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7)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17화(217/251)
217화 살벌하네
지이이잉.
적막을 깬 건 진동 소리였다.
무심코 핸드폰을 확인한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윤섭.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예측이 갔다.
취소를 누르자 새로운 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당분간 꺼 놔야겠네.’
받아 봤자 수치심만 늘 뿐이었다.
특히 윤섭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나 지금 문제는 핸드폰이 아니었다.
강현을 쳐다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
강현은 그들의 눈빛에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 * *
술잔이 쏟아진다.
정말로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장해. 참 장해.”
“우리 마을의 영웅이여.”
사방에서 들려오는 칭찬에 강현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동안의 수련이 헛되진 않았는지, 겨우 제정신을 유지했다.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어르신 한 분과 술잔을 나누고 자리로 돌아오니 일행들이 싱글벙글 웃으며 강현을 맞이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방송은….”
“예. 알고 있어요. 저희가 강현 씨를 모를 리가 없잖아요. 황 선생님도 말씀해 주셨어요.”
수진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수진을 보고 강현은 안도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까지 시달리면 쉴 수조차 없을 거다.
“그래도 정말 잘 만들었군요.”
“감쪽같습니다.”
수진과 민호의 말에 정기훈 작가와 이정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을 보니 젊었을 때처럼 혈기가 오르더군.”
“맞네. 이렇게 집중해서 본 건 오랜만이야.”
둘의 대답에 강현이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요리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혈기가 오르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피디 양반이 실력이 있어.”
황대길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강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이번 일로 실감했다.
하지만.
‘왜 그 실력을 저런 쪽으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던 강현은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설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강현은 곧 구석에서 고기를 받아먹는 설기를 볼 수 있었다.
‘저기는 또 언제.’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나물이나 전보다는 역시 고기인가.
설가다웠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진정된 후에나 강현은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 *
방송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음에도 관심은 식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옆 마을에서도 한 번씩 와서 구경하고 갈 정도였다.
덕분에 며칠 동안 손님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주변 마을만이 아니었다.
“강현 씨, 잘 뽑혔지? 이번에 내가 신경 좀 썼어.”
유쾌하게 웃는 김윤하 피디를 보며 강현은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그런 강현을 오해했는지, 김윤하 피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저번에도 신세 졌잖아.”
“…예.”
일반 연예인이라면 좋아할 일이지만, 강현은 아니었다.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고 있지만, 강현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로 해 준 일은 맞았다.
“아무튼 담 편도 잘 뽑혔으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강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저 피디님….”
그때, 핸드폰 너머가 시끄러워졌다.
“알았어! 금방 갈게. 에휴, 쉴 수가 없네. 쉴 수가. 그럼 강현 씨 담에 통화하자고.”
“아니, 잠깐….”
그러나 이미 통화가 종료된 뒤였다.
그렇게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던 강현은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강현을 바라보고 있던 눈들이 다급하게 흩어졌다.
“설기야, 간식 먹자.”
“아이쿠. 나물이 많이도 자랐네.”
뿔뿔이 흩어지는 마을 사람들.
그들을 보며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인기피증이라도 걸리겠네.’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이제 2편 방송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사람들이 건네준 간식을 맛있게 먹던 설기는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잠수 타고 싶지만.’
토리와 함께 놀고 있는 루리.
아직 어린 루리를 혼자 남길 수 없었다.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일은 휴일이었다.
이세계로 가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다.
‘오늘은 좀 일찍 닫아야겠네.’
강현은 재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매장을 닫자마자 배낭을 둘러메고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들뜬 모습으로 달려가던 설기가 움찔, 멈춰 섰다.
슬그머니 제 자리를 도는 설기.
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불쌍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아니야.”
강현이 고개를 젓자 안심하는 설기.
다시 꼬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할 거면 알아서 자제 좀 하지.’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최근에 많이 먹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통통하게 올라온 볼살.
강현이 방송의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릴 때 열심히 얻어먹은 것이었다.
쪼르르 내려온 토리가 설기의 등으로 올라갔다.
강현은 설기의 볼을 간지럽히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강현의 뒤를 쫄쫄 쫓아오는 설기.
토리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설기의 털을 꽉 움켜쥐었다.
* * *
이세계로 넘어오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지난주에도 봤던 광경이었지만, 오랜만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설기가 반짝이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앞으로 나서는 설기.
“아우우우우우우우!”
어려도 늑대라는 걸 증명하듯 힘차게 울음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후다닥 숲속으로 사라졌다.
푸드득, 푸드득.
저 멀리 새들이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컹! 컹!”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강현이 미소 지었다.
허전함이 채워지고 있었다.
저렇게 떠들썩한 모습을 보고 나니 일상으로 돌아온 게 느껴졌다.
“그럼 우리도 갈까?”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 * *
천천히 숲길을 걷고 있자 수풀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잘 놀았어?”
“컹!”
강현의 물음에 환하게 웃는 설기.
보는 이도 행복해질 정도로 해맑은 모습에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간지럽다는 듯이 몸을 비비는 설기.
일 년이 다 되어감에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전에 봤던 새끼 늑대들을 떠올렸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지?’
문뜩 궁금해졌다.
곧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강 쪽으로 갈까?”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끄덕였다.
그렇게 오늘 머물 장소가 결정되었다.
숲을 따라서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물소리가 들려왔다.
높게 올라온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빛줄기가 눈앞을 덮쳤다.
눈이 부실 정도의 반짝임.
목적지인 강에 도착한 것이었다.
시원한 물줄기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보는 것만으로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현실의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여전히 대단하네.’
햇살에 비친 강은 마치 보석이 담긴 것처럼 보였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넋을 놓고 구경하던 강현을 설기가 툭, 툭 건드렸다.
의아해한 강현이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늑대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강현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낯선 무리에 경계하던 늑대들도 강현과 설기를 확인하더니 하나둘 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런 늑대들을 보던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새끼들이 보이지 않네?’
물가에 뛰놀던 어린 늑대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늑대 무리에서 몇몇 늑대가 강현 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우두머리 늑대가 아니었다.
우두머리 늑대는 관심 없다는 듯이 길게 하품하고 있었다.
그리고 늑대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설기가 뛰쳐나갔다.
“컹! 컹!”
뒤엉키는 늑대들.
그중 한 마리는 설기와 놀지 않고 강현을 향해 다가왔다.
다른 늑대보다는 왜소한 체격.
그러나 어디까지나 다른 늑대와 비교해서 왜소할 뿐이지 강현보다도 컸다.
늑대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강현이 웃음을 삼켰다.
‘역시 무시무시하네.’
그러나 이제는 예전만큼 무섭지 않았다.
다가와서 킁킁, 냄새를 맡는 늑대.
그러더니 꼬리를 흔들었다.
강현은 늑대의 눈에 떠오른 반가움을 읽었다.
“…잠깐만.”
늑대에게서 시선을 뗀 강현은 설기와 놀고 있는 늑대들을 확인했다.
저 멀리 쉬고 있는 늑대 무리도.
다른 늑대들보다 왜소한 체격의 녀석들.
“설마.”
맞았다. 숫자가 같았다.
“너, 그때 그 아이구나.”
처음 다가와서 음식을 먹었던 어린 늑대.
그리고 강현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늑대가 강현에게 다가와서 몸을 비볐다.
강현은 웃음을 흘리고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래도 몇 번 봤다고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늑대는 간지러운지 갸르릉, 울음을 토했다.
새끼일 때도 중형견보다 크긴 했지만, 이제는 다른 늑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작 일 년 사이인데.’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니 아직은 앳된 구석이 남아 있었다.
머리의 갈색 갈기 역시 다른 늑대들보다 짧았다.
그렇게 강현에게 인사를 건넨 늑대는 형제들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현은 강가에서 뛰놀고 있는 늑대들을 보며 시간이 지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덩치만 컸지, 하는 행동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새끼들이 자란 만큼 늑대들의 경계심도 옅어진 걸 알 수 있었다.
‘모두 무사히 자라서 다행이네.’
저 정도면 이 숲속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다.
“…오기 잘했네.”
강현이 혼잣말을 하자 어깨에 앉아 있던 토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강현은 웃으며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배낭을 내려놨다.
이제 슬슬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 * *
텐트를 친 강현은 아이스팩에서 미리 끼워 놓은 꼬치를 꺼냈다.
고기와 채소, 그리고 소시지까지.
그릴 위에 올리자 고소한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꼬치를 굽던 강현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숨을 삼켰다.
어느새 강현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그림자들.
반짝이는 눈동자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살벌하네.’
강현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늑대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꼬치가 아니라 강현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수행의 효과가 있구나.’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전이었다면 당장 도망쳤을 거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하얀 털 뭉치가 보였다.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늑대보다도 반짝이는 눈으로 강현을 보고 있었다.
실소를 흘린 강현이 익은 꼬치를 건져 냈다.
그러고는 꼬치를 빼고는 고기와 채소를 접시 위에 덜었다.
접시를 내려놓자마자 설기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런 설기와 달리 얌전히 기다리는 늑대들.
‘서열이 확실하네.’
강현은 짧게 감탄했다.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설기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설기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침.
그러거나 말거나 설기는 먹느라 바빴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가 더 젖기 전에 다른 꼬치를 꺼냈다.
질서정연하게 차례대로 와서 먹는 늑대들.
그 모습에 강현이 감탄했다.
‘아직 어린데 대견해.’
그와 달리….
강현은 옆에 있던 설기를 보였다.
어느새 다 먹었는지 고개를 들고 있는 설기.
해맑은 모습. 그러나 강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숨긴 채소 다 먹지 않으면 다음은 없어.”
“끼잉?”
모른 척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하지만 강현은 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