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38)
938. 서포트 어시스턴트
춥다.
그야 겨울 바다니까 더럽게 춥지.
그나마 허리춤에 끌어안은 그랑펠리시에가 따듯하니까 괜찮지 솔직히 조금 아찔하다.
이 녀석은 파티원도 아닌지라 메세지를 보낼수도 없고, 어떻게 전략을 토의할지 고민해야 했다.
【아, 그렇구나.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그랑펠리시에는 내 안색을 스윽 살피더니, 이내 허리를 쿡 찌르고는 내 마력에 융화해 들어왔다. 태초의 정수가 몸에 스며들고, 머리 위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불꽃의 정령왕 그랑펠리시에가 계약을 요구했습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음.
이건 뭐 볼 것도 없지. 가볍게 승낙을 터치하고, 이내 머릿속에 온기를 담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때? 오빠. 잘 들려?】
잘 들린다만, 오빠라니. 갑작스럽군.
【서비스야. 서비스. 이 그랑펠리시에의 첫 정령사니까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줄 수 있는거고, 감사하게 생각해. 오빠.】
아. 싫다.
이 서비스 치워버리고 싶은데 반품버튼 없나.
아니 없을 거다. 계약서에 도장찍은건 내 의사였으니까.
【말이 진짜 심하네…. 으흠. 아무튼. 좋아. 이렇게 멋지게 구하러 와 준건 좋은데, 여기서부터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이야?】
간단하다. 내가 지금부터 신화포식자로 공간을 베어내겠다. 크라켄 전체를 감싸는 원통형이라고 생각해라. 위만 뚫려있다.
【응. 응. 그래서?】
우리 둘이 크라켄 위에 올라탄 후. 원통 아래쪽을 폭발적으로 가열해라. 공간이 격리되어 있으니 강한 증기가 위로 솟구칠거고, 순식간에 지상으로 튀어나갈 수 있다.
【현명하고 깔끔하긴 한데, 오빠 몸에 걸리는 부하는? 그 속도로 이 바다에서 올라가면 전신의 핏줄이 터지고…. 죽을수도 있는거 알아?】
괜찮다. 그 부분은 어떻게 하마.
【알았어. 믿을게.】
이후, 신화포식자로 공간을 격리한 상태에서, 그랑펠리시에가 크라켄의 몸통 아래 부분을 순식간에 가열했다.
주변의 물이 끓어오르고, 몸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자 그러면 여기서 나는 어떻게 하냐 하면, 간단하다.
신화 포식자로 내 몸 주위의 열기와 압력, 충격 그 모든것을 잘라냈다.
이 개사기 검은 정말 가면 갈 수록 말도 안되는 바리에이션을 자랑한다.
촤아아아아아악!
보다 위로, 높게 솟구치고 이내 해수면을 지나쳐 드높은 상공으로 날아 올랐다.
“샤르!”
-네. 나의 마스터 울프람.
크라켄의 몸 전체를 허공에 띄워 오를 정도의 압도적인 증기 속.
샤르를 부르자 녀석이 응답했고, 구구구궁!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쏘아져 나왔다.
푹. 푹. 드드드득!
저 멀리 절벽에서 이어진 암석의 꼬챙이가 크라켄의 몸체를 꿰뚫고, 우리는 잠시 허공에 정지했다.
그 시점에서 크라켄과의 싸움은 끝났다.
어떻게 단언하냐고.
그야.
【죽여버릴거야. 재도 남기지 않고 전부 다 태워서, 태워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줄게! 이 내가, 불의 여왕 그랑펠리시에가 친절하게 말이야!】
그야.
완전히 열이 받은 그랑펠리시에의 파이어 펀치를 크라켄이 어떻게 견디겠냐고.
-그랑펠리시에. 코어까지 태우면 안 됩니다.
【아 맞다 그랬지. 그래. 그래. 그러면 내가 친히 오징어 구이를 만들어줄게.】
크라켄의 눈동자가 덜덜 떨리고, 그랑펠리시에의 주먹이 녀석을 향해 뻗어 나간다.
【고기는 레어보단 잘 익은 웰던이지. 안 그래?】
아뇨.
어디를 어떻게 봐도 오버쿡인데요.
***
지면으로 내동댕이쳐져 타오르는 크라켄의 몸뚱이에 손을 가져다댔다.
【대왕 오징어 구이】
【7T】
【조잡하게 익은 크라켄입니다. 2차 조리를 하면 갱생될 가능성이 있으나, 이 상대로 먹기 좋진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마력을 내포하고 있어서 마력과 체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크라켄의 핵】
【1T】
【심해에서 수 천년을 살며 모아온 크라켄의 마력이 담긴 핵입니다. 순수한 출력만으로는 드래곤을 능가합니다. 특별한 무기의 핵심 재료로 사용 됩니다.】
“다 상등품이군. 아주 잘 뽑혀 나왔다.”
내가 나온 아이템을 판별해 말해주자, 근처 초월종들이 잠시 오오, 하고 박수를 쳤다.
“그런데 오빠. 이거 먹게?”
“솔직히 맛은 별로일 것 같다만, 그건 조리하기 나름이고…. 중요한 것은 이 물량이다. 이거 하나면 식량 걱정은 없다.”
다리 하나만 해도 필티아의 수 배에 가까우니까 말이야.
일단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 넣어보기로 했고, 기적적으로 이 녀석은 ‘크기’에 관계없이 ‘단일 조리 식품’으로 취급되어 쑥 하고 들어갔다.
초벌 구이를 했다고 치고, 나중에 어떤 요리에 살려볼지 생각하자.
“그리고 마력이 깃든 초 대량의 요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했던거니 말이다.”
“그게 무슨 의미야?”
“아니. 이게 오늘의 진짜 성과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자 다른 초월종들이 의문을 표했다.
그건 뭐, 그때 가서 설명하면 되겠지.
“핵은 최고급 마동석이니 나중에 술식을 새기면 되겠군. 자. 모두들 고생 많았다. 이만 귀가하도록 하지.”
그렇게 제프린으로 향하는 길. 중앙구 한복판에서 찢어지기로 했으나.
-그랑펠리시에. 당신은 화산으로 가야죠.
【아니, 나는 이제 오빠의 정령이니까 오빠랑 같이 있어야지】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렇게 치면 먼저 계약한 제가 마스터 울프람 옆에 붙어 있어야죠. 따라오세요. 후배.
【윽, 으윽…. 오빠. 나중에 또 봐!】
그랑펠리시에의 뒷목을 잡고 끌고가는 샤르.
대지와 불꽃의 싸움이면, 보통은 대지가 이기기 때문에 조용히 뒷목을 잡힌 듯 하다.
필티아 누나와 나도 서로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는 누나는 교수동 쪽으로, 나는 편의점을 향했다.
“앞으로 일주일인가…. 처리할 수 있는건 전부 처리하고 가야겠구나.”
***
깊게 잠에 든 나는, 실로 오래간만에 몽경성역을 찾았다.
“오래간만이네요. 울프람.”
“이비. 오래간만이구나.”
“네. 후후. 잘 지냈나요?”
생각보다 차분한 녀석.
얼마 전에 만났을 때에는 ‘어떻게 저를 까먹을 수 있어요!’ 하고 화를 냈었는데 말이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녀석은 풋 하고 웃고는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브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으나, 그 어떤 증오심도 피어오르지 않고, 오히려 호의마저 품게 된다. 혈통의 저주란 대체….
“많이 강해졌네요. 이제 이 세계의 지원도, 시련도 필요 없겠어요. 혹시 아스칼론을 가지고 있나요?”
“물론, 이 세계에서 분해하겠다고 해먹은 위신검이 아니라, 진짜 아스칼론이다.”
“세상에…. 실물을 볼 수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내가 아스칼론을 꺼내들자 이비는 검신을 살짝 쓰다듬고는 만족한 듯 웃었다.
“천계왕을 죽였다는 이야기죠?”
“내 손으로 깔끔하게 베어 넘겼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는 이비.
목소리는 숙연했고, 행동은 절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녀석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작별이네요.”
“작별?”
“네. 이 몽경성역은 중간계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빚어낸 이세계에요. 저는 이번 대의 신령이었고, 당신의 가이드였죠. 당신에게 가이드가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게 왜 작별이 되는 거지.”
“당신에게 저는 필요 없잖아요? 정말 모시는 재미가 있는 손님이었어요.”
이비는 만족한 듯 웃었다.
음.
나는 아직 만족 못 했는데 말이지.
“네 말마따나, 나는 이 세계의 단련이 필요 없다. 하지만 그게 너와, 이 세계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네…?”
“여기서 한 가지 제안을 하마. 혹시 나와 함께 바깥 세상을 구경해 볼 생각이 있나?”
내 말에 멀뚱멀뚱 이쪽을 보다가,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요. 울프람. 저는 이 세계의 가이드에요. 물론 로테이션을 돌고 있긴 한데요. 이 세계의 주민이니까 함부로 빠져나갈 수 없다고요.”
“정말 그런가? 다른 신령들의 의견은 어떻지?”
“그야…. 잠깐만 기다려봐요. 언니들한테…. 잠깐만요. 된다고요? 왜요?”
“된다고 하나?”
“아니, 된다고 하는데…. 왜. 어째서…?”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이 세계는 중간계를 지켜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빚어냈다고, 그렇다면…. 천계왕을 죽이고 아스칼론을 빼앗은 나는 이 세계의 큰 목적중 하나를 완수한 은인 아닌가?”
“…….”
“그런 내가,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줬던 신령을 빼내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은인의 부탁을 함부로 거절할 배은망덕한 녀석들은 아니었나보구나.”
나는 자리에 앉아서 웃어버렸고, 이비는 질렸다는 듯 이쪽을 바라봤다.
“저는 이 세계니까 관리자의 능력이 있는거지, 현실로 나가면 별 쓸모가 없을지도 몰라요. 아니 없을거에요.”
“괜찮다. 그 쓸모는 내가 정한다.”
“정말이에요? 이렇게 귀여운 외모가 아니라, 그냥 빛 덩어리가 되어서 둥둥 돌아다닐지도 몰라요?”
“그게 차라리 해석하기 편하겠구나. 네 외모는…. 현실로 나가면 똑 닮은 녀석이 있어서 말이다.”
“아 맞네요. 가장 친근한 외모…. 당신이랑 똑 닮은 외모…. 그러니까. 혈육.”
“음.”
“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하네요. 저는 분명 가장 친근한 외모인데, 왜 당신의 혈육이…. 당신보다 어린 혈육이죠…? 여동생?”
이비가 뒤로 두 걸음 물러선다.
아….
이거 설명하기 까다롭네.
원작 기준으로 외모 테이블을 돌리면, 이브가 디폴트 값이라 그런거 같다고 어떻게 설명을 하냐고.
“아니 그런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되면 그렇게 되나요?”
“의심하지 마라. 아무튼. 그런게 아니라….”
자리에 앉아, 머뭇거리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멀뚱 내 손을 바라봤다.
“나가고 싶다면 쥐어라. 강요는 않으마. 잡겠나.”
“위험한 사람인 거 아니죠?”
“아직도 의심하나? 싫다면….”
“후후. 농담이에요. 농담. 정말…. 가이드를 주문해서 끌고 나가는 손님은 울프람이 처음일거에요.”
그리 말하고 이비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녀석이 빛의 입자로 화했다.
***
현대로 나와 눈을 떴을 때. 머리가 멍했다.
그러니까, 분명 뭔가 꿈을 꾸긴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분명….
“무슨 꿈이었지.”
원래 꿈이라는게 그렇다. 깨고 나서 바로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무슨 꿈이었냐 하면….
‘여기가 현실이군요. 울프람은 이런 곳에서 자는군요? 그렇군요.’
“아, 아아.”
머릿속에서 퍼즐이 하나 둘 맞춰진다.
꿈이 압도적인 입체감을 띄며, 내 현실을 다시 채색한다.
나는 몽경성역에 들어가, 이비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이비는 내 손을 잡고, 빛덩어리가 되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래서. 울프람. 저는 뭘 하면 될까요? 무기에 깃들어 당신을 도울 수도 있고, 아니면 정찰도 할 수 있답니다. 자. 저에게 뭘 바라죠? 아 맞다. 당신이 원했던 여동생분의 외형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아니 그건 하지 마라.”
‘그러면 뭐부터 할까요? 자. 뭐든 시켜주시죠!’
내 머릿속에서 이비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고, 이 녀석이 해야 할 첫 일을 떠올렸다.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 오픈.”
‘음? 호오. 아공간 소환 마법인가요? 어마어마하네요. 아스칼론이 용살검일 시절에 이런 능력이 있었죠. 천계왕의 손에 들어간 이후 개조당했다고 들었는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이 안에는 뭐가 있나요?’
“이것저것 많이 있다. 나도 솔직히…. 이제 뭐가 들어있는지 잘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즉.’
“이 안의 청소와 정돈, 그리고 내가 바란다면 즉각 내 눈 앞에서 목록을 띄우거나 소환해 줄 수 있겠나?”
‘후후. 좋아요. 의욕이 생기는 업무네요. 내부 공간도 어마어마하게 커요. 그래서 언제까지 하면 되나요?’
“가급적 5일 내로 부탁한다.”
‘…….’
이비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할 수 있겠나?”
‘그, 그럼요…. 해, 해 봐야죠. 아니 해 내야죠.’
이비의 목소리가 떨린다.
미안.
진짜 미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