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55)
955. 대사부와 학생회장
지금 생각해도 참 멋대가리 없는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내 곁에 있어다오. 나도 네 곁에서 떨어지지 않겠다.’
‘네…. 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그게 내 최선이었다.
다행이 그녀는 그런 멋대가리 없는 고백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울면서 내 고백을 받아들여줬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켰다.
정말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아…. 오셨어요?”
“음. 지금 왔다. 아직도 업무 중인가?”
처음에는 내 등 뒤에 서는 것 조차 두려워했던 그 녀석이 눈에 밟혔다.
어느새인가 내 옆에.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는 내 앞에 섰다.
그 눈부신 성장에 조금씩 마음이 끌렸고, 그리고
“네. 헤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선배님.”
“그러니까. 이제 선배님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선배님은 선배님인걸요?”
그리 말하고 혀를 빼꼼 내미는 녀석.
내가 밀푀유와 사귀기 시작하고 1년이 지났다.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졸업 이후에도 쭉 이 제프린에 남아 있다.
***
이브는 작년에 졸업하고, ‘옥좌를 되찾으러 간다.’ 라면서 모험을 떠났다. 이스티티아와 초월종. 그리고 그림자 속에서 하르크도 녀석을 지원할테니 황제가 되는 건 문제가 없…. 아니. 너무 세지 않냐. 그래도 되나. 황궁이 무너진다고.
으흠. 아무튼, 이브가 졸업하고, 밀푀유는 학생회장이 되었다.
나와 이브가 함께 재학중이었던 시절이 제프린 개혁의 시기라면, 이브의 임기는 전진의 시기였다. 수 많은 공략집을 만들고, 원정조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며, 정령학부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밀푀유의 시기를 이름붙여, 풍요의 시기라 한다.
제프린 전체가 꽃과 봄의 향기가 나듯,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올해 신입생은 역대 최저치의 퇴학율을 보이고 있으며, 원정조 신청도 가득해 이제는 줄을 서서 면접을 봐야하는 상황.
내가 만들었고, 이브가 진행한 이 개혁의 과실은 밀푀유 대에 이르러 탐스럽게 익었다. 라고 할 수 있다.
“선배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현 제프린 학생회장은 따듯하고 자상하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 항상 그런식으로 얼버무리시죠.”
아니 얼버무린 적 없는데.
“그렇게 보였나?”
“네. 그렇게 보였어요.”
“이상하군, 얼버무릴만한 소리를 했나? 현 학생회장의 평가로 가장 정확하고 거짓없다고 생각했는데….”
“현 학생회장이 끝이에요?”
“아. 그렇군. 이거 큰 실수를 했구나.”
“그렇죠?”
밀푀유의 학생회장석 뒤로 가서, 녀석의 어깨를 주무르며, 웃었다.
“내 애인은 따듯하고 자상하며,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
“후후. 정답이에요. 그럼 거기서 이어지는 것은?”
“이렇게…. 겠지.”
녀석의 오른쪽 어깨에 얼굴을 가져다대니, 녀석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다.
가벼운 키스.
부드럽고 따듯하며, 동시에 행복함이 퍼져나간다.
“이어진 문제도 정답이세요.”
“그거 다행이군.”
오늘은 문제 두 개 다 정답인 모양.
뭐, 틀린다고 해서 벌점이 부과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서로간의 가벼운 장난이다.
“그런데, 일은 괜찮나?”
“아! 크, 큰일이에요. 이 서류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데….”
착하고 성실하지만, 가끔 실수하는게 있는 이런 부분은 여전하다.
“나도 돕도록 하지.”
“아뇨. 선배님은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하지만….”
“지금 제프린 학생회장은 저니까요. 그리고 선배님의 애인은, 쉽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퍼지지 않아요. 믿어주세요. 네?”
“…….”
취소.
역시나 크게 성장했다.
저 여유를 담은 눈을 보며 웃었다.
“알겠다. 먼저 가서 기다리도록 하지.”
“네! 금방 돌아갈게요!”
***
자. 그래서 제프린에서 졸업한 제가 어디서 기다리냐 하면….
어디겠습니까.
지금은 정령 1학부로 변한, 제프린 편의점 1호다.
아니 이제는 1호라고 부르기도 뭐하다, 1호는 폐점이에요. 정령 1학부 중앙에 개점한 800평 규모의 제프린 편의점 35호를 이용해주세요.
정령 1학부가 되면서, 편의점 1호는 폐점. 정확히는 용도를 변경했다.
제프린에서 보통 허락되지 않는, 일반 민가다. 정원도 딸려있고, 채소도 키운다. 이미 1학부의 명물중의 명물이라고 한다.
작년, 이브의 임기 도중에 용도변경을 신청하고, 완전히 재건축한 2층짜리 집.
이제는 완전히 ‘우리 집’이 되어버린 곳.
문에서 하늘색 슬리퍼를 신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가볍게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컵 하나에 서로 교차되어 세워져있는 하늘색 칫솔을 들고 이를 닦는다.
그 다음 똑같이 하늘색 실내복을 입고,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다.
밀푀유는 동부 출신이라, 유제품에 슬슬 질릴만도 한데 여전히 우유가 들어간 요리를 좋아한다.
그 기적의 신체는 동부의 유제품에서 나온건가 싶다. 대단하잖아.
“음. 오늘 식사도 나쁘지 않군.”
뭐, 내 요리실력이 어디 가겠냐만, 매일마다 맛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만 먹는게 아니라, 밀푀유도 같이 먹으니까…. 뭐 사내놈 혼자 먹을거면 대충 먹어도 되는데 말이야.
치즈 샐러드부터 시작해 크림 스튜. 몇 가지 반찬과 피클. 마지막으로 저지방 요거트까지.
전부 준비해놓고, 손가락을 튕겨 시간동결을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다.”
신화포식자의 힘은 마지막 전투 이후로 더욱 더 강력해져서, 지금은 소규모라면 시간이라는 개념을 잡아먹고 동결시킬수도 있다. 즉 요리의 ‘시간’을 잠시 포식해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뭐, 개사기 능력으로 진화시켜봐야 연인이 먹을 요리가 식지 않게 하는데 쓰지만 말이다.
아니, 그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쓰임새일지도 모른다.
주방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달칵. 하고 열쇠를 돌리고 들어오는 소리.
지난 1년간 질릴 정도로 봐 왔기에 녀석이 어떻게 행동할지 눈에 보이듯 선하다.
그리고 전용으로 준비된 분홍색 슬리퍼를 신고, 옷을 걸고 바로 우향 우. 그대로 욕실로 걸어가 세안을 하고 손을 씻고…. 자기 전용 분홍색 칫솔을 들어 이를 닦고, 또 맞춤형으로 준비된 분홍색 실내복을 입고….
방긋 웃으면서, 주방을 향해 걸어 들어온다.
“선배님. 저 왔어요.”
“내가 학생회장이라고 부르는 건 오답인데, 집에서도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건 괜찮나?”
“하지만 선배님은 선배님인걸요. 제가 선배님을…. 자, 자기나… 오, 오빠라고 부르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그것도 그런가….”
살짝 얼굴을 붉히는 녀석.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왜 부끄러워 하는거지.
잠시 머쓱한 시간이 지나가고, 환기를 위해 주제를 전환했다.
“자. 저녁이나 먹자. 이러다 식겠군 그래.”
“네, 네….”
안 식는것을 알면서도 운을 띄웠고, 밀푀유도 따라와줬다.
평범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스튜를 뜨고 한 입 먹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어버렸다.
아무런 전조도, 이유도 없다. 아니 필요 없다.
서로 눈을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같은 장소에 있는 것 만으로도 웃어버리고 만다.
“잘 먹었습니다. 그럼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그 사이에 쓰레기를 좀 버리고 와야겠군…. 잠깐 나갔다 올 건데 필요한게 있나?”
“아. 내일 아침 일찍 회의에서 쓸 용지가 거의 다 떨어졌더라고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다.”
아무렇지 않게, 서로 사양하지 않고 부탁하고, 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과를 나눈다.
이런 당연한 호흡, 자연스러운 배려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라는걸 매일 깨닫는다.
허리를 쭉 펴고 집 밖으로 나왔다.
사복을 입고 정령학부를 걷자니, 주변에서 인사소리가 들려온다.
“대사부! 안녕하세요!”
“와 대사부님! 오늘 양파가 싼데 어떠세요?”
대사부.
다른곳은 몰라도 이 정령학부에서 나는 대사부로 통한다.
그야 당연하지. 4대 정령왕과 전부 계약한 인류 최초이자 최강의 정령사니까 말이야.
정령사의 소질을 품고 대정령사 꿈꾸는 녀석들의 패턴은 다음과 같다.
입학할 때는 나를 보고 울고, 그 다음 신처럼 숭배하다가, 내게 인간미를 느끼며 친해지고, 끝내 존경과 친애를 담아 대사부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작 2년짜리 학부.
허나 장담하는데 이 학부는 마법학부와 견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그야 4대 정령왕의 계약자가 여기에 있는데, 못 크면 장사 접어야지.
아무튼, 지금은 저 동경어린 시선에 대답해 줄 때가 아니다.
“아니. 지금은 다른 용무가 있어서 말이다.”
“아…. 사모님 심부름이세요?”
“뭐, 그런 셈이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대사부님!”
학생들의 인사를 들으며 손을 휘적 내젓고는 정령학부 번화가로 들어갔다.
이제야 좀 편의점에….
“대사부님! 안녕하세요!”
“앗 대사부님이다!”
“음…. 그래.”
그렇게, 밀푀유가 부탁한 용지를 사기까지 약 30분이 걸렸다.
다음번에는 가면이라도 쓰고 다녀야지 진짜.
***
내 이야기를 들은 밀푀유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정말…. 학생들에게 사랑받으시네요.”
“이제 악당 황자 울프람을 기억하는 녀석들도 전부 졸업했거나…. 대학원에 갔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네요. 아. 그러고보니 레지나 선배님이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그건 나도 놀랐다. 녀석은 대체 왜 그런 선택만 반복하는건지 모르겠구나.”
무슨 저주라도 걸린건가.
“하지만…. 선배님도 대학원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제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음…. 그랬지. 하지만 졸업생이 제프린에 다시 들어오려면 그 방법이 제일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돌아와봐야, 같이 있을 시간이 없으면 본말전도 아닐까요….”
“음…. 뭐, 정령학부 총 책임자라는 명목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니 다 잘 된 이야기 아니겠나….”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그 때문에 선배님이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대사부가 된 건 참 좋은 일이죠. 그런데…. 하나 잊으시면 안 돼요.”
“내가 또 뭘 잊고 있는게 있나?”
“선배님이 다른 학생들한테 사랑받고, 존경 받는건 알지만, 이 세상에서 선배님을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건 바로 저에요.”
“물론이다. 어떻게 잊겠나. 그리고 나도 그렇다.”
“네. 후후. 그러면 됐어요.”
녀석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잡담을 마치고, 식후의 양치도 끝냈다. 실내복에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서로 조금 펑퍼짐한 파자마. 물론 나는 하늘색이고 밀푀유는 분홍색이다.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르다.
“그럼 슬슬 자도록 할까. 밀푀유 잘 자도록.”
“아….”
우리는 기본적으로 각방을 쓴다. 괜히 2층집에, 꽤 큰 집을 지은게 아니다.
하지만, 밀푀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보통 이럴 때는….
“내일은 아침 일찍 회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정도는 괜찮아요. 체력적으로 문제 없어요!”
“처음에는 몇 시간이나 방 앞에서 멍하니 서있던 녀석이…. 많이 변했구나.”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고, 이번만큼은 밀푀유의 얼굴도 새빨개졌다.
“이런 저는…. 싫으세요?”
“한 번도 싫다고 한 적 없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녀석의 손을 잡고, 내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밀푀유는 하늘하늘 거리는 깃털처럼 저항없이 끌려와 내 품에 폭 하고 안겼다.
“직접 손을 잡고 끌어주지 않으면, 혼자 걸어오지 않는 점은 똑같구나.”
“헤헤….”
내 가슴께에 안겨 이쪽을 살짝 올려보는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천천히 녀석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해,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날.
밀푀유를 밤새 귀여워해줬고.
다음 날.
“아으…. 허리가아…. 힘이 안들어가요….”
“어쩔 수 없구나 식사 할 기력은 있나?”
“죽이라면…. 어떻게든…. 선배님이 떠먹여주시면 노력해서….”
“여전히 삐약이구나.”
“선배님 앞에서만 그래요. 다른 학생들에게는 존경받는 학생회장이에요….”
“그래. 그래.”
뭐. 당연하게도.
서로 나란히 지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