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doing house repairs RAW novel - Chapter 271
제271화. 열혈의사 고두식 (2)
각성자 협회 전략기획실장실.
고개를 숙인 채 김수웅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초홍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병원으로 봉사 활동이요?”
“요새 힐러들이 상주하지 않는 병원이 없잖나.”
김수웅은 자신을 바라보는 초홍의 눈동자를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
“협회 차원에서 여러 병원으로 파견 인력을 보내고 있지. 그중 하나가 샘 병원이고.”
도무지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말에 초홍의 눈이 흔들렸다.
“협회엔 힐러들이 많지 않습니까?”
“지금 특수대응팀의 업무로 봤을 땐, 힐러가 딱히 필요 없는 수준일 텐데.”
김수웅은 재밌는 이야기라도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그녀가 지금 하는 업무도 던전 방위팀의 힐러 대신, 던전에 다친 사람들을 구조하는 수준이잖나. 병원에 상주하는 힐러가 하는 일과 별다를 바가 없지.”
-왜 자꾸 신채영 요원을 다른 곳으로 출장을 보내는 겁니까.
초홍은 당장이라도 이렇게 묻고 싶었다.
신채영의 스킬, 힐링 팩터는 모든 외상에 효과를 발휘할 뿐만 아니라 중독 현상이나, 심지어 정신을 안정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는 사기적 치료 스킬이다.
너무나 뛰어난 효과 때문에 스킬 자체 명칭이 대외비로 알려져 있는 힐링 팩터.
그런 스킬을 소유한 뛰어난 힐러 신채영을 왜 김수웅은 자꾸 외부로 노출시키려 하는 걸까?
“당연히 스펙은 낮춰놨지. 그냥 평범한 5급 힐러로 말이야.”
“그래서… 신채영 요원을 병원에 상주하는 힐러로 파견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래봤자 2주 동안일세. 어차피 보여주기식이지. 협회에서도 이 정도 협조를 하고 있다. 뭐, 이렇게 말이지.”
초홍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문제다. 협회에서 하는 일을 일개 팀장이 반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터져 나오는 불만과 궁금증을 삼킨 초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샘 병원, 직원 식당.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곳곳에는 식사를 하는 의사들과 직원들이 있었다.
의료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식당의 분위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또한 수술 도중 멈춰 버렸던 수술 로봇, 프로메테우스는 전량 회수. 리콜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후르륵.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고두식 앞으로 동기인 김봉수가 마주 앉았다.
“고 선생, 들었어? 이번에 협회에서 힐러 선생 파견 왔다는데.”
고두식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대답했다.
“몰라.”
“그래? 나중에 의국에 가서 한번 봐봐.”
김봉수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두식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엄청 이쁘더라고. 완전 배우 뺨치는 수준이야.”
“…….”
“단톡방에서도 난리다. 지금 대시한다는 녀석들만 한 다발이야.”
김봉수의 계속되는 농담에 고두식의 표정이 휴지처럼 일그러졌다.
달그락.
밥맛이 떨어진다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던진 고두식이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그딴 거에 신경 쓰지 말고 니 할 일이나 잘해, 임마.”
짜증스럽게 외친 그는 씩씩거리며 퇴식구를 향해 걸어갔다.
“아니, 왜 화를 내. 그냥 그렇다고 이야기해 준 것뿐인데.”
김봉수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뒤에 앉아 있던 박상두가 나직이 속삭였다.
“고두식 선생님… 힐러를 굉장히 싫어하셔서요.”
“아, 그렇지.”
김봉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두철미한 성격에 천재적인 솜씨를 가진 고두식은 환자를 위한 마음마저 뜨거운 열혈의사였다.
때문에 돈에 정신이 팔린 채 사람들은 구하지 않는 힐러들을 매우 증오하고 있었다.
“야, 근데 협회에서 나온 힐러들은 무보수로 봉사 활동을 하는 거잖아? 근데 왜 싫어해?”
김봉수가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박상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보여주기식 아닙니까. 그동안 협회에서 나온 힐러 선생들은 대충 시간만 때우고 갔으니까요. 치료 스킬 자주 쓰면 체력이네 뭐네 자주 깍아 먹는다고만 하고요.”
“그랬나.”
김봉식은 멀어져가는 고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고 선생, 또 열 내는 하마처럼 돌아다니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저러다 스카우트 같은데 가입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거긴 테러 단체인걸요.”
멀리 퇴식구에서 식판을 내려놓던 고두식은 두 사람이 속삭이는 소리에 이를 깨물었다.
‘오냐. 안 그래도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스카우트의 방침에 공감이 간다.
특히 돈만 밝히는 힐러들을 어떻게든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안 받아주면 후원이라도 할 거라고.’
휴대폰을 쥐고 있던 고두식이 이를 꽉 깨물었다.
* * *
며칠 후.
샘 병원 외래병실에는 열다섯 명의 각성자들이 입원했다.
세이프던전 지역에 갑자기 나타난 히든몬스터를 처리하다 부상을 입은 던전 방위팀의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살을 뚫고 뼈가 튀어나오는 개방성 골절이나, 부러진 뼈가 여러 작은 조각으로 나뉜 분쇄골절상을 입은 터였다
그 때문에 골절 부위의 혈종을 제거하고 깨진 뼈들을 바로잡아 고정시켜 주는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들 앞에는 단발머리를 한 미녀가 우뚝 선 채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수십 줄기의 투명한 광선이 각성자들의 몸에 쏘아질 때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금세 붙었고, 몸에 있던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었다.
‘새로온 협회 힐러구나.’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고두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협회에서 온 힐러답게 상당한 치료 스킬 실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병원에 있는 상주 힐러들에 비하면 빨리감기를 한 듯한 회복 속도였으니까.
“진짜 배우 뺨치게 예쁘네요.”
어느새 고두식의 옆에 선 박상두가 탄성을 질렀다.
“저 정도면 힐러를 하지 말고 배우를 하지. 아, 고백하고 싶다.”
고두식이 눈빛을 찌릿 노려보자 박상두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과연 협회 소속 힐러들은 진짜 다르긴 다르네요. 회복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요”
“…….”
“저 정도 실력이라면 앞으로 2주 동안은 저희가 꽤 편해지겠네요.”
그러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고두식이 눈썹을 찌푸렸다.
“흥, 어차피 협회 소속 각성자들이 부상을 당하니까 최선을 다하는 거겠지.”
“네?”
“일반 환자라면 제대로 치료도 안 했을걸.”
고두식은 경멸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여자도 어차피 돈에 팔린 꼭두각시야. 어차피 나중엔 돈만 받고 부자들만 치료하게 될 거라고.”
“에이, 그래도 협회 소속이잖습니까. 돈을 벌려고 했으면 부자들의 전속 힐러가 되었겠죠.”
“원래 협회에 있다가 빠지는 게 코스인 거 모르냐. 힐러들이 협회에 들어가는 건 그저 몸값이나 올리려고 들어가는 거라고.”
내뱉듯 이야기를 한 고두식은 몸을 홱 돌렸다.
다음날.
고두식은 응급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필 오토바이 사고였다. 과거와 달리 오토바이용 액체 에어백이 부착해서 나오지만,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소용이 없다.
“후우.”
수술을 마친 고두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술 로봇, 프로메테우스가 있다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직접 수술을 집도하니 어느덧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이 되어버린 것이다.
“확실히 수술 로봇이 필요하긴 하네.”
고두식이 낮게 중얼거리자 조수로 나온 박상두가 낮게 중얼거렸다.
“병실로 돌아가는 즉시 힐러 선생님을 부를까요?”
“무슨 소리야. 이번 환자, 힐러 요청도 하지 않았잖아.”
개인 힐러에 비하겠느냐만은, 병원에 있는 상주 힐러 서비스를 받는 비용도 서민들에겐 만만치 않는 수준이다.
“저희 병원엔 협회에서 온 힐러 선생님이 있잖습니까.”
박상두가 콧구멍을 씰룩이며 말했다.
“어차피 비용 청구도 되지 않으니까 한번 불러보시죠. 이 환자분도 치료 스킬 한 번이면 벌떡 일어날 텐데.”
고두식은 눈을 꼭 감고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마 마취에서 깨어나면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물론 진통제 주사가 들어간다곤 하지만 그것이 통증을 완벽히 없애주는 건 아니다.
잠시 고민하던 고두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불러와.”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 돌아온 박상두가 굳은 표정으로 혼자 돌아왔다.
“왜 혼자 와? 힐러 선생은?”
“안 온다는데요?”
“뭐?”
박상두는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거렸다.
“그게…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그 정도 환자는 안 죽는다고. 그냥 진통제나 처방하라는데요?”
고두식의 눈이 뒤집혔다.
“무슨 헛소리야? 그럼 어제 각성자들은 다 죽어가서 그렇게 알뜰살뜰 치료를 해준 거냐?”
“안 그래도 슬쩍 그렇게 물어봤어요. 어제도 각성자들 잘 치료해 주지 않았냐고요.”
“근데?”
“그랬더니… 던전 방위팀 각성자들은 빨리 회복해서 다시 던전을 지켜야 한다면서…….”
“지랄하네!”
고두식은 버럭 소리치며 말했다.
“어차피 걔네들은 협회 각성자고, 이 환자는 평범한 환자라는 거 아냐.”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말 그대로 어제 각성자들은 던전 방위팀의 각성자니까…….”
“니가 왜 그 여자 편을 들어? 미쳤냐?”
꼭지가 돌아버린 고두식은 팔을 동동 걷어붙였다.
그리고 협회에서 나왔다는 힐러가 머물고 있는 사무실로 찾아가 문을 벌컥 열었다.
“뭐죠?”
그곳에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미녀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바로 특수대응팀의 힐러 신채영이었다.
“노크하실 줄 모르시나요.”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고저 없는 목소리다.
그건 원래 그녀의 말투였으나, 그것을 알 리 없는 고두식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왜 치료 요청했는데, 안 해줍니까?”
고두식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아픈 사람 치료해 주려고 병원에 파견 온 거 아닙니까?”
“여긴 아프다고 힐을 다 해주나요.”
“뭐요?”
고두식을 바라보던 신채영이 차갑게 말했다.
“치료 스킬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힐러인 제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당신이 뭘 안다고…….”
“아까 치료 스킬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환자를 보니, 수술 후 즉각적인 회복을 위함이라고 하더군요.”
다시 책상에 놓여진 책에 시선을 고정시킨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고작 통증만 있는 걸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요.”
고두식은 터져 나오는 화를 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의사는 접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는 제가 정합니다. 힐러 선생은 거기에 따라야 하고요.”
“그건 상주 힐러 선생님에게 해당되는 말이죠.”
할 말이 없다.
사실 고두식도 진통 주사 하나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제 그녀는 멀쩡히 수술을 마친 각성자들에게 땀나게 스킬을 발휘하지 않았던가?
단지 일반 환자들에게 오지 않는 태도가 화가 났을 뿐이다.
“뭐, 맘대로 하십쇼.”
고두식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돈 있는 부자들이나 힘 있는 각성자나 치료하다가, 시간 때우고 가시란 말이오!”
신랄한 말에도 책을 바라보는 신채영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쾅.
짜증스럽게 문을 닫은 고두식이 발걸음을 돌렸다.
* * *
시간은 쏘아진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협회에서 온 신채영이 샘 병원에 머무르기로 했던 2주간의 시간이 모두 끝났다.
그동안 다행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저 사무실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여러 명의 젊은 의사들이 찾아왔을 뿐이다.
“후우.”
시계를 바라보던 신채영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끝났네.”
상주 힐러로 근무하는 시간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지루하고도 한가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읽기 못했던 책을 실컷 읽었다는 것이 소소한 수확이라고나 할까.
“……?
병실을 나서던 신채영은 불현듯 정문 주차장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멋진 양복을 빼입고 꽃을 들고 있는 남성이다. 바로 근무 기간 동안 연신 말을 걸었던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박상두였다.
비번인 날에 양복까지 입고 찾아온 것으로 보아, 신채영이 떠나는 마지막 날 고백하려고 마음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아.’
신채영은 조용히 몸을 돌려 정문이 아닌 병원의 측면 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녀의 입장에서 다행인 점은 오늘따라 출근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만약 평소대로 차를 가져왔다면 주차장 앞에서 기다리는 박상두와 여지없이 마주쳐야 했을 것이다.
“이쪽으로 가면 되겠지.”
뒷문으로 나온 그녀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무인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올라타자 운전석에는 둥그런 나노봇 같은 머리가 올려져 있었다.
[어디로 모셔다드릴까요.]“실드경계지역 주택단지 부탁해.”
[알겠습니다.]지이이잉.
전기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택시는 천천히 도로에 합류하였다.
샘 병원, 응급실 내부.
당직을 맡은 고두식은 모처럼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응급실이라고 매일 전쟁터처럼 바쁘고 필사적인 것은 아니다. 환자가 몰리는 시간대가 아니면 대부분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삐용삐용.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고두식은 본능적으로 응급환자가 실려 들어올 거라는 걸 짐작했다. 그리고 몸을 일어서는데,
-삐용삐용삐용삐용.
밖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점차 반복되며 커진다.
한 대가 아니었다. 지금 응급실을 향해 수십 대의 구급차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 지자체 소방서만 구급차뿐만 아니라 근접 지역의 구급차가 모두 출동한 것 같다.
-으아아아!
그리고 커다란 비명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것만 같았던 고요한 응급실은, 들것에 실려 오는 환자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 소리로 가득 찼다.
-살려줘! 너무 아파!
-크으으윽! 내 다리! 내 다리가!
-흐으으으. 끄아아아아!
고두식은 눈을 부릅떴다.
밀려 들어오는 환자들은 모두 먼지 같은 것에 뒤덮여 있었고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
고두식의 말에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TV를 가리켰다.
“스카우터라는 놈들이 회사에 테러를 저질렀데요.”
복도에 무음으로 켜져 있는 TV에는 불타오르는 어느 회사의 풍경이 비춰지고 있었다.
-반각성자 단체 스카우터가 나노슈트를 만드는 공장에 폭발물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화면 하단에 보이는 자막을 바라보던 고두식이 눈을 부릅떴다.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