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88)
988. 영웅에게서 영웅에게로 2
가혹한 전장은 얼마든지 돌아다녔다.
용병을 원하는 곳은 한없이 늘어났다. 황실에서는 고위 귀족이 아니면 귀족간의 영지전은 막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고, 현 황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지금 이 시기에 다시 영토의 선긋기를 하고 싶어 하는 멍청한 귀족들이 넘쳐났다.
그 결과 붉은 늑대단은 주로 몬스터, 때로는 영지전에도 참여하며 그 위세를 드높였다.
최악의 전장과 최약의 귀족을 다 겪어본 입장에서, 웬만한 수라장은 다 살아나왔다고 자부하는 전사들이었지만, 눈 앞의 광경에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북부의 설원 너머로, 그것들이 다가온다.
몬스터가 아니다. 마족이다.
그 수는 가볍게 천이 넘는다.
마족이라고 하면 한 마리만 되어도 오금이 저릴 텐데, 그 수가 물경 천.
이곳에 있는 병사는 마법병단을 포함해도 대등하거나 조금 밀린다.
“이곳이 최고 중요 전장 아닙니까?”
“아니. 아닐 거야. 선배님은 최전선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곳을 안배했다고 하셨으니까.”
“선배님…. 아 그 말도 안되는 황자님을 말씀하는거군요.”
“맞아.”
켈터스는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학창시절에는 큰 은인이었고, 보은하고자 이번 의뢰를 받아들인 것도 있지만, 이건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경험이 되겠군.”
“대장?”
“우리를 위해 놀이터를 마련해 준 것 아닌가. 신나게 놀아봐야지.”
“저희를 몰아넣고 뒷짐지고 있는건 아닙니까?”
“그럴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정말 여기가 할만한 전장일거야.”
켈터스는 웃었다.
위험한 전장? 한계를 모르는 전투? 당연하지 않나. 그들은 그런 세계를 일상처럼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 이제는 점점 까마득해져가는 학창시절의 울프람을 이길 수 있냐고 물으면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그 사람은 진짜 괴물이다.
그런 사람이, 그럭저럭 편안하고 괜찮은 전장을 맡기겠다고 했으면…. 당신 자신은 대체 어디서 무엇과 싸우겠다는 건가.
그야뻔하지.
그들은 직접 군단장에게 쳐들어가 그 목을 취해오겠지.
우리는 어디까지나 에피타이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의 군세.
하급이라고는 하나 틀림없는 마족.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전쟁의 길을 걷는 이로서, 힘으로 세계를 논하는 자리의 말석에도 오를 수 없다.
켈터스는 뒤로 돌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양 팔을 벌려 소리쳤다.
【전군에게 전한다. 우리는 오늘 저 지옥에서 올라온 쓰레기들을 청소해야 하는 막중한 청소 의뢰를 받았다. 아무리 더럽고 지저분하다 해도, 의뢰인 이상 해결하는것이 용병단의 신뢰 아닌가. 이런 하급 임무만 가져 온 나를 욕해도 좋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피식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눈빛에 천천히 불길이 번진다.
저 수 천의 마족을 앞에 두고서도, 우리의 대장은 이를 하찮다 말하는가.
【내가 너희들에게 요구할것은 단 하나다. 싸우고, 살아 돌아와라. 보수룰 받고 좋은 술을 마시러 가자. 이상. 전군 전진.】
워로드.
전장의 군주 켈터스의 포효에 붉은 늑대들이 뒤를 따랐다.
***
장담하건데 마계 군단장이 중간계로 쳐들어 온 건 처음이다.
이제와서 우리가 군단장급이랑 맞붙는다고 뭐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후우. 군단장급은 즉결심판이 안 통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지. 안 그랬다간 마계에서 군단장을 납치해서 중간계에서 처형하면 그만 아닌가.”
삼계협정에 의한 즉결심판. 황손에게만 허락된 이 권능은 고위 마족에게 쓸 수록 황손에게도 부담이 가는 디메리트가 있다.
이브가 옆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는것도 다 이유가 있다.
“자. 그럼. 다들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회포를 풀기보단 이렇게 전투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군 그래.”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배님!”
천광의 방패를 든 네프티부터 시작해. 우리 파티는 전원 내 생각에서도 준 최종 장비를 갖췄다.
이 전력으로 패배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다들 느긋하게 마실 나온 기분으로 적진을 향하다, 이내 놈들과 마주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밀푀유가 앞으로 나섰다.
“개막은 제가 할게요. 선배님.”
“그런 약속이었으니 말이다.”
“네. 그러면…. 갑니다.”
손가락을 몇 번 튕기면서 이제 완전히 손에 익숙해진 신화급 무기 세트를 고르다가, 이내 활을 집어든 밀푀유는 활대를 잡고 허공을 당긴다.
“이볼브드 스톰이 아니군.”
“격신궁쪽이 광역 공격은 좀 더 나으니까요.”
하르크의 거짓된 무덤에서 주워든 모든 무구를 완전히 해방한것도 모자라,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 새로운 진화를 시켜낸 밀푀유다. 녀석의 판단이 옳겠지.
“【격신궁 – 격발 – 내가 활로를 열리라】”
저 격신궁이라는 무기에는 화살도, 시위도 없다. 그저 활대만 존재할 뿐이다.
허나 무형의 화살과 함께 세상을 찢을 힘이 담겨져 있다.
밀푀유가 허공을 놓자, 활대가 흔들리며 화살을 쏘아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파직…. 파지직…. 파직!!
격발된 화살…. 이것을 화살이라 평가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이 적진을 갈랐다.
수 백. 기본은 하급이지만 사이사이 중급 마족은 되어보이는 녀석들이 있었음에도 직선으로 길이 뚫렸다.
파공음은 대지를 가르고, 공간을 잡아 찢으며, 찢어진 잔해에서 용암이 흘러내리고,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당연히 일렬에 있던 모든 마족이 녹아 없어졌다. 이게 지옥이지 지옥이 따로 있나.
밀푀유가 얻은 노블레스의 극한. 모든 무기를 섬세하게 다루다 못해 진화까지 도달하니, 태생이 신화급이었던 녀석들의 고유 스킬들은 밸런스를 넘어서서 맛이 가버린지 오래다.
그 길 위를 천천히 걸었다. 대지를 녹이는 용암도, 나오는 유독 가스도, 튀어오르는 스파크도, 겁에 질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마족들도 무시한 채. 그저 걸었다.
그리고, 설원의 너머. 그것이 보였다.
거대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두 자루의 검을 교차로 메고, 뼈로 만들어진 옥좌에 앉아있는 녀석. 검은 털이 부숭부숭 난…. 갑옷 입은 고릴라인가 저건.
틀림없는 군단장급이다.
녀석은 밀푀유를 보더니, 큰 소리로 웃어재꼈다.
【흐, 흐흐…. 어마어마하구나. 중간계에는 아직 너 같은 용사가 있었나. 흐하하하!】
놈은 계속해서 웃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모르겠다.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하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네가 일행중 최강일 터. 그리고 그 정도의 힘은….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할 터. 그러면 이제…. 이몸께서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면 모든게 끝난다! 흐하하하!】
“아. 과연.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그렇구나….”
“아하하…. 그렇네요.”
“음…. 누가 저 불쌍한 녀석에게 진실을 알려줄까요?”
“내가 할까.”
“울프람이 나서면 단박에 죽여버리니까 안 되잖아요.”
“그럼 선배님…. 제가.”
“삐약이가 나서면 더 절망적인 얼굴을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혼자 두 번 재미를 보는건 안 된답니다.”
“그러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럴까요. 그러면 어디….”
【놈들, 뭘 그리 조잘조잘 떠드느냐. 어서 목을 내밀고…. 응?】
짧은 회의가 끝나고 협의 결과. 네프티가 앞으로 나섰다.
무기를 들지도 않고, 손등을 작게 덮는 방패 두 개만 착용한 상태. 너클과 손등형 방패를 합친, 미묘한 기믹의 장비.
통칭. 실드 너클.
허나. ‘방패’를 착용하는 것 만으로도 압도적인 보정을 받는 네프티가, 끝내 두 개의 방패를 동시에 착용하는데 이르게 한 물품.
“잘 부탁드립니다! 튼튼해보이시는데 혹시 탱커신가요? 그러면 최선을 다 해서 죽을때까지 오래오래 살살 때릴게요!”
【뭐?】
***
켈터스의 전장은 지옥이었다.
몇 번 일어났던가. 몇 번 주저앉고 싶었던가.
고작 하급 마족? 마법에 대한 완전한 내성을 가지고, 저주라고 불리는 공격수단을 보유한 시점에서 저건 괴물이다.
최대한 공격받지 않으면서 이쪽의 공격은 일격필살이 최고 효율이라는 정신 나간 전법.
“끄으아아아아아악!”
“펠튼!”
“대, 대장!”
부하의 비명소리가 울리고, 켈터스는 즉시 그 곳으로 몸을 날렸다. 격쇄검이 빛나고 마족의 목이 날아올랐다.
“다쳤으면 빠지도록.”
“알겠습니다!”
“펠트의 자리는 호엔이 채운다. 들어가!”
“네!”
자신의 워로드 스킬인 전장의 지배자를 써서 전력을 다해 강화하고 있으나 전황은 썩 유리해질 것 같지 않았다.
북부의 설원.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핏물의 김이 피어오른다. 마족의 피는 치익 소리를 내며 눈을 녹이기 시작했다. 저게 맨 피부에 닿으면 곱게 끝나지는 않으리라.
이쪽은 수성측. 저 설원을 뚫으며 접근할 이유는 없다. 달려오면서 체온을 빼앗긴것인지 쓰러지는 마족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 시체를 발판삼아 달려드는 놈들을 보면 질리고, 또 지친다.
또 하나. 마족의 목을 베고, 심장에 칼을 꽂고 돌렸다.
“후우…. 하아. 끄으으윽….”
이미 몇을 베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베어야 할 지 모른다.
시야가 뿌옇게 변한다.
몸도 마음도 쓰러지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쟁의 군주는 이 전쟁이 끝날 때 까지 검을 멈춰서는 안 된다.
【죽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검을 들어라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아!!!”
켈터스의 포효가 다시 울려 퍼지고, 부하들이 호응한다.
한계는 진즉에 넘어섰다. 그럼에도 검은 멈추지 않는다.
설원의 한복판에서, 군주가 다시금 내달렸다.
***
네프티의 굉장한 점은, 자신의 초월을 정말 잘 다룬다는 점에 있다.
그 활용 레벨은 밀푀유를 가볍게 넘어설 정도다. 밀푀유는 개화의 천재지만, 네프티는 활용의 천재라고 할까.
요컨데 어떤 의미냐 하면….
네프티가 실드 너클을 착용하는 그 순간, 공간을 넘어서서 막겠다는 초월이 두 번이나 발동해서, 양 손의 방패겸 너클로 후려치는 권격은 모든 법칙을 초월해버린다.
뭐 요컨데. 더 쉽게 말하면.
지금의 네프티는 격투게임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상단. 하단. 하단. 중단. 다시 하단에서 상단. 공중. 몰아서 벽. 벽. 하단. 가드 올리면 잡기 이후 다시 띄워서 반대쪽 벽으로 중단 모아서 강격. 언제봐도 화끈하네요.”
“아 모르나요. 모르면 맞아야죠.”
다른 파티원들은 일방적으로 쳐맞는 군단장을 보면서 느긋하게 중계하기 시작했다.
네프티 전투시 중계 문화는 내가 제일 처음 흥얼거렸는데, 어느새인가 모두에게 전염되었다.
“아. 결국 군단장 일어서지 못하네요. 루디카 선수라면 여기서 어떻게 하셨을건가요?”
“구석에 몰렸으면 기회를 보다가 한 번에 치고 올라야지.”
게이지 소모형 기상승룡인가. 그거 괜찮지.
뭐 아무튼.
군단장은 자리에 쓰러져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네프티는 피가 잔뜩 묻은 주먹을 털고는, 녀석 앞에 다가가 상체를 살짝 숙이고 물었다.
“저기. 죽으셨나요?”
【커…헉. 크윽….】
“아. 살아계시네요. 그러면 슬슬 마무리 할게요.”
【흐, 흐흐. 강하구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
“그쪽이 지나치게 약한거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시나요?”
【흐하! 흐하하하하하! 지금을 즐겨둬라. 우리의 양동작전을 모른 시점에서, 너희의 승리는 절반 뿐이다!】
“아하.”
【너희의 진지로 돌아가면 핏물과 시체만이 너희를 기다릴 것이다!】
거기까지 말 한 뒤. 군단장이 조용해졌다.
죽었나? 아니면 죽은 척인가. 뭐 상관없다.
“이브. 살아있는 척 할지도 모른다.”
“아. 그렇네요. 【즉결처형(EXCUTE)】”
이브가 손가락을 튕겼고, 이내 중간계의 법칙이 놈의 몸에 적용되었다.
크게 움찔. 하던 녀석이 축 늘어졌다.
역시. 죽은 척 한거였네. 새끼.
아무튼 놈의 목을 베어서 증거품을 삼고, 루디카와 내가 날뛰어서 근처 모든 마족을 다 정리하고, 공간을 찢은 후 레지나가 중력마법으로 시체를 뭉쳐서 다시 마계에 던져버린 후. 뒷정리까지 끝냈다.
그리고 그런 ‘청소’ 내내 밀푀유의 안색이 조금 어두웠다.
“밀푀유. 왜 그러지?”
“아, 선배님…. 아뇨. 그게…. 켈터스 군은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라. 괜찮지 않겠나.”
역시 동급생이라서 그런가, 밀푀유만이 켈터스를 걱정했다.
“하지만…. 켈터스 군은…. 약하잖아요. 어제 봤을 때 너무 약해져서 놀랐어요.”
동급생이 아니라, 약한 녀석이 전장에 나서는 걸 걱정하는 것이었구나!
“제가 툭 치면 죽을지도 몰라요….”
“음….”
그건 그렇긴 한데….
“옛날 생각이 나서 오래간만에 대련을 부탁하려고 했는데…. 졸업하고 많이 놀았나봐요….”
“으으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