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35)
935. 마지막 연마
【뭘 야려 새끼들아 눈 안깔아? 확 먹물을 뽑아버릴까보다.】
양 손에 피주먹을 차고 중지를 치켜올리는 엘피라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진짜 【폭렬 지옥권】 【요정숲의 헬 스매셔】 【론리 퀸】 전성기 시절의 엘피라네다.
“젊을 때는 뜨겁게 살았군.”
“으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
내 앞에 있는 엘피라네는, 과거의 자신을 보며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중학교때 썼던 비공개 블로그.
그 곳의 ‘잡담’이나 ‘人生’ 같은 카테고리에 썼던 자신만의 어둠을 다시 보는 기분이 이런걸까.
“정말 저러고 살았나?”
“아니에요. 저건 전부 하르크의 날조에요. 믿지 마세요.”
“그러면 어째서 부끄러워하지?”
“윽…. 으극…. 으븜….”
엘피라네는 다시 무릎을 꿇고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오열했다.
“뭐, 젊을 때는 혈기에 몸을 맡길때도 있는 법 아니겠나.”
“우, 울프람은 저런거 없어요?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데…. 다, 당신도 저런거 하나 두개는 있을 거 아니에요!”
그야 있겠지. 내 인벤토리에 있는 두 번째 신화급 무구 자체가 내 중2병 포텐셜의 극한이니까.
하지만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건 울프람이 했던 짓이지 이영진이 한 짓은 아니다.
그러니….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강철의 마음…. 부동심…. 저는 못 해요. 저런 걸 봐버리면….”
【덤빌거냐고! 어? 빨리 정해라 뒤지기 싫으면 진짜. 들어와 새꺄!】
“저렴하군.”
“으아아아아아아아….”
뭐.
미숙했던 자신의 과거에 수치심을 느끼는 건 상관 없다.
하지만 젊었기에, 뒤도 안 보고 살았기에 늙고 성숙한 자신보다 나은 점도 있다.
예를 들면, 그 열기와 공격성이 그렇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요정숲의 론리 울프】”
【뭐야. 너 내 별명을 아냐? 크하하. 그래. 내가 바로 요정숲의 론리 울프 퀸. 폭렬지옥권 헬 스메셔 엘피라네 오웬 님이시다.】
“그만둬…. 그러지 마…. 내 과거를 들추지 마아….”
등 뒤에서 오열하는 엘피라네를 내버려두고, 과거의 엘피라네와 마주했다.
이 엘피라네는, 하르크 폰 로엔그린이 처음 마주했을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때의 엘피라네는 그랑펠리시에같은 과격파들도 한 수 접어줄 정도의 초 강경, 무투파였기 때문에 전장을 휩쓸어버리는 데 특출난 이점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뒤를 안 보고 달렸기에 요정숲의 방비가 허술해졌고, 마족의 침략으로 그녀의 백성들 대다수가 죽었다.
그 뒤로 성격이 변했다…. 라고 하는데, 이 녀석의 루트에서도 그 부분을 지적하면 우울한 얼굴을 했으니까 자세히는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럼 한 수 부탁하마.”
【엉? 뭐야. 대련 신청? 그런거 받을 생각 없어. 역시 싸움이라고 하면….】
“치고 받고 서로 죽여야 제맛이지. 안 그런가?”
【새끼. 잘 아네. 그러면 실전형식으로 간다? 죽어도 뭐라고 하지 마라?】
“바라던 바다.”
엘피라네는 픽 웃었고, 단검을 들고 녀석과 대치하며 마주 웃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
캉. 캉! 카드드드드득!
방어력을 무시하고 파고드는 검은 단검이 건틀릿과 부딪치며 마찰음을 낸다.
【야. 그 단검 좋아보인다. 나중에 나 좀 쓰자. 응?】
“나를 죽이면 얼마든지 빼앗아 갈 수 있지 않나.”
【그건 그렇네. 죽어도 뭐라고 하기 없기다?】
검은 단검은 첫 공격까지는 피주먹을 파고들었으나, 두 번째 공격부터는 엘피라네도 방어 무시를 경계해 주먹에 ‘공간 제어’의 초월을 감았고, 이후에는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합격을 나눴다.
그나저나. 빠르다.
원작에서도 이 엘피라네와 싸우는 건 최후반부 컨텐츠였지만, 현실로 겪어보니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이때는 ‘대군’ 보다는 ‘대인’에 특화된 엘피라네였기에, 머리 위에 공간을 록온하고 주먹을 갈겨버린다는 발상 보다는, 자신의 주먹의 궤적을 비틀고 수 백 발의 연타를 날려온다.
지금은 순수하게 강적과의 싸움을 즐기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상대의 머리에 ‘확정 적중’을 록온한 후 머리를 수박터트리듯 싸우는 전법은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까다롭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승리를 거두려는 여왕의 싸움이 아니라, 목숨을 내건 순수한 전사의 투법이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사지가 날아가고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
오싹.
내 안의 감각이 점점 되돌아온다. 파티원들의 얼굴이나 고백, 녀석들의 따스함 대신 몸 안에 투지와 활력만이 가득하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너무나 잡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이길 수 있었으니까, 감각의 날을 세울 이유가 없었다.
방금 엘피라네의 주먹이 내 코 끝을 스쳤다. 화악! 파공음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담을 타격이 가해진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앞에 있었어도 코째로 머리가 뜯겨져 나갔을 거다.
죽음이 바로 앞에 있으니, 마음이 더더욱 차가워진다.
맞다. 싸움에 필요한 것은 열기도 투쟁심도 아니다. 눈 앞에 있는 적을 똑바로 인식하고, 내가 펼칠 수 있는 손패를 확인하고, 기계적으로 최선을 행하면 된다.
좋다.
아주 좋다. 조금씩 내 안의 마음가짐이 깨어나고 있다. 마음이 더 차갑게 내려 앉는다.
【언제까지 그렇게 피하기만 할 거지?】
“엘피라네.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뭐? 죽이지 말아달라는 건가? 그건 안 되겠는데.】
“아니. 조금 더 격렬하게 몰아쳐라. 이건…. 너무 느슨하지 않나.”
【하! 건방지게 나오네 이 새끼! 바라는 대로 해 줄게!】
방금 전의 폭격이 강풍이었다면, 지금은 태풍이다.
아아. 좋다. 너무나 좋다.
이 순간. 나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삼 할…. 아니 이 할 정도로 할까.”
***
엘피라네 오웬.
지옥의 헬 스매셔가 아니라, 지금은 그럭저럭 정신을 차리고 알콜의존증 빼고는 거의 다 괜찮은 요정 여왕 엘피라네는 눈 앞의 전투를 보며, 주먹을 떨었다.
난입하고 싶다.
결투에 난입해서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다.
저 격렬한 싸움에 끼어들고 싶다!
몸 안에서 전사의 본능이 외친다. 저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어찌 스스로를 투사라 일컫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초월적인 인내심을 써서, 주먹에서 요정혈이 흘러내림을 느끼면서도…. 주먹을 꽉 쥔 채 그저 지켜봤다.
저 헬 스매셔 엘피라네 오웬은 빌어쳐먹을 하르크가 만든 가짜.
흉내낸 초월로는 결코 원본에 미칠 수 없고, 그렇게 강하진 않다.
초월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는 최강이겠지만, 한 번 인지를 초월했다면 상대하기 까다롭지 않다.
거칠고 투박한 투로. 오직 상대를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권격이지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고전할 상대는 결코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울프람은 아슬아슬하게 고전하고 있다.
방금 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헬스매셔는 듣지 못했지만, 요정 여왕의 귀에는 확실히 들렸다.
“2할이라….”
즉. 자신의 육체 능력을 20%까지 제한한 상태에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재주를 깎고, 체력을 깎고, 근력을 깎는다. 그 상태에서 오직 기척을 파악하고 살의를 감지해, 저 거칠고 난폭한 투로를 흘려내고 있다.
공격을 한 번 막아내고 흘릴 때 마다, 울프람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투사로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 방향이 다른 엘피라네는 평생 도착하지 못할 영역.
싸움에 감정을 걷어내고, 그저 목적을 위해 최선의 수를 이행하는 냉혹한.
자신이 선택하지 않고, 갈 수 없었던 길이기에, 더욱 동경하고 빛난다 느낀다. 엘피라네는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저 전장에 합류해서 울프람과 등을 마주하고 싶다. 자신이 가장 뜨겁게 타오를 때 울프람은 가장 차가워져서, 그 열기를 식혀줄 것이다. 터질 것 같은 머리에 내리꽂는 얼음장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기분일까!
울프람과 헬 스매셔의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황이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했다.
저기에 있는 엘피라네는 성장이 멈춘것에 반해, 울프람은 조금씩 그 공격에 익숙해 진 것이다.
옷가지가 찢겨나가고, 몸에 찰과상이 가득하지만 고작 그정도가 끝이다. 단검 한 자루로 폭풍을 꿰뚫으며, 남자가 걸어간다.
이미 적응되었다는 듯, 울프람의 걸음에 지체가 없다.
끝없이 폭풍을 일으키던 엘피라네의 얼굴에 경악이 가득찼을 때. 울프람은 한 번 작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 중얼거렸다.
“일 할….”
【계속 뭐라고 중얼 거리는 거야!】
폭풍이 절규하나, 울프람의 발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고작 일 할의 힘으로 그는 핵에 도달했다.
스윽.
아무렇지 않게 내미는 단검이 허상의 목에 닿는다.
【너…. 너 뭐야…. 대체….】
“덕분에 잠에서 좀 깬 기분이군. 감사하마. 꽤 괜찮은 자명종 아닌가.”
【내가 자명종? 하. 이, 이…. 개자식 사람을 우습게 보는것도 정도가 있지…. 죽여버리겠어.】
“그건 불가능하다. 너는 나보다 약하니 말이다.”
【개자식아!!】
달려드는 엘피라네의 주먹은, 정확하게 울프람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졌고, 그리고….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주먹이 으깨졌다.
【너, 너는….】
“졌으면 졌다고 인정 할 것이지. 하르크 그 등신은 저를 모방해서 만들어놓고 어떻게 이렇게 허접한 걸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모, 모방…? 설마 너….】
엘피라네는 자신의 가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도 패배했다면 깔끔하게 승복하고 죽었을텐데, 하르크가 기억하는 자신은 이렇게나 고집불통의 쓰레기였던 걸까.
어쩔 수 없지.
친구가 잘못 만든 흉물은 자기 손으로 부술 수 밖에 없다. 엘피라네는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고, 수 백 개의 좌표가 고정되어 가짜 엘피라네의 전신을 난타했다.
【가, 가아악. 끄아아아아아!!】
끝내 바스라지는 흉물. 엘피라네가 손바닥을 털자, 울프람은 한숨을 내쉬고 엘피라네를 바라봤다.
“저 자명종은 몇 번 더 쓸 수 있었는데, 부수는 건 아깝지 않나.”
“어머나. 그러면 제가 매일 아침 깨워드릴 수 있답니다. 가짜로 위안을 삼느니 눈 앞의 진짜에게 부탁해보는 건 어때요?”
살짝 윙크하자, 울프람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차갑기 그지 없는 반응.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의 가슴은 더할나위 없이 두근거렸다.
이 최고의 전사. 살육밖에 모르는 기계같은 남자와 매일 주먹을 겨룰 수 있다면, 매일매일 첫사랑을 마주하는 기분 아닐까.
지금도 첫사랑이건만, 이 이상 매일 반해버리면 큰일나는 것 아닐까.
엘피라네가 그렇게 망상을 부풀리며 울프람의 등을 쫄래쫄래 좇아 날아갔다.
그렇게 중앙으로 돌아갔을 때도, 잘 벼린 칼날같은 울프람의 기세는 무뎌지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이 남자의 기세는, 마지막 문을 뚫을 때 까지 결코 녹슬지 않으리라.
그렇게 울프람의 편의점 앞에 도착한 그 때.
“울프라아아아암!”
“아일라? 원정까지는 앞으로 열흘 이상 남지 않았나.”
“보고 싶어서 왔어요. 울프람은 제가 보고 싶지 않았나요?”
아일라 트라이스타.
분명 밝고 착하고 순수한 아이지만, 지금의 울프람은 한 자루의 칼날과 같으니, 저런 말로 부드러워 질리가 없다.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중재를 나서자. 그리 생각하며 엘피라네가 파닥거리며 날아가려던 그 순간.
“보고 싶었다. 당연하지 않나.”
“그렇죠?”
순식간에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울프람이 가볍게 웃었다.
잘 벼려진 칼날같은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따듯한 훈풍이 불어왔다.
“울프람.”
“왜 그러지 엘피라네? 표정이 좋지 않다만”
“그럴리가요? 아. 맞다. 내일 아침부터는 자명종 대신 제가 찾아오면 되겠죠?”
“음? 아니 그런 부탁을 한 적 없다만.”
“제가 찾아오면 되겠죠?”
“으음…. 그래 부탁하마.”
“네. 좋아요. 그러면 내일부터 실전형 특훈이네요. 후후후….”
엘피라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그저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