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999)
999. 갓파더
이세계.
이브와 내가 같이 쓰는 공용 스페이스가 된 이 곳에서, 오늘도 녀석은 즐겁게 일상을 구가하고 있다.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일어나서 손톱을 다듬다가, 중앙에서 나온 새로운 의복 팸플릿을 보다가, 다시 누워서 책을 읽는다.
“아주 늘어졌구나.”
“누구 덕분에 말이죠.”
기지개를 쭉 편다. 몸에서 뚜두둑 소리가 난다. 박스티에 반바지라는, 실로 실내복에 가까운 옷을 입은 이브녀석은, 몸에 여유를 충분히 두르고 있다.
이게, 학생회장 업무가 끝난 이브 폰 로엔그린인가.
지금 이브 졸업 후 약 일주일이 지난 상황.
바로 황궁에 복귀하려던 녀석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1000일 넘게 안 쉬고 일했다면 한 달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라는 말에 내심 납득하며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완전히 풀어진게 이 이브 폰 뱃살그린이다.
“뭐에요.”
“적어도 운동은 해라. 배 나온 황제는 위엄이 서질 않으니 말이다.”
“흥. 알고 있거든요.”
정말 알고 있으면 다행이긴 한데….
“뭐, 곧 사회에 나가면 어마어마하게 바빠질텐데, 지금 쉬는걸로 뭐라 하기도 그렇군. 조금 더 쉬도록.”
“놀랐어요. 당신이 그런 말을?”
“흠. 평소 노력하는 녀석이 쉰다고 타박할 정도로 못된 놈은 아니다. 할것만 하고 쉬면 전혀 터치할 생각 없다.”
“그럼 그냥 터치를 하지 마세요….”
이브는 질렸다는 듯 다시 소파에 데구르르 누웠다. 티셔츠가 살짝 말아올라가서 포실포실한 뱃살이 보였고,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벤토리에서 최고급 실크 담요를 꺼내 녀석의 배를 가려주고, 반대쪽 소파에 가서 앉았다. 녀석은 모포를 보고, 나를 보다가 얼굴을 붉히고는 볼을 부풀린다.
“쓰레기.”
“사람의 친절을 쓰레기라고 말하고, 스스로 단정치 못한 모습을 취하는게 차기 황제라니, 제국은 망했구나.”
“윽….”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한결 마음이 편해진 이브라고는 하나, 여전히 독설을 날린다. 그 빈도가 조금 줄었을 뿐이지.
“이제 하고 싶은 거나 해라.”
“안 그래도 할 거에요…. 음….”
잠시 책을 팔락거리던 이브는 이내 덮었다. 보아하니 다 읽은 모양.
그 뒤에 읽을 거리가 없나 자기 방에 가서 찾아보다 이내 이 안에 있는 책은 다 읽었다며 한숨과 함께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녀석은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쪼그려 앉은 채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지. 배고픈가.”
“누가 보면 하루종일 배고픈 줄 알겠어요. 그런거 아니거든요.”
“그럼 뭐지?”
“음…. 지금 바깥시간은 밤이죠?”
“밤이다. 그것도 심야.”
“후우…. 그러면 서점도 다 닫았겠고….”
“당연하지.”
“책은 다 읽었고, 딱히 할 건 없네요.”
“밖에 나가서 한 잠 자면, 서점이 열겠지.”
“최소 10시간 잡으면, 여기서는 80시간, 제 휴가가 사흘은 가볍게 날아가는 거군요.”
그런 식의 계산을?
사실 생각해보면 밖에서 한달을 통째로 쉴 수 있다는 건, 여기서는 8개월을 쉬는것과 같다.
이게 이브의 마지막 휴가. 그리 생각하면 시간이 아깝긴 하지.
“그래서. 뭐 어쩔거지? 책도 없다면서 말이다.”
“당신도 밖에서 할 일은 없잖아요. 잠깐 이야기나 하죠.”
“80시간을 말인가?”
“미쳤어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까…. 잠깐 다른 일을 찾아내기 전에 조금 머리를 식힐 겸 떠들자는 거에요.”
“흠…. 그리 말해도, 무엇을 떠들어야할지 모르겠구나.”
“우리 둘 다 제프린을 졸업했으니, 옛날 이야기는 어때요? 당신이 제프린에서 쫓겨날 뻔 한 그 날 이야기라던가.”
“쓰레기 같은 주제 선정이군 그래.”
“그때. 당신이 정말 퇴학당했거나…. 나쁜쪽으로 빠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이브는 슬쩍 이쪽을 바라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사죄인지, 아니면 고민인지, 순수한 호기심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 마음이 움직일 정도로 재미있는 떡밥이기에, 이를 물기로 했다.
“뭐, 어떻게 살았어도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능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예 너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악당이 된다는 가정을 해볼까.”
“으, 으음….”
“일어날리 없는 일을 가정할 때. 사실 가장 재밌는 법 아닌가. 인상 풀어라.”
“뭐 좋아요. 그래서요?”
그래.
내가 이브와 적대하고…. 예를 들어 블랙 마켓에 들어간다고 쳐보자고.
***
우선, 빠르게 학생회를 나와서 블랙마켓에 잠입할 거다.
체력 스테이터스는 낮지만, 그 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스테이터스를 확보할 수 있다.
켈터스 파멸 루트에서 블랙 마켓의 잔당을 소탕하는 에피소드가 있듯, 그쪽으로 넘어가면 넘어가는 대로 스테이터스나 장비 파밍법이 다 따로 존재하거든.
“우선은 키메라술사 에르헬을 찾아가서, 녀석의 키메라를 전부 죽일거다. 그리고 스테이터스를 확보. 그 녀석을 반쯤 죽여놓고…. 아니 죽이는 것 자체도 나쁘지 않군.”
“에르헬을요?!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건 내가 힘으로 굴복시켰기 때문이지. 그 당시의 나라면 에르헬을 죽이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 아무튼 그렇게 재주를 얻고, 키메라술의 기본인 연금학을 익혔겠지. 그리고 에르헬의 영토를 내가 먹었다고 선포하고, 간부 뱃지를 얻었을거다.”
“계속 해보세요.”
이브의 눈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렇구나.
아마, 그 뒤로 나는 약제 조합에 들어갈거다.
블랙 마켓에서 유통되는 재료는 외부 재료보다 품질이 좋고, 그 효과가 악랄한 것들도 있기 때문에, 많은 약재를 손에 넣어 대 연금술사까지 능력을 키웠겠지.
키메라 제조술을 익힐 생각은 없다. 그건 한계가 너무 명확하니 말이야.
그 안에서 약제학과 연금술의 대가가 되기까지는 한 달이면 충분할 터.
그 다음은 약을 만들거다.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위험한 약을 말이야.
“마약을 만들겠다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렇죠? 휴우….”
“이미 블랙마켓은 마약중독자 천지인데, 어떻게 마약을 만들겠나.”
“네?”
“내가 만들려는 것은 정 반대의 약이다. 기존의 마약 중독을 중화하고…. 머리가 깨끗해지는 약이지.”
“그런…게. 가능해요?”
“가능하다.”
【청초의 비약】이라는 약이 있다.
효과는 물약 중독의 해제. 하지만 확실하게 전부 해제시켜주는게 아니라, 조금씩 중화시켜 주는 것이다.
그걸 먹으면 일시적으로 정상으로 돌아오고, 머리가 맑아지며, 정신력이 올라가고, 도덕수치도 올라간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약이잖아요.”
“반대로 무서운 약이지. 이미 약에 중독된 녀석들이 한 번 정신을 차렸다고 치자. 하지만 청초의 비약은 영원하지 않지.”
“네. 하지만 일시적으로나마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잖아요?”
“문제는 청초의 비약 효과가 점점 사라지면서, 자신의 뇌가 썩어가는게 느껴지고, 도덕심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청초의 비약을 갈구하고, 다시 깨끗해지고 싶다고 울부짖게 되는 거다.”
“그건, 그러면….”
“그래. 맞다. 중독성 넘치는 마약이지. 방향이 올바를 뿐 의존성은 똑같다.”
“우와아…. 좋은 일을 해도 그렇게 되는구나….”
이브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청초의 비약으로 주변에 도덕심 넘치는 마약중독자 충견들을 만들었다면, 그 뒤는 간단하다.
“양지. 제프린을 향한 공격을 개시해야겠지.”
“뭐…라고요?”
“나는 최고의 약제사니 말이다. 그래. 중앙에도 약을 풀어야지.”
“이번에야말로…?”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마약을 쉽게 풀 생각이 없다. 내가 누군가를 지배하고, 언젠가 위정자의 자리에 서거나 조직을 운영한다고 치면…. 내 주위에는 죄다 약쟁이밖에 안 남을텐데, 그게 어떻게 조직이 되겠나.”
“아하. 그럼 무슨 약을 풀려는 거에요?”
“바로, 공부가 잘 되는 약이다.”
“네?”
간단하다.
먹는 것 만으로도 마력 순환율이 올라가고, 공부 집중력이 올라가고, 체력이 올라가는 일종의 버프 포션들. 실습때 천천히 약을 풀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직전에 성적으로 고민하는 애들한테 싸게 넘긴다.
“그 결과 제프린의 학력은 완전히 대반전이 일어나겠지. 중위권, 하위권 학생들이 상위권을 먹어치우는 일도 꽤 나올거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겠지. 그 모든게 내가 만든 포션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렇…겠죠.”
“그 다음은 손님을 가려받고, 커넥션을 만든다. 양지에서는 집중력 강화. 똑똑해지는 약 등을 팔면서 제약회사를 세우고, 음지에서는 마약쟁이들을 고치는 회복약을 만드는 거다.”
“뭐에요. 좋은 일이잖아요.”
“이브. 인간은 항상 스스로가 세운 최고의 기록을 평시 기록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네?”
“예를 들어 컨디션이 무척 좋아 한 시간만에 하루 분량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작가는, 그 날 이후로도, 언제라도 자신은 한 시간이면 쓸 수 있다고 믿는거지.”
“으, 음…?”
이브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지만, 이런 경향은 어디에나 있다.
자신의 수입이 최고일 때 했던 소비 습관을, 수입이 떨어져서도 버리지 못한다던가 말이야.
“즉. 이미 최고를 평시라고 착각한 사람들은, 영원히 내 약을 끊을 수 없다.”
“…….”
“중독성은 없다. 언제든 끊을 수 있지. 하지만 이미 마음이 붙잡혀서 움직일 수 없다. 실적이, 실력이, 성적이 떨어지는걸 눈 뜨고 볼 수 없던 이들은 다시 나를 찾아오겠지.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약을 팔거다.”
“그건 마치….”
“진짜 마약은 뇌를 좀먹고, 육체를 좀먹고, 신경을 좀먹지만…. 나는 마음을 좀먹는 셈이지.”
이브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건…. 그러니까….”
“하지만 마약은 아니지. 내 덕분에 성장할 수 있는 녀석들은 내게 무한한 찬사를 보낼 거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녀석들도 나를 신처럼 숭앙하겠지. 나는 의존의 대상이며 숭앙의 대상이고, 경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블랙 마켓의 커넥션과 중앙 귀족의 커넥션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되는 셈이다.”
“…….”
그 뒤는 간단하다.
내가 바로 민의를 대변하는 자.
대륙 어디든 자리를 잡고 사업을 개시하고, 내 영지를 받아서 자치구로 운영한다. 그 곳에서 내가 황제가 되는 셈이다. 제국의 황제마저 내 업적을 두려워하며 결코 좌시하지 못하겠으나, 나를 처리할수도 없다.
“그러면 그때 쯤 이 대륙의 황제가 되었을 이브 폰 로엔그린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라는 성자에게 타협과 공존을 제시할 수 밖에 없지, 네 지지기반은 무척이나 나약하지만…. 나는 이미 민심을 등에 업었으니 말이다. 모두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윽, 으음…. 윽.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이브는 한참을 고뇌하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자. 벌써 한 시간이 흘렀구나. 내 망상과 잡설은 재미있었나?”
“으, 으음. 역시 여기서 처리해야…. 처리…. 내 손으로….”
“그만 둬라.”
아니, 이건 전부 망상이라니까요.
왜 갑자기 마력을 운용하고 그래요.
이브는 마력을 회전시키다가, 공중에서 비산시켰다.
나한테 진짜 쏘는 줄 알았네. 안 맞을 자신은 있지만, 피하면 거실이 엉망이 된다.
놈을 빤히 보고 있자니, 혀를 빼꼼 내민다.
“농담이에요.”
“농담 한 번 살벌하게 하는구나.”
“당신도 살벌하게 했잖아요.”
“…….”
그건 반박을 못하겠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두려워할 필요가 어딨어요? 그럴듯한 가설이지만, 가설이잖아요?”
“그 또한 그렇구나.”
“재미는 있었는데, 일찍 끝났네요. 그러면 남은 79시간을 뭐 하면서 보낸다….”
“내가 잠이 잘 오고 상쾌해지며,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포션이라도 만들어줄 수 있다.”
“그건…. 거절할게요.”
역시나 차기 황제.
현명하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