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doing house repairs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사람 잡는 풍수 인테리어 (2)
며칠 후, 복복 인테리어 내당 장채원의 한옥집 앞.
붓을 쥐고 있는 천마의 눈동자에선 더없이 사악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천마의 주변에는 안개가 밀려오는 듯하고, 어디선가 을씨년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스윽 스윽.
한 수에 막힘없이 붓을 내려가자 누런 종이 위에 알 수 없는 그림과 도형들이 빽빽이 그려져 갔다.
전심전력으로 붓을 움직이던 천마가 마침내 탁성을 내뱉으며 손을 떼었다.
“후우…….”
고개를 든 천마의 이마엔 하얀 천이 둘려 있었다. 그 위에는 악령퇴치(惡靈退治)라는 글자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응접 테이블 탁자 위에 만들어진 수십 장의 부적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괜찮기는 개뿔.”
맞은편에서 팔짱을 낀 채 천마의 모습을 지켜보던 장채원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 짓을 내 집 앞마당에서 하는데? 너희 집 가서 하면 되잖아?”
고개를 돌린 천마가 뻔뻔하게 말했다.
“본좌의 집은 터가 그리 좋지 않다.”
“뭐?”
“하지만 점주의 집에는 매우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더군. 거기다 땅에서는 영기가 콸콸 흐르고 있지.”
탁자 위에 올려진 부적 하나를 집어 올린 천마가 씨익 웃었다.
“고루혈교의 장상제령술과 음양문의 절명기혼(絶命氣魂)의 수법으로 만든 방액신부(防厄神符:액을 막아주는 부적)를 만들기엔 더없이 적격이다.”
“뭐, 뭐라고?”
“못 들었나. 장상제령술과 절명기혼의 수법으로 만든 방액신부다.”
장채원은 입을 쩍 벌렸다. 왠지 이름만 들어도 흉흉한 기운이 귓가에 맴돈다.
“방액신부라면, 결국 부적이라는 거 아냐?”
팔짱을 낀 천마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한 부적이 아니다.”
“어쨌든 부적은 맞잖아.”
“그렇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소통이 막히는 상황이 지속되자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게 무슨 풍수 인테리어라는 거야?”
“흠, 쉽게 설명해 주지.”
천마는 부적 한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방액신부는 지리팔문(地理八門)의 위치를 옮기고 천지간에 흐르는 음과 양의 기운을 둔갑시킨다. 즉 산천과 수로의 기운을 변화시키는 풍수지리와 상통하지.”
쉽지 않다. 아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상한 말을 주절주절 읊는 천마의 모습은 사이비 교주, 그 자체였다.
“그, 그래 좋아. 그럼 이 부적으로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거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방액신부에 모두 적어놨다. 이걸 남성의 방에 몰래 숨겨두면 된다.”
“뭐? 그게 끝이야?”
팔짱을 낀 천마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끝이다.”
* * *
상간녀. 아니, 회사 동료인 서은지의 집에서 나온 김상재가 손을 흔들었다.
“갈게”
“응, 들어가.”
서은지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김상재를 다시 물렀다.
“상재 씨.”
“응?”
“대체 언제 부인이랑 이혼할 거야?”아내의 얼굴을 떠올리자 김상재는 눈을 찌푸렸다.
언제나 순종적이고 자신만을 바라보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진 않는다.
심지어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덤덤히 자신을 대하고 있다.
늘 열정적이고 외향적이었던 김상재는 그런 아내의 태도에 숨이 막혔다.
‘차라리 부부싸움이라도 했다면… 나았으려나.’
쓸데없는 핑계다. 어차피 김상재는 하룻밤의 짜릿한 쾌락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다.
지금 그에겐 현모양처인 아내보다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는 서은지가 필요했다.
“뭐, 곧 끝낼 거야.”
그러자 서은지가 김상재의 목을 휘감았다.
“오늘은 자고 가면 안 돼? 내 생일이잖아.”
“안 돼. 아직은.”
서은지의 뺨을 살짝 매만진 김상재가 한숨을 쉬었다.
그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셨어요?”
언제나 똑같은 반응과 표정이다.
현관문을 열면 아내가 엷게 웃으며 다가온다. 가방을 받고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본다.
김상재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씻고 자면 그만이다.
“음?”
방으로 들어오자 김상재는 눈을 크게 떴다.
매일 보는 안방의 풍경이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였다.
“인테리어… 한 거야?”
“네. 벽지만 조금 바꿨어요.”
평범한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방 안이 어딘가 모르게 칙칙해진 느낌이다.
‘보통 인테리어 하면 더 밝게 바꾸지 않나.’
밝았던 방 분위기가 아내의 어두운 표정처럼 왠지 한 단계 더 컴컴하게 보였다.
‘알 게 뭐냐.’
어차피 이혼하면 나갈 집이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한 김상재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벌렁 누웠다.
“하아.”
항상 서은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낸 후 집에 오는 터라, 늘 몸이 피곤하다.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김상재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체력이 남으니 잡생각을 하는 거다!
깊이 잠든 김상재의 머릿속에 이상한 울림이 들려왔다. 동시에 찜통에 누워 있는 듯,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앗, 뜨거.”
벌떡 일어난 김상대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벌렸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그의 눈앞엔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지옥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쩍쩍 갈라진 바닥에선 시뻘건 용암 같은 것이 보였다.
묘한 시선이 느껴진 김상대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주변에는 피에 절어 있는 마귀들이 자신을 빙 둘러싼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자, 게임을 시작하지.
그때 김상대의 앞으로 노란 눈동자에, 붉은 피부를 가진 악마 한 마리가 허공에서 내려왔다.
부러진 뿔이 관자놀이 부근에 돋아나 있는 악마는 김상대를 보며 긴 혀를 날름거렸다.
-네놈은 허약한 인간이니까, 특별히 앞에 세워줬다.
“무, 무슨 소리신지.”
-준비해라. 뒤에 있는 마귀들을 제치고 1등으로 깃발을 잡지 않으면 무한 반복이니까.
“뭐가요?”
당황한 김상대가 눈을 껌뻑일 찰나.
-그럼 출발!
악마는 지체 없이 들고 있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익 소리와 함께 김상대의 뒤에 서 있던 마귀들이 앞다투어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멍하니 서 있던 김상대는 뒤에서 달려오는 마귀들을 보자, 엉겁결에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맨발로 달리던 김상대의 발밑으로 날카로운 송곳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푸욱.
송곳에 발바닥이 꿰뚫린 그는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으악!”
그사이 달려오던 수십 마리의 마귀들이 김상대의 몸을 밟고 지나갔다.
육중한 마귀들의 발에 오징어처럼 다져진 김상대의 의식이 우주 저 멀리 날아갈 무렵.
-자, 게임을 시작하지.
정신을 차린 김상대의 눈앞엔 또다시 허공에 뜬 악마가 노란 눈을 반달처럼 접었다.
-그럼 시…….
“잠, 잠깐만!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히 아까 저는 죽었는데요?”
-알아.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거잖아.
“네? 그게 무슨…….”
식은땀을 흘리는 김상대를 보며 악마가 뱀처럼 생긴 긴 혀를 날름거렸다.
-지옥에서 죽는 게 뭐 대수라고. 자, 1등을 할 때까지 계속하는 거다.
김상대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뒤에 서 있던 마귀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으어어!”
잠에서 깬 김상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던 김상대는 이마를 닦았다.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침대 시트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는 침대에 주저앉아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백 번…….”
마귀들과 죽음의 경주를 펼쳤던 김상대.
그가 달리기 시합을 하면서 죽은 횟수는 무려 이백 번이었다. 게다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다.
육중한 마귀들에게 밟혀 뼈가 으스러지고, 뜨거운 용암에 피부가 녹고, 뾰족한 침에 몸이 꿰뚫렸다.
그렇게 새겨진 고통은 아직도 몸에 느껴지는 듯했다.
“요새 너무 무리했나.”
몇 개월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은지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꾼 처절한 악몽을 그저 몸이 허한 탓으로 돌린 김상재는 힘없이 출근 준비를 했다.
1주일 후.
“씨, 씨펄…….”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운 김상대는 룸미러로 머리가 하얗게 센 자신의 얼굴을 보며 몸을 떨었다.
무려 1주일간 같은 악몽을 꾼 것이다.
“왜 자꾸 이런 꿈을…….”
식은땀을 닦아낸 김상대는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계속되는 악몽을 막기 위해 별짓을 다 해봤다.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고, 서은지 집이나 호텔에서 외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잠이 들기만 하면 붉은 피부에 노란 눈을 가진 악마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괴로운 나머지 각성제를 복용해 억지로 잠을 쫓으려 했으나, 12시만 되면 무슨 약을 먹어도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무언가 큰 다짐을 한 김상대는 이를 깨물었다.
띠링, 철커덕.
현관문을 열자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가 몸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여보. 괜찮아요?”
근래 안색이 창백한 데다가 흰 머리가 부쩍 많아진 김상대를 보자, 심진경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서 씻고 저녁 먹어요.”
“괜찮아.”
“요새 몸이 안 좋아 보여요. 입맛이 없더라도 조금만 들어요.”
“글쎄, 필요 없…!”
짜증이 나서 소리치려던 김상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번쩍 떴다.
‘그래. 체력은 체력이니까…….
무언가 깊이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밥 차려놔.”
깨끗이 씻고 나온 김상대는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심진경이 만들어놓은 음식들을 하나둘씩 올려둘 때마다 그의 눈이 커져갔다.
“뭐야. 왜 이리 반찬이 많아.”
“요새 입맛도 없고 몸도 안 좋은 것 같다면서요.”
심진경이 쑥스럽게 웃으며 찌개 그릇을 내려놓았다.
손수 그녀가 만든 반찬들을 식탁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자, 김상재는 불현듯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악몽을 꾸는 탓에 잠자리가 소원해지자 불륜녀인 서은지는 점차 짜증을 내기 시작했지만, 아내인 심진경은 여전히 한결같았다.
육체와 정신적인 고통이 지속될수록, 투정이 많은 서은지보다 무던한 아내의 모습이 훨씬 의지가 되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어차피 끝난 사이다. 이 일만 끝나면 바로 이혼 서류를 들이밀 것이다.
“좋아.”
식사를 든든하게 먹고 집에서 충분히 휴식도 취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김상재는 이를 꽉 깨물고 침대에 누웠다.
-게임을 시작하지.
악마와 함께 지옥의 풍경이 펼쳐지자마자 김상대는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번 동안 죽은 덕택에 어디서 송곳이 튀어나오는지, 길이 갈라지는지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출발이고 나발이고, 먼저 도착해야 해!’
그럼에도 경주에서 이길 수 없던 것은 마귀들의 달리기 속도가 김상대보다 월등히 빨랐기 때문이다.
-오오, 제법 머리를 굴렸는데.
악마는 오히려 김상대의 반칙을 기꺼워하며 소리쳤다.
-좋아. 너희들도 달려라!
수백 마리의 마귀들이 달려오기 시작하자 땅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김상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 질주를 했다. 달려오던 마귀들이 어느새 김상대의 몸에 손을 뻗기 전.
“잡았다!”
마침내 지옥 길의 끝자락에 세워진 깃발을 붙잡았다.
“잡았다! 잡았어!”
깃발을 끌어안은 김상대는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외쳤다.
“마침내 1등으로 들어왔다고!”
노란색 눈을 가진 악마는 그 모습을 보고 손뼉을 크게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이거, 방심할 수 없는 놈이구만.
“내가 1등 했다고!”
무릎을 꿇은 채 환호하는 김상대에게 다가온 악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1등이다.
“흐으.”
눈물을 흘리며 몸을 일으킨 김상대가 말했다.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그래.
“더 이상 이 달리기는 안 해도 되는 거죠?”
-물론이다.
악마의 말에 김상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붙잡았다.
드디어 1주일간의 이 악몽 속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 그럼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하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던 김상대는 악마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끝났다면서요.”
-그래. 첫 번째 게임. 지옥의 레이스는 끝났다.
“첫 번째 게임이요? 그게 무슨 소리…….”
-넌 백팔지옥이란 말도 못 들어봤냐?
“백팔… 설마.”
-그래. 이제 그중에 하나 통과한 거야.
악마가 해맑게 웃자, 두 눈을 부릅뜬 김상대의 동공이 점차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