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80)
980. 머임? 대체 뭐임? 3
이 엿같은 세상에서 탈주하지 않으면, 군대를 가야할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엄습해오는 현실감에 몸이 떨렸다.
희망의 집 동생 놈들이 ‘형 요새 군대 엄청 편해. 형 때는 불편했지’ 라면서 기만질 할때. 속으로 ‘너희들은 가야하고 나는 갔다왔는데 그게 통하겠니 동생들아.’ 하고 웃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 군생활.
솔직히 편하진 않았다. 선임이 좆같고 기수가 꼬이고 동기가 폐급이었거든.
하지만 꼬박꼬박 월급 모으는 맛은 있었고, 아무튼 지갑을 닫으면 어떻게든 조금씩 모였으니까, 이거 가지고 나가서 원룸이나 구하자 같은 꿈을 꿨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된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누구? 사립고 이사장 손자.
아니면 이 꿈에서 깨면 제국 황손 겸 잘나가는 사업가.
어느쪽이든 군대는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세상에는 이렇게 병신이 많다. 라거나 그래도 군생활 한 번쯤은 해볼만 해는 딱 한 번 해봤을 때 이야기지 그걸 두 번 하라고?
그래서. 요는 그거다.
꿈에서 깨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깨야 한다.
혹시 내가 어릴때 많이 아파서 군대를 뺄 재간이 없냐고 물었지만, 이브는 모르는 눈치다. 그냥 군대로 끌려가게 생겼다 이 말이에요.
“후우….”
자. 그럼 어떻게 꿈에서 깰 것인가. 그게 문젠데….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봐도, 별로 이상한 점은 없다. 그냥 흔히 고등학교 도서관에 있을 법 한 장서들 뿐이다.
이게 악몽. 혹은 괴담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래. 세계의 끝….”
이전 이런 류의 괴담을 읽었을 때는 세계의 끝이라는게 있었다.
보통 동네,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곳 밖까지 가면 세계의 경계선이 있고, 거기를 두드리면 어떻게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굉장히 게임적 사고방식이지만, 애당초 내가 들어온 이 D/Z SAGA의 세계 자체가 게임 아닌가. 그런 사고로 도전해보자. 짐을 싸고 집을 나섰다.
“음….”
촤아아아악. 철썩.
파도소리가 울린다. 여기가 어디냐면, 대한민국의 제2도시. 구도 부산이다.
아침 차로 내려와 별 문제 없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가을이 한창이라 인적 드문 해운대에 앉아 갈매기한테 새우깡을 헌납하고,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봤다.
세계의 끝은…. 아마도 한반도 너머 있는 것 같다.
서울로 돌아갔다.
이브가 어디 갔다오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울었다.
***
그 다음으로는…. 나와 같은 이변을 눈치챈 녀석을 찾는게 우선이었다.
그래.
제일 먼저 바뀐걸 눈치 챌 녀석은 역시 이 녀석밖에 없다.
“아일라.”
“네. 울프람.”
아일라는 우리집 거실에서 소파를 빌리고, 무릎을 모은 채로 그 위에 책을 올리고는 독서에 한창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동그랗고 귀여운 안경도 하나 구해와서 읽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 쓴 아일라도 꽤 귀엽다. 역시 이 녀석은 귀여워.
아니, 이게 아니고.
“언제부터 안경을 썼지? 눈이 안 좋았나?”
“아, 이거요? 눈이 나쁜게 아니라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랍니다.”
그리 말하고 우후후 웃는 녀석. 그러고보니 원래 세계에서도 이 녀석 시력은 2.0을 가볍게 넘었다.
“패션 아이템이라니…. 안경이 말인가?”
“네. 귀엽죠?”
“음.”
양 손바닥을 펼친 채, 중지와 검지로 안경 양 끝을 슬쩍 밀어 올린다. 음. 귀엽긴 하네….
아니. 계속해서 주제가 아일라의 안경이 귀여운가 어떤가로 흘러가고 있잖아.
“귀엽죠?”
“그래. 귀엽구나.”
“후후. 대성공이에요.”
그리 말하고 아일라는 생긋 웃고는 다시 독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녀석도 귀엽지만,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은 새로운 느낌이 있어 더더욱 귀엽다.
거기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독서에 집중하는 그 모습은….
결과적으로 이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을 던질 타이밍은 완전히 놓쳤지만….
아일라가 귀여우니 됐다.
***
그 다음은 이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이 세계에 와서, 가장 행동이 크게 바뀐 녀석 아닌가. 도서부원? 그 녀석은 음지에선 분명 암살업에 종사하고 있을 거야. 나는 믿어.
“이브.”
“네. 뭐에요?”
“그러고보니…. 요새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구나.”
“네?”
“나를 부를 때, 울프람이라고 부르지 않는구나.”
“으, 음? 네? 무슨 소리에요?”
“그러니까….”
“저는 살면서 한 번도 오라버니를 이름만으로 부른 적이 없는데요?”
아냐.
그럴리가 없어. 잘 생각해봐.
매일 나한테 울프람. 나가 죽어요. 쓰레기. 라며 아침인사를 해오지 않았니.
“그러니까….”
“오라버니?”
“…….”
부탁이다. 내가 알고 있던 이브로 돌아와라.
“오라버니…말고 다르게 부른 적은 없,나?”
“아. 음…. 그러니까요…. 있긴 한데….”
“그래. 있구나. 바로 그거야. 그렇게 한 번 더 불러봐라.”
“진짜…요?”
녀석이 드물게 머뭇거린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나를 어서 병신 쓰레기라고 매도하렴.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단다. 자. 어서 해버려.
“오빠…?”
“뭐…?”
“그, 그러니까. 어렸을 때요!”
“어, 어….”
“오빠…라고 불렀잖아요?”
뭐에요. 나는 몰라요. 그런거.
“정말…? 정말 그랬단 말인가…. 진짜…? 으윽.”
“오라버니가 부르라고 해놓고 왜 울어요?!”
아니.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그래….
***
그 뒤, 다른 녀석들도 만나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레지나의 귀에 손을 가져다대자 녀석이 새빨갛게 붉히고는 도망친 것 정도, 밀푀유의 머리색이 예쁘다고 하니 녀석도 도망치더라.
네프티는 별 생각이 없어보였고, 루디카는…. 솔직히 건드리기 무섭다.
허나 확실한 건, 내가 조금씩 티를 내도 녀석들은 ‘왜 저러시지?’ 정도의 반응 밖에 없었다는 것.
파티원들도 이변을 느끼지 못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럼, 정말 어떻게 이 세계에서 빠져나갈까.
아니 그냥 영장 나오면 신검 받고, 군대를 가야 할까.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걸 포기하고, 정말 편하게 살아야 하나. 그냥 2년정도 똥 밟았다고 치고 보낼까.
“울프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 인생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아하. 정말 좋은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금 있다가 하는게 좋을 거 같아요. 선생님이 엄청 노려보고 계시거든요.”
“…….”
아일라의 말마따나, 교사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회시간에 이렇게 잡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 교사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자세를 바로잡았다. 교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모른 척 해줬다. 정말 이사장 손자 만만세다.
“자. 오늘은 전학생을 소개하겠다. 들어와서 자기소개 해라.”
전학생? 대체 누가 이 시기에?
고등학교 3학년 가을에 전학생이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간거 아니야?
선생이 손짓하자, 문 밖에서 네! 하고 밝은 목소리가 들린 후,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고, 산뜻한 전학생이 들어왔다.
“전학생 필티아 블루브리즈입니다. 동급생으로서 짧은 시간이나마 잘 부탁드릴게요.”
“…….”
“어렸을 적에 이 근처에서 살다가 이사를 갔고, 부모님 사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대놓고, 이쪽을 보며 윙크했다.
그래. 그래. 필티아는 그런 설정이구나….
나는 그저 웃었다.
***
필티아는 1교시 쉬는시간에 바로 반 아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필티아는 해외에서 왔구나!”
“응. 캘리포니아 주 출신.”
“부모님은 뭐 하셔?”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자연보호운동가셔.”
“와아…. 멋지다. 취미는?”
“별을 보는 거?”
정말 적당히, 어디서 본 거 따다가 대충 말하고 있네….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지. 이브가 내게 어린 시절에 오빠야 라고 불렀을 수도 있고, 아일라가 안경 쓰고 다닐수도 있고…. 필티아가 내 동급생이 될 수도, 아니 이건 좀 너무갔는데…. 아무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젠 모르겠다. 될 대로 되던가 말던가, 그냥 군대 한 번 더 가고 말지. 이걸 이해하고 뭐라고 난리치기에는 내 정신력은 이미 0이다.
모두 받아들이고….
-동생. 들려?
부지불식간에 들려오고 사라진 목소리.
허나 이건 ‘음성을 날리는 마법’이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느끼는 마법.
그리고 그건, 틀림없이 필티아에게서 나오는 거였다.
-들…린다. 마음속으로 해도 들리나?
-응 조금 노이즈가 있긴 한데, 어떻게 들리긴 하네…. 동생. 잘 들어. 지금 누나는 밖에 있어. 그 안에 있는건 누나의 허상. 혹은 분신이야.
-허상? 분신?
-응. 걔를 기점으로 메세지를 보내는…. 아 뭐라 설명하기 어렵네. 아무튼 그 안에 있는 걔는 자율 행동형 골렘 같은거고! 누나는 밖에 있다고 이해하면 돼. 알았지?
-음? 알았다.
-응. 그리고 진짜 누나랑 대화하려면 걔가 근처에 있어야 해.
-뭐라?
-그 안에 있는 필티아 블루브리즈 옆에 동생이 있어야 밖에 있는 진짜 누나랑 대화할 수 있어. 알아들었니?
아.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필티아는 기지국 같은거고, 옆에 있어야 신호를 받을 수 있다는 건가.
-확인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 안에 있는 누나랑 자주 대화할 것. 그리고…. 이 대화 자체도 엄청 불안정해서, 얼…마나 버틸…지 몰…라.
이후. 필티아의 목소리는 끊어졌다.
그러니까. 기지국인 필티아 옆에 있는것도 모자라, 전파도 안 좋은건가.
아무튼, 그러니까….
밖으로, 나갈 단서를 찾긴 한 거 같다. 일단은 시종일관, 저 녀석이랑 붙어 있으라고 했지.
후우…. 후.
일단,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필티아쪽으로 걸어갔다. 필티아는 내 시선을 눈치채더니 다른 녀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필티아….”
“엄청 오래간만이야. 잘 지냈어…?”
“잘 지냈다.”
다행이다.
어떤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필티아와 나는 아는 사이라 이건가.
“후후. 그래 보여. 이브도 잘 지냈지? 아일라도?”
“으, 음. 다들 잘 지냈다.”
“그래. 저쪽에서 많이 외로웠는데…. 다들 매일같이 연락해줘서 버틸 수 있었어.”
“그래. 그렇군.”
필티아는 해외로 이민갔다가 돌아온 동급생이라는 설정이었지.
그렇다면 이 부분을 파고들면 되겠군.
“앞으로는 계속 같이 있을 수 있겠구나.”
“응…! 계속 같이 있자!”
그리 말하며 필티아가, 나를 확 끌어안았다.
주위에서 우와…. 하는 탄성이 들린다. 또 저새끼야? 같은 욕설도 들린다.
너희가 뭘 알아….
“피, 필티아?! 뭐 하는거에요?!”
“응? 아하하…. 아일라. 이런 건 미국에서는 인사 수준이라고.”
“그렇게 파렴치한 인사는 여기서는 안 통해요!”
“알아. 나도 저쪽에서 이런 인사는 가족 빼고 안 했는걸? 그러니까 여기서는 울프람이 처음이야.”
주변에서 오오오! 하는 탄성이 들린다. 지옥의 삼각관계라고 떠드는 소리도 들려왔다. 저 미친놈…. 같은 욕설도 들린다.
그래. 미쳤다.
그런데 미친건 내가 아니라 이 세계다.
소꿉친구인 아일라와, 이민갔다 돌아온 동급생 필티아라니, 아주 미쳐도 제대로 미친 세계 아닐까.
두 사람이 고양이처럼 싸우든, 주변 녀석들이 ‘울프람 녀석 지가 무슨 러브코미디 주인공이야’ 라고 외치든 말든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이 웃기지도 않는 꽁트를 끝낼 시간이다.
-동생. 들려?
-아주 잘 들린다. 자. 필티아 누나. 이 세계는 미쳐도 제대로 미쳐있다. 우선 상황 설명을 부탁하지.
-응. 일단 동생을 포함한 전원이…. 십천대천몽환색채라는 마법에 걸렸어. 효과는….
알고 있다.
아주 잘 알다마다.
집단으로 거는 광역 최면.
대상이 보고 싶은 꿈을 꾸게 해주는 금술이다.
즉. 우리는 집단최면에 걸려,
같은 세계를 살아가며, 되고 싶은 자신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나는 가족이 있고 행복하며, 친구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으며, 모두의 주인공이 되는 꿈…인 셈이다. 내 입으로 말하니 더럽게 쪽팔리네.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도 저마다의 욕구를 가지고 이 세계에 들어와 있다.
그러니까…. 분명 이…브…는.
-누나. 기술명이 틀린 거 아닌가?
-응? 아냐. 제대로 걸렸어. 누나도 걸려서 분신을 집어 넣었으니 알 수 있단다.
-아니 그럴리가 없다. 제대로 알아봐라.
-아니 제대로 걸렸다니까?
거짓말 하지 마라.
그럴리가 없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