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9)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49화(249/251)
249화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떠나는 건 아니었다.
영주나 족장, 장로의 허락이 떨어졌다지만, 각자의 사정도 있었다.
‘특히나 란돌프 씨는 더욱 그렇지.’
홑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훌쩍 떠났다가는 뒷일이 걱정이었다.
란돌프 씨처럼 가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에밀리야와 노아 역시 맡은 직책이 작지 않았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일행들은 사흘 뒤 다시 만나기로 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강현 역시 시간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리 보니 엄청나네.’
강현은 한쪽에 쌓여 있는 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규모가 커진 만큼 짐도 많아졌다.
며칠에 나눠서 옮길 때는 잘 몰랐지만, 한 번에 가지고 오니 양이 상당했다.
다행이라면 식자재는 대부분 소진시켰다는 것이었다.
강현은 장비들을 보았다. 매장에서 쓰던 것도 있었지만, 이번 운동회를 위해서 새로 산 장비들을 제법 많았다.
“…다 가져갈 필욘 없으니 구분부터 해야겠네.”
여기에 둘 것과 매장으로.
그리고 새로 산 것 중에는 매장에서 쓸만한 것도 있었다.
“사흘로 부족할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누군가가 강현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내리자 토리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옆에 있던 루리도 늠름한 표정으로 날개를 펼쳤다.
자신들이 돕겠다는 뜻이었다.
“그래, 고마워.”
강현은 웃으며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간지럽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는 둘.
그런 둘과 달리 한 쪽에 누워있는 털 뭉치가 하나.
강현의 눈이 향하자 서럽다는 듯이 울음을 토했다.
“끼잉, 끼이잉.”
결국, 배탈이 난 것이었다.
‘그럴만하지.’
그러나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평소에 설기가 먹는 양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설기가 배탈이 날 정도라면 얼마나 무식하게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단식하려고 했으니.’
좋은 기회였다.
강현이 시선을 돌리자 설기의 앓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 시작해 볼까?”
강현의 말에 토리와 루리는 설기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안쓰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둘에게도 설기가 미련해 보였나 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셋.
홀로 남은 설기의 앓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 * *
사흘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세계로 넘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강현을 맞이했다.
“오, 왔군.”
눈을 반짝이고 있는 건 로멘이었다.
로멘뿐만 아니라 아우라나 제니퍼, 하만의 모습도 보였다.
강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제니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먼 여행을 떠나는데 배웅을 해 줘야죠.”
무려 이세계로 떠나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우라와 하만.
그러나 로멘은 목적이 다른 모양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놓칠 순 없지 않은가!”
로멘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르는 이가 보면 로멘이 떠나는 줄 알 거다.
웃음을 삼킨 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번 여행을 떠날 이들이 서 있었다.
로멘만큼은 아니었지만,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강현은 그들을 본 순간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아.”
무심코 나온 탄식.
그러자 들떠 있던 셋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고개를 갸웃하는 셋.
셋의 반응에 강현의 눈이 떨려 왔다.
정말 모르는 건가.
“…세 분, 그 복장은?”
“아, 너무 힘을 줬나?”
란돌프가 멋쩍게 웃었다.
란돌프는 금방이라도 공장에서 나왔을 것 같은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망토까지 걸친 모습.
“내가 아끼는 장비이지.”
란돌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중간중간 나 있는 상처들을 보면 새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정비를 잘했다는 소리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허리춤에는 두 개의 검, 등에는 활까지 보였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용병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장을 한 건 란돌프만이 아니었다.
란돌프처럼 과하진 않지만, 에밀리야 역시 나무줄기와 나뭇잎으로 엮은 투구를 쓰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커다란 활과 옆으로 놓인 화살통이었다.
그리고 하늘하늘한 망토를 입고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안쪽에 숨긴 단검이 번뜩였다.
그나마 노아는 양반이었다.
갈색 갈기가 멋진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무기는 없었다.
목과 팔목, 허리에는 이빨과 뿔로 만든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단지, 후드처럼 눌러쓰고 있는 맹수의 머리가 흉흉함을 더할 뿐이었다.
마왕을 토벌하러 간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들이었다.
놀라운 점은 다른 누구도 셋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멘이 웃으며 란돌프의 어깨를 쳤다.
“오랜만에 나간다고 너무 멋을 부린 거 아닌가?”
“그렇습니까?”
뒷머리를 긁적이는 란돌프.
그를 따라 에밀리야와 노아도 제 모습을 확인했다.
“멋져요, 에밀리야 님.”
“고마워. 아우라.”
수줍게 입을 여는 아우라를 보며 에밀리야가 싱긋 웃었다.
하만 역시 노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경이 섞인 눈빛.
그도 그럴 것이 노아가 찬 장식들은 아무나 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인의 시련을 이겨낸 자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한 장식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위대한 전사란 소리였다.
어느 부족에 가더라도 존경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강현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이들의 반을 본 강현은 자신의 잘 못을 깨달았다.
‘…그래, 이세계였지.’
검과 마법이 있는 세계.
지적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란돌프를 돌아봤다.
“일단 무기랑 갑옷부터 다 내려놓으세요.”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현, 자네는 너무 안전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네. 모험이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항상 대비하여….”
“쓸 일이 없으니 놔두세요. 그리고 어차피 체격이 줄어들면 갑옷도 안 맞잖아요.”
“…엇.”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눈을 껌뻑였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조, 조정하면 입을 수는 있다. 거기서 전투라도 벌어지면 이 갑옷이 필요할 거다.”
란돌프뿐만 아니라 노아와 에밀리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강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싸울 일 없어요. 설령 생긴다고 해도 무기는 필요 없어요.”
만약 시비가 붙어도, 무기를 휘두르면 문제가 커진다.
‘…애당초 이 사람들 온몸이 흉기잖아.’
직접 겪어 봤기에 잘 알았다.
그리 말해도 쉽사리 무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만큼 불안도 있는 것이었다.
안전하다는 걸 알려 줘야 했다.
“다들 저 처음 봤을 때 기억하죠?”
강현의 물음에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저쪽에서는 체력이 좋은 편이에요. 다들 그 정도 수준입니다.”
“…과연.”
“확실히, 그 정도라면 무기는 필요 없겠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셋.
정작 말을 꺼낸 강현은 셋이 쉽게 인정하자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나 정도는….”
“안 됩니다.”
“…우리 대련도 해야 하는데.”
란돌프의 말에 에밀리야와 노아 역시 강현을 바라보았다.
절실한 표정.
무기가 없다면 제대로 된 대련을 펼칠 수 없었다.
차마 셋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던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씩만 들고 가세요. 단, 들고 다니면 안 됩니다. 놔두고 있다가 대련 때만 사용하세요.”
“그렇지.”
“약속할게요.”
그제야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둘. 무기가 없는 노아 역시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곧 하나둘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한쪽에 쌓여 가는 무기들.
강현은 질린 기색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이었구나.’
란돌프는 갑옷을 입어서 숨길 곳이 많다지만, 에밀리야는 망토를 제외하면 숨길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오는 양은 비슷했다.
갑옷을 벗고 무기를 내려놓자 그나마 좀 나았다.
‘…아니, 나은 거 맞나?’
아직 망토는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갑옷과 무기에 대한 충격이 강했던 탓인지 나아 보였다.
“그, 망토는….”
“벗을까요?”
에밀리야가 훌러덩 망토를 벗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의상.
강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빠른 움직임을 위해서 요정들은 몸에 들러붙는 의상을 입는다.
그런 복장보다는 차라리 망토가 나았다.
“란돌프 씨만 벗어 주세요.”
차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란돌프 역시 에밀리야의 옷차림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둘은 해결되었고.’
강현의 시선이 노아에게 향했다.
노아는 잠시 망설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가죽을 벗었다.
“…이거면 되나?”
성난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 장식들도….”
“이건 전사의 증표다.”
절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하만도 거들었다.
“마을을 나설 때는 모두 차고 다녀요.”
의미가 담긴 물건이란 뜻이었다.
강현의 얼굴에 곤란함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의 옷을 빌려주기에는 몸집이 너무 컸다.
목걸이를 차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강현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로멘.
늘 커다란 로브를 입고 있는 로멘.
“로멘 님 혹시 로브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응?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로멘이 로브를 벗어줬다.
대수롭지 않게 건네줬지만, 마법사에게 로브는 특별한 의미였다.
상징적 의미도 있었지만, 안에 마법이 그려진 보호 장비였다.
그만큼 강현과 일행들을 믿기 때문이었다.
“대신 옷 안으로 넣어 주세요.”
“그렇게 하겠다.”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셋에게 목걸이를 건넸다. 목걸이를 차니 작아지는 몸.
로멘의 로브가 노아에게 딱 맞았다.
이제 겨우 떠날 준비가 되었다.
강현은 옆에 놓인 장비들을 보았다.
그러자 하만과 아우라가 나섰다.
“저희가 보관하고 있을게요.”
강현이 에밀리야와 란돌프를 보았다.
무인에게 무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에게 쉽게 맡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둘 역시도 로멘이 그랬던 것처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요.”
“부탁하지.”
둘의 대답에 아우라와 하만도 미소 지었다.
이제 정말로 종족을 넘어선 신뢰가 쌓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셋은 문을 넘었다.
* * *
넘자마자 싸늘한 한기가 일행들을 감쌌다.
“여긴 제법 쌀쌀하네요.”
창고를 둘러보며 에밀리야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란돌프와 노아.
아직 겨울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근력이나 체력은 줄어들었다지만, 이 정도의 추위에 굴할 셋이 아니었다.
“컹! 컹!”
창고만 있는 게 답답했는지 설기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설기를 따라 창고를 나서는 일행들.
나가자마자 낡은 집이 일행들을 맞이했다.
“여긴….”
“돌아가신 조부의 집이에요.”
“독특한 형태군.”
신기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낡은 집을 돌아보는 일행들.
강현은 가만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먼저 나갔던 설기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컹! 컹! 컹!”
빠르게 움직이는 꼬리.
고개를 갸웃하던 강현은 곧 설기가 짖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집을 둘러보던 이들 역시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건.”
하늘하늘 내려오는 무언가.
에밀리야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눈이군요. 오랜만에 보네요.”
“이것이?”
노아와 란돌프는 처음 보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덩치 큰 두 사내가 그러니 귀엽게 보였다.
강현은 그들을 보며 늦은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2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시기.
새로운 손님들을 축복이라도 하듯 하늘에서는 때늦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