고 황실 토벌을 시작.
단검. 지팡이. 장검. 서부. 그리고 초월종이 우리와 합류할 것이고 세계는 두 패로 나뉘어 전쟁을 시작.
그 뒤로는 피로 피를 씻는 대전쟁의 시작. 결국 세계는 우리 손에 떨어지겠지만 어마어마한 피가 흐를 것이고, 이브는 선혈여제로 세계에 그 이름을 날릴 것이다.
그러니까.
황제는 죽이면 안 된다.
교섭의 상대로 삼아야 한다.
선빵을 맞았다고 개패버리면 안 된다.
적어도 살려는 둬야 한다.
좋아.
죽이지는 말자.
일단 저쪽이 대화를 할 여지를 남겨둘지도 모른다.
나는 유교의 나라에서 온 이영진이다. 아무리 상대가 개꼴받게 한다고 해서 검을 들고 협박하면 안 된다. 일단 대화를…. 대화를….
“미친 영감탱이가 드디어 노망이 들었군. 감히 누구를 억압하고 강제로 이야기를 들었다고?”
“너, 너는 뭐냐…. 너는….”
아니.
진짜 참으려고 했거든요? 예?
그런데 저쪽이 꼴받게 하잖아요.
***
내 앞에 있는 황제는 눈을 크게 뜨고서는 나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움찔 하려는 그 순간 품에서 신화 포식자를 꺼내들고 황제의 목에 겨누었다.
“어….”
황제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떡하니 입을 열고 있을 뿐이다.
“조건. 첫째.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둘째.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셋째. 그저 입을 다물고 내 이야기만 듣는다. 그러면 설명은 해주겠다.”
“무, 무슨 소리냐. 울프람. 지금 누구에게 그 검을 겨누고 있는지….”
“현 황제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지.”
“이, 이건 모반이다. 어서 그 검을….”
“맞지. 아주 맞는 소리야. 이미 폭언은 했고, 검도 겨누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검을 거두면 바로 모반으로 잡혀가겠지 그렇지 않나?”
“당연….”
“그러면 여기서 당신 목을 따는게 맞지 않겠어?”
“…….”
그제야, 황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나보다.
깨닫는게 참 느리네.
맞아. 어차피 수틀릴거면 끝장을 보는게 맞지.
“그러니까 즐겁고 즐거운 토킹 어바웃 시간을 가지자고, 우리 서로 할 말이 참 많잖아. 그렇지? 아바마마.”
“너 이 놈…. 정말…”
“잡스러운 짓은 하지 마시고.”
나는 신화포식자를 가볍게 흔들었고, 이 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마력을 먹어버렸다. 황제의 방에 암살 대처 수단이 하나 없겠나. 반지의 능력을 훼방 놓을 수는 없었지만, 지원 요청을 씹어먹을 수는 있다.
다시 창백해지는 황제.
정말로, 내가 원한다면 목을 딸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제야 뚝 하고 손을 멈췄다.
“무엇을 바라는 거냐….”
“뭐. 일단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라고, 천천히 차근차근 다 이야기 해 줄 테니 말이야.”
“아, 알겠다.”
황제가 덜덜 떨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냥 검을 몇 번 털었을 뿐인데 말이야.
마치 양아치에게 협박당하는 것 같잖아.
***
후우.
어떻게 겨우 대화 무드를 조성했기에, 천천히 있는 사실을 읊어줬다.
“제프린을 만든 이유가…. 중간계 최후의 요새였다는 말이냐…?”
“그렇다고 말 했잖아. 엘피라네를 포함한 사대정령왕과 드래곤까지 봉인되어 있다. 그게 끝이 아니지. 초월종에는 들지 못했지만 크라켄을 포함한…. 한 마리 만으로도 대륙 전체를 위협할 몬스터들이 즐비하다.”
“믿을 수 없다!”
“그럼 이걸 보면 믿겠나?”
슬쩍 인벤토리에서 아스칼론을 꺼내들었다. 방 안에 초월의 빛이 퍼지면서 축복이 흘러내린다.
“뭐, 뭐냐 그 검….”
“열쇠검 아스칼론이다. 천계왕의 유품이지.”
“뭐?! 천계왕을 죽였다는 이야기냐! 아, 아니 그럴리가 없다. 천계왕이라 하면 중간계 전체의 원수. 그런 자를 그리 쉽게 죽일 수….”
“사대 정령왕. 요정여왕. 그리고 블루 드래곤이 협력했다고 하면? 그래도 불가능한가?”
“정말…. 정말 죽인건가?”
“그래 영감. 황궁에만 쳐박혀서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본데, 세상은 당신이 모르는 곳에서 아주 크게 움직이고 있다고.”
“흐, 흐흐…. 좋다. 흥미가 이는구나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다오.”
“아니. 내가 할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째서지? 너의 영웅담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자. 울프람. 이 아비에게 좀 더 숨겨진 진실을 이야기 해 다오.”
황제의 눈이 빛난다.
늙으면 욕심만 늘어난다더니, 죽을 병에 걸렸다면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스스로의 업적을 칭송하고 황제 앞에서 자화자찬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감.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군 그래. 나는 내 자랑이 아니라…. 이미 내 수중에, 대륙을 절반으로 가를 수 있을 무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이 제국은 초대 황제님이 남긴 유산. 그 분의 상속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그 분의 동료들도 나와 뜻을 함께 해주시고 있다. 이런, 정통성도 손에 넣었군. 그 뿐만이 아니다. 이미 열 두 장로 가문중 몇 개 가문은 나와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런데 중앙은 어떻지? 로열 나이츠를 제외하면 그럴듯한 무력이 있나? 드래곤 한 마리가 황궁 위에서 브레스를 쏘면 그대로…. 펑!”
“윽?!”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황제가 놀라서 물러났다.
“내가 여기서 나가고, 영감이 나를 모반으로 몰아간다고 해도, 내가 얼마간 제프린에 돌아가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키라고 지시까지 하고 왔으니, 서로 엿 될지도 모르는 엿 같은 생각은 그만 두자고. 응?”
영감의 눈에 분노와 불신. 그리고 증오가 깃든다.
그래.
이제야 나를 협박하는 양아치가 아니라, 대등하게 보고 있군 그래.
“대, 대체 뭘 바라는 거냐….”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 그냥 거래를 하자는 거다.”
“너, 너는 악마다. 누가 거래를 받아들일 거 같나! 대체 이 세상을 어떻게 하려는 셈이냐!”
“악마라니 하하…. 그거 재밌군. 영감. 그거 아나? 악마는 거래 대상이 바라는 소원을 들어주고…. 그 대가를 받지.”
“누가 너 따위와 거래를….”
나는 황제 앞에서, 있는 힘껏 웃었다.
“당신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단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인가?”
황제의 눈에서, 증오와 불신이 사라지고 의문과 의혹이 깃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초대 황제님의 뜻을 계승하고, 그 보물을 손에 넣었다. 천계왕까지 죽이고 그 전리품을 취했는데…. 고작 인간의 병마를 고치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보물 하나 없을 거 같나?”
“그, 그건…. 정말, 정말로 있나?”
“그럼. 물론 가지고 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영감.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말이 좀 과했어.”
“돼, 됐다. 모든 무례를 용서하마. 그래서. 그래서 어떤 보물이 있느냐. 응? 어느게 있어.”
“글쎄. 어떤 것부터 보여줄까…. 이건 어때. 엘릭서다. 모든 병마를 고치고 그 나이대 최적의 몸상태로 만들어주지.”
“허어어어!! 그, 그 엘릭서란 말이냐. 그 엘릭서가 있다고!”
“그럼. 지금 앓고 있는 병은 단번에 나을 수 있지.”
무지개빛 액체가 고인 병 하나를 흔들었고, 황제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린다.
그런데 짜잔.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이건 요정여왕의 정수가 담긴, 변화의 비약이다. 자신의 육체에 환각을 걸어 젊은 시절의 자신의 육신을 세상에 현현할 수 있다. 정신이 버틴다면 앞으로 백 년은 너끈하게 살 수 있지.”
“그, 그런…. 그런 기적 같은 약이 있단 말이냐!”
있다.
엘피라네가 술을 잔뜩 먹고 ‘절대 마시지 마세요! 백 년 더 살아봐야 이백 년이잖아! 안 돼! 최소 만 년짜리 만들거야!’ 하고 내 앞에서 실패작이라고 오열했던 약이다.
일단 상품으로 취급하겠다고 받아만 뒀는데, 이렇게 쓸 일이 생겼네.
“무엇…. 무엇을 바라나. 대체 무엇을 바라느냐 이 말이야!”
“영감. 방금 전 나보고 악마라고 했었지?”
“그, 그 말은 취소하마.”
“아니. 참 어울리는 말이다 싶어서 말이야. 악마는 소원을 들어주지. 그런데 말이야. 그 대가로는 뭘 받을 것 같나?”
“전부…. 피 한방울. 영혼의 한 조각까지…. 받아 가지.”
정답이 참으로 마음에 들어요.
이제야 정말 거래를 할 준비가 되셨군요?
***
황제와의 거래는 그렇게 끝났고,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뒤이어 황손이 하나 둘 황제의 사실에 불려갔고, 끝내 라이언의 차례가 왔다.
“흠. 아버지께서 건강하셔야 할텐데 말이다.”
입은 그렇게 말하지만 눈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영감이 죽으면 네가 알아서 황제가 된다 이 말이지?
라이언은 황제의 사실에 다녀왔다.
물론 그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 없어서, 다른 형제들이 긴장하며 바라 볼 정도였다.
“어째서…. 이럴리가 없다. 대체 어째서….”
흠.
이렇게 한 번 엿을 먹여주니 속이 아주 편하군 그래.
그렇게 모든 황손과의 면담이 끝났고, 저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앞으로 세력 구도를 이야기 하려던 그 때.
“위대하신 로엔그린 제국의 합법적이자 절대적인 통치자. 태양과 빛의 황제 폐하께서 드십니다.”
하르크 뿐만이 아니라 현 황제도 피휘를 하는구나, 이건 처음 알았네.
아무튼 황제는 우리들 황손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
분명 늙고 노쇠한 몸이었으나 허리는 똑바로 서 있고, 걸음걸이에는 그 어떤 문제도 없다. 눈은 현기를 띄고 있었고, 입은 굳게 다물어, 젊었을 때에는 한가닥 했던 용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아바마마…. 중병이셨는데, 어떻게….”
옆에서 이브가 당황했고, 나는 슬쩍 녀석을 보며 웃어준 다음 황제를 바라봤다.
황제는 모든 자식을 한 번씩 돌아봤고, 나와도 잠시 눈을 마주쳤다.
내가 했던 제안을 잊지 않았겠지. 라는 의도에 그는 눈을 한 번 지긋이 감는 것으로 답했다.
현 황제에게 건강을 되찾아준다.
그리고 그에게 젊음을 되돌려준다.
대신 내가 받는 것은 기회였다.
머릿속에서, 방금 전 영감의 사실에서 나눴던 담화가 흘러 지나간다.
‘영감. 황제라는 자리가 그렇게 꿀만 떨어지는 자리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고.’
‘내가 이 약으로 당신에게 젊음을 되찾아주지. 대신 당신은 모든걸 바쳐’
‘모든게 뭐냐고? 당연히 하나뿐이지. 황제라는 직함이야.’
‘뭐? 하하. 무슨 헛소리야. 왜 나한테 선위해? 이브? 나쁘진 않은데 이브에게 선위한다면 그 라이언이, 이시스가 받아들이겠어?’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선위하지 마’
‘공평하게 싸움의 장을 열겠다고 선언해. 가장 능력을 보인 자식을 차기 황제로 삼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끝까지 지켜봐. 막내 황녀와 황자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장면을 말이야.’
‘그리고 당신이 대관식에서 이브에게 황관을 씌워주면 끝’
‘그 뒤로는 20대. 원한다면 10대의 몸으로 돌아가서, 모든 책임을 벗어 던지고 이 세계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지’
‘물론 제국에 개입하지 않고, 야인으로 살게 되는거지만 말이야.’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나와 이브가 바꿔가는 제국은…. 이런 따분한 황성보다 수 백배는 재밌을 테니까.’
‘자. 어떻게.’
‘편의점 사장이 직접 제안한 이 특가 세일에 응하시겠어요. 고객님?’
황제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너희들을 불러 모은 것은 내 옥좌를 누군가에게 물려줄지 정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전원이 아직 공부가 부족함을 알았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선언하마. 내년 4월. 마지막 황위 계승권자 이브 폰 로엔그린이 학업을 마친 그 순간부터. 너희들을 철저하게 시험하겠다. 누구도 정해진 결말은 없음을 알아라.”
그리 말하고 황제는 뒤로 돌아서 대기실을 나섰다.
묘한 열기가 퍼진다. 누군가는 절망하고, 그보다 많은 누군가가 흥분에 몸을 떨었다.
300년 제국의 가장 위대한 옥좌가 악마와의 거래로 인해 크게 뒤틀리는 순간.
나는 숨 죽여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