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doing house repairs RAW novel - Chapter 120
제120화. 암격(暗擊) (1)
[천, 천마 님. 지금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무명이 더듬거리며 묻자, 천마는 뻗어낸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본좌가 창안한 번천복우(翻天覆雨)다.”
손을 탁탁 턴 천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쏟아지는 힘을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바꾸는 비학이다. 정파의 건곤대나이와 비슷한 것이지.”
무명은 알 듯 모를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천마 님께선 화물차를 멈춰 세우려 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틀어 야산에 처박히게 한 거란 말씀입니까?]“그렇지.”
[그런 비법이 있으면 굳이 차를 밀어낼 필요 없이 멈출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황당함을 꾹 눌러 삼킨 무명의 말에 천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본좌의 차량에게 피해만 안 가면 되지. 뭣 하러 남의 차량을 멈추는 데 거하게 힘을 써야 하느냐.”
[…그렇군요.]하긴, 도시가 무너져도 자신에게 피해만 가지 않으면 불구경하듯 바라볼 천마다.
만약 라마스의 주유가 끝났다면 차량이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떠나갔을 것이다. 그나마 주변에 사람들이 없던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역시 이상합니다.]“뭐가 말이냐.”
[무인 화물차는 고장률이 거의 없으며, 90킬로미터까지 속도를 올리지도 못하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충돌 상황이 오면 강제로 비상제동시스템이 가동되고요.]“후후.”
무명의 설명에 천마는 갑자기 미소 지었다. 그러곤 먼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 대신인가 보군.”
[네?]“역시 인간은 재밌어.”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천마를 보자, 무명은 있지도 않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끼릭.
주유기가 멈추었다. 천마는 주유기를 뽑곤 라마스에 올라탔다.
“타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위이잉. 키리리릭.
무명은 전산망을 해킹해 주유소 주변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CCTV 녹화 내용을 삭제했다. 도심에서 천마가 사고를 치면 늘 하는 일이었다.
[다 됐습니다.]무명이 라마스에 올라타자 천마는 지체 없이 부웅 소리를 내며 주유소를 떠나갔다.
“흐음.”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림자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남현욱이었다.
“역시 염동력 스킬 각성자였나요.”
그는 천마가 질주하는 화물차의 방향을 바꾼 힘이 염동력 스킬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 분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전문가든 천마가 번천복우를 펼치는 걸 지켜봤다면, 열이면 열, 모두 염동력 스킬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이제 능력도 알았으니 슬슬 사냥을 시작해 보지요.”
팔에 부착된 능동위장슈트의 전원을 켠 남현욱의 온몸이 서서히 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 * *
며칠 후.
일과를 마친 천마는 평소처럼 라마스를 타고 옥탑방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오늘은 연달아 철거와 장판 시공을 한 탓에, 운전하는 그의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였다.
어느덧 차량은 실드경계지역으로 들어와 옥탑방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엄마손 백반으로 가실 겁니까?]무명의 물음에 천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씻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천마 님! 잠시만 차량을 멈춰주십시오!]다급한 무명의 목소리에 천마는 재빨리 브레이크를 꾹 눌러 밟았다. 센터페시아 위에 올라선 채 밖을 내다보고 있던 무명의 눈 센서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위이잉.
무명의 눈 센서에서 쏟아진 빛이 주차장 곳곳에 닿자, 용도를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투명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바이오 분자 구조를 가진 던전용 폭약입니다.]“그게 뭐냐.”
[던전용으로 개발된 차세대 폭약입니다. 인체 구성과 비슷한 유기질로 되어 있어, 던전에서 쓸 수 있도록 개발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러에 더 많이 쓰이고 있지만요.]“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주차장 곳곳에 은밀히 설치된 폭발물을 발견한 무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바이오 폭약을 검출할 수 있는 기능성 광섬유 센서나 전자기파 센서조차 종종 놓치곤 하니까요. 찾아내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테러 단체들이 애용하게 되었습니다]무명은 이 세계의 과학 지식을 필요로 하는 전문 용어들을, 굳이 쉽게 풀어서 설명하지 않았다. 천마의 두뇌라면 정확한 용어는 몰라도 대충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마는 무명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발견이 어렵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지.”
[천마 님. 우선 경찰에 신고하여 폭발물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그리고 CCTV를 분석해 우선 범인을 추적해…….]“필요 없다.”
손을 내저은 천마는 라마스에서 내렸다.
“인체 구조와 비슷한 폭약이라…….”
주차장 곳곳에 붙어 있는 던전용 폭약을 쓰윽 바라본 그는 대뜸 한 팔을 벌렸다.
우우웅.
동시에 손바닥에서 쇠가 부딪치는 듯한 괴음이 들리더니, 숨겨져 있던 던전용 폭약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슈우우우.
허공으로 떠오른 수십 개의 폭약들을 바라보던 천마가 하늘을 향해 팔을 펼쳤다.
휘익. 퍼엉! 삐이이잉!
솟구친 던전용 폭약이 일제히 터졌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런데.
[어, 어라.]무명은 당혹성을 내었다. 폭약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귀여운 수준의 폭발이다.
이제 보니, 던전용 바이오 폭약에 불꽃놀이에 쓰이는 화약을 잔뜩 채워 넣은 것이다.
[누가 이런 짓을…….]“재밌는 짓을 하는군.”
피식 웃은 천마는 라마스를 주차장으로 세운 후, 옥탑방 위로 걸어 올라갔다. 마치 이 모든 일을 누가 꾸몄는지 아는 눈치다.
[이런 일을 꾸민 자를 알고 계십니까?]무명은 황급히 천마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천마 님!]“너는 항상 똑똑한 척을 하면서 정작 머리통을 굴려야 할 때는 바보가 되는구나.”
[네?]“그자는 본좌가 폭발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고 싶었던 거다.”
짧게 내뱉은 천마의 말에 무명은 걸음을 멈추었다.
부비스톤을 처리하기 직전 나타났던, 능동위장슈트를 입고 있던 사내를 떠올린 것이다.
[폭발물… 그렇군요.]머리에서 위이잉 소리를 내던 무명이 눈 센서를 번뜩였다.
[그렇다면 아까 그 화물차도…….]“본좌의 실력을 가늠하고 싶었던 게지.”
끼익.
천마가 잠겨 있던 옥탑방의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자 무명이 소리쳤다.
[천마 님!]“더 이상 함정은 없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옥탑방 안으로 들어간 천마는 불을 켜지도 않은 채 씨익 웃었다.
“오늘 밤은 적적하지 않겠군.”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번뜩인 채 웃고 있는 천마의 모습은, 몸을 숨긴 채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와도 같았다.
새벽 무렵, 불 꺼진 옥탑방 내부.
천마는 방 안에 단정히 앉아 운공을 하고 있었다.
무명은 충전스테이션에 눕는 대신 창틀 위로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운공을 시작하기 전 천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뭐가 말이냐.”
[던전용 바이오 폭약은 시중은 물론 블랙마켓에서도 구할 수 없는 군용 폭약입니다.]무명은 가부좌를 튼 채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천마에게 물었다.
[즉, 위장슈트를 입고 있었던 남성은 군 혹은 정부 소속의 요원일 겁니다. 그런데 번화가 중심가에 있는 각성자 상점에 위험한 부비스톤을 은닉해 뒀다니…. 테러를 저지를 생각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행동이 아닙니까.]“말이 된다.”
심호흡을 한 채 눈을 감은 천마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관부의 벼슬아치들은 틈만 나면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배를 불리려 하지 않더냐.”
[하지만… 국가에서 테러를 계획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모르지. 애초부터 백성들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는 자들이니.”
무명이 다시 말을 하려 했지만, 어느새 천마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운공이 시작됐다는 걸 짐작한 무명은 이내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달칵.
회상을 마친 무명의 청각 센서에 아주 작은 소리가 감지되었다. 순간 눈 센서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천마 님.]“본좌도 들었다.”
운공을 멈춘 천마가 눈을 뜨자 신광(神光)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우리옷으로 주섬주섬 갈아입기 시작했다.
[천마 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무명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밖에 나가면 너부터 박살 내려 할 테지.”
[네?]“네가 폭발물을 감지하는 것도 확인했을 터. 가장 성가신 존재가 네 녀석이라 생각할 것이다.”
질끈. 허리춤을 단단하게 조인 천마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네 기능을 정지시키기 위한 만반의 수단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오오. 정말 머리가 좋으신 분이군요.”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현욱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가지고 나오셔야 얼마간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텐데요.”
“흐흐흐.”
낮게 웃은 천마는 무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는 방에서 본좌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있어라.”
[싸움터에 나간 사용자를 두고 집에서 기다리는 나노봇은 없습니다.]무명은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파괴당하는 것이 더 명예롭고요.]짐짓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천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해된다. 그냥 집이나 보고 있어라.”
“명령이다.”
그 말에 무명은 더 이상 항변할 수 없었다.
사실 무명은 천마의 안위보다 남성의 정체가 궁금했다. 저 남성이 대체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지, 왜 도시에 막대한 부비스톤을 은닉해 두었는지.
하지만 천마의 명령보다 앞설 순 없는 법. 무명은 천마의 말을 따랐다.
끼익.
낡은 쇠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달빛 아래 고즈넉한 옥탑의 풍경이 보였다. 하지만 남현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기계 없이도 저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남현욱의 목소리는 정면에 있는 난간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천마는 속지 않았다. 몸을 돌려 옥탑방의 지붕을 바라보며 그는 피식 웃었다.
“무림에서 그 정도 은신술은 기본적인 수법에 불과하지.”
스윽.
천마의 말이 끝나자 투명한 형체가 일그러지더니 능동위장슈트를 입은 남성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의 입가엔 까만 기계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바로 목소리의 방향을 바꿔주는 음파회절기였다.
“제법이군요.”
남현욱은 활짝 미소 지었다.
맹수가 사나우면 사나울수록, 재주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냥하는 재미가 더 커질 테니까.
“나노봇을 잡으려 힘들게 가져왔는데. 쓸모없겠군요.”
남현욱은 손목에 붙어 있던 작은 기계를 툭 떼어내었다.
그것은 강력한 감마선을 발출해 나노봇의 기능을 원거리에서 정지시킬 수 있는 EMP 방출기였다.
“대신 그 괴상한 나노봇은 당신을 처리한 후, 제가 가지도록 하죠.”
천마는 주절거리는 남현욱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천마는 얼마 전부터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물론 당장 찾아가 쳐죽일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느긋이 기다린 것이다.
“제가 지켜보는 걸 알고 있었다고요?”
“그렇다. 눈이 빠지는 줄 알았지.”
“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남현욱의 물음에 천마가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리석은 맹수는 자신이 사냥꾼의 뒤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본좌는 그런 멍청한 모습을 지켜보는 걸 즐긴다.”
우연이었을까? 아님 운명이었을까?
천마와 남현욱,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사냥꾼으로 자처하고 있으며, 상대를 어리석은 짐승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원래 사냥감만 잡으면 돌아가는 스타일인데.”
남현욱이 혀로 입술을 살짝 축였다.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주변부터 쓸어버릴 걸 그랬군요. 그래야 시건방진 소리가 안 나왔을 텐데.”
“오히려 잘됐군.”
천마는 살벌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만약 이 정신 나간 놈이 장채원을 먼저 건드렸다면, 이런 즐거움 따윈 누릴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하긴 염동력이 희귀하고 무서운 스킬이긴 하죠. 어지간한 몬스터라도 손 하나 까닥 않고 보내 버릴 수 있으니까.”
천마가 지루한 표정을 짓자 남현욱은 왼쪽 팔에 붙어 있는 패널을 쓰윽 조작했다.
그 순간 기잉 하는 낮은 소리와 함께 옥탑방 주변으로 기이한 노이즈가 울려 퍼졌다.
“집중력을 요하는 염동력 스킬은 뇌파교란장치만 작동시켜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죠.”
천마는 만물상처럼 자꾸 이것저것 꺼내는 남현욱을 보며 하품을 했다.
“주둥이는 다 털었나.”
“네?”
“지루하군.”
천마가 목을 까닥거리자 남현욱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퍼져나갔다.
쉬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칼날 같은 바람이 일제히 쏟아졌다.
천마가 가볍게 몸을 살짝 돌리자, 옆에 있던 평상이 싸악 소리와 함께 두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흠.”
평상을 슬쩍 바라본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힘을 쓰다간 옥탑은 물론 건물 자체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난간 위로 뛰어 올라간 그는 남현욱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따라와라. 쥐새끼.”
천마는 단숨에 신법을 펼쳐 실드를 통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현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늘 똑같단 말이지…….”
파앗.
그 역시 단숨에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천마가 사라진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가변던전 경계 부근.
폐건물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각성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그곳엔 광마혈투의를 입은 천마와 능동위장슈트를 입고 있는 남현욱이 마주 보며 서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약속한 것처럼 여유로웠고 눈빛은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서로 무슨 수법을 사용할지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유 부리지 마세요. 어차피 얼마 못 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도망갈…….”
콰앙!
남현욱은 미처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일자로 날아가 폐건물에 처박혔다.
어느새 천마가 번갯불과 같은 일격을 날린 것이다.
“정말 더럽게 말이 많군.”
짜증스럽게 중얼거린 천마의 주먹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반극진기를 끌어올려 뜨거운 열화장력을 쏘아낸 것이다.
“이건 염동력이 아닌데.”
투툭.
하지만 남현욱은 벌레 물린 듯 가볍게 몸을 털고 일어났다.
눈동자에서 기이한 광채를 쏟아낸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조금 더 오래 즐길 수 있으려나요.”
쩌적.
갑자기 몸에서 보랏빛 핏줄이 튀어나오더니 그의 얼굴을 감쌌다.
눈을 제외한 모든 피부가 거미줄 같은 핏줄로 뒤덮인 모습은 마치, 보랏빛 뱀을 몸에 휘감은 악마의 모습 같았다.
“다시 덤벼보시죠.”
보랏빛으로 물든 핏줄에선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마는 코끝에서 비릿한 냄새를 맡았다. 입을 쩍 벌린 독사의 아가리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역한 악취였다.
“흠.”
천마는 눈을 찌푸렸다.
악취를 맡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 유전하고 있던 반극진기가 모조리 사라진 것만 같았다.
“이제 슬슬 공포가 느껴지나요?”
팔을 들어 올린 남현욱이 천마를 후려쳤다.
콰앙.
폭음과 함께 천마가 십여 미터 뒤로 주욱 미끄러졌다. 간신히 두 팔을 들어 막긴 했으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각성자들을 처리할 때면 매번 똑같은 장면을 보는 것 같단 말이죠.”
몸을 웅크리고 있는 천마를 바라보던 남현욱이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감에 넘쳐 온갖 잘난 척을 하다… 스킬이 차단되고 몸이 오그라들면, 그제야 두려움을 떠올리죠.”
이미 천마를 완벽히 제압했다고 생각한 걸까?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남현욱은 여유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난 말이죠. 힘을 얻은 후 한 번도 제대로 힘을 발휘해 본 적이 없었어요.”
먼 하늘을 바라보던 남현욱은 깊게 탄식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기 전에는… 정말 마음껏 싸워보고 싶은데. 그래서 당신에게 내심 기대했죠.”
차앙.
허리춤에서 짧은 막대기를 펼치자 섬찟한 예기를 풍기는 칼날이 튀어나왔다. 강철도 두부처럼 자를 수 있는 단분자 커터였다.
“하지만 늘 똑같은 결론이네요.”
단분자 커터에 혀를 살짝 대자, 비릿한 핏물이 입 안에서 느껴진다.
“이제 곧 이 단분자 커터로 당신의 목을 가를 거예요. 그다음은 힘줄을 끊어 붉게 물든 피를 사방으로 뿌리겠죠”
황홀한 표정을 짓는 남현욱이 다시 혀를 할짝거렸다.
“가죽을 벗겨내고 뼈를 발라 버리면, 그 깨끗해진 뼈를 유심히 살펴볼 거예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부위가 있으면 작게 도려내겠죠.”
지금도 그의 슈트 수납함엔 인상 깊었던 사냥감의 뼛조각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남현욱은 수납함에 새로운 뼛조각을 하나 더 추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