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doing house repairs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던전 소풍 (1)
이른 아침. 실드경계지역, 특수대응팀 본부.
초홍이 머물고 있는 4층 주방.
커다란 원목 식탁에 둘러앉은 특수대응팀과 한호조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불법 유물을 판매하던 각성자 상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로 인해 스물여덟 살 김모 씨가 중상을 입고…….
TV를 빤히 바라보던 한만재가 혀를 차며 말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각성자 상점에 부비스톤을 은닉한 거야? 또 스카우턴지 스커튼지 하는 테러 단체들이 저지른 거야?”
밥을 우물우물 씹고 있던 유은호가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걔들이 무슨 재주로 부비스톤을 수백 개씩 은닉하겠어요. 게다가 폭발도 화재 때문에 벌어진 우연한 사고라던데.”
“그럼?”
“해외파트 TF(테스크포스)에서 저 짓거리를 잘하잖아요. 또 시내 곳곳에 아이템 숨겨놓듯 하다가 저 사단이 난 거겠죠.”
“국정원 쪽은 아닐 거야.”
조용히 국을 떠먹던 신채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폭발한 부비스톤 추정 개수가 무려 300개니까.”
“근데?”
“해외정보국 산하 팀들이 벌일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거지.”
“그럼 어디서 저런 짓을 하냐? 군 정보사령부? 거기는 부대 안에 대놓고 쌓아두고 있는데.”
유은호의 물음에 신채영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엔 한호조에게 국을 더 퍼주던 초홍이 있었다.
“응?”
신채영의 시선을 느낀 초홍이 눈을 깜빡였다.
“왜?”
“아닌가요?”
“뭐가?”
TV를 슬쩍 바라본 신채영이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저런 짓 할 사람, 김수웅 실장밖에 없잖아요.”
‘김수웅’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식탁의 분위기가 초상집처럼 변했다.
차기 협회장으로 점찍혔던 박정민 실장을 단숨에 실각시킨 김수웅.
그가 단숨에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단체들과 비밀스러운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둥, 혹은 협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정부 쪽에서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는 둥…….
온갖 소문은 무성하지만 밝혀진 것은 제대로 없는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직속 부하들조차 모르게 은밀한 책략을 펼치는 김수웅이 무슨 사건을 꾸미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닐 거야.”
하지만 초홍의 입에선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저런 일이 일어날수록 협회 입지가 좁아지는데 뭣 하러 그러겠어?”
“소문에는 정부 쪽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잖아요.”
“소문은 그렇다곤 하는데… 실제로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아.”
“엥. 그걸 팀장님이 어찌 알아요?”
듣고 있던 유은호가 불쑥 묻자, 초홍이 쓴웃음을 머금고 손을 이마를 갖다 대었다.
“이거.”
“설마, 김수웅 실장 정신을 뚫었다고요?”
“아니, 예전 회의 때 정부 쪽 보고가 갑자기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세한 감정의 빛깔만 본 거야.”
당시를 떠올리는 듯, 초홍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말은 호의적으로 하지만, 감정은 확실히 ‘부정적’에 더 가깝더라고.”
“그런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신채영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호조가 벌떡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아빠가 수업 시작 전까지 태워줄게. 천천히 먹고 가.”
한만재의 말에 한호조가 힘없이 웃었다.
“오늘 소풍 가는 날이잖아요.
“아아, 그랬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던 한만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각성자 학교는… 다닐 만하니?”
순간 한호조의 눈빛이 흔들렸다.
설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이프던전 지역에 몰래 들어갔던 한호조.
당시 던전 지역을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지도상으로도 파악되지 않은 남서쪽 숲 지대의 지형을 거침없이 들어갔다.
하필 그 모습이 우연히 한 각성자의 나노봇에 의해 녹화되었고, 각성자라는 것이 들통나게 되었다.
-저희 아들은 탐지 스킬이 있습니다.
협회의 추궁이 이어지자, 한만재는 전능시야 스킬을 숨기기 위해 이렇게 변명했다.
-하지만 범위가 좁은 데다, 아이가 각성자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협회는 변명과 관계없이 한호조의 능력을 엄격하게 측정했다.
하지만 탐지 스킬은 그야말로 펼치는 사람의 마음. 한호조는 아버지의 변명에 맞춰 F급 탐지 스킬, ‘물체 탐지’를 흉내 내었다.
‘물체 탐지’ 스킬의 효력 범위는 약 40미터. 심지어 발휘 효과는 오직 한 가지 물체라는 최악의 스킬.
보물찾기나 할 때 쓰면 딱 좋을 만한 스킬이었으나, 각성자는 각성자. 예외는 없었다.
결국 한호조는 평범한 초등학교에서 각성자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것이다.
“네. 아주 좋아요.”
다시 정신을 차린 한호조가 씩씩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한각성자협회 부설 초등학교. 5학년 F반 교실.
쉬는 시간, 책상에 앉아 있던 한호조는 문득 짝궁 이진솔이 열심히 읽고 있는 책 제목을 힐끔 바라보았다.
–
책이 펼쳐진 곳엔 매우 친숙한 스킬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전능시야(全能視野). 스킬 등급: SS.
-스킬의 효력이 발생하는 범위를, 원하는 시각과 거리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스킬. 지금까지 극소수만 발현된 희귀 다중 스킬이다.
-전능시야의 스킬 범위가 가장 높게 측정된 각성자는 러시아의 1급 각성자, 로만 폴루얀. 그의 전능시야 스킬 범위는 300미터로, 사실상 던전 주변과 몬스터를 모조리 파악할 수 있는…….
“응?”
책의 내용을 힐끔 바라보던 한호조가 눈을 크게 떴다.
“왜?”
이진솔의 시선을 느낀 한호조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 기침이 나서.”
머리를 긁적인 한호조는 남몰래 자부심 어린 미소를 그렸다. 그의 전능시야 효력 범위는 무려 1킬로미터다.
세계 제일이라고 알려진 로만 폴루얀보다 스킬 범위가 세 배는 넓은 것이다.
심지어 스킬과 신체 능력은 비례하기에, 한호조가 성장할수록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질 확률이 높았다.
“좋겠다. 원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걸 볼 수 있다니.”
책을 읽던 이진솔이 한호조를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스킬만 있으면 던전에 있는 고가의 유물을 몽땅 찾아낼 수 있겠다. 그치?”
“그렇지도 않더라고.”
“응?”
이진솔의 시선에 한호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아니. 던전은 위험하잖아. 스킬 하나만 가지고 무슨 유물을 찾겠어.”
“무슨 소리야. SS급 스킬 소유자면, 육체각성도 2등급 이상일 텐데. 어지간한 하급 던전은 맨몸으로 클리어할걸.”
“맞다. 그렇지?”
한호조는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육체는 스킬을 담는 그릇이다. 그 때문에 스킬 등급과 육체각성도는 정비례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S급의 스킬을 갖고 있다면, 어지간해선 4급 이상의 육체각성이 일어나는 것이다.
‘근데 왜 나는 육체각성 없이 스킬이 발현된 거지.’
놀랍게도 한호조의 육체각성도는 3%. 사실상 평범한 인간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각성자가 되기 싫어서 그런가.’
어머니를 앗아간 곳도 던전이고, 아버지가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곳도 던전이다.
아버지, 한만재의 권유가 아니더라도 한호조는 던전을 일터로 삼는 각성자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야, 이진솔. 너는 소풍 가는 날에도 책을 읽냐?”
그때, 이진솔의 뒤로 덩치가 매우 크고 볼이 포동포동한 아이가 다가왔다.
9급의 육체각성과 함께, 무엇이든 먹어서 소화시킬 수 있는 ‘포식’이라는 D급 스킬을 가진 동급생, 황장훈이었다.
“신경 꺼.”
이진솔이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자 황장훈은 한호조를 보며 활짝 웃었다.
“호조야. 오늘 가는 과수원 던전에는 먹을 거 엄청 많대. 우리 몰래몰래 왕창 가지고 오자.”
“던전에서 나오는 재료는 별로 맛이 없어.”
“기념으로 가져오자는 거지.”
“안 돼. 나갈 때 던전 입구에서 어차피 들켜.”
“어? 정말? 그런 것도 있어?”
F반은 가장 낮은 등급의 스킬이 발현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부모 중에 각성자는 거의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고가의 비용이 드는 던전 체험 같은 걸 해본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호조 넌 던전 들어가 봤어?”
가만히 듣고 있던 이진솔이 눈을 깜빡이자 한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몇 번.”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약간 어두운 성격 탓에 친구가 없다시피 했던 한호조.
하지만 이곳으로 전학 온 뒤로 짝꿍인 이진솔과 황장훈은 한호조를 매우 친근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몇 번? 우와! 너네 집 엄청 잘사는가 보다.”
황장훈의 부러움 섞인 중얼거림에 한호조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 친척 중에 아는 분이 있어서.”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협회의 각성자였기 때문에 한호조는 부모님을 조르면 언제든지 던전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자신이 던전에 가자고 투정을 부렸기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야.’
어머니의 죽음 탓에 너무도 일찍 철이 든 한호조. 언제나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자책을 하고 있었다.
“자아, 버스가 도착했어요.”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번호대로 줄을 서서, 차량으로 이동합시다.”
등급 외 던전 ‘과수원.’
통나무를 눕혀놓은 듯한 형태의 이 던전은 몬스터가 전혀 나오지 않는 등급 외 던전이다.
또한 던전 내부엔 독특한 식물들과 과일들이 자라나기 때문에, 각성자 학교 초등부의 필수 소풍코스이기도 했다.
“와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키가 3미터가 넘는 꽃과 식물들, 하늘을 찌를듯한 커다란 나무들, 그 안에 매달려 있는 자동차만 한 과일들…….
마치 거인들의 나라에 온 것 같다.
“자, 30분간 자유시간 줄 테니 마음껏 돌아보세요.”
선생님의 외침에 아이들은 와아 하는 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인솔하는 선생님들도 7급의 각성자지만, 안전을 위해 협회 소속의 4급 각성자들이 던전 내부와 출입구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호조야. 이거 봐봐. 신기하다.”
던전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이진솔은 5미터는 넘을 것 같은 노란 꽃을 가리켰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양이 마치 기린이 달리는 것만 같다.
“이게, 음… 뭐냐면.”
손에 들고 있던 ‘던전 식물도감’을 살펴보던 이진솔이 활짝 웃었다.
“기린 꽃이야. 약으로도 쓰인대.”
“으응.”
“그리고 저건… 대왕 복숭아 열매! 하지만 맛이 없어서 먹지는 못하나 봐.”
일일이 책을 살피며 이야기해 주는 이진솔을 보자, 한호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어머니도 늘 저렇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었다.
해맑게 웃는 이진솔을 보자, 한호조는 불현듯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그리워졌다.
‘이래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야! 황장훈! 너 미쳤어?”
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대왕 복숭아를 먹고 있던 황장훈을 발견한 이진솔이 소리쳤다.
“그걸 왜 먹어? 먹는 거 아니란 말야.”
“괜찮아! 나 무엇이든 먹으면 소화시킬 수 있잖아.”
“바보야, 그거 먹으면 혀가 마비된단 말야.”
“뭐?”
아닐까 다를까, 대왕 복숭아를 먹고 있던 황장훈이 얼얼한 혀를 내밀었다.
“어, 이러 왜 이래? 혀에 아부 느낌이 헙어.”
“그거 풀리려면 30분은 있어야 해. 독은 없으니까 얌전히 있어.”
“머 샘습 분? 으뜩하지? 좀 있음 즘심시간인데?”
울상이 된 황장훈을 바라보던 한호조가 눈앞에 있는 기린 꽃을 흔들었다.
후두둑.
하늘하늘 내려와 바닥에 떨어진 노란 기린 꽃잎을 주워 내밀었다.
“장훈아. 이거 씹어봐.”
“머? 왜?”
“혀 금방 풀릴 거야.”
황장훈은 한호조의 손에 들린 꽃잎을 덥석 물었다. 우물우물 씹을 때마다 정말로 마비된 혀가 점차 풀렸다.
“와! 진짜 금방 풀렸어! 어떻게 한 거야?”
“별거 아냐. 기린 꽃잎에 있는 각성제 성분이 대왕 복숭아에 있는 독성을 풀어주거든.”
“호조야, 고마워! 덕택에 점심시간 안 굶어도 되겠다.”
활짝 웃은 황장훈은 한호조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
한호조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전에 없던 위험 요소가 느껴지자, 스킬 전능시야가 강제로 발동된 것이다.
“피해!”
한호조는 있는 힘껏 황장훈을 뒤로 끌어당겼다.
콰앙!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황장훈이 서 있던 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이, 이게 뭐야?”
황장훈은 발밑에 생겨난 구멍을 보며 소리쳤다.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어두웠다.
그 순간 쿠르릉 소리와 함께 던전이 흔들리며,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
“바닥에 몬스터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