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56)
956. 대사부와 학생회장 2
내년, 밀푀유가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이 세계의 유통망에 뛰어든다.
2년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다른 녀석들이 말해줬기에, 나도 마음 편하게 이 제프린에서 2년의 유예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밀푀유가 학년 수석과 학생회장을 병행하는 낮 동안, 나는 뭘 하냐고 하면….
“다들 자리에 앉도록.”
학부생 총 천오백 명.
그 중에서 상급 정령사의 소질이 보이는 녀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
뭐, 강의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다. 1년단위로 커리큘럼을 짜고, 학생들을 하나하나 가르쳐 줄 뿐이다.
그런데 작년 강의 평가가 유독 좋았고, 덕분에 올해도 수강생들이 넘쳐나는 상황.
“자. 그럼 다시 설명하겠다. 내가 강의 첫날. 처음 뭐라고 했지?”
“정령력은 고정되어있지 않다. 정령사의 사고가 고정되어있는것이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소리친다.
“맞다. 자신의 한계를 단정짓기 때문에 정령력 또한 한도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 그럼 오늘은 정령력의 강화와 더불어 자기 자신의 방향성을 정하는 훈련을 하겠다.”
세계수 앞에서 하는 내 강의는 이 정령학부의 명물이 되었다. 물론 다른 교수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내 강의는 특별히 평이 더 좋다.
가끔 정령왕을 초빙하기도 하고, 싹수 있는 녀석들은 정령왕이 정령을 매칭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 오늘은 헤라클레스 트롤을 정령으로 사냥하는 법에 대한 강의를 하겠다.”
다른 그 어떤 강의에서도 볼 수 없는 맞춤형 몬스터 사냥법.
이 대륙 어디를 가든, 정령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위험을 동반한다.
당연하다. 마을에서 물의 정령으로 대형 세탁업이라도 하지 않는이상 정령사가 향하는 곳은 자연의 힘이 필요한 곳. 즉 험지다.
지형을 다듬든, 숲에 길을 내든, 설원에서 사람을 구조하든…. 그들은 가장 최전방을 향해야 한다.
정령은 탐사, 탐지. 그리고 정찰. 끝내는 인간폭탄으로서 전쟁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니 모든 몬스터의 상대법은 정령사가 반드시 꿰고 있어야 할 복음이며 진리다.
“자 그리고….”
누구 한 명 조는 이 없이 내 강의를 필기하고 있다.
편의점의 노트와 펜을 사서, 적어나가는 모습.
제프린의 원정조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며, 이 세계의 모험이 쉽지 않다는 걸 배우고 있는 녀석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조별 과제를 내겠다.”
“대사부우우우우!”
대학은 가본 적 없지만, 갑자기 교수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뭐.
인터넷에서 하도 본게 많으니까, 이런것도 해봐야지.
***
강의를 마치고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 메신저창을 띄워놓고 밀푀유와 잡담을 나눴다.
-저녁 메뉴로 바라는게 있나?
-선배님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나는 리조또로 할까.
-그러면 저는 치즈 샐러드요.
우리의 동거 규칙 그 첫번째.
상대 의견에 무조건 맞추는게 아니라, 서로 원하는 것을 말한 후 조율 과정을 거칠 것.
특히 밀푀유는 참고, 참고, 또 숨기려고 하는게 너무 많다.
처음에는 괜찮아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같은 소리를 입에 담았지만 꾸준한 대화의 결과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래.
적어도 저녁식사 메뉴 정도는 고를 수 있게 된 거다.
리조또에 치즈 샐러드라…. 전체적으로 가볍긴 하다.
학생회 업무도 힘들고, 밀푀유는 특히나 기사학부 출신에 원정조도 전담하고 있으니 움직일 일이 많다. 내 경우도 꾸준히 체력 단련을 하고 있기에, 식사량은 많은 편이다.
어디. 그러면…. 식사는 샐러드와 리조또로 하고….
“그걸 꺼낼까.”
엘피라네.
지금은 대륙 어딘가에서 요정 왕국을 만들겠다고 떠난 그 녀석은, 제프린에 큰 유산을 남겼다.
그리고 그 유산은 전부 내 손에 떨어져서, 완전히 내가 사용하고 있다.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서 최고급 와인 하나를 꺼냈다.
녀석은 끝내 넥타르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람 마실 술은 만들 수 있었다.
녀석의 양조장을 공짜로 인수한 나도 취미삼아 술도가를 시작했으며, 이내 괜찮은 와인을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만들 것은 울프람 원년 와인이지만 실제로는 이세계에 집어넣고 숙성시킨거라 약 16년정도의 숙성도를 가진다.
식사를 준비하고 와인을 준비하고 밀푀유가 오는 걸 기다린다.
“선배니임! 저 왔어요!”
문 밖에서 녀석이 들어오고, 들어오자마자 어제처럼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 안장있는 내 품에 폭 하고 안긴다.
“오늘은 드물게도 어리광을 부리는구나, 무슨 일 있었나?”
“아…. 오는 길에 좀 추워서요. 따듯해지고 싶어서요. 후후.”
뭐, 나도 따듯해졌으니 괜찮다.
이후 태초의 루비로 잠시 주변을 데웠다.
그 때 전투로 사대 속성석이 전부 파괴되었는데, 하르크가 ‘그건 내가 부수게 한거니까 복구해줄게’ 하면서 속성석을 전부 되돌려놨다. 그러면 파괴할 일을 만들지 마라.
아무튼, 그 뒤에 이 돌에도 어마어마한 기능이 몇 개 추가됐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내 품에 폭 안겨있는 이 말랑말랑하고 분홍색인 녀석의 기분 좋은 체온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멀…어…진….
아니. 아니지. 이러면 안 돼지.
“밀푀유. 일어나라. 저녁은 먹어야지.”
“네에? 네….”
같이 졸아버린 녀석을 들어올린 채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들기 편하게 내 몸에 정확하게 밀착해오는 기분 좋은 무게감과 균형감각.
그대로 잠든 것도 몇 번이나 있던 일이고, 이렇게 들어 올린 것도 똑같은 숫자 만큼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흔한 일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리조또와 샐러드로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메인인 와인과 디저트를 꺼냈다.
식사를 마칠 때 즈음에는 밀푀유도 나도 완전히 잠에서 깼다.
“와아…. 마셔도 되나요?”
“두 잔 까지는 괜찮다.”
“네!”
밀푀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제프린 4학년은 보통 엄연한 성인이니까, 술 정도야 상관 없지만….
***
음.
옆에서 향긋한 체향에 술냄새가 섞여서 풍긴다.
“선배니이이임. 에헤…. 선배니임….”
“왜 그러지.”
“그냥요!”
그래.
내가 두 잔으로 제한한 이유는 사실 이 거대 분홍 복실이는 술이 무지막지하게 약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아무런 저항감 없이 내 옆으로 붙어온다. 나중에 나랑 같이 사회로 나가면 술 마실 일이 많을거 같은데 걱정이 될 정도다.
오구오구 해주면서 볼을 쓰다듬으면, 마치 강아지처럼 내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 따라온다. 그게 또 귀엽고 재밌기도 하다.
“많이 취했구나.”
“아뇨오! 안 취했는데요! 저는 멀쩡해요!”
그리 말하고 벌떡 일어서지만,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내 쪽으로 쓰러져온다.
그걸 잡아채고, 다시 품에 끌어안으면….
“에헤헤…. 또 잡아주셨다.”
“그래. 계속 잡아주마.”
“네에!”
다시 내 품에 파고드는 녀석.
두 잔으로 제한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두 잔째는 못 들어갈 거 같다.
이내 거대 복실이의 숨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완전히 잠들었군 그래.
“요 며칠 무리하기도 했고…. 오늘 같은 날 무리시키기도 그러니 말이다.”
녀석을 다시 들어서 방문을 열고,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나왔다.
거실에 앉아 혼자 남은 와인을 느긋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내일은 강의도 없으니 느긋하게 지내볼까.
***
거실에서 잠을 늘어지게 잔 후.
방 쪽이 부산하기에 눈이 떠졌다.
빠르게 씻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밀푀유의 재주 수치는 여전히 높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감탄할만한 속도로 하나하나 준비를 마쳐간다.
저 녀석의 유틸리티는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던 거였나.
아무튼, 그렇게 십오 분. 기적의 속도로 화장까지 마친 밀푀유는 현관문 앞에 섰다.
“밀푀유. 아침 식사 대용이다.”
“아, 감사합니댜!”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서 녀석을 위해 칼로리 바 하나를 꺼내 봉지를 뜯고, 준비하는 녀석의 입에 물려줬다. 감사 인사를 하다가 입으로 물어서 발음이 좀 새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오늘은 바쁜가?”
“아침부터 회의가 있어서…. 상세한 일정은 점심시간에 메세지로 남길게요!”
“음. 알겠다. 나는 오늘은 강의가 없어서, 언제든 말을 걸어도 바로 대답하마.”
“네! 그러면 다녀오겠…아!”
“음?”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녀석이, 바로 뒤로 돌아서 나한테 성큼 다가오고, 그리고….
“헤.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도록.”
내 목에 팔을 감고, 가볍게 키스 한 후 떠났다.
음. 익숙한 칼로리 바의 맛이다.
“나중에 맛을 개선할 필요가 있겠어.”
이런 걸 먹고 출근해야 하는 밀푀유한테 미안하니까.
***
아예 하루가 통째로 비어버린건 꽤나 오랜만이다.
오늘은 뭘 할까, 집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고, 정령학부에 모습을 비춰서 학생들에게 기습적으로 가르침을 내리는것도 좋다. 이런 휴일에 대사부께서 직접 출몰이라니. 다들 울면서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오늘은 제프린 중앙구로 향하고 싶었다.
이미 제프린 내에서도 편의점은 무려 마흔곳이 넘어가니 시찰도 괜찮지만….
밀푀유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는것도 재미있겠구나.
그저 흥미 본위로 제프린 시찰을 나섰다.
어디. 학생회실에 내 모습을 드러내고…. 아니 그러면 업무에 방해될 뿐인가.
그러면 어디. 몰래 잠입해볼까.
태초의 에메랄드로 바람의 막을 둘러, 빛을 굴절시켜 내 모습을 감춘다. 태초의 루비로 주변 온도와 완전히 동화하고, 태초의 토파즈로 걸을 때 마다 대지를 변형시켜 발소리를 지우면 어머나, 초월종들도 눈치채기 힘든 완벽한 은신의 성공.
그렇게 중앙구를 걷다가, 이내 학생회 건물에 도착.
태초의 사파이어로 허공에 투명한 얼음 계단을 만들어 잠입하면 끝.
“회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음.
밀푀유 주도의 오전 회의가 끝났다.
그런데, 나오는 녀석들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음….
무슨 일이지.
어쩔 수 없다 여기서는 밀푀유에게 직접….
“후우. 회장님도 진짜…. 입장은 알겠지만….”
“쉿. 누가 들을라.”
“아니 하지만…. 그렇잖아. 좀 더….”
“아니 나도 아는데…. 후우. 야. 따라와. 다른데서 이야기하자.”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회의실에서 나온 학생회 임원들이 불편한 얼굴로 떠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안 좋은 이야기면, 괜히 밀푀유의 심경을 어지럽힐 필요도 없지.
***
그렇게 녀석들의 뒤를 캐 제프린 옥상으로 갔을 때.
녀석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의 밖에서 들어왔다.
“야. 솔직히 우리가 3년간 원정조에서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충성했냐.”
“알지. 제프린 수호전부터 시작해서 작년의 망자의평원 대토벌. 절망의사막 공략전까지….”
“그래. 그리고 그때 마법학부 뭐했냐? 뒤에서 마법이나 찔끔 쏘고 말았지. 나는 그때 오우거랑 쌈박질해서 팔부러져서 두 달간 왼팔로 필기했어.”
“알어, 나도 그때 다리 다쳐서 아직도 비오면 쑤신다.”
“그리고 회장님도 기사학부 출신이잖아, 그러면 우리 기좀 살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후우…. 누가 아니라냐.”
“마법학부랑 정령학부가 쪼개졌으니까, 이전처럼 마법학부놈들 세상도 아닌데, 왜….”
“어쩌겠냐. 우리 회장님이 공명정대한 분인데.”
“연애에 빠져서 태만한건 아니고? 솔직히 하급 귀족이 학생회장인게 이상하지 않냐? 아무리 황손이랑 연애한다고 해도, 나도 중앙 백작가 출신이야!”
“야. 야. 그건 좀…. 그거 다른 사람한테 들리면, 역모죄다 너.”
“됐어. 누가 듣는다고….”
“그거 듣는사람이 여기에 있구나.”
“누구…?”
“큭!”
바로 칼을 뽑아 소리가 들린 쪽으로 겨누는 두 사람.
소질은 나쁘지 않다. 훌륭하구나. 정말 토벌전도 공략전도 치른 전사가 맞다.
내가 너희를 인정한다. 너희 재능 있어.
“흠…. 꽤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아, 아….”
“우, 울프람…폰 로엔…그린 교수님….”
그 재능을 높게 사서 너희에게 제안하마.
쳐맞고 대화를 할까.
그게 싫으면
개쳐맞고 대화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