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1)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41화(241/251)
241화 좋은 사람들이지
감자가 든 상자를 들고 가던 노인이 출연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지나가게 비켜 주시겠나?”
다른 길도 있는데 굳이 제작진들이 있는 방향으로 온 노인.
제작진 중 몇몇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황대길 선생님?!”
노인의 얼굴을 알아본 작가 하나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이들의 입에서 경악이 쏟아졌다.
한식의 대가.
주부들의 영웅.
황대길이 왜 여기 있는가.
물론, 시골에서 밥상을 차리는 프로그램도 했었으니 어울리지 않는 그림은 아니었다.
멀리서 상황을 보고 있던 박철호 피디는 황대길이란 말에 후다닥 달려왔다.
“아이쿠, 선생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보면 모르나. 일하러 왔지.”
퉁명스럽게 내뱉는 황대길.
하지만 황대길의 성격은 이미 알려져 있기에 박철호 피디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보다는 황대길이 왜 이곳에 있는지가 중요했다.
박철호 피디가 입을 열려는 찰나, 황대길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보다 안 피해 줄 건가?”
바닥에 내려 놓은 감자를 가리키는 황대길.
누구의 명이라고 거절할까.
화들짝 놀란 제작진들이 자리를 피했다.
분명 여기까지 멀쩡하게 들고 왔으면서 낑낑거리며 상자를 옮기는 황대길.
박철호 피디의 눈짓을 받은 보조 작가 하나가 상자를 대신 들었다.
“어휴, 고맙네.”
사양하지 않고 손을 놓는 황대길.
그 옆으로 박철호 피디가 다가왔다.
“선생님. 잠깐만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박철호 피디의 눈이 반짝였다.
여기서 황대길의 인터뷰까지 실린다면 시청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황대길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네. 그러고 싶어도 여유가 없네.”
“예?”
“오늘 할당량을 끝내야 해서 말이야. 이래 봐도 돈 받고 하는 일이라 쉬면 눈치가 보인다네….”
황대길이 뒷말을 흘렸다.
그러자 박철호 피디가 벌떡 뛰어올랐다.
“대체 어느 누가 선생님께 눈치를 줍니까?!”
당장이라도 나서려는 듯 팔을 걷어붙이는 박철호 피디.
황대길은 부드러운 미소로 한 쪽을 바라보았다.
강현.
대체 강현이 뭐길래. 그 대답은 황대길에서 나왔다.
“느지막이 얻은 제자라네.”
“예? 강현 씨는 양식이 아닌가요?”
“양식이나 한식이나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건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이지.”
황대길의 말에 제작진들이 감탄을 토했다.
그러나 몇몇은 강현을 보며 치를 떨었다.
‘…선생님을, 그것도 제자란 양반이!’
연예인들에게 일 시킬 때도 가차 없더니 황대길마저도 일을 시킨단 말인가!
이제 박철호 피디 역시 자신의 오해였다는 걸 알아챘다.
‘윤하 녀석이 일부러 숨긴 게 아니었어.’
저런 성격이면 다루기 힘들 거다. 그러니 자주 나올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갑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강현은 세 어르신에게 일을 시킨 적이 없었다.
세 노인이 알아서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작진들은 강현을 보며 쑥덕거렸다.
“역시 얼굴값을 한다는 건가.”
“모든 게 완벽할 순 없지. 저 나이에 저만한 성공을 거두고, 외모도 뛰어나니.”
뒷말을 삼켰다.
“그나저나 여긴 어떤 곳이야. 세나가 밭을 갈고 김혜성이 감자를 캐?”
“황대길 선생님이 짐을 나르잖아. 강현 씨도 있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이야기만 들으면 이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러니 난 일하러 가 보겠네.”
황대길이 다시 나서려고 하자 박철호 피디가 붙잡았다.
“잠시, 잠시만요. 할당량이 어느 정도죠?”
“저 위에 있는 감자만 캐면 된다네.”
“…저걸 다요?”
아직 한참 남았다.
박철호 피디는 속으로 강현을 욕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박철호 피디와 눈이 마주친 강현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출연진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지시를 내리는 게 익숙한 모습.
헤드 셰프로서의 경력 덕분이었지만, 박철호 피디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강현을 띄워 준 이유를 다시 깨달았다.
‘이런 본성이 나오면 프로그램도 터지겠지.’
적당한 논란은 홍보가 되겠지만, 이 정도면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아마 황대길이 일하는 걸 지켜만 봤다고, 제작진들에게도 화살이 돌아올 거다.
그야말로 양날의 검.
이제 박철호 피디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를 제어하는 건가.’
아무리 시청률이 필요해도 그렇지.
인맥을 생각하면 버리는 패로 쓸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계륵 중에 계륵.
처음으로 질투가 아닌 존경심이 올라왔다.
하지만 피디의 본분은 잊지 않았다.
“일이라면 저희가 돕겠습니다. 조금 쉬십시오.”
“음, 자네들도 바쁜 게 아닌가?”
조금 망설이는 듯한 말투.
그러자 박철호 피디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손이 남는 이들이 있습니다.”
박철호 피디는 보조 피디 몇과 작가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당연히 그들의 얼굴은 썩어들어갔다.
황대길은 그들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일을 남에게 시킬 수 있나.”
보조 피디와 작가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곧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박철호 피디를 보았다.
직급이 깡패라고 했던가.
보조 피디 하나가 눈물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저희도 돕고 싶습니다. 꼭 돕게 해 주세요.”
신입 사원의 면접에서나 나올 법한 발언.
그러자 황대길이 볼을 긁적였다.
그러다가 곧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그렇지. 옷 버리네. 안 돼.”
“옷이라면 있습니다!”
다급한 외침.
박철호 피디는 김혜성이 놔두고 간 옷들을 가리켰다.
비상용으로 들고 왔다는 옷.
지금이 비상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가 비상 상황이겠는가.
“그래?”
황대길의 물음에 보조 피디와 작가들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는 이들.
그들의 행동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보고 있던 황대길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는 왜 안 갈아입나?”
“…예?”
갑작스러운 말에 박철호 피디가 눈을 껌뻑였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러자 황대길이 짧게 혀를 찼다.
“방송 피디란 양반이 그래서야 되겠나. 저들만 일하고 우리가 앉아서 떠들면 시청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
맞는 말이었다.
“대화는 밭에서도 충분하네. 오히려 그편이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피디와 같이 밭일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훨씬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다른 출연진이 이런 말을 했다면 가볍게 무시했을 텐데, 말을 꺼낸 이가 하필 황대길이었다.
게다가 먼저 말을 꺼낸 건 박철호 피디 아닌가.
여기서 거절할 순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옷을 갈아입는 박철호 피디.
덕분에 먼저 옷을 갈아입던 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그 대상이 박철호 피디이기에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황대길과 함께 밭으로 올라가는 제작진들.
하지만 박철호 피디는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넘어졌다.
쿵.
“조심하게. 괜찮은가?”
일어나서 흙을 터는 박철호 피디.
그는 발밑을 확인했다.
‘…누군가가 잡아당긴 것 같았는데.’
그러나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닙니다.”
고개를 내젓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박철호 피디.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넘어졌다.
철퍼덕.
“아직 젊은 양반이 그리 힘이 없어서야.”
하지만 박철호 피디는 황대길의 말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분명해.’
무언가가 다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박철호 피디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박철호 피디.
그러나 또 얼마 가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러자 황대길이 혀를 찼다.
“…일하기 싫으면 억지로 따라올 필욘 없네.”
아까와 달리 쌀쌀맞은 태도.
한 번도 아니라 무려 세 번.
그리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먼저 가고 있던 보조 피디들과 작가들의 눈빛도 바뀌었다.
우리는 일 시키고, 정작 박철호 피디 본인은 일하기 싫어서 쇼를 한다?
박철호 피디로서는 억울할 뿐이었다.
일하기 싫은 건 맞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시발, 뭐야.’
귀신이라도 있는 건가.
이 대낮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신을 보는 시선들 때문에 애써 웃으며 걸어갔다.
이후로는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밭에 도착하고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박철호 피디.
“그럼, 일을 시작하지.”
“아, 예.”
황대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철호 피디는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두려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괜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희끗희끗한 무언가도.
부스럭, 부스럭.
바람이 불지 않는데, 박철호 피디의 수풀만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박철호 피디.
그렇게 박철호 피디는 한참이 지난 뒤에서나 밭에 온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 * *
“그,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피, 피디님?”
강현은 도망치듯 떠나는 박철호 피디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피디를 다급하게 쫓아가는 제작진들.
밭일이 끝나고 식사를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매우 바쁜가 보네.’
고기라도 먹고 같으면 좋았을 텐데.
강현은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작업이 끝나있는 밭들.
많은 인원이 도와준 덕분에 금세 일이 끝났다.
‘며칠은 편해지겠네.’
인원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굳이 토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좋은 사람들이네.”
“응? 뭐라고?”
옆에 있던 윤섭이 고개를 돌렸다.
강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고.”
제작진들까지 나서서 밭일을 도와줄 주는 몰랐다.
그러한 강현의 이야기를 들은 윤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사람들이지.”
강현과 달리 윤섭은 박철호 피디의 소문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스스로 나서서 했을 리가 없었다.
윤섭의 시선이 세 어르신에게 향했다.
아마 어르신들이 계획한 것일 거다.
강현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세 어르신에게는 제작진들이 어떤 목적으로 여길 왔는지 귀띔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섭과 눈이 마주치자 정기훈 작가가 장난스럽게 윙크를 던졌다.
이정훈과 황대길은 민망했는지 헛기침했다.
‘좋은 사람들이지.’
저런 사람들이 강현의 곁에 있어서 안심이었다.
“자. 그럼 먹으러 갈까?”
“벌써 연기가 올라오네요.”
고기 굽는 냄새.
“크으, 이때만을 기다렸습니다!”
김혜성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강현 역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이장님께서 오늘은 편하게 마시라고 했습니다. 작업을 많이 끝내서 낼 오후부터 나오라고 하셨어요.”
“오오!”
일행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좋아. 오늘은 달리는 겁니다!”
희희낙락 웃으며 내려가는 일행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강현은 곧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털 뭉치를 볼 수 있었다.
설기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토리와 루리.
정말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귀여운 모습이었다.
강현은 셋의 머리를 차례대로 쓰다듬어 줬다.
“오늘 안 보이던데 어디 갔다 왔어?”
평소라면 강현의 곁에 있을 터인데, 오늘은 보이지가 않았다.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표정.
“아니야.”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셋도 고생했어. 가서 밥 먹자.”
“컹!”
강현의 말에 셋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