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0)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20화(120/251)
#120화 잘될 겁니다.
아나가 손톱을 입에 가져갔다.
“낭패야.”
“…아나.”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거래의 기본이었다. 이를 망각하고 있었다.
곧 아나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지켜보고 있던 강현이 놀랄 정도의 번뜩임.
“로벤투스 영주는 무엇을 좋아하지?”
강현은 아나의 눈에 담긴 마지막 기대를 읽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기대에는 부응해 줄 순 없었다.
“사치는, 좋아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냥이나….”
강현은 턱을 괴었다.
그러고 보니 조반테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성안의 분위기. 그동안 조반테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호기심이 왕성하신 분입니다. 이국적인 문화에 관련된 물건이면 흥미를 보이실 겁니다.”
“…사냥이랑 이국적인 문화.”
아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영주인 이상 황금을 반기겠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한숨을 내쉬는 아나의 어깨가 내려갔다.
강현은 그런 아나가 안쓰러워서 말을 보탰다.
“꼭 영주님이 아니어도 마법사님도 계시니….”
그러나 아나가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들은 영주들보다 거래하기 까다로운 존재다.”
그런가?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로멘을 떠올리면 그리 까다롭게 보이지 않았다.
아나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일어났다.
“끼잉?”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설기가 돌아보았지만, 아나는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마슈. 먼저 쉬겠다.”
모포를 들고 마차 뒤로 향하는 아나.
그 모습을 본 마슈가 한숨을 내쉬었다.
“…반말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적어도 오빠는 붙여 줘.”
말을 꺼내는 마슈도 이미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아나는 대꾸하지 않고 모포를 덮었다.
“제가 괜한 걸 이야기했나 보네요.”
강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마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어요.”
이대로 로벤투스로 향했다면, 크게 손해를 봤을 수도 있었다.
마슈가 힐끗 마차 너머를 보았다.
“아나는 금방 기운을 차릴 겁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워서 달려가겠죠. 원래 그런 아이이니.”
말을 하는 마슈의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의 눈에 찜기가 들어왔다.
“조리 도구가 많네요.”
마차에는 찜기만 실려 있는 게 아니었다.
둘이 가지고 다니기에는 과할 정도였다.
강현의 말에 마슈가 쓴웃음을 지었다.
“출발할 때는 그래도 스무 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마차도 한 대가 더 있었고요.”
마슈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그분들은….”
설마 변을 당한 건가. 이 정도의 짐을 가지고 간다면 노리는 이들도 많을 거다.
그러나 마슈가 고개를 저었다.
“도중에 부상 때문에 못 오신 분도 계시지만, 세 분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중간에 그만두셨어요.”
“…흥, 근성 없는 이들.”
마차 너머에서 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자고 있던 것이었다.
아나의 말을 들은 마슈의 표정이 엄해졌다.
“아나. 그래도 부모님에 대한 의리만으로 이 상행을 따라오신 분들이야. 도중에 그만두셨다고 해서 그분들을 욕해서는 안 돼.”
“….”
“아나.”
“…내가 실언했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포를 다시 덮는 것이었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둘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겠지.’
하지만 쉽사리 물어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 강현의 기색을 알아챘는지 마슈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숨길 만한 일은 아닙니다. 스테판 상회. 지금은 이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법 이름을 알리는 상회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쓰러지시고 모든 게 바뀌었죠.”
마슈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어 갔다.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모닥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상회에 투자해 주시던 이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러 들이닥쳤습니다.”
“다 사기꾼들이야. 아버지가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렸을 리가 없어.”
마차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에 마슈는 쓴웃음을 흘렸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스테판 상회는 할아버지 대부터 이미 자리를 잡아서 그만한 돈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검을 배우느라 가문에 없었습니다. 어린 아나만 남게 되었으니 욕심이 생겼겠죠.”
그리고 마슈는 목소리를 낮췄다.
“어릴 때부터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르던 이들이었기에 아나의 충격은 더 클 겁니다.”
“….”
강현은 힐끗 마차 너머를 보았다.
그러나 마차 너머는 조용했다.
“제가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상회의 물건과 지분들은 그들이 회수해 간 뒤였습니다. 아나도 영주관에 부당함을 알리려고 했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상대해 주지 않았죠.”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상황이 눈에 그려졌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둘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은 남았습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자고 했지만, 아나는 상회를 잃어버린 게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다. 그 일과는 상관없어. 대상인이 되는 건 내 꿈이야.”
“…그렇다고 하네요.”
마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마슈의 태도에 강현도 미소 지었다.
“다행히도 아나는 저와 달리 상재가 있어서.”
“마슈. 넌 너무 착해. 상재 이전의 문제야.”
“…오빠라니까.”
마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검술이 뛰어나니 내 호위로 써 주는 것이야.”
아나의 말에 마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의 모습에 강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리 말해도 아나가 마슈를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남은 재산을 처분하여 상행길에 오른 것이었다.
“그럼 저 말투도 그때부터?”
아버지를 흉내 내는 것인가?
그러나 강현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닙니다. 저건 원래부터 저랬어요.”
“위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나중에 대상인이 되었을 때를 위하여 미리 연습하는 거다.”
아나의 말에 마슈와 강현의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둘은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밤은 깊어져 갔다.
* * *
할짝, 할짝.
다음 날 볼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설기였다.
“…네가 먼저 일어나다니 놀랍네.”
강현은 하품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텐트 밖을 나서자 설기가 깨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마슈가 냄비에다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강현의 시선이 슬쩍 설기에게 향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
‘그럼 그렇지.’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역시 밥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빨랐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이 마슈에게 다가갔다.
마슈 옆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나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이대의 여자아이처럼 보였다.
강현은 그들의 건너편에 앉았다.
“아침은 제가 하려고 했는데….”
“아닙니다. 손님에게 그런 수고를 시킬 순 없죠. 그리고 어제 도움도 주셨잖습니까.”
마슈가 시원스럽게 웃었다.
“이제 끓기만 하면 되니 기다려 주세요.”
마슈는 그리 말하며 간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현이 슬쩍 설기를 돌아보았다.
얌전히 앉아 있는 설기.
마슈와 아나의 요리 실력에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긴 것이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간지러운지 설기가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뒤늦게 나온 토리가 지친 회사원처럼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설기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강현은 문뜩,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털이 많이 더러워졌네.”
움찔.
강현의 말에 설기의 꼬리가 떨려 왔다.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리는 설기.
그도 그럴 것이 여관에서는 강현만 씻었다. 설기는 기껏해야 눈곱을 떼는 게 전부였다.
“이번 마을에서는 좀 씻자.”
“…끼잉.”
설기가 애처로운 시선을 던졌지만, 강현은 단호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회색 늑대가 될 판이었다.
그건 설기의 보호자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 냄비를 확인한 마슈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자, 다 되었네요.”
냄비를 열자 김이 자욱하게 올라왔다.
강현은 냄비에서 올라오는 냄새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익숙한데?’
마슈가 끓인 건 스튜였다.
접시 한가득 스튜를 담아서 강현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강현이 고개를 숙였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식사를 얻어먹는 게 낯설었다.
“이건 설기 거.”
설기의 몫도 떠주는 마슈. 이어서 아나에게도 건넸다.
“뜨거우니깐 조심히 먹어.”
“…응.”
아직 잠이 덜 깬 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얌전히 스튜를 받아 들었다.
“드세요.”
“예.”
마슈의 권유에 강현이 숟가락으로 스튜를 떠먹었다.
그리고.
“음.”
놀란 눈으로 스튜를 다시 보았다. 그런 강현의 반응에 마슈가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까?”
“아, 예.”
강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강현이 놀란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쇠고기뭇국?’
이국의 요리에서 익숙한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조금 국물이 걸쭉하긴 했지만, 맛은 쇠고기뭇국이었다.
스튜 안에는 어제도 먹었던 작은 포도송이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옥수수와 비슷한 촉감.
덕분에 밥을 말아 먹는 느낌이 들었다.
옆을 보자 설기도 할짝, 할짝 잘 먹고 있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요리하는 걸 못 본 게 아쉽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강현은 고개를 젓고는 스튜를 떠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몸 안쪽부터 열이 올라왔다.
음식은 하루를 움직일 힘을 준다.
이런 식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나 다름이 없었다.
강현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가자 마슈가 입을 열었다.
“강현 씨도 견습 기사셨나요?”
견습 기사?
마슈의 시선이 허리춤에 향한 걸 깨달은 강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아서 몇 가지를 배웠을 뿐입니다.”
“그래요?”
강현의 대꾸에 마슈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강현을 살피던 마슈가 턱을 긁적였다.
“실력 좋은 분께 배웠나 보네요.”
“예. 제겐 과분하죠.”
강현의 말에 마슈가 싱긋 웃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처에 냇가가 있는 것 같으니 씻고 오겠습니다.”
몸을 씻는다는 말이 아니었다.
마슈는 냄비에다가 그릇을 담아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돕겠습니다.”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마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여기서 쉬고 계세요. 아나도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겁니다.”
그리 말란 마슈가 자리를 떠났다.
강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마슈는 견습 기사였다.”
잠이 깬 아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강현은 고개를 돌려서 아나를 보았다.
“무려 왕실 기사의 견습였지. 그대도 검을 배웠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겠지?”
오빠의 자랑인가?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강현은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마슈의 꿈은 왕국 제일의 기사였어. 그리고 그만한 능력도, 재능도 있어.”
그리 말한 아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내가 성공해야 해. 내가 성공해야지. 마슈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어.”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역시나 자신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상단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한다면 마슈가 떠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성공에 더욱 목매고 있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하네.’
강현도 저 나이 때는 저러지 못했을 거다.
“잘될 겁니다.”
강현의 말에 아나가 고개를 들었다.
강현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둘 다, 잘될 겁니다.”
단순히 위로하기 위해서 꺼낸 말이 아니었다.
남매끼리 의지하며 이 먼 타국까지 왔다.
평범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강현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는지 아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둘은 말없이 마슈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