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89)
989. 영웅에게서 영웅에게로 3
혈겁이 일어나고 있는 설원으로 돌아왔다.
마족의 더러운 피가, 인간의 피가 흐른다. 각 시체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흐름을 만들고, 이내 고인다. 시체는 강둑처럼 펼쳐져 있으니, 그 안에서 흐르는 피 또한 강이라 부르기에 합당했다.
그리고 그 강은 여전히 세를 불리고 있었다.
“몰아붙여라! 몰아붙여!”
【칵-! 카아아악!】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 이를 관망했다.
켈터스의 지휘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용병대. 그를 뒤에서 호위하는 마법병단.
반대로 제대로 된 지휘체계라고는 없는 마족들은 설원을 돌파하고 나와서인지 체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문제를 따위로 만드는 압도적인 물량.
“격전이네요. 내려가서 돕지 않으실건가요?”
“네프티. 네가 봤을 때 어떻지?”
“백중세라고 보이네요. 균형을 맞추고 있고, 죽어나가는 마족 대비 인간은 경상, 심해도 중상에서 끝나는 듯 해요.”
“나도 동감한다. 우리의 증원이 있으면 몇 분 내로 이 전장을 제압하고 끝나겠지.”
“네.”
“하지만, 그래서야 저들이 성장할 수 없지 않나.”
“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적과 부딪치게 만들어 성장을 도모한다. 잔혹한 발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가 없는 곳에서 마족들이 침공해올 경우, 그때마다 우리가 영웅처럼 불려나갈수는 없지 않나.
“애당초, 붉은 늑대단도 칼밥먹고 사는 놈들이다.”
“울프람은 이번에는 저들에게 맡기겠다는 건가요?”
“아일라. 이번만이 아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건 알아서 해야지.”
내가 아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등 뒤에서 이브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진 아는데…. 이거 결과적으로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일인거 알아요?”
“알다마다. 언젠가 분명 혁명이 일어나서 망할거다. 이 나라.”
“제가 다음 대 황제로 낙점된걸 알면서 하는 말이죠?”
“그럼. 알다마다.”
등 뒤에서 성광창이 날아온다. 멍청한 녀석. 내기 이런걸 당할소냐. 가볍게 공간을 접어서 성광창을 튕겨내, 저 멀리 있는 마족의 머리통에 박아줬다. 푸아아악! 소리를 내며 마족 열 마리가 있는 일대가 소멸했다. 나쁜 녀석. 어떻게 이런걸 쏠 수 있지?
“뭐, 우리가 저기에 나서지 않아도, 이 거리에서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으니까요. 이브. 너무 화내지 말아요.”
“화 안났어요!”
“네. 화 안 난거 알아요. 하지만 조금 진정해요. 네?”
“후우….”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이브는 이내 자리에 털썩 앉았다. 너 이자식, 엉덩이에 깔려서 울부짖는 눈들의 뽀득거리는 비명이 들리지 않는거냐, 네가 앉으면 눈이 그 자리에서 압사당해서 얼음이 되어버린단 말이다.
“뭘 그렇게 봐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흥….”
녀석은 내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전장을 노려봤다.
약자들의, 추접한 발버둥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고작 하급 마족 천이 어쨌다는 거냐.
이 세계는 약자들 십만보다 강자 열이 더 강한 세계다. 정점에 이를 재능이 있는 자들만 키워내면 된다.
“그렇게 소수를 위한 성장동선을 고찰해, 한 줌의 초월자만 만들면…. 그들이 올바르게 쓸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해요? 누구보다 한 줌의 초월자를 만드는데 집중했던 당신이?”
“그야 우리들은 다 올바르게 쓰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요.”
결국 이브가 뾰로통해진 것은, 남 들의 두 배는 되는 책임감 때문이다.
두 배는 될 뱃살에 지방 대신 책임감을 채워 넣었는지, 자신이 지킬 힘이 있는데, 어째서 약자가 싸워야 하는가, 그들은 그저 지켜지면 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국민과의 신의. 국민은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며, 노동에 힘쓰고, 국가는 국민의 삶과 권리를 보장해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 하지만 잘 봐라 이브. 저기 어디에 일반적인 국민이 있지?”
“…….”
“저들은 민간 군사단체거나, 군인이다. 적어도 칼밥먹고 사는 입장인건데, 그들마저 누군가가 지켜줘야 하나?”
“그건 아니죠.”
역시, 여전히 영특하다.
그래. 군인이 국민을 지키는거지, 통수권자가 무력으로 군인을 지키게 되어 있냐고.
“자. 삼류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감각으로 지켜보도록 하지.”
원래 싸움은 허접들끼리 치고받는거 지켜보는게 제일 재밌는 법이거든.
***
몇 번 죽었지. 아니 죽다 살아났지?
손끝이 얼얼하다 못해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전투가 끝나면 손가락 몇 개는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겨울의 탓이 크다. 손에 감각이 없는데 다리라고 있을리가 없다. 내가 밟고 있는게 땅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방금 죽어서 얼어버린 마족의 시체였나? 둘 다일지도 모른다.
켈터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검술 스승은 고요한 무의식의 끝에 검을 휘두르라고 했지만, 자신은 조용해지면 집중할 수 없는 타입인가보다. 스승의 가르침을 또 헛되이 했다.
잡스러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검은 결코 헛돌지 않았다. 적확하게 숨통을 끊고, 튀어오르는 피를 다른 손의 방패로 막아냈다. 치이이익. 방패 겉면이 타오른다.
왕실 마법사단이라고 참전한 이들은 대기중의, 그리고 대지에 물드는 저주를 정화하느라 필사적이다. 개개인에게 튀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알아서 피해야 한다.
검을 휘두른다. 마족이 베어나갔다. 허리만한 마족이 집요하게 발목을 노려 파고든다. 오른 다리를 들어올린 그 순간, 옆에서 마족 한 마리가 공격을 가해왔다. 훌륭한 협공. 보통 검사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켈터스는 용병업으로 먹고사는 전사. 완벽한 코어 근육의 단련을 통해, 한 발로 무게중심을 잡으며 달려드는 놈을 베어내고, 들어올린 다리로 마족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기예에 가까운 검술. 주변에서 부하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감탄할 시간이 있으면 본인 싸움이나 더 신경썼으면 좋으련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 전장에서 이탈하지 않고 싸우는 것 만으로도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후우…. 하아…”
“대장. 괜찮아요?”
“아니. 전혀 안 괜찮아.”
후두둑.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격쇄검은 고작 마족의 피 조금 묻혔다고 상하지 않지만, 부하들의 검은 그렇지 않다. 바로 옆에 있던 용병은 이미 검날이 다 녹아내린…. 롱소드 였던 단검을 들고 싸우고 있었다.
이런 문제가 또 있었나.
“호데. 격쇄검을 들어라.”
“예? 주는 겁니까?”
“당연히 끝나고 반납해.”
“예에. 알겠습니다.”
격쇄검을 넘겨주고, 듀스펠을 들어올렸다. 촤르르륵, 짧은 곤봉 수준이었던 손잡이를 세게 휘두른 것 만으로도, 어엿한 창이 완성되는 일품이다. 내구성에 문제가 있지만, 휴대용 보조 무기로는 이만한게 없었다.
기사학부 동기 드워프 대장장이가 시험삼아 만든 일품으로, 폐기하려던 것을 학창시절에 얻어서 쏠쏠하게 써먹고 있었다. 빨간머리에 이름이 뭐더라…. 음식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잡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 피가, 바로 옆까지 다가온 죽음의 냄새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동료들 중 몇이 죽었을까. 이런 격전 속에서 대장이 최전선에서 싸우는 걸 보고 부관은 나중에 뭐라고 혼낼까. 긴장감과 호승심. 걱정과 살의가 섞여 뒤죽박죽인 머리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으려면…. 잡생각이라도 해서 평정심을 유지시켜야 했다.
“후우….”
눈 앞에는 이쪽을 보고 웃고 있는 수 십마리의 마족.
저 앞으로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으면 죽는다.
켈터스는 살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
“호오. 흐음. 거기서 그런 판단을? 아니 거기서 바닐라표 특제 실험무기 창버전 V1을? 우와 아니 그거 맞아요? 아니 쿨피스. 그게 맞나? 그 판단 맞아요?”
옆에서 아일라가 시끄럽다. 하지만 나도 뭐…. 비슷한 감상평이다.
“헤…. 그럭저럭 잘 싸우네. 특히 저 켈터스라는 아이와 합을 맞추는 용병들의 연계는 꽤 괜찮은 거 같아.”
루디카도 합격점을 내려줬다. 기뻐해라 애송이 켈터스.
“후우…. 뭐. 죽는 사람은 안 나오겠네요.”
이브도 끝내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당탕탕 왁자지껄 허접싸움도 슬슬 막을 내린 듯 하니, 내려가볼까.
애들 싸움 끝났으면, 뒷정리는 원래 어른들끼리 하는 법이니 말이야.
***
바닥에 얼굴을 쳐박은 채 기절했다가, 내가 발로 걷어차자 절반 돌아 누운 켈터스를 내려봤다. 녀석은 겨우 한쪽 눈을 뜬 채 나를 올려봤다.
“고생 많았다. 끝내 승리했구나.”
“보고 계셨…습니…까?”
“그래. 보고만 있었다.”
“하, 하하…. 감사합니다….”
녀석이 웃는다. 뭐지, 혹시 내가 구하러 안 와서 삔또가 상했나. 그래서 허탈하게 웃는 건가.
“감사를 받을만 한 일인가?”
“그…야. 선배님께서 나서면, 순식간에 끝나지…않습니까. 이런 경험, 평생 없을텐데….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지켜만 보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경험치 먹고 꿀파밍 했어요. 라는 건가. 훌륭한 전사의 소양이다.
“잘 싸웠다. 볼만하더구나.”
“네, 후우…. 하.”
“나머지 수습은 우리가 전부 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상자말이다만, 경상 셀 수 없음. 중상 일곱. 그리고…. 사망자 다섯이다.”
“다섯이나…. 죽었습니까.”
켈터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 그리고, 방금 그 다섯이 전원 살아났다.”
“하지만, 원래라면 죽었을 목숨이라는 이야기군요. 윽…. 큭.”
켈터스가 몸을 비틀면서 겨우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녀석은 끝내 자세를 고쳐 자리에 주저 앉았다. 몇 번 숨을 몰아쉬더니 나를 올려봤다.
“원래라면 죽었을 목숨입니다. 아니, 이번 의뢰의 특수성 덕분에 살아난거죠.”
“맞다.”
“선배님의 의뢰가 아니었다면, 동료를 다섯 잃었겠군요.”
“그 또한 맞다.”
“그렇다면, 지금은 기뻐하기보단…. 저희들의 부족함을 절감해야 할 때고요.”
잘 배웠네.
“그래.”
“지도 편달. 감사합니다.”
녀석은 앉은 채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역시나.
이것저것 내가 다 해먹어서 루트가 꼬이긴 했어도, 이 녀석의 근간은 영웅이다.
철저한 상황판단과 자기분석. 이타적인 마음. 말 그대로 주인공의 상 아닌가.
“지금은 가슴을 펴라. 켈터스. 이 전장의 영웅은 너다.”
“영웅이라뇨. 하하…. 저희는 고작 하급 마족 몇을 상대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다섯이나 죽었죠. 그 사이 선배님들은 군단장을 상처하나 없이 쓰러트리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러면 선배님들이 진짜 영웅입니다. 저희는 그냥…. 용병단이고요.”
“그야 나는 영웅이다. 하지만 네가 영웅이 아니라니.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네?”
“네 손으로 증명하지 않았나. 초월의 끝에 이르지 않더라도, 평범한 이들도 힘을 합치면 중간계를 지켜낼 수 있다고 말이다.”
“아….”
“네가, 너희들이 해낸 것은 그만큼 값진 일이다. 초월자에게 기대지 않더라도,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초석이 될 거다. 세계는 절대자에 의해 지켜지는게 아니라, 모두 힘을 합쳐 지켜야 한다.”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서 한 자루의 검을 꺼내 녀석에게 건넸다.
“이전, 초월의 자리에 오른다면, 자격을 증명한다면 네 전용 검을 만들어주겠다 했지. 받아라. 검의 이름은 세라피엘. 영원한 빛을 의미한다.”
검을 받아든 양 손으로 받아든 녀석은, 잠시 뽑아들어 그 검광을 보고는 몸을 떨었다.
“어마어마한…검이군요. 검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더욱 단련해야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그럼 나는 뒷정리가 있어서 가보마.”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녀석을 뒤로 한 채. 일어섰다.
남자놈과 길게 대화하는 취미는 없고, 지금은 뒷정리가 한창인데 뭘 놀고 있냐고 혼날 거 같았거든.
아.
그래도 뭐, 헤어지기 전에 몇 마디 더 해도 괜찮겠지.
“그러고보니 이 말이 늦었구나. 제프린 졸업 축하한다. 켈터스 후배.”
졸업하고 나서는 제프린에 갈 일이 썩 없었으니 말이야.
그렇게 뒷정리를 위해 파티원들에게 다가가려는 그 때. 등 뒤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울렸다.
“못난 후배놈에게 길고 길었던 지도 편달. 감사합니다!”
뒤돌지 않고 오른손만 들어서 대충 휘적여주고 말았다.
남자놈들의 우정은 원래 질척거리면 멋이 없는 법이니까.
[캘터스 에피소드 끝,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