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28)
928. 전말의 편린
일단 그 날의 조사는 그렇게 마치고, 우선 샤도우 일족의…. 그림자 마을에 돌아왔다.
원래 게임에서도 이렇게 한 번 큰 사건을 겪으면, 원래 마을에 돌아와서 다시 정보를 캐보고 하는 법이다.
그리고 마을에 터부시 되는 전설에 접근해 마을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도망치는 스토리로 이어지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야. 루디카가 이 구역 정점이니까 어쩔 수 없지.
자기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장로부터 시작해 캐묻기 시작했고, 장로들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최대한 구전된 설화등을 모아왔다.
그리고 얻어낸 것은 아주 작은 단서뿐이었다.
“그러니까, 고대 제국과 갈라섰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핫산이시여. 가장 오래된 구전과 문헌에 따르면 고대 제국과 뜻이 맞지 않아 그 근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저희 샤도우 일족입니다.”
“거기까진 알겠어. 그 외에는…?”
“으, 음…. 아, 아, 한 가지 기억에 있습니다. 제가 딱 핫산의 나이일 때, 고조할머님께서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뭐라고 하셨어?”
“초대 핫산께서는 신의 힘을 가지고 인간을 해방시키셨다. 우리는 괴물을 지하와 어둠에 가두었다. 우리는 인간의 구세주이자 강한 민족이다…. 라고 하셨나이다.”
“알겠어. 고마워.”
루디카는 생긋 웃고 장로의 어깨를 한 번 가볍게 끌어 안아줬고, 장로 할머니는 예의 없어 보이는 눈물을 흘리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오, 오오…. 이 늙은이의 심장에는 너무 과분한 상찬이옵니다. 오오. 핫산이여, 영원하소서.”
“후후. 고마워요.”
무섭네.
이게 진짜 광신도 집단이구나.
마을에 더 얻을 정보가 없다면 다시 던전을 가보는게 인지상정.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서서 그 지하로 향했다.
“보통 이럴 때는 던전 내부에 또 하나의 길이 나있기 마련…인가. 그렇게 되겠지.”
“울프람. 즐거워보여.”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이 앞은 내가 모르는 세계니 말이다.”
“후후. 마치 놀이로 즐기는 거 같네.”
루디카는 그렇게 말했다.
음….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이 세계가 현실인것도 잠시 잊고, 완전히 게임 감각으로 빠져 있으니까.
하지만, 게이머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지하 공동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막혀있던 공동의 벽면 한 쪽이 무너져내린것을 깨달았다.
그래. 이래야지.
마을에서 스토리 진행에 도움이 될 요소를 알아냈으면, 던전도 변화가 있어야지.
그러면 이 안에는, 단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길이 있겠지.
두근거린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너무나도 게임같은 이 상황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제프린은 너무나 크게 이입해버렸기에, 게임이라기 보단 현실에 가까워졌지만….
“전열은 내가 맡겠다. 루디카는 후열에서 빛의 종자를 들고 따라와다오.”
“응. 그러도록 할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말은 하나뿐이다.
즐겜요.
***
빛의 종자로 무너져내린 잔해 안쪽을 걸어가니, 또 하나의 복도가 나왔다.
이전보다 더 습하고 어두우며, 벽면에는 이제 벽화까지 그려져 있었다.
나와 루디카는 벽면의 그림을 하나하나 보면서 어떤 내용일지 추론하기 시작했다.
“여기도 사람이 잡아먹히고 있어.”
“그렇구나. 하지만 처음 그림에는 그 괴물을 숭배했지.”
“응.”
나와 루디카가 벽화, 그리고 마을의 고문서, 마지막으로 문을 보면서 조합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역사에 남을 대제국을 만들었으나 그들의 터인 사막은 너무나 살기 어려워 태양도 어둠도, 더위도 추위도 이길 수 있는 강한 육체를 손에 넣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들은 소환 마법진에 기댔다. 문을 만들고, 소원만을 그려넣어 ‘어딘가’로 이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이어진 곳에서 온 신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줬다. 추위도 더위도 버틸 수 있으며, 강인한 다리와 섬세한 손을 가진 육체로 바꿔주었다.”
“그게 우리가 상대한 괴물.”
루디카도 멍청하지 않고, 나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럭저럭 머리가 돌아간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그 존재는 공물을 바라고, 인간을 잡아먹었다…? 어떻게든 문은 닫을 수 있었나보네.”
“아니면 동력만 공급한다면 문이 다시 움직일지도 모르겠구나. 문을 부수고 올 것 그랬나.”
나와 루디카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울프람. 혹시 지금 나랑 같은 생각해?”
“아마도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거다.”
“역시나. 내가 반한 남자는 이런 곳에서도 완벽하게 합이 맞는군요?”
나와 루디카는 마주보고 웃었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갈까.”
“음. 그러도록 하지.”
나와 루디카는 좀 더 안으로, 이 동굴의 끝을 보기 위해 걸어갔다.
허나, 그 이후에는 인간이 어떻게 잡아먹혔는지에 대한 그림뿐.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 얼마나 참신하게 잡아 먹혔는지 그것 하나 뿐.
인간은 기도를 올리고, 괴물은 거대한 입으로 그런 인간을 잡아먹는다.
“루디카. 내가 아주 끔찍한 상상을 하나 했는데 말이다.”
“응…. 나도 비슷한 상상을 했어.”
“이게 만약…. 괴물에 의한 사냥이나 포식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잡아 먹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아까 장로 할머니가 해줬던 말이 떠오른다.
만약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고대 제국 녀석들을 샤도우 일족과 초대 핫산이 징죄했다면.
그리고 인간을 포기한 괴물들을 지하로 몰아넣고 봉인했다면.
“이 안에는 대체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야 뭐.
둘 중 하나겠지.
“시체거나, 살아있거나.”
“아하하….”
메마른 웃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
복도의 끝.
석실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우선 최대한 감지를 펼친 채로 그 문에 손을 가져다댔다.
“안에 생명체는 없어.”
“하지만 초월종은 자신을 숨길 수 있지. 으음…. 진짜 없길 바라는데 말이야.”
구구구구궁,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풍겨오는 악취와 독기, 시체 썩는 냄새가 우리를 덮치기 직전 신화포식자를 휘둘렀다.
화아아아아아악!
그 안에 있는 모든 부정하고 삿된 것을 신화 포식자가 먹어치웠고, 우우우웅. 기쁜 듯 검명을 울렸다. 이런 쓰레기 같은게 입에 맞니? 내 검이지만 격 떨어지게….
격? 아 그렇구나.
“이것도 어찌 보면 신화의 편린이니. 맛은 둘째치고 급이 맞는다는 건가.”
우리 검이 이상한거 많이 먹어서 걱정이에요. 내가 이상한걸 먹이는거긴 한데, 아무튼 좋은것만 먹고 좋은것만 뱉어냈으면 좋겠다.
신화포식자의 검명이 더 커진다.
조금만 더 먹으면 검이 한 번 변할거 같은데 말이지.
뭐. 그건 제쳐두고, 방 안의 내용물은, 굉장히 끔찍했다.
“시체의 산이네. 그것도 잔뜩 먹어놓고 이것저것 합친듯한…. 으음….”
“그렇군.”
시체라고 해도 죄다 백골이지만, 이만한 백골이 수 천 구 이상 쌓여 있는건 처음 본다.
“울프람은 안 놀라? 나는 조금 놀라운데.”
황실 혈통의 힘인지, 공방 안 가득 쌓여있는 백골의 산을 보고도 그냥 그렇다.
그냥 호러 게임 배경 오브젝트를 보는 기분.
그것보다, 이 풍경을 만들어낸 괴물이 이 안에 있는지가 문제. 허나 감각에 포착되는 건 없다.
루디카는 시체의 산을 바라보다가 으음, 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샤도우 일족은 강자의 일족. 그리고 초대 핫산은 신에 도달한 자…. 즉 샤도우 일족은 이 잡스러운 짓에 동참할 이유가 없었다. 고대 제국에서 갈라져 나와, 인간의 길을 저버린 이들을 청소했다. 그렇게 되겠네.”
뭐, 재미있는 역사 공부였다.
강한 몬스터도, 신급 존재도 없었다. 그 존재가 죽었는지 아니면 이 대륙 어딘가에 살아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놈이 살아 있으면 사고가 나도 진즉에 났겠지.
“이래서야 정신 정화용 보물은 얻지도 못했구나.”
“아니. 울프람. 저기 치워봐.”
루디카가 지정한 곳을 신화포식자로 가볍게 긁어내자, 무언가가 툭, 하고 칼 끝에 걸렸다.
“이건 반지구나.”
“응.”
반지를 손에 쥐고, 그 정보를 읽자 나도 모르게 납득해버렸다.
【정신 정화 반지】
【1T】
【포식신 글러트니의 정신지배에 저항해 자신의 이지를 유지한 채 먹히기 위해 만들어진 보물입니다. 1T이하의 모든 정신간섭, 육체간섭, 주술을 해제합니다】
이건가.
재미있는 설명이다.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유지한 채 신에게 잡아먹혀서,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반지라는 건가.
내가 효과를 읊어주자, 루디카가 눈을 빛냈다.
“이러면 최강 무적 초월 울프람을 볼 수 있는거야? 매일?”
“아니. 이건 내가 끼지 않는다. 루디카. 네가 가지고 있도록.”
“어째서?”
“그야. 이건 샤도우의 주술, 네 육신에 걸린 제약도 풀 수 있는 녀석일테니 말이다.”
루디카는 멍하니, 반지를 바라봤다.
“그렇구나. 이게 있으면…. 감각을 돌려놓을 수 있다…. 그런 건가….”
“그렇다. 그나마 가장 좋은 반지가 살아남아 다행이군 그래.”
“이걸…. 내가 써도 될까? 만약 이걸 썼다가, 원래 몸으로 돌아가기 싫어지면, 그래서 반지를 벗는게 두려우면…. 어떻게 하지? 핫산으로 돌아가기 싫으면….”
“루디카. 쓰고 안 쓰고는 네 자유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선택지조차 없다는 것. 나는 어떤 루디카라도 상관 없으니, 차분히 생각해보도록.”
“응….”
뭐.
정황상 저 백골들은 잡아먹히고 다시 태어난 생명체.
신의 위장에서 하나로 합쳐진 거대 똥이다.
그 안에서 정신을 유지할 정도의 반지면 신화급 반지겠지…만.
결국 신의 위장에서 녹아내리지 않고 살아남아 배출된 뿌다닷 반지니까…. 내가 차긴 싫어.
“그러고보니 울프람.”
“음?”
“이 반지는…. 그러니까…. 신의 위장에서…. 그러니까…. 배출…. 똥….”
앗.
이 녀석도 눈치 챘나.
“찰 거냐?”
“아니. 고민해볼게.”
현명해요.
***
그렇게 돌아오는 길.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공방 중앙에 있는 문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 역시.”
“이대로 가면 강한 몬스터가 나오겠지. 그 신이라는게 나오지 않을까?”
루디카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내부에서 아무것도 못 만났으면, 돌아오는 길에 보스와 조우하는게 RPG의 법칙이다.
문이 열리고, 신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 주위는 강한 방어막이 쳐져 있어서 부수기도 힘들겠지만.
콰득…까드드드드득.
쿠궁….
검은 단검과 신화 포식자.
속도만큼은 신위에 도달한 암살자와, 이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 게이머.
우리 둘은, 그런 엿 같은 문이 열리는 걸 그저 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루디카가 검은 단검으로 보호막을 지우고, 내가 문을 그대로 찢어발겼다. 신화 포식자는 내부에서 몰아치는 힘 그 자체를 먹어 치우고 이내….
휘이이잉….
문은, 그 기능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채. 그렇게 무너져내렸다.
【신화 포식자를 각성시킬 수 있습니다】
【동료를 대상으로 초월 인자의 복제가 가능합니다】
【파티원들에게 ‘시스템’과 ‘시스템 창’의 일부를 복제해 대여할 수 있습니다】
【대여 가능한 목록 ‘아이템 감정’ ‘스킬창’ ‘스테이터스창’ ‘장비창’】
무언가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내용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나저나 정말. 소환 같은거 멋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덕분에 제국 하나가 멸망한거잖아?”
“음? 아…. 그렇군.”
“생각해보면 마계의 문을 연 것도, 천계의 문을 연 것도 다른 차원의 힘을 빌려서 무언가 이루려고 한 거잖아? 조금 힘들면 막 소환하고 말이야.”
“그렇게 되겠구나.”
옆에서 내 뱉는 루디카의 말에 건성으로 동조했다.
루디카에게는 미안하나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소환된 존재를 부정하는 건 쉽지만. 그게 나 자신을 부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차마 웃으며 맞장구 칠 자신이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