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7)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37화(237/251)
237화 일꾼이네
보조 피디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기획서를 바라보았다.
청춘남녀.
연예인들이 시골에 내려가서 자급자족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일을 돕고 보상으로 식자재나 여러 생필품을 구하는 이야기.
얼마 전까지는 인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성적이 저조했다.
이제는 프로그램 존폐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앞에 놓은 기획서를 본 보조 피디의 눈이 떨려왔다.
출연진들에게 나눠 준 것과는 다른 기획서.
즉, 두 가지 기획서가 따로 있었다.
물론, 이런 건 예능에서 흔한 일이기도 했다.
관광 기획서를 보내 주고 어디 외딴섬에 끌고 가기도 한다.
당연히 출연진만 모를 뿐, 회사에는 미리 허가를 받는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기획서는 그것과 성격이 달랐다.
“…여긴 허가도 안 받았는데 괜찮을까요?”
“그러니깐 우연히 가야지, 우연히. 우연이란 말 몰라?”
보조 피디의 말에 메인 피디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박철호 피디.
대외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피디였다.
방송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인물.
그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하나하나 전부 허가받으면 언제 찍어? 그때까지 손 놓을 거야?”
박철호 피디의 말에 작가들과 보조 피디들이 눈을 피했다.
박철호 피디는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초상권이네, 시청의 허가가 필요하네, 말이 많아. 그러니 다들 스튜디오에서만 촬영하지. 이래서야 방송을 찍겠어? 야외에서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법이야.”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
박철호 피디가 작가들과 보조 피디들을 향해 눈을 흘겼다.
“시골 양반들 아니야? 방송 나온다고 하면 좋아하지. 자기네들이 언제 방송 타 봤겠어?”
박철호 피디가 말을 꺼낸 보조 피디를 보았다.
“그리고 네가 알아 온 거잖아. 싫으면 하지 말았어야지.”
박철호 피디의 말에 보조 피디가 움찔 몸을 떨었다.
박철호 피디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보조 피디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
보조 피디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알아 오라고 압박을 넣은 건 박철호 피디였다.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보조 피디는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박철호 피디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눈 밖에 나면 방송국을 나가야 했다.
“그리고 이 녀석도 그래.”
기획서를 넘기자 한 사람의 프로필이 나왔다.
“자기가 뭐라고 사람을 무시해.”
얼마 전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 셰프.
몇 번이나 연락을 보냈지만, 답장이 날아오지 않았다.
“윤하 그 새끼도 마찬가지야. 좀 잘나간다고 선배를 뭐 같이 알잖아.”
김윤하 피디.
최근 방송계에 뜨거운 인물이었다.
박철호 피디 밑에 있었지만, 지금은 박철호 피디보다 유명인이 되었다.
“자기만 쓰겠다고 숨겨 놓고. 치사한 새끼.”
박철호 피디와 다르게 능력뿐만 아니라 주변 평판도 좋은 피디였다.
그의 이름에 보조 피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김윤하 피디와 함께 일하는 동기를 통해서 출연진의 정보를 빼 왔기 때문이었다.
아마 김윤하 피디의 성격상, 직접 물으면 연락처를 알려 줬을 거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 기색의 사람들을 보며 박철호 피디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출연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인기는 금방 식어. 화제성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불러 준다면 고마워해야지. 남들은 방송 한 번 타고 싶어서 로비까지 하는 마당에.”
박철호 피디의 발언에 몇몇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박철호 피디가 접대를 좋아한다는 건 유명했다.
그리고 잘 나가던 청춘남년가 무너진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이들 대부분이 과거에 문제를 일으켰던 연예인이기 때문이었다.
2박 3일의 일정.
사람의 인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편집으로 거둬 낸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윤하 새끼처럼 띄어 줄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메일을 무시한 것도 괘씸했다.
김윤하의 방송에만 나온다는 것도 한몫했다.
‘윤하, 그 새끼는 너무 유약해.’
방송에 맞지 않았다.
출연진을 너무 띄워 준다. 그러니 출연진들이 자기 때문에 방송이 뜬 줄 아는 것이었다.
방송을 지휘하는 건 피디였다.
모든 건 피디의 손에서 결정되어야 했다.
‘뭐, 덕분에 좋은 그림이 나오겠지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무너지는 것만큼 대중들이 좋아하는 건 없었다.
김윤하 피디가 키워 낸 스타를 자신 손으로 무너트린다.
문제가 터진다고 해도 고작 셰프 한 명일 뿐이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박철호 피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청춘남녀의 다음 목적지가 결정되었다.
평창.
* * *
설기네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강현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농번기라 마을 전체가 바쁘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손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강현도 매장을 열 때보다, 밭에 나갈 때가 많았다.
“아주 농사꾼이네. 농사꾼.”
수확한 고구마를 쌓아놓자 마을 할머니 한 분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땀을 훔쳐낸 강현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토리가 나서면 순식간에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 이유는….
“저 양반들은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끙.”
할머니의 일갈에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 끝에는 알록달록한 배 바지를 입은 노인 셋이 있었다.
바로 어르신 삼인방이었다.
꽃이 그려진 농사 모자까지. 이제는 제법 시골 사람처럼 보였다.
“그나마 요리사 양반은 쓸 만한데.”
할머니가 다른 둘을 보았다.
그러자 입을 다무는 둘.
“뭔 놈의 사내놈들이 힘을 못 써. 힘을. 피해 봐.”
정기훈 작가와 이정환을 밀어낸 할머니가 둘이 해도 못 뽑던 고구마를 쑥 뽑아냈다.
그 모습에 둘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다른 이가 저런 말을 했다면 너도 내 나이가 되어 보라고 호통이라도 쳤을 텐데, 아쉽게도 할머니가 더 연상이었다.
그러고는 상자 위에 던져 놓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난 위에 영감탱이 돕고 올 테니 쉬고 있어.”
“그럼 저도….”
강현이 따라나서려고 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일당 값은 했으니 쉬어. 내일도 나올 건데 무리하면 골나.”
말투는 투박했지만, 세 어르신 때와 달리 부드러웠다.
어딜 가나 일 잘하는 일꾼은 환영받는 법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떠나보낸 강현이 뒤들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땡볕에 쓰러져 있는 노인 셋이 있었다.
그늘까지 갈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강현이 걱정스럽게 묻자 셋은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이 재밌는지 설기가 그르릉, 하고 웃었다.
“그러길래 쉬고 계시지.”
강현의 말에 셋이 시선을 피했다.
힘들다고 관두라고 하던 걸, 억지로 돕겠다고 나선 셋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돕게 할 순 없으니 노부부가 일당을 챙겨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안 받겠다고 한 셋이었나, 일당을 받아야 제대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받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태였다.
“일단, 그늘로 가죠.”
이렇게 땡볕에 더 있다가는 정말 탈이 날 수도 있었다.
강현과 설기의 도움으로 셋은 겨우 나무 밑으로 이동했다.
햇빛이 사라진 후에나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 죽겠군.”
“…그 누님이 너무 정정해.”
할머니도 계속 일하는데 젊은 그들이 쉴 수는 없었다.
누님.
그 말에 강현은 웃음을 삼켰다.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마실 것 좀 가져올게요.”
강현은 셋을 놔두고 밭 아래까지 내려가서 가방을 들고 왔다.
가방을 열자 여러 음료가 나왔다.
그중에는 막걸리도 있었다.
이제 자신들의 할 일은 끝이었다.
강현이 막걸리를 들어 올리자 셋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마시면 정말로 하나님을 뵐지도 몰라.”
정기훈 작가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듯이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을 흘린 강현이 얼린 식혜를 들고 갔다.
식혜를 마신 후에나 셋의 표정이 나아졌다.
땀을 닦아낸 이정환은 강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젊음이 좋아.”
셋과 달리 강현은 땀이 좀 난 것을 제외하면 멀쩡하기 때문이었다.
정기훈 작가가 입을 열었다.
“나도 열 살만 젊었어도 날아다녔을 텐데.”
그러자 둘의 눈빛이 바뀌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은 전해졌다.
‘진짜로 그리 생각하는가?’
그러자 정기훈 작가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누가 강현처럼 할 수 있다고 했나. 지금보다 나을 거라는 거지.”
자신이 생각해도 강현의 체력은 일반인 범주를 넘어섰다.
아마 같은 나이였다고 해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지금도 아침마다 설기와 함께 마을을 뛰고 있었다.
그걸 모를 셋이 아니었다.
식혜를 한 잔 더 들이켠 황대길이 이정환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길래 여행을 가지 그랬나.”
가족 여행.
올해에 이사 온 이정환의 아내는 첫째 자식 내외와 함께 해외여행 중이었다.
그러자 이정환이 고개를 저었다.
“여행이야 앞으로 갈 일이 많지 않은가.”
이제까지 많이 가기도 했고.
그러한 이정환의 말에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언덕 아래를 내려보았다.
마을의 전경.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밭과 논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손이 부족해 보이는군.”
기계들이 들어오면서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농촌은 여전히 손이 부족했다.
하지만 정기훈 작가가 말하는 건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읍내에서 일꾼이 오지 않았다.
“바빠죽겠는데 뭔 촬영을 하겠다고.”
정기훈 작가가 혀를 찼다.
옆 마을에서 촬영이 온다고 해서 읍내의 청년들을 대거 고용한 것이었다.
마을 청소를 위해서.
이런 바쁜 시기에 귀한 노동력이 사라진 것이었다.
“너무 나쁘게 보진 말게. 그런 방송도 나와야 이곳 홍보도 되는 것이니.”
이정환이 그런 정기훈 작가를 다독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송에서 시골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릴수록 시골로 이주하는 이들도 늘어날 거다.
‘효과는 그리 크지 않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음?”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황대길이 고개를 갸웃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초록 모자.
이장이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오다가 체력이 다했는지 손을 흔드는 이장.
일행들을 부르는 것이었다.
넷은 고개를 갸웃하고 밭을 내려갔다.
아래로 가자 잔뜩 흥분한 이장이 입을 열었다.
“강현! 일꾼, 아니, 손님이 왔어.”
이장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꾼은 뭔 소리고, 또 손님은 뭔 소리인가.
세 어르신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누구 올 사람이 있냐는 물음.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장과 만난 강현이 입을 열었다.
“이장님 대체 누가….”
하지만 강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뒤늦게 언덕을 오르는 이들.
그들이 강현을 발견하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강현은 그제야 이장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뒤따라오는 넷이야 그렇다고 쳐도, 선두에 있는 이는 마을 사람들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작년에도 마을에서 일을 했기에.
‘…정말 일꾼이네.’
이장이 반가워할 만했다.
세 어르신이 입은 옷만큼이나 화려한 아로하 셔츠에 선글라스.
이 시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패션.
강현은 손을 흔드는 윤섭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