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67)
967. 미래에 남긴 유산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
동시에 다섯 군데에서 울리는 자명종 소리는 꿈의 세계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소녀의 뇌에 그대로 때려박혔다.
허나 그 정신방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람이 하나 둘 정신을 잃고 침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삼십 분 후.
“으…우으….”
소녀가 눈을 떴고, 천천히, 머리맡의 시계를 손으로 쥐어, 흐릿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시침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떠서 분침을 보고, 이내….
“하하. 망했네.”
그저 웃었다.
이미 지각. 한참 지각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지각할까….”
기숙사 방에서 일어나 세안 후 옷을 갈아입었다.
순백의 제복 위의, 금색 테두리. 순수함과 재능을 상징하는 제프린의 교복.
이미 디자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게 언제 시작되었던 다지인이더라….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환복을 끝내고, 기숙사의 문을 열고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조금 추운 겨울 공기. 분명 날짜는 봄이고, 일기예보도 봄이라고 알려줬는데 왜 이렇게 추울까.
기지개를 쭉 펴고, 그녀는 신발 뒤꿈치로 바닥을 빠르게 네 번 찼다.
그리고 부우웅…. 소리를 내며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이내 천천히 마력을 운용하며 허공을 날았다.
오늘 점심은 뭘까….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날고 있자니 지상에서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미! 오늘도 지각이니?”
“아하하!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됐다니, 위험한 거 아냐?”
“괜찮아요! 어떻게든 할게요!”
“잘 다녀오렴! 차 조심하고!”
“네에!”
차를 조심하라 해도 완전한 자율 운전 프로세스가 만들어진 지금. 그리 조심할 건 없다.
“할머니 때에는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주위를 슬쩍 돌아보면, 인간의 천태만상이 보인다.
자율비행형 골렘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 지팡이 위에 누워 책을 읽으며 날아다니는 마녀. 그리고 신발에 달린 에어 점퍼를 이용해 등교하는 학생…. 은 자신 뿐이구나.
저 멀리서는 트라이스타 사에서 만든 비공선이 날아다닌다. 비공선의 벽면에는 출력마법으로 오늘의 날씨와 뉴스등이 보도되고 있다.
‘시엘라 제약 – 탈모 완전 치료약 개발. 수출 초읽기’ ‘내일의 날씨는 화창한 봄날씨로 추정.’ ‘드래곤 연방과 엘프 연방. 환창의 평원 마정석을 둘러싼 논쟁 대타협.’ 등.
“흐음. 흠흠. 그렇군요. 오늘도 세상은 평화롭군요. 알겠습니다. 지각 한 저 혼자만 평화롭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겠군요.”
루미는 뉴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기사가 눈길을 붙잡았다.
‘대 마도 공학의 제안자. 세상을 이은 위대한 자. 울프람 폰 로엔그린 탄신일. 다음주. 주말과 겹친 이번 공휴일. 추천하는 휴양지는?’
“학생은 어디도 못 갑니다. 학교나 가야지이.”
루미는 그 뉴스를 보며 혀를 빼꼼 내밀었다.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
대놓고 1교시를 째고, 2교시 수업부터 들어간 소녀.
하지만 아침도 먹지 않고, 잠을 푹 잤다고 하기도 애매했기에 2교시 ‘제국사’ 시간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세상을 연 황제 하르크’이후 300년. 몰락해가던 제국에 나타난 것이 ‘신화의 후예’라 불리는 분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마법사 겸 지성으로 평가받았던 이브 폰 로엔그린 전 황제. 그 외에도 보석학과 시공간학. 그리고 통계학의 여신으로 추앙받는 레지나 시엘라. 마도공학의 기틀을 다지며 미래를 설계한 아일라, 스피카 트라이스타 자매 등이 있죠.”
교수의 말에 꾸벅꾸벅 잠이 온다. 당장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다.
역사책의 위인들의 얼굴에 조금씩 침을 흘리며 당장이라도 잠들 것 같은…. 아니 이미 늦어버린 루미.
“루미. 루미…. 루미!”
이상하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
누구지.
“일루미네이션 폰 로엔그린.”
“풀 네임으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자신의 이름을 듣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일어선 소녀. 주변 모두가 쿡쿡 웃는 와중.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깨달았다.
“당신이 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면 일루미네이션 폰 로엔그린이 아니라, 루미 학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 다음 시대. 신화의 후예 이후. 유대의 기수라 불리는 전원…은 너무 가혹하군요. 그 안에서 대 마도 공학의 제안자. 세상을 이은 위대한 자. 삼천년의 미래를 내다본 자라 불리는 분의 성함은 뭐죠?”
“어, 어 그러니까….”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아 맞다. 분명히 아침에…. 그러니까 비행선….
“우, 울프랭…?”
“울프람입니다. 제대로 외워두세요. 자. 일루미 학생. 자리에 앉도록.”
“네에….”
어떻게든 풀 네임으로 불리는 건 봐주셨지만, 더 이상한 이름이 되었잖아.
루미는 자리에 앉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점심 시간.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루미 또한 절친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시작하…려 했으나, 오늘 점심을 가지고 오는 것을 잊었다.
결국 친구 한 명이 도시락 통의 뚜껑을 뒤집어 반찬을 하나씩 놔주기 시작했고, 양은 적지만 그래도 배를 곯지는 않게 되었다.
물론 포크나 스푼은 인당 하나였기에 루미는 원시인처럼 점심을 손으로 집어먹을 위기에 처했으나, 루미 폰 로엔그린. 지각은 해도 포기는 하지 않는 여자.
“루미 너는 잘도…. 교실에 일회용 포크를 놓고 다니는구나….”
“후후. 지난번에 컵 스파게티를 먹었을 때 안쓴게 있었지롱.”
“그걸 왜 교실에서 먹는건데….”
그렇게 왁자지껄, 그 나이 또래 소녀들이 응당 할법한 흥미 위주의 잡담을 하던 중. 물음 하나가 루미를 향해 튀었다.
“루미는 로엔그린인데 금발이 아니네?”
“응? 아…. 그렇지? 하지만 눈은 봐. 푸른색이지?”
“정말이다…. 사진에서 본 황족님들 눈이랑 똑같은 색이야.”
“맞아. 머리는 완전히 파란색인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 때문에 지원도 애매해….”
로엔그린이라는 성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고, 거기서 추가적으로 지원을 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마력이다. 빛의 마력을 강하게 이어받은 로엔그린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하게 로엔그린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는 혈통서 등이 있지만, 아무래도 마력에 비해 위조하기 편하다보니 공신력이 떨어진다.
루미는 혈통상 문제가 없는 로엔그린이지만, 빛의 마력을 애매하게 가지고 태어난 바람에 로엔그린 지원을 거의 못 받고 있다.
“그 때문에 제프린에 입학하자마자 내쫓기고, 기숙사비도 알아서 벌어야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야.”
“부모님은?”
“몰라. 방치방임주의! 학교는 보냈으니 알아서 잘 하렴! 같은 식. 나는 금발이 아니니까.”
“아…. 미안. 괜한걸 물었네….”
“아니 뭐, 기숙사 생활은 편하고, 아르바이트는 재밌고, 매일매일이 즐거우니까 괜찮아.”
루미는 그리 말하고 웃어버렸다. 친구들은 모두가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반찬을 하나씩 더 올려줬다.
그 미묘한 배려. 하지만 배가 고팠던 루미는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루미 풀 네임은….”
“그건 말하지 마. 묻지 말아줘.”
“으, 응….”
무척이나 드물게도 차갑게 굳은 루미의 말에, 친구들이 전부 차갑게 굳었다.
***
돌아오는 길.
친구들은 노래방에 가거나 마도게임방을 들리겠지만, 루미는 그대로 카페에 직행했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기숙사에 들릴 틈도 없다. 유니폼은 카페에서 갈아입으면 되니까 교복이라도 괜찮다.
그대로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에 서려고 할 때. 점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루미.”
“네. 점장님. 바로 영업 들어갈게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황성에서 연락이 왔지 뭐니.”
“네? 황성에서…. 아….”
“응. 품위 유지법 때문에…. 그래서…. 어렵게 됐단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늘 일만 마치는건 괜찮나요?”
“그래. 그러렴…. 정말. 우리도 계속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뇨, 괜찮아요.”
루미는 최선을 다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품위 유지법.
황손은 그 품위에 맞는 업장에서만 일해야 한다.
사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금지한다.
푸른 머리카락의 루미는 어중간하게 황손으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제약 또한 똑같이 받고 있었다.
정말.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다음 아르바이트는 어디를 구해봐야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루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퇴근길에도 루미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자신을 내팽개친 부모도,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이 혈통도.
그리고 ‘로엔그린의 여성이라면 이름 첫글자가 ’이‘로 하는게 전통이라면서요? 하지만 대부분 써먹었으니…. 우리 일루미네이션으로 합시다!’ 라는 정신나간 발상을 한 부모도 다 싫다.
“하…. 그래도 잠은 편하게 자겠네….”
돌아가는 길.
캔 커피 하나를 사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성창으로 만든 가로등 사이를 걸으며, 루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이내 긴장했다.
마력.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다.
아무리 대마도사라 한들, 도심에서는 마력 출력량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힘을 내보일 수 없다. 마력 폭탄 테러로 인한 법령이다.
그걸 무시하고, 자신을 압박해오는 이 마력의 홍수 앞에, 루미는 주먹을 질끈 쥐었다.
무서워 할까보냐. 나는 루미 폰 로엔그린이다. 여기선 배에 힘을 꽉 주고 기합을 내지르면 된다.
“누, 누구 있어요…?”
자기 자신을 너무 올려친 것일까. 어둠을 향해 약하게 소리친 루미의 울 것 같은 목소리에, 마력등 사이에서 인영이 움직였다.
범인인가? 난 아무것도 없는데? 오늘 아르바이트 잘렸다고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줄까? 그리 고민하며 어떻게 해야 저 대마도사의 움직임보다 빠르게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 사이, 가로등 아래에서 마력의 정체가 드러났고.
그대로, 루미의 몸이 굳었다.
“어머…. 어머나. 놀라게 했구나. 미안해.”
“아…. 예, 예쁘다아….”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포니테일? 이라고 할까, 어마어마하게 긴 푸른 머리. 그리고 푸른 눈. 푸른색이 감도는 정장. 전신 코디가 파랗다면 얼굴이 받쳐주지 않는 한 굉장히 촌티나기 마련이지만,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사실 푸른색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어머…. 예쁘다는 말도 듣고…. 후후. 애가 참 착하네.”
아름다운 언니가 다가와 루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고, 루미는 ‘미인은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아니 이럴때가 아니다. 그래서 이 언니는 누구지?
“저, 저기…. 그래서 누, 누구세요…?”
“그 전에, 언니가 먼저 질문해도 될까? 이름은 루미. 맞지? 풀 네임은 일루미네이션 폰 로엔그린.”
“풀 네임으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후후. 그래. 알겠어. 루미 본인 맞구나…. 거기에, 또 하나만 더 물을게. 네 마력 속성. 듀얼이지? 하나는 빛. 하지만 주력은… ‘번개’ 맞지?”
“네? 네…. 마, 맞아요.”
“그래. 그렇구나. 그럼 언니도 자기소개를 할게. 언니 이름은 필…. 아니. 티아. 티아라고 부르면 돼.”
“티아 언니요?”
“그래. 사실 언니는 루미의 먼 친척이거든. 자 봐. 언니의 마력도 번개지?”
“아…. 정말이다.”
가장 가벼운 마법인 스파크. 루미의 스파크와 비교하면 그 밀도가 공갈빵과 굳어버린 점토 이상의 차이가 있지만, 틀림없는 번개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언니가 네 보호자란다.”
“네…?”
“물론 언니와 둘이 사는 건 아니란다. 오빠도 있거든. 그래도 걱정하지 마렴. 그이는 무척이나 착하고 좋은 사람이란다.”
“아…?”
“자자. 그이가 집에서 요리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대로 언니 집으로 가자. 괜찮지? 응?”
“저, 저기요. 그러니까….”
“그럼 갈게. 꼭 잡으렴!”
“저, 저기요?! 제 의견은요?!”
“날아가면서 말해줄래? 그이 요리가 식는건 언니는 좀 싫어서….”
“네?!”
그 날.
루미 폰 로엔그린.
아니 일루미네이션 폰 로엔그린은 푸른 언니한테 유괴당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