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88)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88화(188/251)
188화 저도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뒤늦게 터져 나오는 탄식과 감탄사. 어째서인지 수인들이 우쭐한 표정으로 그런 요정과 인간을 바라보았다.
강현과 가장 친해진 건 인간이 아니라 수인이기 때문이었다.
수인이 요정만큼이나 폐쇄적인 집단인 걸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비워지는 그릇.
그러나 그걸 예상했다는 듯이 새로운 음식들이 나왔다.
“대단하군.”
“매일 이런 음식만 먹으면 행복하겠어.”
“그 말, 자네의 아내에게도 전해 줘도 되겠지?”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 사람들.
다른 이들도 하나둘 호기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테이블이 있음에도 앞에 서서 먹고 있었다.
그와 함께 설거짓거리가 점점 쌓여 가고 있었다.
“아우.”
하만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강현과 제니퍼는 손을 비울 수 없었다.
무서운 기세로 접시가 비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요정 하나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뇨. 손님에게 일을 시킬 수는….”
제니퍼와 하만이 예외적이었다. 하만은 제자이기도 했고, 제니퍼 역시 친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판 모르는 이를 시킬 순 없었다.
하지만 강현은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요정의 손에 올라온 작은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었다.
뀨?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는 아기 수달.
물의 정령이었다.
“이 아이가 돕고 싶다고 해서요.”
그제야 강현의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강현이 미처 허락하기도 전에 아기 수달이 설거지통으로 쏙 들어갔다.
“어머!”
갑작스럽게 튄 물에 하만이 화들짝 놀랐다.
하만의 눈에는 정령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깨끗해지는 접시를 보고 사정을 짐작했다.
그때, 또 다른 그림자도 설거지통에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날개가 달린 물고기였다.
물속에서 아기 수달과 장난치는 물고기.
그것만으로 접시와 팬이 씻겨나갔다.
퐁퐁마저 씻겨 나가고 있었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맙소사.’
강현이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토리가 최고의 정령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누구보다 뛰어난 일꾼들이 있었다.
물의 정령.
물을 정화하는데, 특화된 이들이었다. 당연히 물에 담긴 접시를 씻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툭, 툭.
옷깃을 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내리자 토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강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강현은 서둘러 토리의 머리를 토닥였다.
“미안, 미안. 그래도 토리가 제일이지.”
그제야 화가 풀린 듯 돌아서는 토리.
그때,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옆에 나타났다.
말.
전에 강을 건널 때 탔던 정령이었다.
정령은 강현의 몸에 머리를 비비더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앞발을 들어 설거지통에 넣으려고 했다.
“자, 잠깐만.”
강현이 황급히 정령을 불러 세웠다.
“이제 괜찮아.”
애당초 저 덩치라면 설거지통에 들어가지도 않을 거다.
움찔.
정령이 강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을 내렸다.
강현은 정령이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쓴웃음을 흘린 강현이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음만 받을게. 고마워.”
그러자 정령이 기분 좋은지 목을 흔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요정들이 묘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앤마저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신가요?”
당황한 강현이 묻자 요정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정령들이 잘 따라서요.”
“하얀 늑대의 축복을 받아서 그런 건가?”
“저 정도면 요정의 아이들과 비슷하지 않아?”
“그 이상이지.”
작은 웅성거림.
요정들의 옆에 있던 인간과 수인들마저 놀라운 눈빛으로 강현을 보았다.
정작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 강현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스승님. 전 이제 뭘 할까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강현이 고개를 돌리자 하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언제 와 있는지 새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매와 부엉이의 중간.
소피였다.
소피가 다 씻긴 접시와 팬을 옮기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아우라가 보였다.
흥, 하고 고개를 돌리는 아우라.
‘솔직하지 못하다니깐.’
윤섭이 맡은 아이들과는 성향이 반대였다.
‘그쪽은 너무 활발해서 문제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린 강현이 미소 지었다.
“그럼 대신 팬 좀 잡아 주시겠어요?”
“제, 제가요?”
놀란 하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하만 씨라면 할 수 있어요. 다 배웠잖아요.”
사실 아까 같은 경우라면 강현이 손을 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먹는 속도가 줄었다.
다들 배가 차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하만도 가능했다.
강현의 말에 하만의 눈이 흔들렸다.
“해, 해 보겠습니다! 아니, 해낼게요!”
굳은 눈빛으로 말하는 하만.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부담가지지 마시고. 옆에 있을 테니 힘들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예!”
강현은 하만에게 팬을 넘기고 오븐 앞에 섰다.
그리고 아이스박스에서 고기를 꺼냈다.
두툼하게 썰린 소고기.
안심과 등심. 등심도 채끝과 일반 등심 두 종류였다.
강현은 두 덩어리를 시즈닝한 후에 오븐에 넣었다.
‘이걸로 고기 굽는 건 처음이긴 한데.’
이미 피자나 다른 요리로 몇 번이나 시험했다.
스테이크도 다르지 않을 거다.
그러는 사이 스토브 하나를 더 꺼내서 설치했다.
기존에 있던 스토브들은 파스타를 만드느라 바빴다.
그렇게 스토브를 설치하고 있으나 앞에 살랑거리는 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헥헥.
혀를 빼고 기다리는 설기. 그 옆에는 모나도 보였다.
강현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설기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어쩐지. 파스타를 많이 안 먹더니.’
메인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모나는 설기를 따라온 게 분명했다.
모나 역시 먹을 것에 대한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그때, 너머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벌써 절반이 넘었어!”
“쉬질 않고 마시는군.”
“역시 단장님은 사람이 아니었어.”
“그럼 옆에 요정분이랑 수인분은 뭐냐.”
“…그러게.”
경기가 벌어지는 장소였다.
고개를 돌린 강현은 짧게 감탄했다.
그 커다란 독에 술이 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엄청나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식을 먹던 이들도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그들의 속도는 같았다.
누구 한 명이 먼저 술을 뜨면 질세라 다른 둘도 술을 펐다.
셋의 눈은 시작했을 때보다 더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카샨.
경기에 쓰인 독보다 커다란 독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요정족 장로와 바하람 주교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마슈도 그 자리에 껴 있었다.
담담히 마시는 장로와 달리 바하람 주교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 있었다.
그리고 싱글벙글 웃는 마슈.
‘…로멘 님은?’
강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찾을 수 있었다.
로멘은 잘 안 보이는 구석에서 과일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도망쳤네.’
요정족 장로와 바하람 주교, 마슈와 달리 로멘은 카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녀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사실 저쪽에 껴도 이상할 게 없지.’
경기 중인 이들.
아니, 유력한 우승 후보이다.
미리 도망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강현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븐에 들어간 고기를 꺼냈다.
“컹! 컹!”
“바압!”
“아직이야. 아직.”
달려들려고 하는 둘을 제지하고 스토브에 불을 켰다.
기름을 둘러서 겉면을 익힌 후 버터와 마늘, 로즈마리를 넣어 준다.
버터 샤워.
이미 오븐에서 익었기 때문에, 많이 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풍미와 육즙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팬으로 하는 게 나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금세 스테이크 하나가 나왔다.
강현은 설기와 모나가 다 가져가지 못하게 큼지막하게 잘라서 덜어 놨다.
‘이러면 육즙이 빠져나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찬이 아니라 파티이기 때문이었다.
고기를 먹은 설기와 모나의 눈에 행복한 미소가 흘렀다.
“컹!”
“바압, 밥. 밥.”
다리를 흔들거리며 흥얼거리는 모나.
박자에 맞춰서 설기의 꼬리가 흔들거렸다.
피식 웃은 강현은 오븐에 새로운 고기들을 넣고 남은 한 덩어리를 팬에 올렸다.
버터와 고기의 향이 숲 전체에 그윽하게 퍼져 갔다.
* * *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인간도, 요정도, 수인도 상관없었다.
서로 뒤섞여서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곳곳에 놓인 모닥불이 주변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아직도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을 보던 강현이 시선을 돌렸다.
주방은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른 것 같았다.
지친 하만과 제니퍼.
‘틀린 게 아니지.’
이만한 양을 셋이서 만들었다. 전문 요리사라도 쉽지 않았다.
“제니퍼 씨와 하만 씨도 놀고 오세요.”
“예?”
“이제 바쁜 것도 없으니 괜찮아요.”
피자와 파스타,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안주로 하기 좋게 감자튀김도 몇 번이나 튀겼다.
머뭇거리는 제니퍼의 옷깃을 헤나가 당겼다.
졸린 건지, 눈을 비비는 헤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벌써 밤이었다.
제니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예.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니에요. 모두의 일인데요.”
싱긋 웃은 제니퍼가 칭얼거리는 헤나를 않았다.
그렇게 제니퍼가 떠나가자 강현이 하만을 돌아보았다.
“이제 하만 씨도 즐기세요. 제대로 식사도 못 하셨잖아요.”
“스승님께서는?”
“저야 이곳이 더 익숙합니다.”
강현의 말에서 진심을 느낀 하만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수인족이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우라.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하만.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하만과 작게 웃는 아우라.
의외의 모습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종족이 다르다지만, 성별도, 나이도 비슷했다.
물론 실제 나이는 아우라가 훨씬 많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비슷했다.
빨리 친해지는 게 당연했다.
“저, 끝나지 않았으면 저도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갑작스러운 소리가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요정족 여인이 강현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아하게 웃고 있는 요정.
다른 요정들과 느낌이 달랐다. 다른 요정들 역시 동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눈앞의 요정은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보았던 요정.’
나중에 찾으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았었다.
강현은 당혹스러움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아요. 어떤 걸 해 드릴까요?”
“음….”
손가락을 턱에 올리고 고민하는 그녀.
곧 입을 열었다.
“토마토 파스타라고 했던가요? 아까 요정분들께 나눠 주신 거.”
“고기가 안 들어간 것 맞죠?”
“예. 부탁드려요.”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팬을 올렸다.
기름을 두르고 얇게 썬 마늘을 넣었다.
마늘이 갈색빛이 돌 때까지 구워 준 후 양파와 방울토마토를 넣었다.
약불에 천천히 볶아 주자 기름이 붉게 물들었다.
따로 만들어 온 토마토소스를 반 국자. 그리고 면수를 넣은 후 다시 끓여 준다.
이제 면을 넣고 졸여 준 후 그릇에 담으면 완성.
모차렐라 치즈와 바질을 올린 후에 여인에게 건넸다.
여인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파스타를 바라보았다.
“이것이군요. 아까부터 맛이 궁금했거든요.”
“오셔서 같이 드셔도 되었을 텐데.”
강현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요정들과 친하지 않은 건가?
곧 그녀의 포크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