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64)
964. 사랑의 도피
그녀들의 고백에 나도 생각하지 못한 결론이 나왔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분명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었지만, 이상형에서는 좀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천천히 녀석을 향해 가고 있었음을 인지했다.
결과.
“루디카.”
“응.”
한쪽 무릎을 꿇고,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루디카는 그 푸른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고, 내 손을 잡았다.
그 날.
함께 제프린을 졸업하고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남부를 향했다.
그리고 세 달 후.
“안녕하세요. 가주 대리!”
“음.”
“어머. 가주 대리. 오늘은 사과가 참 맛있답니다. 어떠세요?”
“하나 받도록 하지.”
“가주 대리! 여기 와서 원청기 한 판 두지 않겠나?”
“나중에 하도록 하마.”
“가주 대리! 놀아줘요!”
“음음. 알겠다. 조금만 있다 말이다.”
남부 사람들은 나를 가주 대리라 부르며 환영해줬다.
내 배경. 실적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런게 아닌 듯 하다.
루디카가 남부에 처음 왔을 때 나를 남편감이라고 소개하고 처음 행했던 것은 대련이었다.
서로 단검 한 자루만 들고 펼치는 대련.
그것도 루디카의 말로는 그럭저럭 진심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해줬다.
루디카의 재주 22. 그리고 내 22가 서로 검풍을 만들어내고, 그 검풍을 밟고 허공을 노녔다.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초월자들끼리의 검격.
끝내 내 단검이 루디카의 목 바로 앞에 닿았다. 물론 루디카의 당수가 내 심장께 바로 앞에 도달했기에 서로 무승부.
그리고, 우리는 그림자 마을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을 받았다.
처음에는 조금 뚱했던 꼬장꼬장한 노인들마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한 번이라도 잡으려고 했고, 나를 보고 볼을 부풀리던 남자 아이들은 나를 영웅시 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음…. 마을 여성들의 추파를 꽤 많이 받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 받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가 되었다.
그래. 그 사랑이….
“가주 대리! 저랑 대련해요!”
“어머. 가주님은 안 계신가요? 그러면 가주 대리…. 오늘 저희 집에 오지 않으시겠어요?”
지나칠정도로, 조금 과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
내 이야기를 들은 루디카는 아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어쩔 수 없어. 이 사막은 험하고, 권력이나 사회 공헌보다는…. 역시 힘이 가장 중요한 가치니까.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그 리더십이 힘에서 나온다고 해야 할까.”
“그렇겠지. 그게 이 남부의 규칙이니까.”
“그리고 울프람은 지상 최강의 인간이잖아? 초대 핫산보다 강하다는 나와 동수를 이뤘다. 그것만으로도 존중받고…. 아니 사랑받을 가치는 충분히 증명했어. 장로들도 다들 ‘네가 얼마나 강한지 봐주도록 하지. 하지만 내 눈을 만족시키진 못할 것이다.’ 같은 느낌으로 흉흉했다고….”
“그러고보니 내가 오기 전까지, 루디카 네 취급은 거의 숭배에 가까웠겠구나.”
“그것보단 지나치게 사랑받는 느낌이었지 뭐. 내 손녀를 데려가려는 도둑놈이 누구냐아아아! 하면서 화내는 장로도 있었다니까?”
“그리고 그걸 대련 한 번으로 반전시켰다.”
“가장 꼬장한 장로도 능력은 있는 놈이구나, 앞으로 주시하겠어. 정도로 납득한 것 같아.”
내 무릎 위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녀석의 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루디카는 고양이마냥 가르릉거리다가 슬쩍 내 옆구리로 빠져나와 내 어깨에 턱을 올렸다.
좋은 분위기다. 좋은 분위기인데….
하지만.
“와. 오늘인가봐….”
“드디어…?”
“쉿. 쉬이이이잇!”
그리고 우리의 귀는, 저 멀리서 목소리를 붙잡았다.
“거리 2300”
“3층 건물의 담장이네. 보여.”
차갑게 식는다.
그래. 루디카랑 뭔가 좀 하려고 하면 항상 이렇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쪽을 바라본다.
당연하지만 암살일족이기에 뛰어난 시야. 후각. 청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심안투영】스킬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그러니 아무리 벽으로 가려도, 소리를 죽여도 들릴건 다 들리고 보일건 다 보인다는 이야기.
결국 루디카와 나는 제대로 된 부부생활은 커녕, 애정표현도 드물게 하고 있다.
“이거 참….”
“응….”
결국 저 2300거리. 3층 난간에 있는 녀석한테 가볍게 유리구슬을 던져서 이마를 맞춰서 기절시켰고,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이렇게 보내는가.
“울프람.”
“음?”
“호, 혹시…. 그러니까 이건…. 내 개인적인 질문인데.”
“뭐든 말하도록.”
“혹시 내 몸이 볼품없어서…. 그러는 거야? 작아서…?”
“그럴리가 있나.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잠이나 자도록”
“어, 응…. 응.”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대로 눈을 붙였다.
#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남부 사람들은 우리를 놔주지 않았다.
“루디카. 궁금한게 있다.”
“응…?”
“혹시 휴가라는 개념에 대해 아는가?”
“아하하…. 그게 뭐였더라….”
루디카와 나는 서로 한숨을 내쉬었다.
손만 잡고 걸어도 “꺄아아아!” “두 분이 손을 잡으셨어!” 하고 시끄럽다.
서로 공인된 아이돌간의 연애를 보는 팬덤인가….
아니 그런게 존재할 수 있나.
“가주님.”
“아, 응. 울프람 잠깐만. 나 대화좀 하고 올게.”
“잘 다녀오도록.”
나는 가주 대리고, 루디카는 가주이기에 서로의 작업 영역은 닮았어도 깊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일족 전체의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루디카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렇게 빠져나가고, 그때마다 혼자 남는다.
루디카와 함께 해서 기쁘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뭔가가 아쉽고 부족한 이 느낌은….
“어머. 황자님.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가주 대리님! 안녕하세요!”
잠시 마을 중앙의 분수대에 앉아 생각에 잠기고 있자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은 세실 샤도우. 다른 한 쪽은…. 누구지.
“아. 이쪽은 제 친구인 리닝 샤도우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회백발 단발의 귀염성 넘치는 얼굴. 하지만 그 몸은…. 그렇군. 이게 진짜 남부의 힘인가.
세실도 어마어마한 곡선을 자랑하지만, 이 녀석은 정말 차원이 다르다.
거의 밀푀유에 준하는…. 아니 그 이상인가.
뭐. 그건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야.
“그래서, 오늘은 무슨 용건이지?”
“아…. 후후. 그냥 혼자 적적하게 계시기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와 봤답니다.”
두 사람의 눈웃음이 부담스럽다.
“그런가. 그럼 나는 이만….”
“어머, 가주 대리님…. 저희 조금 더 대화해요. 네?”
리닝이 내 곁으로 붙었고, 나는 팔을 뺐다. 왜 이러세요.
“미안하구나 나는….”
“가주 대리니임….”
그렇게 한 발 더, 그 거대한 육체를 내게 들이민다.
아니. 진짜로 안된다니까.
“이 이상은 위험하다.”
“어머…. 제가 위험하게 느껴지시나요? 아니에요. 저는 정말 순수한 호의에서….”
“네가 위험하게 느껴지는게 아니라, 네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네?”
허공에서, 살의가 춤춘다. 그리고 팍, 파팍! 소리를 내며, 리닝의 어깨에 무형의 기운이 꽂힌다.
살의투검.
공간도약계의 초월기를, 투척과 결합했다.
일종의 원거리 공격이고, 그 파장은 누구도 느낄 수 없으며, 바로 목줄기에 꽂히는것도 가능하다.
이게 가능한 건. 단 한 사람.
“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리닝?”
“어머. 어머나. 가주님….”
“지금, 누구한테 그 추, 추악한 몸을 들이대고 있는 거야. 리닝.”
“추악하다니요. 저는 육체계 샤도우니까 그럭저럭 잘 키워낸 몸 아닌가요? 말씀이 심하세요.”
“그러니까아아!”
“후후. 없는 것을 질투하는건 보기 좋지 않아요.”
“리니이이잉!”
“그럼 저는 이만. 가주 대리님.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그리 말하고, 리닝은 잽싸게 달려서 도망쳤다.
그리고 어느새 사라져 있는 세실까지.
대체 뭐였지.
“울프람. 괜찮아?”
“음. 괜찮다. 저정도에 당할 내가 아니지 않나.”
“그, 그렇지?”
아. 그러고보니 궁금하게 있다.
“저 리닝이라는 녀석과는 친한가?”
생각해보면 대단하지 않나.
세실과도 아는 사이면서 동시에 루디카와도 친하다는 건, 이 마을에서 꽤 입지가 탄탄하다는 거 아닌가.
거기에 루디카를 놀렸음에도 체벌을 받지 않고 웃으면서 도망친다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리닝에 세실….”
“세실까지 궁금해?”
“음? 음….”
루디카는 나를 살짝 노려보더니 자신의 가슴께를 한 번 만지고는 다시 나를 노려봤다.
왜 그러지?
“그래. 그렇구나. 역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부족해서 그런거였어.”
“루디카?”
“울프람. 우리는 결혼했지?”
“그랬지.”
“그러니까, 부부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해야 해.”
“음. 그렇지.”
“자. 그러면 어서 준비해.”
준비하라고?
이 백주대낯에?
진짜로?
“루디카.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급하지 않나.”
“아니!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어. 어서 짐 싸!”
“음? 짐?”
“그래! 지금부터 떠날거니까. 이 마을에서 잠시 떠날거니까! 신혼여행 갈 거니까!”
“…….”
아. 그렇군.
신혼여행이라…. 과연. 결혼하면 가는 법이지.
“가주와 가주 대리가 이렇게 비워도 되는건가?”
“두 명 없다고 안 돌아갈 마을이면 그냥 망해버리라고 해!”
“…….”
그건 그렇다.
애당초 수장이 없다고 안 돌아가는 조직은 문제가…….
“아니 그냥 망해버리라고 해 이런 마을!”
아니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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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루디카의 갑작스러운 사랑의 도피…. 아니 신혼 여행 발언에 짐을 싸고 마을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 거지?”
“아까 좋은 이야기를 들었거든. 우리의 신혼 여행에 딱인 곳.”
“물 좋고, 풍수 좋고, 마음 놓을 수 있는 곳인가?”
“거기에 다른 사람의 방해도 절대로 안 들어오는 곳이래.”
“호오. 들어보도록 하지. 그게 어디지?”
“천옥대비경!”
“…….”
들어본 적은 있다.
이 세상 모든 희소종 동물들과, 희귀한 풀. 보석. 보물들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 전설의 땅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착한 이들을 위해 소원을 이루어주는 구슬도 있다고 한다.
그야 신혼여행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설정상으로는 그렇다. 설정상으로는….
그리고 그 설정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그곳을 지키는 문지기는, 오직 대비경의 입구만을 지키는 초월을 극한으로 연마한 미노타우르스라고 한다.
뭐. 강해봐야 하르크보다 강하겠냐만 말이야.
“정말 그 곳을 갈 생각인가?”
“응. 갈 거야.”
“위치는 알고?”
“그림자 마을의 특수임무조가 찾아냈어. 위치는 확정됐어.”
이거, 솔직히 가주 권한 남용 아닌가 싶은데.
“그래. 가도록 하지. 기껏 천옥대비경을 가는데 가서 보물도 잔뜩 손에 넣고, 웃으며 돌아오면 좋겠구나.”
“맞아. 그 안에는 체형조절의 비약도, 풍유환도, 체형고정의 성수도 있다고 했어!”
루디카의 눈이 차갑게, 그리고 뜨겁게 빛난다.
“루디카?”
“내가 작아서 문제라고? 그러면 커지면 되는 거잖아. 그래. 그래주면 되잖아. ‘남편분은 건장한데 아내분이 작아서 괜찮을까요.’ 같은 소리를 떠드는 장로들 입을 전부 다 틀어 막아 주겠어. 이런 마을…. 내가 반드시 돌아와서 복수할거야!”
“…….”
“리닝도, 세실도, ‘차라리 제가 아이를 낳는게 낫지 않을까요?’ 같은 헛소리를 하게 내버려 둘 거 같아? 아무리 강한 피를 잇는게 샤도우 일족의 사명이라지만…. 정실은 나야! 오직 나! 내가…. 내가 다 때려 눕힐거야. 계승식 때 처럼!”
음.
여기까지 화가 난 루디카는 처음 본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결국 질투해서, 나를 독차지 하고 싶어 억지부리는 루디카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즐거운 신혼여행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만들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