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Life Through Camping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3)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93화(93/251)
#93화 분홍팀 이겨라!
아침에 눈을 뜬 강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배낭을 뒤져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다가 문뜩 이상함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목이 탈 뿐 몸은 괜찮았다.
어제 마신 양을 떠올리면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어야 했다.
‘술이 세진 건가?’
최근에 술 마실 일이 많았으니 그래도 이상하지 않았다.
강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구석에서 잠을 자는 설기의 배가 빵빵했다.
설기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모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의 표정이 괴로워 보였다.
강현이 마실 동안 계속 먹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화도 시키지 않고 바로 잤지.’
아무리 설기라도 한계가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이 천막 밖으로 나왔다.
천막 밖은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두 발로 걷던 이들이 네발로 걷고 있기 때문이었다.
벌써 두 번째였지만, 진귀한 광경이었다.
“오, 일어난 건가?”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두꺼운 팔이 강현의 목을 감쌌다.
“괜찮아 보이네? 그럼 해장을 해야지!”
무슨 해장을 말하는 걸까. 강현의 시선에 카샨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카샨이었지만, 곧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으음.”
킁, 킁.
강현의 몸 냄새를 맡는 카샨.
강현이 당혹스러워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어제는 몰랐는데, 뭔가 바뀌었어. 아니, 섞였다고 해야 하나?”
“예?”
카샨이 고개를 들어서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카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특별한 일이 있었어?”
“특별한 일이라면….”
어제 다 이야기했다. 그 외에는….
곧 무언가를 떠올린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아, 설기네 가족을 봤었어요.”
“호오, 하얀 늑대를? 자세히 이야기해봐.”
카샨의 손짓에 강현의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강현의 이야기가 끝나자 카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늑대의 냄새가 섞인 것이었어.”
“늑대요?”
강현의 물음에 카샨이 입꼬리를 올렸다.
“늑대의 축복을 받은 거야.”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러자 카샨이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얀 늑대들이 그대를 잘 보았나 보군. 수인 중에서도 하얀 늑대의 축복을 받았던 이는 손에 꼽을 정도야.”
“…음, 좋은 건가요?”
“당연하지. 축복을 받은 이는 늑대의 심장을 지니게 되지.”
“…늑대의 심장 말입니까?”
강현이 물끄러미 제 가슴을 내려보았다.
그러자 카샨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심장이 아니라 그만큼 용맹해진다는 소리야. 전에 인간들의 영주를 만났을 때, 기사들과 같이 만났다고 했지?”
“아, 예.”
“그때 어땠어?”
“으음.”
강현이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놀라운 경험이긴 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런 강현의 반응에 카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테무 전사장을 봤을 땐?”
“…무섭게 느껴졌죠.”
위협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설기가 있었기에 마주할 수 있었다.
“영주가 데리고 다니는 기사들이라고 하면 평범한 이들은 아닐 거야. 노아의 말대로라면 기사단장이란 인간은 테무 전사장보다 실력이 좋겠지. 쉬고 있으면 모를까 호위 중일 때는 자신들도 모르게 날카로워져. 영주도 마찬가지야. 한 성을 다스리는 성주가 평범할 리가 없어.”
“아….”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는 카샨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압도되는 감각.
영주를 만났을 때는 기품만이 느껴졌다. 란돌프나 기사들 역시 평소보다 경직되어 보일 뿐이었다.
영주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강현이 변한 것이었다.
카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게다가 하얀 늑대는 모든 늑대의 어머니지. 앞으로 늑대들이 널 공격할 리는 없을 거야.”
설기가 없더라도.
카샨의 말에 강현이 얼떨떨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한 건가?’
다시 웃음을 터트린 카샨이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체력과 회복력도 좋아지지. 앞으로 잔병치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것은 참 좋은 소식이군요.”
뒤에서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노아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안 그래도 슬슬 강도를 올리려고 했는데.”
노아의 말에 강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좋아. 이런 일을 그냥 넘길 순 없지. 축하주다!”
카샨이 외쳤다. 강현은 그런 카샨은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인이고 환영회고, 다 핑계 아닌가….’
그저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 그때, 노아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참으셔야 합니다.”
노아의 말에 카샨의 표정이 변했다.
“수확이 있었나 봐? 좀 걸릴 줄 알았는데?”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인내심도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카샨은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됐네. 아쉽지만 술은 다음에 해야겠어.”
아쉽지는 않다. 이미 어제 지겹도록 마셨기 때문이었다.
“그럼, 노아 전사장이 강현을 데려다주고 와.”
고개를 끄덕이는 노아. 강현은 카샨을 보며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닫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현의 입이 열렸다.
“…무운을 빌게요.”
강현의 말에 카샨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 정도의 상대는 아니지만, 고맙게 받아들이지.”
카샨은 손을 흔들더니 걸음을 옮겼다. 그런 카샨을 보던 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별일 없겠죠?”
“문제없다. 족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걱정할 상대는 아니다.”
담담한 노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 준비를 하도록.”
강현은 천막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자마자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아직도 자는 설기와 모나.
강현은 다가가서 빵빵하게 부푼 설기의 배를 쿡, 눌렀다.
“끼이잉.”
괴로운 듯이 허우적거리는 설기.
“설기야, 일어나야지.”
“으응. 바압?”
설기가 아니라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모나가 자기 꼬리 털을 씹고 있었다.
‘…꿈에서도 먹는구나.’
정말 대단한 식욕이었다.
그러는 사이 설기가 깼는지 몸을 돌렸다.
“일어났어?”
“…끼잉.”
설기가 몸을 흔들더니 길게 하품했다. 그리고는 강현을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어째 배뿐만이 아니라 볼도 빵빵해진 느낌이었다.
해맑게 웃는 설기를 본 강현이 피식 웃었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집에 가자.”
“컹!”
설기가 강현을 뒤따랐다. 강현은 힐끗, 모나를 보았다.
털이 텁텁했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렸으나 씹는 걸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이 천막을 나왔다.
* * *
“도착했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강현은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수인들이 술 마신 후에 네 발로 걷는 게 이해가 되었다.
다행이라면 이제 토하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점점 적응하는 것이었다.
‘…기쁘진 않지만.’
머리를 흔들어서 어지러움을 날려 버렸다.
그때, 노아가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조금 훈련을 봐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예?”
“이번 일이 정리되면 제대로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뭘 제대로 봐준다는 건가? 그럼 지금까지는 제대로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강현이 놀라거나 말거나 노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얀 늑대의 축복까지 받았으니 본격적으로 가르쳐도 되겠지.”
본격적으로.
그 어감이 이렇게도 불길하게 들려올 줄은 몰랐다.
노아가 굳어 있는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다음에 보지.”
그리 말한 노아가 수풀로 사라졌다.
강현은 허망한 눈으로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 * *
지구에 도착하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서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강현은 아침 일찍부터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리고 상후와 미영이가 다니는 학교에 도착했을 때, 두 눈을 의심했다.
한쪽에 쳐진 천막들.
거기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장님?”
곧 강현을 발견했는지 이장이 환하게 웃었다.
“오? 그 짝도 왔어? 올 거면, 진작 말하지. 태워 왔을 텐데.”
강현의 시선이 이장이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낡은 천막과 간이 테이블.
그 위에 올라와 있는 건 안주와 막걸리였다.
강현은 운동회가 아니라 축제에 잘못 온 건가 의심했다.
“뭐 혀? 어서 앉어.”
“아, 예.”
강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장의 옆에 앉았다.
마을 어르신 몇 분은 아직 운동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취기로 얼굴이 붉었다.
‘…이래도 되는 거야?’
대학교가 아니라 초등학교 운동회였다. 그러나 강현의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웃으며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만이 아니라 강현이 모르는 얼굴들도 제법 있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인가?’
이 근방에 있는 초등학교가 여기뿐이니 그럴 수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아이들이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줄을 맞춰서 걸어 나오는 아이들.
그걸 본 이장이 벌떡 일어났다.
“상후야! 이겨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뭘 이기란 말인가.
그러나 이장뿐만 아니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아이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뭐, 상관없나.’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는 이장이 건네준 종이컵을 받았다.
안에는 당연히 막걸리가 들어 있었다.
‘당분간 술은 안 마시려고 했는데.’
설마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술을 마실 줄은 몰랐다.
그러한 어른들의 응원에 상후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각각 노란색과 분홍색 티를 입고 있었다.
노랑 팀과 분홍 팀.
상후와 미영이는 같은 분홍 팀이었다. 다행히 한쪽만 응원하면 되었다.
이장이 강현을 돌아보았다.
“가게 때문에 부르지 않았었는데 잘 왔어. 이번에는 좀 할만하겠구먼.”
무엇이 할만하다는 걸까? 강현은 의아해했으나 개회식이 시작되어서 물어볼 수 없었다.
노래에 맞춰서 준비 운동을 하는 아이들.
움직임이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곧 선생님 한 분이 마이크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럼 첫 번째 경기로 행복 나르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행복 나르기?
강현은 곧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커다란 공을 끌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팀 색과 맞췄는지 노란색과 분홍색 공.
공에는 커다랗게 행복이라 적혀 있었다.
‘공 나르기구나.’
강현도 어릴 적에 해 보았다. 아이들은 넷 혹은 다섯씩 조를 나눠서 공 앞에 섰다.
학년도 반도 의미가 없었다.
스무 명 남짓의 아이들.
선생님의 호각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공을 굴렸다.
그 순간, 구경하고 있던 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노랑팀 이겨라! 노랑팀!”
“분홍팀 파이팅!”
열띤 응원에 강현이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모두가 응원하는데 혼자만 앉아 있을 순 없었다.
슬그머니 일어난 강현이 작게 말을 내뱉었다.
“…분홍팀 이겨라.”
“에이, 목소리가 그게 뭣이여! 그래서 애들한테 들리겠어?”
바로 이장의 호통이 날아왔다. 강현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분홍팀 이겨라!”
“컹!”
옆에 있던 설기도 짖었다.
마침 공을 굴리던 상후가 이쪽을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그제야 이장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