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54)
954. 졸업식 – 본편완결
하르크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거의 은거생활을 지향하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제서 능력을 밝히고 정체를 밝혀봐야 시대가 미래로 나아가는 걸 방해할 뿐이라나.
그래서 뭘 하고, 뭘 할 수 있는지 물으니….
‘네가 완전히 망하는 선택지를 골랐을 때. 와서 그건 하지 말라고 해줄게.’
라고 답했다.
아니 좀 더 도우라고, 라고 말하니 ‘네가 지시한 건 특등석에서 지켜보라는 거였는데, 뭐 어쩌라고, 지켜는 볼게’ 하면서 웃으면서 떠났다.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시스템을 만든 녀석인가보다. 내 메신저 시스템에 끼어들었다.
물론 파티 통합 메신저가 아니라, 따로 프로그램을 기동하는 느낌이다. 하르크가 디스고드라면 파티톡은 코톡인 느낌.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떻게 게임 시스템을, 이 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거지?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게 또 뭔…. 뭔소린데 고객님. 하 진짜.
-이상하잖나. 여기가 현실이고 D/Z SAGA는 그저 게임이라면…. 나는 어떻게 이 현실에서 ‘시스템’을 쓸 수 있냐는 거다. 그것도 이 세계에 오자마자 쓸 수 있지 않았나.
-아니…. 거기까지 추리했으면…. 진짜 지능 문제인가 이거.
-죽일까.
-알겠습니다. 그러니까요 고객님…. 고객님은 두 개의 초월이 있으셨죠. 기억 하세요?
-하다마다. 하나는 울프람 폰 로엔그린 자체의 ‘주변 모든 것을 매혹해 인식을 개변하는 세뇌능력’
-아 그거. 그건 진짜 놀랐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육신 자체도 초월이 있었구나…. 아니 정신이 병들면 초월에 다가가기 쉽긴 한데, 그런 녀석도 초월이 있다니….
뭔데.
갑자기 초월의 진실이 밝혀졌다.
아니 초월이 정신병자 집단이라고? 웃기지 마라. 내 파티원들은 모두 정상…. 정,상….
-그래서. 집단세뇌의 초월과, 네가 말한…. 내가 들어간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초월. 즉 포식과 변질의 초월이 있지.
-맞아. 그리고 너한테는 마지막 하나가 남았잖아? 너도 세 개의 초월을 가진 거야. 나처럼.
-세 개?
-그래. 순수하게 이영진의 초월. 이 세계를 게임화시켜서, 자신의 뜻을 세계에 덧칠해…. 게임 시스템을 구현화 해버리는 초월.
-그게 내 초월이라…. 아니. 이상하지 않나. 내 초월이 그렇다면…. 나는 이 세계에 들어올 때부터, 수중에 초월이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맞아. 너는 장래성뿐만 아니라, 들어온 시점에서부터 이미 규격을 넘어선 괴물이었다니까?
생각해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영진의 초월이 게임 시스템이라는 것도.
그 초월을 철저하게 이용해서 이 세계의 고난을 헤쳐 나갔던 것도 다 납득이 간다.
-괴물이라니 말이 심하군.
-말이 심하다니…. 중간계 전체를 구하는 일이야. 최소한…. 외부 세계의 신 급은 되어야 소환할 가치가 있지. 이영진. 너는 인류사. 아니 이 중간계 역사상 최강 최악 그리고 최고의 외신이야.
아니오.
저는 그런 것이 된 기억이 없습니다.
사람을 몰고가지 마십시오.
-아무튼. 이제 궁금한 점은 풀리셨습니까. 고객님.
-납득은 안 가지만, 이해는 할 수 있게 노력해보지.
-그래요. 더 문의사항 없으면 저는 갑니다.
-어디로 가지?
-글쎄. 어디론가 가겠지. 한국으로 갈수도 있고.
-아. 그렇군. 너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군 그래.
-어. 뭐야. 귀국에 흥미 있어?
뭐?
-가능한가?
-울프람의 몸 그대로, 차원을 넘어가는 고통만 버틸 수 있으면 못 갈 것도 없지. 스킬도 그대로 가져갈거고, ‘절대황자가 이세계에서 귀환했다.’ 같은 내용으로 한 편 쓸 수 있을걸.
-아니. 필요없다.
-대답 한 번 빠른거 봐. 점심 메뉴를 물어봐도 그거보단 오래 고민하겠다.
그야 뭐.
녀석들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가긴 어디에 가겠나.
-나는 간다. 너도 놀고 있을 틈이 없잖아. 오늘 졸업식 아냐?
-그래. 옷은 다 입었고…. 이제 시상대 뒤편에서 답사를 읽을 준비를 해야지
-그래. 울프람. 아니 이영진.
-뭐지?
-D/Z SAGA 클리어. 축하한다. 앞으로도 이 세계를 즐겁게 즐겨줬으면 좋겠습니다.
뭐.
네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다.
***
졸업식장.
제프린의 졸업생은 당연하지만 입학 정원 대비 상당히 적은 숫자를 기록한다.
졸업장을 받는 것 만으로도 이 대륙. 이 세계에서 인생의 다음 레벨을 겨냥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역전의 용사 취급이며, 졸업식 답사를 하는 인물은 그 해 졸업생들을 대표하는 학생이 된다.
그리고.
그게 나다.
연단 위에서는, 이브가 재학생 송사를 읊고 있다.
담담하지만, 어딘가 떨리는 얼굴. 억지로 웃고 있지만 울것 같다.
녀석. 이럴때는 또 마음이 약해진단 말이지.
“이 맹위를 떨치는 추위도 곧 봄으로 변하고, 저희들이 새로운 봄을 맞이할 때면 선배님들께서는 더 큰 세상으로 뜻을 펼치러 나가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재학생 일동은 저희를 물심양면으로 이끌어주시고, 지도해주신 선배님들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브가 손을 덜덜 떤다.
뭔가. 우는게 아니라 화가 난 것도 같은데…. 그럴리가 없지. 우리들 4학년이 이 제프린에 공헌한게 얼마인데.
생각해봐라 요정족과 정령족도 제프린에 불러와 연애도시도 만들어, 놀이공원도 만들어 교수들을 무릎꿇리고 특강도 신설해. 거기에 몬스터 웨이브도 끌고오고 학생들도 제프린의 험지를 돌아다니게 하고, 마족들과도 싸우고…. 하하.
이브가 눈물 흘리면서 개혁에 기뻐하면 기뻐했지, 저런 ‘선배들을 위한 축사’를 읊으면서 분노에 떨 일은 없지 않겠나.
그렇게, 학창시절 마지막 이브의 연설을, 마치 노랫소리를 듣는 것 처럼 즐겁게 들었다.
그리고 이내.
【이상으로 이브 폰 로엔그린 학생회장의 재학생 송사였습니다】
【다음으로 울프람 폰 로엔그린 졸업생 대표의 답사가 있겠습니다】
내 차례가 왔다.
***
천천히, 긴장조차 하지 않은 채 연단 위에 올라섰다.
나를 빤히 지켜보는 수만 명의 학생들 앞. 내 손에 쥐어진 원고.
꽤 진지하게 작성한 원고였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올라서서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음….
이걸 그냥 발표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최고의 PR을 할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여기서는 사업가답게, 홍보를 해야 하는거 아니냔 말이야.
-잠깐. 울프람. 긴장한거에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울프람!
이브가 시끄럽다. 일단 메세지창을 끄고 나는 원고를 시선과 맞추고 그리고….
부우우우우욱!
양 손으로 찢은 후. 옆에 집어던졌다.
웅성웅성. 학생들이 소란을 피우고, 제일 상석에 앉아있던 이브가 ‘저새끼가 마침내…. 결국….’ 하고 양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뭐. 들어봐라.
“나는 분명. 이 자리에서 멋들어지고 아름다운 소리를 하기 위해, 좋은 이별을 하기 위해 원고를 준비해 왔지만…. 그런 꾸민 말로 너희들의 진심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는 않는구나. 그래서 원고지는 찢었다. 보고 있으면 커닝할 것 같았거든.”
내가 싱긋 웃자. 학생들이 순간 뚝 하고 멈춘다. 군데군데에서는 풉 하고 웃음소리가 나온다.
“작년. 그래.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는 학생회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저기서 ‘선배님들께 물심 양면으로 배웠다.’ 라고 예쁜 말을 했던 학생회장이 학생회장실로 쳐들어왔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울프람. 당신은 끝났어.’ 안타깝게도 끝나진 않았다만 말이다.”
내 말에 하나 둘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이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허. 그러다 성광창도 쏘겠어.
“내 잘못으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뒤로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첫날은 먹을게 없어서 풀을 뜯어먹고, 그 다음은 빈즈를 먹었다. 쉽지 않은 나날이었지. 하지만 누군가는 아쉬워할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도 끝장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그 뒤로 참 많은 일을 했다. 새벽부터 대학원생들을 찾아가 생선스프를 팔거나, 사탕을 팔거나. 신입생 환영회때 간식을 팔기도 했지.”
거기까지 말하자. 저 멀리서 ‘그때 사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는 환호성이 울렸다.
“고맙군. 덕분에 그 날 밤은 스튜를 먹을 수 있었어. 풀에서 콩. 스튜로 진화하게 된 건 너 같은 훌륭한 후배가 있었기 때문이야. 아무튼, 그 뒤로도 나는 끝장나지 않았다. 조금 더 노력하고, 노력하고 더 노력했다. 하루를 살기 위해서 말이다. 학생회장자리에서 쫓겨나고, 은행에서도 거부당했음에도 마법 8학부의 구석에서 작은 편의점을 차려서, 매일매일 노력했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새로운 목표를 위해 노력했다.”
그래. 그랬다.
어마어마하게 노력했다. 어느정도 선에서 멈춰서서, 다른 황손들과 타협해서 조금이라도 지원을 뜯어냈다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거다. 아니면 내가 가진 책임에서 눈을 돌리면 좀 더 쉽게 지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노력했다.
“그 노력의 성과일까. 내 곁에는 점차 좋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과 함께 합심해서 원하던 것을 하나 둘 이룰 수 있었다. 어느새인가 원이 더욱 더 커져, 우리는 더 큰 목표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원정조가 몬스터를 사냥해 스스로의 성장과 경제적 안온을 도모할 수 있었고, 식사는 더 품질이 좋아졌으며, 그 결과 남는 식재료는 힘든 학생들의 천 린으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하루 스프의 품질 상승으로 변했다. 그 뿐만 아니라 기사학부에 공급되는 롱소드의 가격은 저럼해졌고, 의복의 품질은 좋아졌으며, 원정조에 포션이 무상으로 지급되고, 간식의 품질이 올라가다 못해 마법 간식까지 원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모험을 즐기고 싶다면 언제든 거주구 밖을 향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대를 만들었다.”
끝없이 노력했다.
“나는 졸업하지만, 그게 제프린의 원이 닫히는 건 아니다. 내가 만든 제프린의 작은원을 넘어서서 더 큰 원을 그리러 간다. 서부는 이미 너희들도 익히 알고 있는 열차사업을 개시했다. 포션을 넘어서서 성왕국의 부적 또한 모험가들에게 지급될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나는 새장을 넘어 모험할 수 있으며, 노력이 보답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 할 것이다. 그러니 재학생. 나의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희들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노력을 멈추지 말아다오. 내가 만들려는 세계는 혼자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다. 기회는 결코 공평하지 않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자. 끝장나지 않은 나도 내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 하겠다. 너희들도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끝에.
“자. 나는 더 큰 원을 만들러 간다. 그리고 그건 내 옆의 좋은 사람. 그 사람 옆의 더 좋은 사람. 그들이 이어나갈 더 큰 원을 위해서다. 자랑스럽기 그지 없는 너희들도 동참해, 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둥글게 이었으면 좋겠다. 이상이다.”
다들 즐겁게.
이 세계의 벽을 부수고,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모험을 하지 않겠나.
그리 말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환호성은…없다.
조용하다. 역시 너무 파격적이었나.
하지만 수 만 명 앞에서, 이렇게 PR을 한 것 만으로도 가치가….
“회장님…!”
재학생석 어딘가에서, 우는 듯 한, 웃는 듯 한 큰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덕분에 원정조에 들어가서! 학비를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저도! 요새 식사가 맛있어졌어요!”
“솔직히 노력만 하라는 건 미덥긴 한데! 한 번 속았는데 배당을 두둑하게 받았으니 한 번 정도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울프람 회장님! 솔직히 처음에는 나쁜 사람인줄 알았는데! 즐거웠습니다!”
“선배님! 졸업 축하드려요! 졸업 기념 편의점 할인행사 해주실거죠!”
“진짜죠?! 저 믿고 있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울프람 회장님!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황손의 졸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격식 없는 인사.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애당초 편의점 사장에게는 이 정도의 인사면 충분하다.
그리고 동시에 강하게 깨달았다.
내 즐거운 학창시절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건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자. 여러분.
더 큰 세상에서 만나죠.
***
졸업식이 끝나고, 메세지창을 확인했다.
이브가 투덜거리는 걸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메세지가 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녀석들은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단 한 명에게 마음을 고백하러 간다.
울프람으로서, 그리고 이영진으로서. 내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단단한 원을 만들어줄 사람에게 메세지를 보내자.
밖으로 나가도 분명, 작디 작은 편의점에서부터 시작하겠지만.
내 바로 옆에서, 언제나 함께 웃어줄 그 녀석이 있을거라 생각하면, 그 이상 바랄게 뭐가 있겠나.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녀석에게 보낼 메세지를 적어 내려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