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0)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40화(240/251)
240화 지독한 사람
깊게 눌러쓴 모자와 꽃무늬 바지도 숨겨지지 않는 외모.
오히려 꽃무늬 바지 때문에 화사함이 살았다.
“세나 씨?”
“안녕하세요. 피디님? 작가님들도 오랜만이에요.”
싱긋 웃는 세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제야 세나 뒤에 있는 이들의 얼굴도 들어왔다.
김혜성과 유니즈의 리더 소현.
출연진 중 한 명과 안면이 있었던 소현은 쪼르르 달려갔다.
“언니!”
“소댕! 여기 어쩐 일이야!”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반갑게 껴안는 둘.
그 모습에 박철호 피디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부러 왔을 리는 없겠지.’
박철호 피디는 고개를 저었다.
둘을 끼워서 팔기에는 세나란 이름이 너무 컸다.
예능에서 보기 힘든 얼굴.
고작 둘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서 움직일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나와 주면 고맙겠지만.’
오히려 고마웠다.
둘 정도는 얼마든지 써 줄 수 있었다.
멍하니 셋을 바라보던 박철호 피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셋 뒤에 한 명이 더 있기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박철호 피디와 눈이 마주친 사내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박민구입니다.”
“칠전팔기!”
박민구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등산가 박민구. 불굴의 사나이로 잘 알려져 있었다.
국민 영웅 중 하나로 불리는 이였다.
당연히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아이쿠, 제가 먼저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박철호 피디입니다.”
악수를 나누면서도 박철호 피디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아니, 왜 이 사람이 여깄어?’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수 없었다.
결국, 박철호 피디는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어떻게….”
그것도 왜 이들과 같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러자 박민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젠,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보니.”
박민구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소송으로 난리가 났었지 않은가.
덕분에 박민구와 계약을 파기한 기업은 불매 운동까지 일어났었다.
“그리고 여기에 이분들을 소개해 준 친구가 있어서. 가끔 옵니다.”
“친구분이라고 하면?”
“제게 은인 같은 친구죠. 아, 저기 오네요.”
박민구를 따라 고개를 돌린 박철호 피디가 숨을 삼켰다.
익숙한 얼굴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철호 피디가 이곳에 온 목적.
바로 강현이었다.
“이야. 잘생긴 건 알았지만, 김혜성에게도 안 꿀리네.”
“안 꿀리는 정도가 아닌데?”
땀 때문에 평소 보다 지쳐 보이는 김혜성과 달리 강현은 상쾌해 보였다.
뒤에서 제작진이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현은 제작진들에게 살짝 인사를 건네고 윤섭을 보았다.
“이야기 길어질 것 같으면 마을에서 하고 와도 돼.”
“아니야. 괜찮아. 피디님, 청춘남녀 촬영하러 오신 것 맞죠?”
“아, 예.”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박철호 피디.
그러고는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강현을 보며 말했다.
“시골 마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도와주는 방송이야. 여기도 일을 돕기 위해 왔을걸.”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을 돕는 게 무슨 재미가 있다고 방송까지 할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체험 현장 같은 건가?’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방송.
연예인들이 일을 해서 번 돈을 기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때 국민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였다.
강현이 제작진들을 봤다.
“일을, 하신다고요?”
아까와 달리 반짝이는 눈동자.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의 눈빛이 그러할까.
하지만 박철호 피디 역시 방송 경력이 짧지 않았다.
“아니….”
본능적으로 위험을 깨닫고 입을 열려는 찰나, 옆에 있던 보조 피디가 나섰다.
“예. 이장님에게도 허락받았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보조 피디.
그러자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을 하시네요.”
강현의 웃음에 뒤에 있는 여성 작가 몇몇이 탄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박철호 피디는 강현 뒤에 있던 소현과 김혜성의 표정을 확인했다.
연민과 동정.
그리고 동료가 생겼다는 기쁨까지.
“일단 그 모습이면 작업하기 힘들 테니 옷부터 갈아입죠. 혜성씨?”
“예!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강현의 부름에 후다닥 달려 나가는 김혜성.
“잠깐만요.”
박철호 피디가 제지하려는 찰나, 윤섭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래도 모처럼이니 저희도 방송 내보내도 됩니다.”
“예? 그럼 세나 씨도?”
갑작스러운 말에 박철호 피디의 사고도 멈췄다.
윤섭은 슬쩍 세나를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세나.
뒤에서 제작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어다.’
눈을 반짝이는 박철호 피디.
“그래도 일단 여배우이기도 하니 너무 심하지 않게만 부탁드립니다.”
“물론 잘 알죠.”
일하면 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여배우 이미지를 생각해서 멀리서만 찍어 달라는 소리였다.
코디도 없으니 화장을 고치기도 힘들었다.
하물며 옷차림도 문제였다.
‘그래도 나오는 게 어디야.’
예고편으로 따면 기대치가 올라갈 거다.
본편에서는 중간중간에 한 번씩 얼굴만 비추면 되었다.
“아, 물론 다른 둘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됩니다.”
“아무렇게라뇨! 저도 아이돌이에요!”
소현이 발끈했지만, 윤섭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 윤섭의 시선이 박민구에게 향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박민구.
“선생님도 편하게 찍으셔도 됩니다.”
“어휴, 감사합니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공짜로 쓸 순 없었다.
최소한의 출연료는 맞춰 줘야 했지만, 그래도 이득이었다.
세나와 박민구의 경우에는 출연료를 준다고 해도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뭘요. 같은 세계 사람들인데, 돕고 살아야죠. 대신 다음번에 저희 애들과 작업할 일이 있으면 잘 부탁드려요.”
윤섭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박철호 피디 역시 환하게 웃었다.
박철호 피디의 눈에는 윤섭이 자신을 돕기 위해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혜성이 옷을 가져왔다.
일행들이 입는 것과 같은 작업복.
“진짜 본격적이네?”
남성 출연진들은 희희낙락하며 옷을 골랐다.
그러던 도중 작가 하나가 의문을 표했다.
“응? 근데 옷이 너무 많지 않나요?”
“아, 혹시나 해서요.”
김혜성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꾸했다.
혹시는 무슨 혹시인가.
의아했으나 김혜성의 웃는 얼굴에 작가의 얼굴도 풀어졌다.
여성 출연자 몇몇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불평하지 못했다.
바로 세나 때문이었다.
세나도 입고 있으니, 여기서 불평해 봤자 자신들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억지로 웃으며 입을 수밖에 없었다.
뒤적거리면서 그나마 나은 옷을 찾아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다 입으셨으면 세 분은 이쪽으로 오세요. 두 분은 윤섭이 형을 따라가면 됩니다.”
“자, 자. 이쪽입니다.”
“예? 아, 예.”
얼떨결에 강현과 윤섭을 뒤따르는 출연진들.
그에 따라서 제작진들도 갈라졌다.
윤섭은 떠나면서 세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세나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 씨.”
“예?”
“저분들 가실 때까지만 저나 어르신들 곁에 붙어 있으세요.”
이해할 수 없는 말. 하지만 세나가 강현에게 해가 될 일을 시킬 리가 없었다.
강현은 힐끗 제작진들을 봤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세나라면 모를까, 세 어르신은 지금까지도 계속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걸어가는 박철호 피디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피디님, 어떻게 하죠?”
작가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왔지만, 이제는 굳이 강현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뭔가 괘씸했다.
‘내 메일을 무시한 것도 그렇고.’
사과조차 없었다.
아까 인사를 건넬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 피디가 아닌, 일반 손님처럼 박철호 피디를 대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억지로 그림을 만들기도 힘들었다.
‘그랬다가는 양쪽 다 살리지 못하겠지.’
자존심이냐, 시청률이냐.
고민하던 박철호 피디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 녀석.”
강현의 다리에 털을 비비는 하얀 강아지.
곧 박철호 피디를 보더니 해맑게 웃었다.
강현도 그렇지만, 저 강아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박철호 피디.
“…일단 한 대 정도만 카메라는 돌리라고 해.”
마킹을 붙인다는 소리였다.
굳이 지금 모든 걸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상황을 보면서 정해도 늦지 않았다.
강현과 설기를 바라보는 박철호 피디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 * *
강현의 지시는 부드럽지만, 가차 없었다.
“세나 씨. 거기 정리 끝나셨으면, 이쪽도 도와주시겠어요? 소현이는 이쪽을 부탁해.”
“예.”
“예!”
“아, 세 분은….”
강현의 시선이 세 출연자들에게 향했다.
땀을 비 오듯 쏟고 있는 세 명.
“음. 제가 손님을 너무 시켰네요. 좀 쉬고 계실래요?”
강현의 물음에 저도 모르게 대답할 뻔 한 출연진들.
하지만 곧 자신을 향해 있는 카메라를 보고는 애써 미소 지었다.
“아뇨. 도와주러 왔는데 저희만 쉴 순 없죠.”
차라리 모두 다 쉬면 모를까.
출연진은 저희만이란 말에 힘을 줬다.
다 같이 쉬잔 소리였다.
그런 출연진들의 모습에 강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정리하고 같이 쉬죠. 저쪽 밭까지만 하면 오늘 할 일은 끝이에요. 여러분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나네요.”
환하게 웃는 강현.
그 모습에 출연진들도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다.
그때, 뒤쪽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섭이 있는 방향.
‘차라리 저길 따라갈걸.’
출연진들이 속으로 욕을 삼켰다.
여긴 정말 일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출연진들도 이제는 묵묵히 일만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참된 노동의 현장.
‘…기회를 봐서 바꿔 달라고 할까?’
슬그머니 유혹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건 강현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강현이 윤섭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형, 작업이 너무 더딘 거 아니야? 이대로라면 형네는 저녁까지 해야 해.”
“…!”
“…!”
출연진들의 눈이 커졌다.
형네는.
즉, 공통 작업이 아니라 개별 작업이란 소리였다.
‘…저녁까지 하는 것보단, 후딱 끝내는 게 낫지.’
다시 보니 작업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장님께서 고기를 준비한다고 했으니 저녁 전에는 맞춰 줘.”
“…응.”
강현의 잔소리를 들은 윤섭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했지만, 옆에 있는 이들과 작업량 차이가 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제작진들은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지독한 사람.’
보통이라면 연예인들이라고 봐주기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한 번 물어보고 괜찮다면 다시 일을 시켰다.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누가 쉬겠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불평할 수도 없었다.
당장 세나에게 일 시키는 것만 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출연진들보다 더 많이 시켰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작이란 소리는 안 나오겠네.’
이 모습을 보면 방송을 위해서 섭외했다는 소린 나오지 않을 거다.
게다가 이렇게 고생하면 진실성도 있어서 시청자도 좋아할 거다.
어차피 재미있는 그림은 저쪽에서 많이 뽑았다.
‘윤섭 씨라고 했지.’
누가 보면 매니저가 아니라 개그맨이라고 생각할 거다.
계속 분위기를 띄워 주고 있었다.
‘출연진들은 고생하겠지만.’
제작진들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강현과 윤섭의 대화를 들은 출연진들은 서로 시선을 던졌다. 곧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이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쉴 수 있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를 악물고 일을 시작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작진 놈들.’
그들 역시 땡볕에서 촬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밭일하는 출연진들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특히나 자신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까지 띠고 있지 않은가.
출연진들 눈에는 앉아서 쉬는 걸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제작진들에게 노인 하나가 다가가는 게 보였다.
아까부터 말없이 일을 이어 가던 노인 중 하나.
출연진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이 힘들어서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익숙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