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63)
963. 낙원 4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울프람의 결혼식을 보며, 레지나 시엘라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것뿐이었다.
한 명은 선택받았지만, 다른 모두는 버려졌다.
사랑이란 이렇게나 괴롭고 힘든걸까.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다른 사람들이 사랑을 포기할 때. 레지나 시엘라는 그럴 수 없었다.
멍청하다고 해도 좋다.
어차피 사랑에 빠진 여자는 멍청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리고 고뇌했다.
어떻게 해야 저 분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그 결과 레지나 시엘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저분은 신비한 힘으로 오래 사실 테니, 자신도 수명을 초월하면 넉넉잡아 천 년 후쯤에는 맺어질 수 있다!
얼마나 더럽혀졌든 누굴 사랑하든 상관없다. 마지막에 자신의 곁에 있기만 하면 된다!
대답은 나왔다.
그렇다면 그저 전진할 뿐.
백 년이 걸려도 괜찮다.
천 년이 걸려도 웃을 수 있다.
만 년이 지나도 내 곁에 있어준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마침 레지나의 마법은 영생과 아주 잘 맞았다.
늪.
모든것을 잡아서, 빨아들이고, 멈춰세운다.
울프람이 처음에 말하길 그녀의 마법은 ‘광역 슬로우’ 라고 했다.
슬로우의 본질은 늦추는 것이 아니다. ‘제어’에 있다.
레지나는 원대한 자신의 계획을 위해 마법을 탐구하고 또 연구했다.
백 년의 시간이 지났다. 제일 처음 앨리스 마이스터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의 장례식에 참가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지만, 레지나는 늙지 않았다.
이 백 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브 폰 로엔그린과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눈을 감았다. 이브는 평생 홀로 지냈다고 하여 후계자를 누가 이어받을지 큰일이라고 한다.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연이어 죽었다. 죽기 직전 그녀의 유언은 ‘내 인생 한 점의 후회도 없어요.’ 라고 했다. 저렇게 죽을 수 있는 것도 대단하다.
그렇게 하나, 하나 더 죽어갔다. 몇 십년이 더 지났더라. 밀푀유 폰 사브레가 죽었다. 그 다음에는 누구더라…. 네프테리안도 죽었다고 들었다. 또, 또…. 엘피라네가 간경화로 죽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수 백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어마어마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은 든다.
그 사이 레지나는 오직 한 가지 마법을 연구했고, 끝내 성공했다.
아주 간단한 마법이다.
강한 마력을 자신의 내부에 집적시킨다. 몸이 터져나가려고 하지만 그 또한 정지시킨다. 멈추고, 또 멈춰세운다. 시간도 노화도, 그리고 자기 자신의 성장. 정신의 마모마저 정지시켰다.
레지나 시엘라는 영원한 젊음을, 궁극의 영생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왔을 때.
“레지나….”
“아아, 황자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
그는 파티원들을 두고 먼저 떠날 사람이 아니다.
그가 자신에게 영원한 사랑이라는 속박을 건 것 처럼, 그도 레지나를 떠날 수 없다.
아니.
자신과 다른점이 있다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이미 늙어 그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별은 가깝다. 하지만 이제야…. 이제야 둘이 있을 수 있게 됐다.
“이것 참….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하. 하나도 늙지 않았어.”
황자는, 기천년의 과거를 추억하듯 가벼이 웃었다.
늙고 주름졌지만 허리는 굽지 않았고,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는지 노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 생기가 거의 다 닳아 사라지고 있음에도, 눈 앞의 남자는 전성기의 기량에서 전혀 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죽어간다.
부여받은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 누구도, 인간을 가볍게 초월한 이 남자도 죽을때는 죽는다.
그렇기에, 레지나는 자신의 본심을 입에 담았다.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 저를 봐 줘도 되지 않나요. 보세요. 저는 이렇게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하하…. 그렇구나. 여전히 너는 아름답구나.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먼저 떠난 녀석에게 죄를 지을 수야 없지.”
“정녕, 안되겠습니까.”
레지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쨰서, 이렇게 늙고 추해진 나를 사랑해주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군.”
“황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외곯수에…. 어리석고 멍청하여…. 생에 두 명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울프람은 천천히 레지나를 마주봤다. 레지나는 처음으로 울프람과 시선을 마주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가…. 그랬나. 아니 항상 그랬지. 너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미안하구나, 나는 너를 보고있었음에도, 마주보지는 않았구나.”
“…….”
“그래. 그렇다면…. 하하. 이것 참.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을 듯 싶다.”
“네…? 그렇다는 건.”
“아니. 이 몸이 줄 수 있는건 아니다. 이건…. 그래. 어마어마한 고행일 것이다. 괴롭고 미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번 들어보겠나?”
“네, 네….”
울프람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말을 정리했다.
“천 년 전의 나는…. 그렇구나. 울프람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 내 이름은 이영진.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소환된 자. 그리고…. 울프람의 영육을 손에 넣은 자다.”
“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
허나 눈 앞의 노인의 눈은 결코 망령들지 않고, 현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어진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말 투성이었지만, 레지나는 최대한 이해하려 들었다.
이 세계의 진실.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비책. 그리고 울프람이라는 남자의 일생.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길고 길었던 모험담의 근원까지 말이다.
그는 자신을 게이머라고 소개했다.
이 세계 모든것을 게임의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이다.
이런 자신에게 실망했냐는 물음에 레지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게이머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를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이 퇴색될리 없지 않나.
그 말에 울프람은 크게 웃어버렸다.
“그렇구나. 정녕…. 너는 나를 사랑해줬구나. 미안하다.”
“…….”
“그러면 지금부터 어디…. 내 인생 마지막 공략. 울프람 폰 로엔그린을 공략해보도록 할까.”
“네?”
“물론 공략하는 건 내가 아니다. 네가 되어야겠지. 어디 보자. 그때의 나는 절박했으니까 말이다. 쓰러져 있는 것을 아일라가 아니라 네가 손을 내밀어주고…. 그리고 네가 남을 탓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면, 생각보다 쉽게 반할지도 모른다.”
“네, 네에?”
그게 가능할지 어떨지는 내버려두고, 눈 앞의 울프람이 하는 파격적인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기를 공략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애시당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나요?”
“네 정지를 역순으로 감으면 된다. 영혼만 추출해, 시간을 되감아서, 그 세계의 자신에게 빙의시키는거다.”
“아…!”
마법의 한계를 뛰어넘은 발상.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의 육체를 온존하면서, 과거로 나를 날리려면…. 적어도 앞으로 천 년은 비축해야…. 그래야만….”
“부담이 된다면 포기해도 된다만.”
“아뇨. 포기한다고 하진 않았어요.”
“그래. 그렇구나. 하하, 그래야 내가 알던 레지나 시엘라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한다면…. 공간축을 거스르는게 아니라 시간축을 거스르면 지금의 황자님은….”
“레지나 시엘라밖에 모르고 사는 바보가 되겠지. 하하!”
“괘, 괜찮으신건가요? 자기 자신의 삶을 전부 부정당하는게 되는데.”
“네가 긍정해 줄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 파티원이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공략을 해내고 싶다는데, 그걸 끝까지 믿고 지원해주는게 파티 리더의 소임 아닌가.”
그리 말하며 울프람은, 한 번도 잊지 못했던 그 굳세고 다정한 손으로, 레지나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네 마음이 그렇게나 크고 깊은 줄 알지 못했다. 더욱 미안하다.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을 알았어도 그 어떤 대답도, 보답도 해줄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방법만 같이 궁리하고, 고민해 줄 뿐이다. 나머지는…. 네 손으로 움켜쥐도록.”
아아. 이런 남자였다.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해도, 설령 모든 가치관이 뒤집히더라도.
파티원이 노력해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자신의 모든걸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황자님.”
“음. 나는 그때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곧 다시 만나게 될 텐데요.”
“하, 하하! 그렇구나. 그래. 그랬지.”
울프람은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레지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녀에게는 천 년의 시간조차 길지 않았다.
고작 천 년만 있으면, 그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그녀가 느끼는 새로운 천년이란, 고작 하루보다 짧았다.
***
레지나가 해준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믿을 수 없는게 아니다.
그 울프람. 그러니까 모든걸 이루어낸 미래의 이영진이 했던 그 생각이, 전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귀찮고, 멍청한 여자죠?”
“그렇구나…. 하하.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경멸하시나요? 제가 미워지셨나요? 부담스러우신가요?”
미워졌냐고?
영생의 육체를 만들어 천 년을 살고, 그 상태에서 다시 천 년을 기다려 나를 만난 네가 부담스럽냐고?
“아니. 경멸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뭐…. 부담감은 느끼는구나.”
“으…. 하, 하지만….”
“하지만, 그 부담 또한 내가 너를, 네가 기억하는 나만큼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서 나오는 것…. 솔직히 말해 네 사랑은 무척이나 기쁘다.”
“네?”
“수 천년동안 사랑받을 자격이 내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평생 홀로 살고, 혼자 아프다가 홀로 죽어버린 내게 사실 수 천년동안 사랑해준 사람이 있다는 그 말에, 가슴속이 벅차올랐다.
“노력해야겠구나. 이전의 나보다 더 멋있어 질 수 있게.”
“아, 아뇨…. 지금이 더 멋지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앞으로 다가가 녀석을 끌어안았다. 녀석은 아무런 저항 없이 내 품에 끌려왔고, 매일 느끼던 온기가 전해졌다.
음.
솔직히. 이건 내가 해도 되는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뭐, 내가 나라고 하니까 해도 되겠지?
“레지나.”
“네…. 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훌륭하다. 너는 훌륭하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공략을 해냈다.”
“윽…. 흑…. 으, 으흑….”
내 그 말에, 레지나의 몸이 뚝 멎더니, 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잠시 그렇게 끌어안고 있다가, 녀석의 호흡이 안정될 무렵,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나 뿐만이 아니라…. 이브. 아일라. 그리고 밀푀유도 바뀌었는데…. 그건 어째서지?”
“아, 그게….”
레지나가 살짝 내 품에서 떨어진 후. 눈물을 닦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두 번째 삶은 결코 실패하지 않도록, 황자님과 제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낙원과도 같은 정원으로 만들려고…. 좀 더 어릴때로 돌아가, 세계를 바꿨거든요.”
“…….”
“마음에 드시나요? 이제 황자님께서는 마음껏, 걸리는 것 없이 세상에 도전하시고 이뤄내시고…. 저를 사랑해주실 수 있답니다. 이 세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시작부터 저 너머의 지평선까지 전부 저와 황자님의 낙원이랍니다.”
레지나는 웃으며 양 팔을 벌렸다. 붉은 눈이 물기를 담고 청초하게 빛난다.
“이제 저희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이브는 제 동생같은 아이가 되었고, 아일라도 가문의 문제를 해결했죠. 네프테리안은 제국 기사 추천장을 받았고 밀푀유 폰 사브레 또한 제프린 졸업장을 따는데 문제가 없어요. 아버지는 잠드셨고, 시엘라 가문은 황실과 대등하게 성장할거에요. 그리고…. 그 안에서 저희는 향후 천년. 이 천년. 아니죠. 제가 사랑하지 못했던 시간의 두 배. 사 천년 이상 함께 사랑을 나눌 거에요. 그를 위해서 ‘정지’를 타인에게 이식하는 방법도 익혀놨어요. 저희는 늙고 추해지는 일 없이 영원히 젊은 상태로 살아갈 수 있어요. 세계가 수 천 번 변해도, 수 만 번 망해도 저희들은 사랑을 나눠요. 누구도 저희를 방해할 수 없어요. 방해요소는 모두 제거했어요. 자. 황자님. 황자님. 저만의 황자님….”
레지나는 양 손을 내게 내밀었다.
“저희, 같이 행복해져요. 미래 영원히…. 저희 둘만 있으면 괜찮아요.”
레지나가 지은 그 미소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래…. 그렇구나.”
수 천년간 나만을 사랑해온 소녀가 내민 그 손을, 영원히 놓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붙잡았다.
[레지나 편 끝.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