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3)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13화(213/251)
213화 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네
“한번 보고 싶구먼.”
로멘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계에서 태어난 새로운 정령이라니.
하물며 정령목의 가지부터 자라났다고 한다.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 말한 로멘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설기는 오지 않았나?”
다른 이들도 신경 쓰였는지 강현을 돌아보았다.
강현은 쓴웃음을 흘리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이들 역시 쓴웃음을 흘렸다.
살이 너무 쪄서 부모한테 보냈다는 귀여운 이야기였다.
“관리는 중요하지.”
“부모와 있는 시간도 필요하죠.”
란돌프에 이어서 에밀리야가 말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설기의 생활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설기가 얼마나 먹을 걸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이 중에 누구보다도 미식가였다.
‘대식가이기도 하지.’
강현도 산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도 안 오는 걸 보면 이번 주는 못 오나 보네.’
설기가 강현이 온 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예상한 부분이었다.
원래 찌는 게 쉽지, 빼는 건 어렵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만에 그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긴 힘들었다.
‘지금쯤 고생하고 있겠네.’
돌아오면 맛있는 걸 해 줘야겠다.
그렇게 설기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정령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가지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에밀리야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강현이 돌아보자 에밀리야가 싱긋 웃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럴 거예요. 이곳의 정령들 역시 갓 태어난 아이들은 기원 주변을 떠날 수 없어요.”
“아.”
이곳도 마찬가지구나.
그제야 강현도 안심했다.
“이곳에 있는 정령들보다 영역이 좁긴 하지만, 아마도 기원이 된 정령목의 가지 역시 어리기 때문일 거예요. 점차 자라날수록 가지의 영역 역시 넓어질 거랍니다.”
그리고 정령 역시 자랄수록 기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오호, 그렇군.”
옆에서 란돌프가 맞장구를 치며 옥수수 하나를 새롭게 꺼냈다.
말과 달리 전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옥수수를 먹느라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앞에 수북이 쌓인 잔재들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노아 옆에 있는 모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빵빵해진 볼. 옥수수의 심까지 씹어 먹고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나요?”
“예?”
에밀리야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모였다.
에밀리야는 이제까지와 다르게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삐약이라고 했죠? 계속 그렇게 부를 생각인가요?”
에밀리야의 물음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임시로 붙인 거긴 한데, 이제 입에 붙어서….”
상관없지 않나. 작게 중얼거리자 에밀리야의 눈빛이 번뜩였다.
“상관없지 않아요!”
갑작스러운 호통에 강현이 움찔 몸을 떨었다.
에밀리야가 저런 반응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슬쩍 옆을 돌아보자 다들 말을 안 할 뿐이지 에밀리야와 같은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난의 눈초리.
“…강현, 자네는 이런 곳에서 너무 둔하군.”
둔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었던가.
그렇게 란돌프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그래도 새로운 가족인데 성의 있는 이름을 지어 줘야지.”
“맞다. 마을에서 기르는 짐승들에게도 그런 이름은 지어 주지 않아.”
“갸오!”
로멘에 이어서 노아가 말을 보탰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나.
모나는 뭘 알고 그러는 건가?
하지만 강현은 억울했다.
‘…성의가 없다니. 반나절은 고민했는데….’
절대로 성의 없이 지은 게 아니었다.
나름 괜찮은 이름이라고 혼자 뿌듯해하지 않았던가.
귀엽기도 하고.
그러나 강현도 눈치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질책의 시선이 경악으로 바뀔 거다.
여기서는 얌전히 비난을 듣는 게 나았다.
“안 되겠어요. 이 자리에서 이름을 정하죠.”
에밀리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 씨, 괜찮을까요?”
너무 일방적으로 정했다고 생각했는지 슬쩍 강현의 눈치를 보았다.
강현은 그녀의 시선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도 자신의 작명 센스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게 나았다.
“혹시 좋은 이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강현의 말이 끝나자 일행들의 눈이 빛났다.
란돌프마저도 옥수수를 내려놓았다.
모나만이 고개를 갸웃하고 옥수수를 먹을 뿐이었다.
“흐음. 새라…. 어떤 이름이 좋으려나.”
로멘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건강하게 자라려면 역시 힘 있어 보이는 이름이 좋겠지.”
란돌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 알렉산더! 알렉산더 호펜! 어떤가!”
힘 있어 보이긴 했다. 과거 유명한 왕의 이름처럼.
그러나 다른 이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로멘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입을 열었다.
“예로부터 새는 지혜의 상징이었지. 지적이고 우아한 이름이 나을 걸세.”
그러고는 근험한 표정으로 수염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렇군. 케레벨 크루시오는 어떤가? 사실 내가 만들 마법에 붙일 이름이었다네. 고대어로 위대한 현자라는 뜻이지.”
“…아, 예.”
강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현자라니.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삐약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어릴 적 보았던 영화에서 나온 마법을 떠올리게 했다.
‘분명 저주 마법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강현은 문뜩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만든 마법에 위대한 현자란 이름을 붙이시려고 했구나.’
그건 마법에 대한 경의인가.
아니면 마법을 만든 로멘에 대한 경의인가.
강현은 굳이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때, 잠자코 있던 노아가 입을 열었다.
“이름은 자고로 직관적인 게 좋다. 그래야 부르기도 쉽다.”
“맞는 말이에요.”
에밀리야가 동의했다.
에밀리야의 호응에 힘입은 노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하늘을 헤엄치는 불꽃은 어떤가? 힘도 있고 지혜롭기도 하지.”
노아의 말에 에밀리야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배신이라도 당한 눈빛으로 노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강현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물론, 삐약에게 잘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아, 그쪽이구나.’
노아다운 작명이었다.
슬쩍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본 노아가 입을 뗐다.
“…아니면 태풍을 가르는 천둥이라든지.”
아까보다 작아진 목소리. 다른 이들의 반응 역시 전보다 차가워졌다.
노아는 입을 닫고 애써 담담한 모습으로 옥수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일행들의 눈에는 축 처진 그의 귀와 꼬리가 보였다.
“흐, 흐음.”
미안했는지 헛기침한 란돌프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역시 알렉산더 호펜이….”
“무슨 소리인가. 케레벨 크루시오가 더 낫네.”
“태풍을….”
다툼이 다시 시작되려고 하자 에밀리야가 나섰다.
“셋 다 아니에요. 전 그런 험악한 이름은 인정할 수 없어요.”
“…험악하다니.”
“그리고 그런 긴 이름을 그 작은 아이에게 붙이겠다고요?”
란돌프가 반론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에밀리야의 눈빛이 입을 다물었다.
에밀리야는 그들을 보다가 강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령의 이름은 귀여운 게 좋아요. 그래야 아이들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죠. 토리처럼 말이죠.”
에밀리야의 시선에 토리가 맞다는 듯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에밀리야는 살포시 웃으며 그런 토리의 볼을 간지럽혔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자신의 턱에 가져갔다.
“으음, 그렇군요. 루리는 어떤가요?”
토리와 비슷한 모음.
루리. 강현은 그 이름을 입안에서 한 번 되새김했다.
나쁘지 않은 어감. 아니….
“…괜찮네요.”
부르기도 좋았다.
강현의 대답에 에밀리야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렇죠?”
뒤에 있는 일행들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강현은 고개를 돌려 토리를 보았다.
“토리는 어때?”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또다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마음에 든 모양.
토리의 반응을 확인한 강현은 이 자리에 있는 또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모나는….”
“으갸?”
강현의 물음에 옥수수를 잔뜩 묻힌 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많이 먹어.”
“바압!”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먹기 시작한 모나를 보며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럼, 이야기도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먹어 보지.”
란돌프가 팔을 거뒀다.
지금까지는 본격적으로 먹은 게 아니었단 말인가.
“강현, 난 처음 먹었던 걸 부탁해도 되겠나?”
“아, 버터구이 말씀이시죠?”
강현의 물음에 로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삶은 옥수수도 맛있지만, 버터에 구운 옥수수는 각별했다.
강현은 옥수수를 나뭇가지에 껴서 버터를 바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장작을 넣자 모닥불의 불이 다시 올라왔다.
그렇게 웃음소리가 숲 너머까지 퍼져 갔다.
* * *
캠핑을 마치고 돌아오니 삐약이가 강현을 반겼다.
방방 뛰는 삐약이.
얼마나 높이 뛰는지, 발라당 넘어지기까지 했다.
마치 어디 갔다가 이제 왔냐고 따지는 듯했다.
강현은 웃으며 삐약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그제야 삐약이도 얌전해졌다.
그렇게 삐약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보니 옆에 놓인 것들이 보였다.
해바라기씨와 홍화씨.
그 외에도 알곡들이 보였다.
강현이 떠나기 전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마을 분들이구나.’
언제 소식을 들은 건가.
설기에서 삐약이에게 옮겨 간 모양이었다.
강현은 웃음을 흘렸다.
마을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강현이 없는 동안 챙겨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삐약이는 설기와 달리 식탐이 별로 없었기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삐약이와 놀아 주던 강현은 중요한 걸 떠올렸다.
“맞다. 루리 어때?”
강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삐약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이름. 루리.”
그러자 삐약이가 강현의 손가락에 몸을 비볐다.
강현이 와서 좋은 건지, 아니면 루리란 이름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강현은 몇 번 더 이름을 불러봤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상관없나?’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적어도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삐약이로 불렀을 때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이제 루리란 이름을 얻게 된 삐약이는 토리와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부리로 토리의 몸을 간지럽히자 토리가 자지러졌다.
그러고는 토리가 발톱으로 루리의 몸 여기저기를 긁었다.
루리가 부리로 했던 것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루리는 기분 좋은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와 함께 털도 올라왔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배낭을 둘러멨다.
그리고 놀고 있는 둘을 놔두고 짐을 정리하기 위해서 집으로 올라갔다.
* * *
알록달록 피어났던 꽃들이 서서히 지고, 산은 녹색 빛이 더욱 짙어졌다.
떨어지는 꽃잎을 본 강현이 식칼을 내려놓았다.
“…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네.”
벌써 더위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의 집으로 향했다.
빈자리.
설기가 떠나고 벌써 이 주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