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2)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32화(132/251)
132화 제가 싫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자란다고 했던가.
강현은 상후의 머리 높이가 달라진 걸 깨달았다.
“상후 키 컸네?”
“예! 오 센티나 자랐어요!”
상후가 머리를 만지며 배시시 웃었다.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이 사이로 검은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곧 검은 것의 정체가 그림자라는 걸 깨달았다. 키만 자란 게 아니라 이가 하나 비어 있었다.
“저, 저도 일 센티 자랐어요!”
상후에게 질세라 미영이도 말을 덧붙였다.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이 주 동안 오 센티가 자랄 수 있는 건가?
‘아이는 금방 자란다더니.’
그리고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미영이는 티가 나지 않았다.
강현은 웃으며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상후가 곽도현을 발견하고 눈을 껌뻑였다.
“어? 그때 그 형이다.”
“아는 오빠야?”
미영이가 되묻자 상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회 때 달렸던 형. 엄청 빨라!”
상후의 말에 미영이도 고개를 돌려서 곽도현을 보았다.
아까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곽도현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도현이는 낯을 많이 가리네.’
그러나 강현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곽도현에게 쪼르르 달려간 상후가 쉴 새 없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맞죠?”
“어? 어….”
“와, 키도 엄청 크다! 몇 학년이에요?”
“으, 응. 중3.”
“우와. 중학생이야.”
중학생이 뭐라고 저런 반응일까.
강현은 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 미영이는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곽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같이 먹을래?”
미영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상후를 보았다.
상후도 망설여지는지 입을 닫았다.
그때, 옆에 있던 장만기가 나섰다.
“괜찮아. 어차피 양이 많아서 다 못 먹어. 그렇지?”
“그, 그래.”
장만기의 신호에 곽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말에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 둘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그리고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테이블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그건 우리 말고 저기 삼촌한테 말해. 삼촌이 해 준 거야.”
장만기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강현이 손을 흔들자 아이들이 다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아이들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강현은 그들을 보다가 조용히 주방으로 들어왔다.
* * *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홀이 조용해졌다.
장만기와 곽도현은 먼저 떠나고 홀에는 상후와 미영이만 남았다.
스케치북을 꺼내서 그림을 그리는 미영이와 달리 상후는 설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심각해 보이는 표정에 강현이 다가갔다.
“왜?”
“설기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상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설기를 돌아보자 쿠션을 물어뜯고 있던 설기가 눈을 껌뻑였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쿠션.
아프긴커녕 너무 건강해서 문제였다.
강현이 고개를 젓자 상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뇨. 학교에 있는 누렁이도 새끼였는데, 지금은 엄청 커졌어요.”
“예. 이따시만큼 커요!”
옆에 있던 미영이가 그림 그리던 걸 멈추고 양손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그제야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상하겠지.’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강아지 역시 빨리 자란다.
그러나 설기는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설기는 건강해. 학교에 있는 누렁이랑 조금 달라서 그럴 뿐이야.”
“그렇죠?”
상후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배시시 웃은 상후가 설기에게서 시선을 뗐다.
이가 빠진 자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미영이 역시 다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강현은 둘을 보다가 설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쿠션을 가지고 노는 게 질렸는지 토리와 함께 뒹굴고 있었다.
정확히는 쿠션 너머로 빠져나가려는 토리를 몸으로 막고 있었다.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토리가 놀아 주는 거네.’
정말 싫다면 모습을 감췄을 거다.
그렇게 놀고 있는 둘을 보며 설기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 정도까지 크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아마 일반 동물과는 자라는 게 다를 거다.
너무 빨리 자라도 문제였지만, 이렇게 자라지 않는 것도 걱정되었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에밀리야나 란돌프라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 * *
장만기와 곽도현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한 번씩 매장을 다녀갔다.
정말로 오랜만에 분주하게 일했다.
그렇게 단골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보고 난 후에나 매장이 조용해졌다.
평소의 매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홀에서 설기와 놀아주던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황대길 선생님은 아직도 서울이신가?’
다른 이들과 달리 아직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일이 바쁜 모양이었다.
그때, 강현의 간지럼에 몸을 뒤틀고 있던 설기의 움직임이 멈췄다.
쫑긋 올라오는 귀.
뭔가 했더니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쭈그려 앉아 있던 강현이 몸을 일으켰다. 혹시 손님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 강현의 예상처럼 차는 매장 앞에서 멈췄다.
하지만 일반 손님과는 달랐다.
매장 앞에 멈춰서서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하아.”
‘한숨?’
문 너머로 들리는 한숨 소리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딸랑.
곧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키가 훤칠한 사내.
사내를 본 강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낯이 익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입을 뗐다.
“…잘 지내셨나요? 강현이 형. 아니, 선배님.”
사내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사내의 정체는 김종석과 함께 있던 셰프였다.
김종석의 후배.
그리고 강현의 후배였다.
“…한정우 씨?”
거리감이 느껴지는 강현의 호칭에 한정우가 쓴웃음을 흘렸다.
강현은 그런 한정우를 보았다.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 한정우.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그동안 너무 변했기 때문이었다.
전보다 마르기도 말랐지만, 이렇게 어두운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강현의 손짓에 한정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 * *
테이블에 앉은 한정우.
설기와 토리는 그에게 흥미가 없는지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강현은 그 모습을 힐끗거리며 한정우에게 다가갔다.
“차예요. 드세요.”
“…감사합니다.”
한정우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차를 받았다.
그러나 쉽사리 입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잔뜩 주눅이 든 모습.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이제 별로 상관없긴 하지만, 사과는 받겠습니다.”
강현은 담담히 말했다.
강현의 대꾸에 놀란 한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이리도 쉽게 사과를 받아 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진심이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상관없었다. 이제 그 일은 강현에게 있어서 사소한 사건에 불과했다.
그러니 사과받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한정우도 잘못이 있었지만, 김종석에게 휘둘린 부분이 더 컸다.
곧 한정우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여전하군요.”
자신이 이 사과를 꺼내기 전까지 얼마나 고민했던가.
몇 번을 망설였던가.
하지만 그건 강현에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사과만 하러 온 건 아닐 테고.”
강현의 물음에 한정우가 눈을 껌뻑였다.
마치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들은 반응이었다.
그런 한정우의 반응에 오히려 강현이 의아해했다.
“혹시, 못 들었습니까?”
“예?”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입술을 지그시 깨문 한정우가 다시 입을 뗐다.
“손민제 대표님께서 이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
뒤늦게 강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손민제.
전에 강현이 일하던 매장의 대표였다. 지금은 사업 파트너.
“잠시만 실례할게요.”
강현의 말에 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있네.’
긴 장문으로 온 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앞에 사족이 많아서 안부 인사인 줄 알고 무시했다.
‘…좀 나눠서 보내지.’
아니면 메일로 주든가.
한숨을 내쉰 강현이 아래로 넘기자 그 부분이 나왔다.
[…곧 셰프 하나가 내려갈 거야. 이 셰프도 잘 아는 사람이야. CIA 출신의 한정우 셰프. 혹시 불편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돌려보내도 돼.]전에 말했던 새로운 매장의 셰프였다.
그러나 손민제도 강현의 성격을 알기에 보낸 것일 거다.
강현이 꺼릴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뽑지도 않았을 거다.
내용을 확인한 강현이 다시 홀로 나왔다.
초조하게 강현을 기다리던 한정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다.
한정우에게는 일종의 면접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강현은 그런 한정우를 보며 볼을 긁적거렸다.
“괜찮겠어요?”
“예? 예! 괜찮습니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한정우가 말을 붙였다.
“오히려 영광입니다. 선배님의 대단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전에는 그 때문에 질투하지 않았던가.
“선배님만 괜찮으시다면 선배님께 꼭 배우고 싶습니다.”
한정우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아뇨.”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강현의 물음은 그게 아니었다.
가르치거나 배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장의 컨셉은 들었죠?”
“아, 예.”
“경력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양식이 아니었다. 실험적인 매장.
일반 요리사라면 상관없겠지만, 한정우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경력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그러자 한정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어차피 서울에서 지금 저를 받아 주는 곳이 없습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의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을 뜻했다.
나머지는 애초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을 떠났다가는 영영 못 돌아올 것 같아서…. 아, 강현 선배님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정우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런 한정우를 보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압니다.”
강현은 팔짱을 끼고 한정우를 바라보았다.
‘재능 있는 요리사.’
과거의 인연을 떠나서 한정우라면 강현과 황대길이 원하는 기대치에 닿을 수 있었다.
저만한 요리사가 이런 매장에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손민제도 뽑은 것이었다.
‘나쁘진 않겠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한정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힘드실 수도 있어요.”
좀이 아니라 많이. 강현의 물음에 한정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했습니다. 처음부터 배운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배님도 매장 막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막내.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사실 그 정도로 일이 많은 건 아니었다.
강현이 말한 부분은 다른 것이었다.
딸랑딸랑.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자연스레 강현과 한정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둘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강현의 입가에 반가운 미소가 걸렸다.
“오셨어요?”
“오랜만이네. 확실히 밑에는 춥군. 여행은 즐거웠나?”
“덕분에요. 일은 잘 끝내셨어요?”
“그래.”
강현과 노인이 웃으며 회포를 풀었다.
이 추운 날씨에도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노인.
바로 황대길이었다.
“화, 황대길 선생님?”
“음, 한 셰프였나? 오랜만이군.”
“아, 예! 안녕하십니까!”
황대길은 담담히 인사를 받고는 강현에게 다가갔다.
“저 친구는…?”
“대표가 보냈어요.”
“아, 그렇군.”
황대길 역시 강현과 한정우 사이에 있던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말하지 않았다.
강현이 허락한 이상 왈가불가할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현의 성격상 싫은 일을 부탁 때문에 억지로 하진 않는다.
둘과 달리 한정우는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눈만 굴리고 있었다.
‘…황대길 선생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나 보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 때부터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면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강현은 멀뚱멀뚱 서 있는 한정우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위쪽에 짐부터 푸세요. 문은 열려 있을 거예요. 숙소는 제가 따로 알아봐 드릴게요.”
어차피 마을에 빈집이 몇 개 있었다.
그중에 쓸만한 곳도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강현의 말에 한정우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전 매장에서 자도 충분합니다.”
“아뇨. 매장에서 재우는 건 제가 싫습니다.”
매장은 온전히 강현만의 공간이었다. 매장에서 재울 거면 차라리 집에 재우는 게 나았다.
“음, 그렇지. 매장은 식사하는 곳이지.”
옆에 있던 황대길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숙소 비용은 대표님께 청구할 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 그럼 짐을 풀고 내려오겠습니다.”
후다닥.
매장 밖으로 나가는 한정우.
그를 보고 있던 강현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설기가 강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먹고 자는 녀석이 하나, 아니, 둘이나 있긴 한데.’
그 둘은 예외였다.
“자, 그럼 우리도 시작해 볼까? 자네가 없는 동안 손이 근질근질했네.”
황대길이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황대길의 말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강현도 기다리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