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78)
978. 머임? 대체 뭐임?
띠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다. 언제나처럼 평범한 아침이다.
흐릿한 눈에 힘을 주고 천장을 올려본다.
모르는 천장이다.
“아니 진짜 모르는 천장이군.”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거임? 잽싸게 상체를 일으켜 벽에 몸을 붙이고,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서 신화 포식자를….
어라.
인벤토리가 안 열린다. 쯧. 봉인 당했나. 그럼 어디 다른 장비라도 들어야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기가 될 것이 있는지 한참 찾았으나,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있는 건 책상. 컴퓨터, 그리고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폰. 이불. 벽에 보이는 건 교복.
컴퓨터. 스마트폰?
나한테는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결코 존재할리 없는 것이다. 대체 이 세상에 컴퓨터랑 스마트폰이 왜 있어?
다닥,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아래에서 위로, 멀리서 가까이.
즉 아랫층에서부터 점차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이런 상황에서 기습을 당하면 아무리 나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일단 자세를 잡고….
통통.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오라버니,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아무리 부모님이 해외 출장중이라고 해도 늦잠 자면 안 되…는데. 일어나 있었네요?”
“…….”
“제가 깨우려고 했는데 혼자 일어나는 법이 어디있나요. 정말….”
“…….”
“뭐, 일어났으니 어쩔 수 없죠. 아침 차렸으니 내려와서 식사나 하죠. 오라버니가 좋아하는걸로 차렸으니 빨리 내려오세요.”
“…….”
사탕 마크가 알알이 박힌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는 스테인리스제 생선 뒤집개를 들고, 살짝 볼을 부풀리고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녀석.
잠깐.
잠깐 잠깐 잠깐.
그러니까…. 그게. 음. 그러니까….
“이브?”
“네?”
그 이브가 그러니까…. 나를 깨우러 오고…. 그러니까….
“아니. 아니다. 그래. 금방 내려가마.”
“네. 식으면 맛 없으니까요. 아침은 역시 같은 상에서 따듯하게 먹어야죠.”
“음…. 그래….”
이브가 내려가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악몽이라면 깨어다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꿈은 깨지 않았고, 결국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
주방으로 내려가니, 정말 한 상을 차린 이브가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흰 쌀밥과 고등어 구이. 가운데에는 불고기도 있고 된장국에 김치와 물…. 아침식사 치고는 꽤 화려하다.
“뭐 하세요? 자. 앉아요.”
“음….”
내 안에서 너무나도 정보가 크게 변질되어서,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아침밥을 들었고, 그리고….
“맛있…구나.”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나온답니다. 불고기는 밀키트. 된장국은 인터넷에서 본 레시피. 고등어는 그냥 구운거.”
“아니. 맛있다…. 정말 맛있구나.”
“후후. 하지만 칭찬은 솔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죠. 고마워요.”
“…….”
내 앞에서 생긋 웃는 저 얼굴.
아니. 평소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웃음인데…. 이 칭찬이 그렇게 기쁜가…?
“으흠. 날이 날이니만큼 노력하긴 했어요.”
“날? 오늘이 무슨 날이었나.”
“잊은거에요? 오늘 오라버니 생일이잖아요?”
“…….”
그랬구나.
내가 모르는 정보를 하나 또 머리에 쑤셔넣어줘서 고마워.
근데 네 오라버니라는 놈은 CPU 클럭은 높은데 SSD랑 RAM이 좀 부족한 거 같으니, 이 이상 추가 정보를 넣지는 말아줄래?
“오라버니. 생일 축하해요.”
“어, 음…. 그래 고, 고맙다…?”
“피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희는 가족이니까요. 어렸을 때는 그걸로 엄청 싸웠는데…. 이렇게 순수하게 축하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아니. 갑자기 왜 우는데.
그리고 피가 안 통?했어? 갑자기? 그런 추가정보를? 마구 주시면? 제가 곤란?해요?
“후후…. 자, 마저 들죠.”
“으, 음…. 그래….”
살짝 울먹이는 이브.
그리고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나.
끔찍하기만 한 아침식사였다.
***
이후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다.
“완연한 가을이네요.”
“그렇구나….”
내 앞을 웃으며 걷는 이브. 금색의 자수와 순백의 실크. 거기에 망토까지 쓰고 있는데 주변 배경은 21세기 한국이라 뇌가 터질 거 같다. 제프린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고? 괜찮아? 이런 교복을 지정해도 괜찮나?
아냐.
이 정도로 놀라지 말자. 어차피 악몽이니까 편하게 받아들이자.
“울프람! 이브! 좋은 아침이에요!”
“아일라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손을 흔드는 녀석.
매일 봐 왔던 얼굴이며 평소와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네. 이브. 좋은 아침이에요. 자. 울프람도. 좋은 아침이에요?”
“아일…라. 좋은 아침이다.”
“오늘은 조금 일찍 나오셨네요.”
“그야 울프람의 생일인걸요. 최고의 소꿉친구인 제가, 이브보다는 느릴지언정 일찍 축하해주고 싶은걸요. 울프람. 생일 축하해요.”
“어, 음…. 고맙다.”
소꿉친구? 그런 설정이야?
아니 소꿉친구라는 말을 그…. 일상생활에서 입에 담을 일이 있나? 나 살면서 소설책 빼고는 처음 듣는 거 같은데?
“자. 어서 차 봐요.”
“음. 그래.”
아일라가 내게 건넨 것은 보라색 자수정으로 만든 팔찌였다. 흑수정인가….
“잘 어울리네요. 후후. 자. 저랑 커플 팔찌에요.”
“그렇구나….”
아일라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면서 자기 팔목에 달린 팔찌를 흔들었다.
“음…. 저도 그런 선물이 좋았을까요…?”
이쪽을 힐끔 보는 이브.
아냐 그러지 마. 나 많이 힘들어.
“늦었답니다. 이런 건 먼저 호쾌하게 해야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요.”
“으, 으음….”
아일라는 오른손을 가슴께에 올리고, 눈을 감은 채 으흠!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평소의 귀여운 모습 그대로인데, 배경이 한국이라 더럽게 적응이 안 된다.
그렇게, 느긋하게 언덕길을 걷자 주변에 하나 둘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보인다.
“회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울프람 전 회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어, 음….”
학생들이 이쪽을 보고 가끔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한국에서 사람을 직함으로 칭하는 건 앞에 성씨를 붙이거나…. 아예 안 하지 않나? 보통 회장님! 이라고만 부르나? 그거 맞아?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네! 회장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하지만 이브는 우아하게 웃으며 인사에 회답해줬고, 아일라는 그 모습에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아일라 언니. 왜 웃나요?”
“아뇨. 이제 이브도 학생회장이구나 싶어서요. 올해 초만 해도 제대로 인사를 받아주지도 못했는데.”
“으, 으으…. 언제적 이야기에요? 아일라 부회장님. 저도 이제 어엿한 학생회장이에요.”
“네. 네. 알아요. 이제 이브에게 학생회를 믿고 맡겨도 되겠구나 싶어서요. 그렇게 생각하시죠? 울프람 전 회장님?”
“어, 어…. 그렇구나.”
“잘 보세요. 전설의 깃수라고 불리는 오라버니 시절이랑 비교해도 더 멋진 학교를 만들 거니까요.”
뭐야.
아일라는 전 학생회 부회장에…. 내가 이브한테 무난히 학생회장을 승계하고…. 그리고 나는 전설의 깃수라고 불렸고…?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학교에 도착했다.
구교사. 신교사. 운동장. 뒤쪽에는 테니스장과 선생들의 주차장. 교문에는 학생회와 선도부가 서서 교복을 검사한다. 몇 명은 교복에서 걸렸는지 옆으로 빠져서 엎드려있다.
그래. 그 교복이 제프린 교복만 아니면 정말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다.
“오라버니. 언니. 저는 학생회 업무가 있어서 따로 가야할 거 같아요.”
“고생하네요. 운동회 때문인가요?”
“후후. 학생회 내부 안건이라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네. 네. 이제 저희는 뒷방 늙은이죠. 그렇죠. 울프람 할아버지? 자. 교실로 가죠.”
“으, 음? 그, 그렇…. 그렇구나.”
그렇게 교문으로 들어가 교정에 올라간 후. 신발을 갈아신고 교실로 향했다.
내가 몇학년이고 몇 반인지 모르겠는데, 아일라는 같은 반인 듯 말했으니 따라가면 되겠지.
3학년 2반이라고 적힌 교실에 들어가니, 학생 몇 명이 이쪽을 슬쩍 보다가 다시 자기 할 일에 집중했다. 아일라는 자리에 가서 앉았고, 나는 눈으로 최대한 교실을 스캔 한 후 내 이름이 적힌 책상에 가서 앉았다. 다행이다. 이름이 적혀있어서 진짜 다행이다….
“울프람 님. 좋은 아침이에요.”
“그렇구나. 레지나. 좋은 아침이다.”
화려한 금발과 붉은 눈의 레지나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그래도 황자님이라고 안 하는 거 보니, 내가 황자는 아닌 모양이네. 또 정보 하나를 얻었다.
그나저나, 정말 이 세계에서도 인상적인 외모다. 영화에서 그대로 빠져 나온 것 같은 아름다움. 아일라가 눈 색은 보라색이더라도 머리가 검은색이라 한국인적 감성이 느껴졌다면, 이 녀석은 진짜 한국 교실에 있으니 특수하게 아름답다.
무엇보다 녀석의 뾰족한 귀…. 귀?
“레지나.”
“네, 네! 울프람 님.”
“그 귀….”
“네? 제 귀요? 귀에 뭐가 묻었나요?”
여기서 님 귀가 뾰족하시네요. 혹시 귀잽이세요? 라고 하면 ‘너 이자식 지금 귀잽이라고’ 하면서 나에게 일기토를 걸어올지도 모른다. 엘프에게 귀라는 것은 종족적 특성이니 말이야.
“아니. 오늘도 예쁜 귀구나 싶어서 말이다.”
“어, 어머…. 어머나. 가, 감사…. 감사합니다!”
얼굴이 새빨개진 녀석은 호다닥 자리로 돌아갔다. 주변에는 내 모습을 보면서 ‘와오 오늘도 한 건 했네’ ‘꾼이야 꾼’ ‘울프람! 이 남자가 울린 여성만 제프린 4열종대 운동장 두 바퀴!’ 하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자. 그럼 수업 시작한다. 주번 뒷문 닫고.”
곧 선생이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니 그런데.
나는 대체 이 세계에서 어떤 이미지야?
***
4교시 수업까지 끝났다. 시간표를 슬쩍 보니 오늘은 전부 실내수업이었고, 이윽고 점심식사 시간.
식당이나 급식이 아니라 완전한 도시락제였다. 그런데 이건 또 그럴 수 있다.
나도 학창시절에 급식 리베이트가 밝혀져서 한동안 도시락으로 떼워야 했던 적이 있거든.
아침 먹던 반찬을 그대로 쓴, 이브가 싸준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복도로 나온 그 때.
“아, 아, 저, 저기….”
내 등 뒤에서 개미가 기어가는 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부르는 건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이건 또 엄청나게 익숙한 녀석이 서 있었다.
“우, 우, 울프람 선배님. 아, 안녕하세요. 저 저는요….”
“밀푀유. 무슨 일이지?”
“아, 저, 그게…. 저를 아시나요?”
아.
그러고보니 이 세계에서 나와 밀푀유가 어떤 관계인지 모른다.
“음…. 그야 뭐. 그렇다.”
“아 생각해보니…. 저, 저는 이브님 학생회 소속이니까요. 우, 울프람 선배님과 같이 학생회 활동은 한 적 없어도, 기,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녀석.
아무튼 혼자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아, 이, 이브님께서 오후 수업 끝나고 학생회실로 잠시 와주셨으면 하, 한다고 하셔서요.”
그건 톡이라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녀석은 폰 없대?
“알겠다.”
“네, 네! 그러면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리 말하고 뒤로 돌아서는 녀석.
내 시야를 가득 채운 하나의 색에, 나도 모르게 물음을 던졌다.
“밀푀유.”
“네헤?!”
“아,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별건 아니다. 이건 그냥 질책도 아니고 궁금해서 그런데…. 혹시 교칙위반에 걸린 적 있나?”
“네? 아, 아뇨. 한 번도 없는데요.”
“그런가. 대답해줘서 고맙구나. 가 보렴.”
“네. 좋은 하루 되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이번에야말로 1학년 층으로 돌아가는 밀푀유.
그래.
그렇구나.
“이 세계는 귀가 길어도 괜찮고, 핑크색 머리도 교칙 위반이 아니라는 거구나….”
더럽게 히피한 학교일세.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울 거 같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