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
장강.
끝없이 흐르는 강물이 도도하다.
그 강물 위로 한 척의 배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갑판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대략 백여 명 정도.
가지각색 복장을 하고 있는 그들은 대부분 상인이었다.
간혹 병장기를 찬 무림인도 보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무림인들의 싸움에 휘말릴까 봐 두려워하는 동시에, 혹시 모를 수적들의 공격에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무림인 중 가장 시선을 끄는 사람은 단연 한 소녀였다.
백의를 입은 그녀는 가히 천상선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백옥같은 피부에 날씬하면서도 굴곡진 몸매. 수정 같은 눈망울과 찰랑거리는 검은 머릿결.
대략 십칠 팔 세 정도로 보이는 그녀의 미모에 뭇 남성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사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낡은 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 있는 백의 사내.
그는 언제부터인가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수면만 보고 있어 어쩌면 백의소녀의 존재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얼굴은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굳게 다문 입술과 담담한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아······.”
가벼운 탄식.
백의청년, 백엽(白燁)이 입을 열었다.
담담한 표정과 달리 그의 눈빛은 격동에 차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백엽이 고개를 한번 저은 후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마침 백의소녀 역시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던 터라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백의소녀가 얼굴을 조금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백엽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냈다.
‘대단한 미색이군. 가히 본교 성녀와 견줄만 하다.’
백엽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건너편 강가에서 한 사내가 경공을 펼쳐 배 위로 날아왔다.
휙휙휙.
도중에 몇 번 수면에 착지해 재도약하기는 했으나 놀라운 경공이 아닐 수 없었다.
“앗!”
“대단하군!”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의 탄성이 절로 터졌다.
경공을 펼쳐 배에 올라온 청의사내는 절세미남이었다.
체구 역시 건장했으며 가히 용봉지재라 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그를 알아본 사람 한 명이 소리쳤다.
“화산신룡(華山神龍)이다!”
“화산신룡이라면 화산파 대제자 고해풍(高該風)이 아닌가!”
청의사내, 고해풍이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포권했다.
그가 다가간 곳은 바로 백의소녀 앞이었다.
“사매!”
반가운 표정의 고해풍과 달리 백의소녀는 다소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대사형. 절 쫓아오신 건가요?”
“사매 혼자 보내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이곳은 수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니 조심하는 게 좋아.”
“이번 파혼 문제는 제 개인적인 일이에요. 대사형과 함께 가면 말들이 많을 거예요.”
“하하하. 사실 내가 온 것은 사부님 명에 따른 거야. 중원 무림을 향해 선전포고한 마교 놈들이 곳곳에서 암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어. 파혼 역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잖아. 걱정하지 마.”
고해풍의 말에 백의소녀가 그제야 안색을 풀었다.
백엽은 두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모든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본교가 중원 정복 계획을 유보한 일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군. 하기야 급작스러운 변동이었지. 유보가 없었다면 벌써 본교의 살수들이 무림맹 주요 인사들을 제거했을 것이다.’
백엽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 달 전 십만대산에서 출정식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일이 떠올랐다.
출정 유보를 지시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천마신교 교주 천마가 바로 그였다.
‘내 출생기록이 전부 조작이 되었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복수를 위해 매진해온 것을 생각하면······.’
백엽이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세월이 모두 덧없음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후 다시 총단으로 돌아가 천마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다만 삼십 년이나 지난 지금 내 친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실지 모르겠구나.’
백엽이 다시 고개를 돌려 강물 위를 쳐다봤다.
백의소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지만, 어차피 나중에 적이 될 상대였다.
‘정을 끊는 수련을 극한으로 해왔건만, 출생 내력이 조작된 사실을 알고 난 후 내 마음이 자꾸 흔들리는구나. 이전에는 어떤 미색에도 흔들리지 않았었는데······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면 화산파 장문인 정도는 내가 직접 죽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들은 아마 나를 원수로 생각하고 복수를 다짐하겠지.’
백엽이 마음을 다시 가라앉혔다.
마교의 십만 정예가 지금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정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삼십 년이나 지났으니 가족 역시 지금은 나를 잊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친부모님이 무림맹 쪽 사람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백엽이 천마심공(天魔心功)을 운공해 마음을 편히 했다.
이미 극마의 경지에 도달한 그였다.
그때였다.
조금 전 고해풍을 알아봤던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소저께서는 화산장문인 매화검선(梅花劍仙)의 금지옥엽인 화산옥녀(華山玉女) 악완(岳婉) 소저가 아니십니까?”
“맞아요. 혹시 저를 아시나요?”
백의소녀, 악완이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제 추측이 맞았군요. 고 공자께서 사매라 부르는 것을 듣고 짐작했습니다. 역시 소문대로 천하제일 미인이시군요. 탄복했습니다. 경국지색이란 말의 진정한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내의 말에 갑판 위에 있던 중인들의 시선이 다시 악완에게 쏠렸다.
“과찬이세요. 무림인 같으신데 혹시 사문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차! 제 신분을 먼저 밝혀야 했는데 실례를 했군요. 저는 형산파 제자 범건(氾建)이라고 합니다.”
“아. 범 공자셨군요. 형산파 장문인의 자제분이시지요?”
범건을 알아본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고해풍이었다.
“그렇습니다. 고 공자.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이럴 게 아니라 이것도 인연이니 선실로 내려가 술이나 한잔하도록 하지요. 악양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 시진은 있어야 하니까.”
“네. 좋지요.”
범건이 매우 기뻐하며 고해풍과 악완 두 사람과 함께 선실로 내려가려 할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파도가 거세지며 배가 크게 기울었다.
“어이쿠!”
“아악!”
한쪽으로 쓸려 넘어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수적들의 공격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십장 정도 앞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이무기 한 마리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오고 있지 않은가.
“헉! 장강 이무기다!”
“피해라!”
사람들이 경악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장강 이무기.
전설에 의하면 천년 전 천계와 마계의 신마대전이 벌어져 그 참화가 강호에도 미쳤다고 한다.
그때 마계의 마물들이 강호에 나타나 무수히 많은 사람을 해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장강 이무기였다.
워낙 그 피해가 커 아직도 그 형상을 그린 그림이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단번에 장강 이무기를 알아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놈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덩치로 봐서 놈과 충돌하면 배가 두 쪽이 날 가능성이 컸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고해풍이었다.
스르륵.
검이 검집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시퍼런 검기를 뿜어냈다.
쐐애액.
부채꼴 모양의 검기가 장강 이무기의 목을 강타했다.
이무기는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검기 공격은 놈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놈의 분노를 초래한 걸까.
이무기가 입을 벌리자 붉은 채찍 같은 긴 혓바닥이 튀어나왔다.
취리리릭.
놀랍게도 수십 장 길이의 혓바닥이 빳빳하게 펴지며 고해풍의 배를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크윽!”
고해풍이 비명과 함께 쓰러지자, 옆에 있던 악완이 매우 놀랐다.
“대사형!”
그녀가 급히 고해풍을 부축했으나, 이미 정신을 잃은 후였다.
악완이 품속에서 환단 하나를 꺼내 고해풍에게 먹인 후 장강 이무기를 쳐다봤다.
옆에 있던 범건은 이미 선실로 내려가 몸을 피한 상태.
나머지 무림인들도 두려움에 출수하지 못하고 잔뜩 웅크려 있었다.
상인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겁에 질려 오줌을 싸는 사람도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돌진하던 이무기가 잠시 멈췄다는 점이었다.
놈은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악완을 쳐다보고 있었다.
“놈!”
악완이 분노하며 검을 빼 들었다.
비록 화산파의 절세 영약인 매화단을 복용시키긴 했지만, 고해풍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동문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수법으로는 안된다. 아직 부족하지만 옥녀검법으로 승부해야 한다.’
악완이 입술을 깨물며 양팔을 옆으로 펼쳤다.
경공을 펼쳐 삼장 정도로 떠오른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이무기와는 삼장 정도 거리.
일장 정도까지 거리를 좁힌 그녀가 검을 벼락같이 좌우로 휘둘렀다.
쐐애액.
파공성과 함께 푸른 빛 검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아직 삼성의 경지에 불과하지만 옥녀검법 중 절초인 옥녀천사(玉女天使)가 펼쳐진 것이었다.
그녀가 노린 부위는 바로 이무기의 두 눈이었다.
이미 다른 부위는 금강불괴 수준임을 간파한 상태.
무슨 이유인지 이무기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입맛을 다시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는 있었다.
그러한 희망도 잠시 이무기의 두 눈이 한번 깜박이자 붉은 섬광이 분출되었다.
그 바람에 악완이 펼친 검기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악완이 당황하는 순간.
이무기가 혓바닥을 내밀어 그녀의 온몸을 칭칭 감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장강 이무기가 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나 미인을 잡아갔다는 전설이었다.
그것은 증거가 없어 호사가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었다.
한데 오늘 악완이 잡혀가는 것을 보자 그 전설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이 오히려 사람들의 희망이었다.
악완 한 명만 잡혀가면 지금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녀를 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범건을 따라 선실로 대피하고 있었다. 장강 이무기를 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아아!”
이무기에 잡힌 악완이 탄식했다.
혓바닥에 칭칭 감긴 그녀가 벗어나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힘이 점점 빠졌다.
‘이대로 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