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5)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15화(215/251)
215화 다들 모였는겨?
시원한 면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더위가 단번에 날아갔다.
따가운 햇볕도 후덥지근한 바람도, 지금은 모두 잊을 수 있었다.
후루룩.
한동안 면을 먹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면을 떠먹던 강현의 젓가락이 멈칫했다.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는 광경.
그러나 매장 너머에는 평화로운 마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립나 보네.’
피식 웃은 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이세계에서 가족과 있을 설기였다.
그런 설기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때, 식사를 마치고 바닥에 누워 있던 토리를 볼 수 있었다.
눈이 동그래진 토리.
강현과 마찬가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강현 혼자라면 모를까, 토리마저 헷갈릴 리가 없었다.
‘설마.’
강현의 시선이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댁이 있는 방향과 같았다.
“토리야?”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뒤, 강현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슬쩍 토리를 보았다.
‘알았지?’
강현의 신호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해바라기씨 하나를 입에 물었다.
옆에 있던 루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포도알 하나를 주니 굴리면서 장난치기 시작했다.
강현은 그런 루리를 보다가 힐끗 옆을 보았다.
‘왔네.’
담벼락 너머의 작은 수풀.
수풀 사이로 잘 숨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흔들리는 꼬리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멀리서도 얼마나 들떴는지 알 수 있었다.
강현을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다.
강현은 모르는 척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쉽사리 입으로 가져가지는 못했다.
‘…오늘 과식하네.’
국수 한 그릇과 감자전을 먹은 게 바로 전이었다.
설기도 아니고, 몇 그릇씩이나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은 억지로 면을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퍼져 가는 새콤한 맛.
배부른 걸 잊을 정도였다.
그러나 곧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는 강현.
하지만 대행하게도 상대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았다.
“컹!”
힘차게 짖으며 나오더니 턱을 세웠다.
“아우우우우우!”
하울링.
그러고는 의기양양하게 강현을 보았다.
여전히 얼굴은 동글동글했지만, 몸은 홀쭉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강현은 설기의 등장에 반가움을 숨기고 입을 열었다.
“왔어? 배고프지? 밥 먹을래?”
담담하게 내뱉는 강현.
토리 역시 손을 흔들고는 다시 해바라기씨를 먹었다.
루리는 반가움에 다가가려다가 강현과 토리의 반응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다시 포도알을 굴렸다.
“…끼잉?”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 탓인가.
설기가 그 자리에서 굳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아우우우우우!”
하울링을 하고 앞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모나의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번쩍 들어서 의자에 올리고 자신이 먹던 그릇을 넘겼다.
“….”
이게 아닌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발을 내리는 설기.
“국수, 별로야?”
강현이 그릇을 치우려고 하자 황급히 앞발을 들어 올렸다.
이런 상황이라도 국수를 포기할 순 없었다.
국수를 먹자 두 귀가 쫑긋 올라왔다.
흔들리는 꼬리.
찹찹찹.
면을 먹는 소리가 아니라,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올라왔던 귀와 꼬리가 내려왔다.
이윽고, 그릇에서 입을 뗐다.
“왜, 입맛에 없어?”
앞발로 그릇을 밀어내는 설기.
그리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현은 힐끗 그릇 안을 확인했다.
‘…그래도 면은 다 먹었네.’
국물만 남아 있었다.
강현은 이제는 등까지 돌리고 있는 설기를 보았다.
쭈그려 앉은 모습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왜 그래?”
강현이 묻자 설기가 더 돌아앉았다.
강현이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자, 하지 말라며 꼬리로 쳐냈다.
‘이 이상하면 진짜로 삐지겠네.’
웃음을 삼킨 강현은 설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고개를 돌리는 설기.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동안 잘 지냈어?”
그제야 강현을 돌아보는 설기.
강현은 웃으며 설기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그러자 간지러운지 몸을 비비는 설기였다.
“보고 싶었어.”
강현의 말에 설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그리 묻는 설기를 향해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기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리자 토리가 다가왔다.
두 손을 번쩍 들고 몸을 흔드는 토리.
처음 보는 모습에 강현도 놀라서 눈을 껌뻑였다.
토리만이 아니라 옆에 있던 루리마저도 작은 날개를 번쩍 들고 몸을 털었다.
“컹! 컹!”
그러자 설기 역시 앞발을 들어 올리고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있었다.
졸지에 테이블 위에 춤판이 벌어졌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강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토리와 설기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어르신들이구나.’
마을 어르신들.
술에 취한 어르신들이 추는 춤과 비슷했다.
웃음을 흘린 강현은 설기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맛있는 거 해 줄게.”
“컹!”
강현의 말에 설기가 해맑게 짖었다.
* * *
“자.”
강현이 스테이크를 건네자 설기가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이미 옆에는 다른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파스타부터 피자까지.
정말로 원 없이 먹고 있었다.
들뜬 기분을 알려 주듯 힘껏 올라간 귀.
게다가 꼬리 역시 아까부터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설기를 보던 강현은 궁금한 걸 떠올렸다.
“혼자서도 올 수 있는 거였구나.”
강현의 혼잣말을 들은 설기가 고개를 들었다.
“컹!”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다시 물었다.
“전에도 있었어?”
강현이 넘어가기 전에도 숲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던 설기였다.
만일 있었다면 설기가 봤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설기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아니야.”
강현은 웃으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 와서 뭐가 중요하겠는가.
고개를 갸웃한 설기가 다시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점점 부풀어 가는 배.
토리는 설기의 옆에서 긴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리는 밖에서 낮잠 중이었다. 아직 어린 만큼 잠도 많았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고 있던 강현은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모인다고 했었지.’
강현이 슬쩍 설기를 보았다.
빵빵하게 올라온 볼.
곧 고개를 저었다.
‘그래, 오늘은 눈 감아 줄게.’
모처럼의 재회였다.
하루 정도면 강현도 충분히 제어 가능했다.
강현은 웃으며 설기의 볼을 간지럽혔다.
“으르르르.”
먹는 걸 방해한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보이는 설기.
그러나 강현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마주하고는 슬쩍 눈빛을 달리했다.
“…하나도 안 변했네.”
설기는 설기였다.
강현은 그 사실을 깨닫고 실소를 흘렸다.
* * *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는 만큼 낮도 점점 길어져 가고 있었다.
강현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매장의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아무도 안 왔네.’
평소라면 식사는 아니어도 한둘 정도는 와서 수다 떨다 갔을 거다.
그러나 오늘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강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저녁에 있는 깜짝 파티.
마을 사람 대부분은 강현은 이미 이야기를 들었단 사실을 몰랐다.
혹시나 말실수할지도 모르니 아예 강현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미안하게 됐네.’
오늘 깜짝쇼의 주인공은 강현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될 것이다.
강현은 아래를 내려봤다.
“알겠지? 신호하면 아까처럼 나오면 돼.”
“컹!”
설기가 씩씩하게 짖었다.
기대감에 흔들리는 꼬리.
아까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이따 봐.”
“컹! 컹!”
끄덕이는 설기를 뒤로 하고 강현은 매장을 나섰다.
그러자 나무 옆에 있던 루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나무를 떠나지 못하는 루리.
그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루리 옆에 토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리가 걱정되었는지 잔치에 가지 않고 남겠다고 했다.
‘좋은 오빠네.’
오빠가 맞나?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럼 둘은 집을 부탁해.”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가슴을 두드리는 토리.
그 귀여움에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강현은 홀로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 * *
멀리 보이는 불빛.
벌써 회관 주변이 떠들썩했다.
들뜬 목소리가 강현의 귀까지 들려왔다.
봄이 오고 바빠진 탓에 한동안 잔치를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에겐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떠들썩한 마을회관도 강현이 등장하자마자 조용해졌다.
갑자기 조용해진 모습에 강현마저 눈을 껌뻑일 정도였다.
곧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려왔다.
“헛, 험. 나물이 뭐 이리 억세. 가위가 어딨었지?”
“나, 나 알아. 내가 가져올게.”
“오늘따라 날이 참 좋네.”
누가 봐도 어색한 말투.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마을회관 지붕에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밧줄로 꽁꽁 묶인 긴 무언가.
‘…천막?’
설마.
강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올라오는 불안감은 강현의 예상이 사실임을 알게 해 주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강현을 힐끗거리는 마을 사람들.
“그래서, 그 테레비는 언제 나오는 거야?”
“조용히 해, 이 양반아. 비밀인 거 몰라?”
강현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그러고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민호와 수진이었다.
“오셨어요?”
“예.”
반갑게 강현을 맞이하는 둘.
자리에 앉은 강현에게 민호가 막걸리를 권했다.
“…고생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이장에게 들었는지, 강현의 사정을 알고 있는 듯했다.
덕분에 강현도 맘 편히 이야기할 상대가 생겼다.
“저거, 제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강현의 물음에 민호와 수진은 쓴웃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둘의 반응 자체가 충분한 대답이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곧 무언가 허전함을 깨달았다.
“하은이는요?”
“아버님이 봐주시기로 했습니다.”
민호의 말이 끝나자 수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모처럼 친구를 축하해 주는 자리니깐 즐기고 오라고요.”
그러한 수진의 말에 강현은 메마른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을 사람들은 강현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누구 할 것 없이 의미심장인 미소를 던졌다.
모른 척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그때, 지직하고 기계음이 났다.
“아, 아아. 다들 모인 거여?”
이장이었다.
이제 표준어는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급하게 발표할 게 있어서 이렇게 잔치를 잡았어. 축하할 일이 있어서 말이여.”
“암, 축하할 일이지.”
어디서 맞장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람들도 회관 지붕에 걸린 긴 천막을 힐끗거렸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이장이 헛기침했다.
그러자 사라지는 시선들.
“헛험. 일단 발표는 나중에 할 테니 먼저 먹고들 있어.”
평소였다면 사람 모아 놓고 뭔 지럴이야, 하고 외쳤을 박 씨 할머니조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들 그 발표가 무엇인지 아는 모양새.
강현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삼십 분 뒤에 방송이 시작된다.
이장이 언제 발표할지 예측이 되었다.
강현의 예상은 틀렸다.
벌써부터 손발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설기를 불러야 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한숨을 내쉬는 강현을 본 민호가 잔을 들어 올렸다.
피할 수 없으니 즐기란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