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5)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05화(105/251)
#105화 의자가 없잖아
란돌프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숲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곧 카샨이 모습을 보였다.
카샨 일행은 조반테 일행보다 조촐했다.
카샨을 뒤따르는 건 노아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희미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강현은 바로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피 냄새?’
다른 이들 역시 같은 걸 느꼈는지 표정이 굳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인간들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 반응을 알아챘는지 카샨이 두 손을 들었다.
“미안하군. 씻는다고 씻었는데 냄새가 빠지지 않아. 그쪽을 압박할 생각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
“…괜찮소.”
조반테가 고개를 끄덕이자 긴장감도 옅어졌다.
카샨은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다소 무례하게도 보이는 행동이었으나 조반테는 개의치 않았다.
오직 바하람만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바하람은 카샨을 향해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노아 역시 카샨의 뒤에 섰다.
조반테가 카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이 있었나 보오?”
앞에 앉으니 더 잘 알 수 있었다. 카샨의 몸에서 올라오는 피 냄새는 짐승의 것과 달랐다.
카샨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바깥일을 처리하기 전에 안쪽부터 정리했지. 나중에 괜히 말이 나오면 안 되잖아.”
카샨의 말에 조반테가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 놀라운 눈빛으로 카샨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렇게 쉽게 내부의 일을 말해 줄 줄은 몰랐다.
어찌 보면 치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조반테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를 가진 아군이 적군보다 무서운 법이지요.”
무심코 주변을 돌아보던 강현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눌렀다.
‘…로멘 님.’
조반테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로멘이 바하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시선.
바하람은 그런 로멘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강현 씨.”
에밀리야의 부름에 강현이 정신을 차렸다.
“제가 간단히 드실 만한 차와 다과를 가져왔습니다.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요?”
강현의 물음에 둘의 눈이 커졌다.
곧 조반테가 턱을 쓸었다.
“내 미처 거기까진 생각 못 했군. 고맙네.”
조반테와 강현의 시선이 카샨에게 향했다.
“난 상관없어.”
둘의 허락이 떨어지자 강현은 가져온 배낭을 열었다.
쿠키와 케이크, 그리고 미리 손질한 과일을 꺼냈다.
케이크는 잘라서 한 조각씩 올렸다.
‘디저트는 특기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배낭에서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대단하군. 간단히 먹을만한 게 아닌데?”
뒤에서 로멘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온 통에 담아 온 커피를 따랐다.
검은색 커피를 본 조반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색만 보면 그리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불길해 보였다.
‘일부러 연하게 내리긴 했는데.’
현대인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카페인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뒤에 있던 바하람이 나섰다.
“제가 먼저 확인해보겠습니다.”
바하람의 말에 로멘이 눈살을 찌푸렸고, 란돌프 역시 곱지 못한 시선을 보냈다.
강현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조반테가 입을 열려는 찰나 카샨이 차를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뜨거울 텐데.’
강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카샨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커피를 들이켠 카샨이 빈 잔을 탁, 내려놨다.
그리고는 손톱으로 과일 하나를 콕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보란 듯이 씹어 삼키는 카샨.
조반테가 고개를 돌려서 바하람을 바라보자 바하람이 뒤로 물러났다.
조반테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독특하군. 하지만 매력적이야.”
“내 취향은 아니야. 술이 당기네.”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는 카샨. 뒤에서 노아가 헛기침했다.
그런 카샨의 말에 조반테가 입을 열었다.
“술이라면 있소.”
“응?”
조반테를 돌아보는 카샨. 미소를 지은 조반테가 입을 열었다.
“인간들끼리는 계약이나 거래가 성공되었을 때 같이 술잔을 나눈다오. 이제 같은 길을 걷는 동지란 의미지. 원래라면 계약이 끝나고 꺼낼 생각이었는데….”
조반테의 시선이 란돌프에게 향했다. 그러자 란돌프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가져왔다.
‘포도주구나.’
강현은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봤다.
포도주를 본 카샨이 눈을 빛냈다.
“호, 인간도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네.”
“축하주의 의미로 가져온 것이라 한 병뿐이지만, 선물로 드리겠소.”
“그럼 사양하지 않겠어.”
웃으며 포도주를 받으려던 카샨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강현을 돌아보았다.
커피를 누가 가져왔는지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슬쩍 포도주를 내려놓는 카샨.
“이게 맛없는 게 아니고. 조금, 뭐랄까….”
“괜찮습니다.”
변명을 늘어놓는 카샨을 보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카샨이 다시 포도주 들었다.
이럴 때 보면 어린아이 같았다.
곧 카샨이 조반테를 보았다.
“그쪽도 한잔 받아. 끝나고 마시나, 지금 마시나 같지.”
“무엄한….”
뒤에서 바하람의 중얼거림과 노아의 한숨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그러나 조반테는 웃으며 흔쾌히 잔을 들었다.
강현은 그런 둘을 보다가 보온병을 치웠다. 술을 마시면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온병을 배낭에 넣으려는 찰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뚫어져라, 보온병을 바라보고 있는 에밀리야.
곧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후드 밑으로 목덜미가 붉어진 게 보였다.
강현은 못 본 척 배낭을 정리했다.
‘이따가 드려야겠다.’
서로 좋아하는 걸 얻었으니 된 것 아닌가.
술잔이 오가고 카샨이 입을 열었다.
“난 카샨드라. 이 숲 주변의 수인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지. 카샨이든, 족장이든 편하게 불러.”
“카샨 족장이라 부르겠소. 난 로벤투스의 영주, 조반테 도르만 로벤투스요. 카샨 족장도 편히 불러 주시오.”
둘의 모습을 보고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아직 통성명도 안 했구나.’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조반테가 깍지를 끼고 입을 열었다.
“직접 만나 보니 어떻소? 거래 상대가 될 만하오?”
카샨은 대꾸 대신 술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보탰다.
“난 뒤가 구린 놈이랑은 술 안 마셔.”
이렇게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자격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한 카샨의 말에 조반테가 웃음을 터트렸다.
“화끈하니 좋구려.”
고개를 끄덕인 카샨이 조반테를 보며 입을 뗐다.
“그런데 인간 영주야말로 괜찮겠어?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인간도 있는 거 같은데.”
카샨의 말에 일행들이 숨을 삼켰다.
‘정말 거침이 없네.’
바하람을 말하는 것이란 걸, 이 자리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역시나 바하람의 얼굴이 붉어졌다.
조반테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소리쳤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신경 쓸 카샨이 아니었다.
조반테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쪽은 절차가 까다롭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조반테의 말에 카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세세한 건 실무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쪽은 한 가지 조건만 지켜 주면 돼.”
“말씀해 보시죠.”
조반테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 감사관을 둘게. 인간들이 대놓고 속이면 알 방법이 없거든. 거래는 공평해야지. 물론, 그쪽도 둬도 상관없어.”
“이해하오.”
“이쪽 감사관은 강현, 너야.”
“예?”
뜬금없는 호명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다른 이들도 놀란 눈으로 카샨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자 카샨이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하잖아. 마을 녀석들이 가 봤자 뭘 알겠어. 게다가 일이라도 일으키면 천벌이 내릴 테니.”
카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
“대단한 일을 하라는 게 아니야. 가끔 들려서 문제가 없나 확인만 해 주면 돼.”
말은 가볍게 하고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현이 당혹스러워하는 사이에 카샨이 조반테를 돌아봤다.
“그래도 일단 우리 마을의 대표로 가는 거니까.”
“당연히 손님으로 대우하겠소.”
조반테가 카샨의 뜻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측 역시 강현을 감사관으로 두겠소이다.”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좋네.”
카샨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잔을 들었다.
“잘해 보자고.”
“이 인연이 오래가기를.”
화기애애한 분위기. 강현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강현에게 씌워진 감투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잔을 비운 카샨이 병을 흔들었다.
와인 역시 다 마신 것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카샨.
그러던 카샨의 눈빛이 변했다.
“이런.”
갑작스럽게 한숨을 내쉬는 카샨. 옆에 있던 조반테가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 있소?”
“일은 아니고.”
카샨이 손톱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뒤늦게 에밀리야와 란돌프, 노아의 시선이 숲으로 향했다.
셋의 반응을 본 후에나 다른 이들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곧이어 수풀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노아는 카샨과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쉬었고, 조심스레 손을 무기로 가져갔던 에밀리야와 란돌프가 실소를 흘렸다.
“바아아아압!”
“….”
“….”
작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들었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침입자는 모나였다.
침입자를 확인한 란돌프와 에밀리야가 카샨을 돌아보았다.
카샨이 그들보다 기척을 느끼는 게 빨랐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뚜렷하다는 소리였다.
이어서 모나에게 모이는 시선.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은 모나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리고 강현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모나.
강현의 곁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카샨에게 뒷덜미가 잡히는 게 더 빨랐다.
카샨이 엄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모나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나 카샨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결국, 모나의 귀와 꼬리가 내려왔다.
“그 아이는?”
“내 딸.”
짧게 대답한 카샨이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수풀이 흔들리더니 수인들이 나타났다.
정신없이 달려오던 수인들은 안의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새하얗게 질려 갔다.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몸을 숙이는 수인들.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반테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수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모나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례했어.”
카샨이 조반테를 향해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수인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제는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됐으니깐 가서 술이나 챙겨 와. 이제 우리의 거래 상대야.”
수인들의 시선이 조반테에게 향했다.
조반테는 위엄있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황급히 떠나는 수인들. 그들을 보낸 카샨이 조반테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날에 고작 한 병으로 끝낼 순 없지. 안 그래?”
“맞는 말이지요.”
조반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인들이 술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술만 건네고 떠나갔다.
카샨도 굳이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커다란 대접에 술을 한가득 퍼 올린 카샨. 대접을 들고 몸을 돌렸다.
그 끝에 있는 건 바하람.
“이것도 확인해 봐야지. 안 그래?”
출렁이는 대접을 본 바하람이 마른침을 삼켰다.
당연히 한 모금만 마시란 뜻이 아니었다.
카샨의 눈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곧 바하람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족장님의 명예를 믿습니다.”
피식, 웃은 카샨이 대접을 들이켰다.
벌컥벌컥.
“크으!”
대접을 비운 카샨이 입가에 흐른 술을 닦아 냈다.
“자, 마셔 보자고. 술버릇이 고약한 녀석들은 알아서 조절해. 천벌 받아도 책임 안 지니까.”
시비 붙지 말라는 뜻이었다. 수인들을 돌려보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곧 카샨의 시선이 노아에게 향했다.
“뭐 해. 의자가 없잖아.”
고개를 끄덕인 노아가 근처에 있던 돌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란돌프 역시 검을 뽑아서 나무를 베었다.
순식간에 테이블 옆으로 돌과 나무 의자가 만들어졌다.
조반테가 대접에 술을 뜨려는 카샨을 불렀다.
“음, 카샨 족장. 난 작은 잔으로 주시겠소?”
차마 카샨의 잔에 마시진 못하겠는 것이었다.
카샨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잔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