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41)
941. Best Friend
하하! 이것이 너의 아버지 아즈라엘을 죽인 주먹이다! 어디 똑바로 봐라! 하하!
라고 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에 바닐라와 요거트도 있다.
얘네 앞에서 할 이야기도 아니다.
아주 잠시 생각에 잠겼고, 유즈나엘을 바라봤다.
베이지색 긴 머리와 동그란 눈 안에는 웃음기와 행복이 잔뜩 담겨있다.
천사의 목소리도 타인을 매혹시키지 않고, 그저 기분 좋게 울리고 있다.
유즈나엘에게 방황하는 소천사의 날개가 없는 이상. 녀석은 두 번 다시 천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모두 어둠 속에 묻을 수 있다.
아즈라엘을 죽인 것도, 너의 날개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전부 묻어버리고, 평범하게,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 유즈나엘이 될 수 있다.
남들보다 좀 더 튼튼해서 탱킹을 훌륭하게 완수해낼 뿐인 귀여운 소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죽음을 모른 채로, 그렇게….
“후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군. 이런 건 나도 처음이란 말이다.”
“울프람…?”
“그것도 다른 녀석들이 있는 앞에서는….”
“아, 아앗. 아. 아……!”
유즈나엘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더니, 고개를 푹 숙이다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나를 잡아 끌었다.
“저, 저기 나는 울프람이랑 잠깐 이야기 하고 올게.”
“응? 응. 다녀와.”
“다녀오세요. 선배님. 유즈나엘.”
바닐라와 요거트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그렇게 북부 평원의 휴식 베이스 캠프에 앉았다.
유즈나엘은 크흠. 흠. 하고 몇 번 헛기침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디 말해봐요. 설마 저한테 그럴줄은 몰랐지만…. 예. 다 들을 각오가 되어 있답니다!”
“정말인가? 무척이나…. 두렵고 힘든 이야기다.”
“괜찮아요. 다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가…. 그렇다면….”
여기서 모든 진실을 털어놓….
아니. 아니다.
나 울프람 폰 로엔그린. 그리고 이영진.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좀 더 대화를 통해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같은 주제를 인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자.
“한 가지 묻겠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할 거라고 생각했지?”
“네? 그, 그야…. 그렇게 부끄운 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해요? 거기에…. 말하겠다고 한 건 부끄러운 울프람이잖아요!”
“미안하구나, 그러니까…. 네가 예상하고 있는 내 말이 뭔지…. 말해줄 수 있겠나.”
“짓궂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으흠. 가지고 있는 진심을…. 저에 대한 여, 여, 연, 연심…을. 고, 고백…하겠다는 거죠?”
“…….”
그리 말하고 힐끗 이쪽을 올려본다.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몇 번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이다아아….
사랑 고백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사실 나는 네 날개를 가지고 있고 네 아빠도 죽였단다. 라고 말 하기 그렇지 않은가.
일단 착각부터 바로잡자.
“유즈나엘. 나는 너에게 고백하려는게 아니다.”
“네? 정말요?!”
“그래. 네가 귀엽고, 착하며, 동시에 옆에 있으면 즐겁다는 건 인정하지만…. 연애의 대상으로는 보기 힘들다.”
“우와…. 어마어마하게 때리네요. 아무리 튼튼한 저라도 상처받아요!”
양 손 주먹을 꽉 쥐고 볼을 부풀리는 녀석.
나는 웃어버렸고, 유즈나엘은 뭐가 신나냐며 나를 흘겼지만, 끝내 웃어줬다.
“그래요. 그러면 제 친구 울프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우선…. 이 이야기가 끝나면, 네가 나를 친구로 불러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네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다.”
“뭔데요?”
“네가 천족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천계왕의 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것부터 말하마.”
유즈나엘은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가 이내 웃었다.
“그렇군요. 인간의 황족이, 천계의 공주의 정체를 알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 저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라는 건가요?”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알고 있어요. 저도 그냥 말 해본 거에요.”
혀를 빼꼼 내미는 녀석.
“지금부터 본론을 이야기하마. 첫째. 나는 네 날개를 손에 넣었다. 이전에 천계에 갔을때 떨어져 있었다.”
방황하는 소천사의 날개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자,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제 날개!”
“맞다. 네 천족의 상징이지. 이게 없으면 너는 축복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진짜 천계에 버리고 도망쳤는데…. 잘도 주웠네요. 그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화나지 않나?”
“네? 왜요? 저는 버리고 왔는데요?”
“…….”
그러고 보니 그랬다.
유즈나엘은 원작 기준으로도 자신이 천족이라는 것에 큰 애착이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었지.
깜빡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좀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다.
“너, 네가 다음 천계왕이 될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그야 당연하죠. 저는 천계왕의 딸이에요.”
“그 천계왕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나?”
“그야….”
유즈나엘은 이를 악 물었다.
“그래. 알고 있었나보군.”
“우, 울프람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아무튼, 천계왕이 될 생각이었나? 이지를 상실하고 이용당하는 인형이 될 뿐인데?”
“정말 싫어요. 그래서 날개를 벗고, 가장 즐거워 보이는 지상으로 도망쳐 나온 거라고요.”
유즈나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하지만, 그게 운명이라면…. 어떻게 도망쳐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네가 싫다고 말하는 거였으니까.”
“네?”
“이미 천계왕은 죽었다. 내 손으로 죽였지. 네가 의무감에 천계왕이 되어야죠! 라고 말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거 다행이구나.”
“네에…?”
유즈나엘의 초점이 흐려지고, 이내 옆으로 스르륵 넘어갔다.
기절한 녀석이 땅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잡아줬다.
잠시 후. 녀석이 눈을 떴고, 그리고….
“울프람. 이상한 꿈을꿨어요. 당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을 하는 꿈을….”
“사실이다. 이것을 봐라.”
“열쇠…검…?”
다시 넘어가려는 녀석의 이마를 검지로 꾸욱 눌렀다.
“기절하게 내버려 두세요!”
“안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질 않잖나.”
“이런 충격적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기절하고 싶어 진다고요!”
어허. 어딜.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쓰러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여기는 춥고, 나는 할 일이 많으니까.
***
잠시 후.
유즈나엘에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부 했고, 녀석은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군요. 울프람이 아버지를 죽였다…. 그런거군요.”
“음. 나를 부모의 원수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여기서 다 털어놓도록. 나중에 앙금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와의 우정은…. 그렇구나. 무척이나 내게 소중한 가치다.”
“아하하…. 솔직히 복잡해요. 아버지를 죽였다고 해도, 저희한테 가족의 정은 없었으니까요.”
“천족은 그런가?”
“애당초 죽었다가 그대로 축복의 병에서 다시 불려나오잖아요. 가족보다는 서로를 에너지체로 보는 경향이 크죠. 저는 그게 싫었고요.”
“…….”
그렇구나.
천족의 생태를 생각해보면 현실성이 있다.
죽는 순간 모두가 축복의 병 안으로 들어가고, 천계왕의 뜻에 따라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다면…. 애당초 가족이라는 커뮤니티가 필요 없어진다.
“아버지라고 해도 그 어떤 추억도 없어요. 선물 하나 받아본 적 없고, 언젠가 아스칼론을 이어받아서 천계왕이 되어야 한다. 너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다. 같은 소리만 들었어요.”
“그런…가.”
“네. 그래서 울프람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해도, 잘 모르겠네요. 그것보다는 조금 얼떨떨 해요. 저는 이제 천계왕이 될 필요가 없는 건가요?”
“그렇다. 이 아스칼론은 나중에 마계로 넘어가서, 마계의 성 앞에 풀어버릴 생각이다. 모든 천족들이 바라는대로, 마족과의 최종 결전이나 하게 만들 셈이다.”
“우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발상을….”
“그렇게 되면, 너는 정말 자유다. 날개를 받아 천족으로 살아가는것도, 그저 평범한 탱커 유즈나엘로 살아가는것도 괜찮다.”
녀석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자유라….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사명에서 벗어났구나…. 싶은 느낌?”
“음. 그러면….”
날개를 돌려주려 했으나,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날개는 울프람에게 맡겨둘게요. 한동안 평범한 인간 유즈나엘로 살아가고 싶어요.”
“그 또한 좋지. 아니. 내게 있어서 최고의 선택이다.”
“진지한 울프람. 할 말은 그게 전부인가요? 아버지를 죽이고, 저를 해방시켜줬다…. 정말 다른거 없어요?”
“무슨 말을 바라지?”
“여기서 ‘유즈나엘, 네가 혼란스러워 하는 건 안다만…. 그렇다면 내가 네 기둥이 되어주마. 내 손을 잡아라.’ 라고 하면, 저는 틀림 없이 홀딱 빠져서 넘어갈 자신이 있는데요?”
키득키득 웃는 녀석.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더군다나 네게는 날개가 없어도, 누구보다 튼튼한 다리와 체력이 있지 않나. 걷는 것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그렇네요.”
“뭐, 친구로서 조언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해주마.”
내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은 웃으며 내 손길에 기대왔다.
사실.
유즈나엘은 D/Z SAGA 기준으로 내 최고 애정 캐릭터였으며, 내 내부 인기투표 1위에 빛났다.
이 세계에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이 녀석을 구원하는 루트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처음 이 녀석을 실제로 만났을 때. 이 세계에 와서 그만큼 놀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도 이 녀석을 연애 감정으로 본 적은 없다.
게임 기준이었다면…. 아마 ‘유즈나엘 귀여워요.’ ‘뭐 현실에 히로인들이 나타나게 된다면 유즈나엘 루트 일직선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 되잖아.’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이 세계에 들어와 유즈나엘을 만났을 때.
내 마음 속에는 다른 녀석들이 너무나 크게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친구를 구할 수 있어서, 그리고 네가 내 친구로 남아줘서 기쁘다.”
“저도 울프람이…. 저에게 숨기지 않고 다 털어놔 줘서 기뻐요. 당신은 제 최고의 친구에요.”
녀석의 손을 잡고 작게 흔들었다.
“앞으로 졸업까지 몇 년 남았지?”
“저는 정식 입학한것도 아닌데요? 천계에서 쳐들어올 위험이 없다면, 내년에 떠나도 괜찮을 거 같아요.”
“하하. 그것도 그런가. 뭐, 앞으로는 마음대로 해라. 네 인생은 이제…. 네 자유니 말이다.”
“네. 그렇게 할게요.”
유즈나엘이 맑게 웃는다.
그래.
이 미소를 보고 싶었다.
그 수 많은 플레이 타임 중. 오직 이 녀석이 끝까지 웃는 결말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아, 내년부터 뭐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자금을 잔뜩 벌어서 제프린을 나가서…. 또 원정이나 돌면서 살까…. 아니면 진짜 학생인 척 다닐까. 입학 서류 준비하면 입학 시켜주나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정도의 힘은 있어.”
“하지만 그러면 1학년부터 시작이죠? 으음…. 자유라. 갑작스러운 자유는 좋지만 말이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야기 하는 녀석을 보고, 가슴 속에 충족감이 차오른다.
연심은 없다.
오직 무한한 호의와, 녀석을 해방시켰다는 충족감만이 가득하다.
게임에서의 호의는,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보고 느낀것으로 올곧게 판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조금 생겼다.
“앞으로도 나와 친하게 지내줬으면 좋겠군.”
“물론이죠. 울프람. 우리 우정은 변하지 않을 거에요.”
자.
게임을 넘어서서, 다음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