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00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래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대략 마무리되었다.
대강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신선계는 반선들이 모여 우화등선을 목표로 수도하는 곳인데, 어느 순간부터 백반선과 흑반선으로 편이 갈라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중 백반선은 수도에 집중해야 한다는 정통 수련자들이었다.
반면 흑반선은 도를 현실에 적용시켜 그로 인해 우화등선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무리였다.
따라서 흑반선 같은 경우 필연적으로 무림으로 진출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상고밀약에 의해 직접 무림에서 활동하는 것이 제약을 받고 있는데, 이를 탈피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바로 대리자였다.
흑반선들이 대리자를 무림에서 선정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것으로 최근 무림의 움직임과도 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럼 최근 무림에 나타나 흑도 수장들의 스승으로 자처한 반선들이 바로 흑반선들이란 말씀입니까?”
“그러하네. 무림맹 무사 이만을 궤멸시킨 것 역시 흑반선들의 소행이지. 원래 그들 역시 우리처럼 상고밀약에 의해 무림으로 직접 나가 활동할 수 없는데 최근 편법으로 그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해버렸네. 이제 자네가 무림으로 돌아가 그들을 막아야 하네.”
“제가 무슨 힘으로 그들을 막겠습니까? 말씀을 들어보니 흑반선이라는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인간의 한계를 넘은 것 같은데, 제가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백엽이 조금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신선주를 먹고 정신을 잃었던 일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그의 마음을 안 것일까.
평등반선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한 가지 이야기 안 해준 게 있네. 누구든 처음 신선계로 들어오면 한시진 동안 그 능력이 대부분 봉인되네. 적응하기 위해서인데, 자네가 신선주를 마시고 쓰러진 것도 그 때문이었네. 이미 자네는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으니 앞으로 그럴 경우는 절대 없을 걸세. 자신감을 가지게.”
“아, 제가 무형검의 경지에 오른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하네. 자네가 신선계로 처음 들어올 때의 과정 그것 역시 오래된 안배였네. 하지만 안배는 여기까지네. 이제부터 자네가 하기에 달려있네.”
“안배가 끝났다는 겁니까?”
“그러하네. 하지만 실망하지 말게. 지금까지의 안배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을 테니까. 예를 들어 자네가 악양에 있을 때 미혼진에서 얻은 법보들 역시 중요한 안배라 할 수 있으니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네.”
“역시 그랬군요.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원래 그 미혼진 안에 없었던 물건 같았는데······.”
“법보들의 활용법과 그 외 이곳 신선계의 역사와 특징, 그리고 우리 백반선들이 공동 집필한 신선술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비급을 자네에게 주겠네. 받게.”
평등반선이 품속에서 비급 한 권을 꺼냈다.
“신선비급(神仙秘笈)이란 것이네.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면서 익히도록 하게.”
“여기서 말입니까? 무림 사정이 급박한 것을 잘 아실 것 같은데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 돌아가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참고로 말하지만 무형검의 초입에 달한 것만으로는 절대 흑반선들을 상대할 수 없네. 한두 명 정도는 모르겠지만 세 명 이상의 합공을 받게 되면 패배할 가능성이 크네.”
“아, 네. 한데 제가 마신 신선주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걸 마신 후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공청석유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그 효과는 차차 나타날 것이네. 그러니 일단 신선비급부터 연마하게. 어차피 그걸 연마하지 않으면 이곳 신선계에서 나갈 수도 없게 되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내게 물어보고. 바로 시작하게. 마물이나 요괴의 침입은 내가 막아줄 테니까.”
“마물이나 요괴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특히 밤이 되면 놈들이 활개를 친다네. 어서 연공실에 들어가게. 저쪽이네.”
“네. 어르신.”
백엽이 고개를 숙인 후 평등반선이 가리킨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석문이 하나 있었는데, 살짝 밀자 석실 하나가 나타났다.
석실 바닥에 항아리가 하나 있고, 구석에는 샘터가 보였다.
평등반선이 항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항아리 안에 신선단이 있네. 벽곡단 같은 거로 생각하면 되네, 그럼 수고하게.”
드르륵.
평등반선이 직접 석문을 닫았다.
백엽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으나 일단 오늘 하루 정도는 신선비급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래, 일단 모든 것을 잊고 비급 내용을 암기부터 하자.’
* * *
신선비급의 내용은 광대하고 심오했다.
천마속독술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암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백엽은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그 내용을 암기했다.
원래라면 한 번만 읽어도 암기가 가능하나, 신선비급 같은 경우 다섯 번을 읽어야 했다.
그렇게 암기를 완료하는데 하루가 걸렸다.
그동안 백엽은 신선단으로 허기를 달랬고, 샘터에서 나오는 물로 갈증을 해소했다.
특히 샘물의 맛은 기막힐 정도로 맑고 청량했는데, 아무래도 보통 물이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아직 평등반선이 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석실 문을 닫고 갔었는데, 하도 소식이 없어 문을 열려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열리지 않았다.
‘밖에서 잠근 것인가? 하기야 적의 침입을 방지하는 측면에서 아예 석문을 봉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백엽은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다시 신선비급을 읽어내려갔다.
이미 암기를 마쳤지만 직접 비급을 보고 익히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참고로 신선비급에 수록된 신선술은 백여 가지가 넘었다.
개중에는 실제 가능한지 의심되는 비술도 많았다.
백엽이 눈여겨본 것은 몇 가지 정도였다.
그중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신선계를 오갈 수 있는 비술이었다.
비술의 이름은 특수이동 대법이라 했다.
‘평등반선 그분의 말대로 이 특수이동 대법을 익히지 않는 한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구나. 큰일이군. 무림의 상황이 급박한데 어찌 이곳에서 한가하게 신선술을 익히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백엽이 안색을 굳혔다.
자신이 천마신교 교주가 아니었다면 몇 달이고 이곳에서 신선비급을 연마할 수 있겠지만 무림 상황은 실제로 위급했다.
‘화산 같은 경우는 며칠 내로 승부가 날 수도 있다. 만약 무림맹이 패배하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진다. 아무리 늦어도 사흘 안에 무림으로 복귀해야 한다.’
백엽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특수이동 대법 외 다른 신선술 하나를 살펴봤다.
그 비술은 운운술(運雲術)이란 것으로, 신선술 중 대표적인 것이었다.
특수이동 대법은 아무래도 평등반선의 지도가 필요할 것 같아 뒤로 미루고 일단 운운술부터 본격적으로 연마에 들어갔다.
‘평등반선이 올 때까지 운운술 하나만큼은 연마한다. 그래야 신선계 내에서 이동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백엽이 운운술, 즉 구름을 타고 다니는 비술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운운술의 원리는 경공술과 비슷했는데, 핵심은 구름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구름 위에 올라타더라도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구름 위에 몸을 지탱할 수 없고 추락할 게 뻔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군. 다행히 신선계 내에 떠 있는 신선운(神仙雲)이 다른 구름보다 타기 쉬운 측면이 있는 것 같구나.’
백엽이 석실 안에서 몸을 띄우는 연습을 계속했다.
실전 연습을 하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아직 신선계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어 굳이 그럴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 마물과 요괴의 출몰이 빈번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현 신선계의 주도권이 흑반선들에게 넘어가 있다는 평등반선의 말도 큰 부담이 되었다.
‘일단 운운술에 집중한다.’
* * *
백엽이 신선계로 들어온 지도 벌써 사흘이 흘렀다.
평등반선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백엽은 석실 안에서 운운술 연마에 집중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그 결과 기초적인 운운술 연마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더욱더 고무적인 것은 이 운운술이 바로 특수이동 대법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잘 몰랐으나 어느 정도 운운술을 펼칠 수 있게 되자 그 원리가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실전 연습을 하지 못해 최종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실제 신선운을 한번 타봐야겠군. 그나저나 평등반선 그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아무래도 여기서 나가봐야 할듯하다. 최소한 이 석실에서는 나가야겠군.’
백엽이 석문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신선비급 연마 때문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이제 더는 참기 어려웠다.
만약 평등반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백엽 역시 그에 따라 대처 방안이 필요했다.
하지만 석문은 요지부동이었다.
기관이 걸려있는지 여전히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강제로 석문을 부수는 방법뿐.
‘어쩔 수 없구나.’
백엽이 석문을 향해 우장을 내리치려던 찰나.
드르륵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벌써 운운술을 연마했는가?”
“네. 그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저는 어르신께 무슨 문제가 생긴 것으로 생각하고 석문을 부수려 했습니다.”
“마침 내가 알맞게 왔군. 강제로 석문을 파괴하려 했다면 기관이 발동되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했을 걸세.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시도는 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한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사실 일이 생기긴 했네. 흑반선들이 자네가 신선계로 들어온 사실을 알아차렸네. 그래서 지난 사흘간 그들을 따돌리고 왔네. 오늘 하루 정도는 안전할 걸세.”
“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거처를 옮겨야 할 것 같네. 이번에 놈들을 따돌리면서 자네를 도울 수 있는 백반선들을 찾아봤는데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네. 다들 은둔반선들처럼 깊숙한 곳으로 숨어든 것 같네.”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흑반선들이 신선계의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입니까?”
“그러하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백반선과 흑반선이 서로 목숨 걸고 싸우는 전면전 상황까지는 아니네. 다만 우리가 도력 대결에서 패배해 흑반선들이 신선계를 우선 지배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 말고 자네를 도울 백반선들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네.”
“무슨 뜻인지 잘 파악은 되지 않습니다만, 일단 저에게 중요한 것은 무림의 상황입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흑반선들이 무림을 장악할 의도가 있다면 그들을 막아야 할 게 아닙니까?”
“당연하네. 자네가 흑반선들을 막아준다면 신선계의 주도권도 우리 백반선들이 되찾게 될 걸세. 그런 의미에서 자네의 책임이 막중하네.”
“저 혼자서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백반선들께서 힘을 보태주셔야 비로소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노력할 걸세. 다만 도력 대결에서 패해 운신이 극히 좁아져 있는 게 문제이네. 하지만 자네가 흑반선들을 제압하기 시작하면 우리 역시 반격에 나설 수 있을 걸세. 무림은 모르겠지만 이곳 신선계만큼은 우리 자체 힘만으로 평정할 가능성이 있네. 그때가 되면 신선계의 숨은 실세라 할 수 있는 은둔반선들이 우리 편을 들어줄 테니까. 그러니 자네는 무림으로 돌아가는 대로 흑반선들 제거에 힘써주게. 자네가 그들을 막지 못하면 무림은 아마도 멸망을 피하지 못할 걸세.”
“멸망까지 걱정해야 하는 겁니까?”
“그러하네. 흑반선들 눈에 무림인들은 가축과 다름없네. 이상사회 구현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을 실험도구처럼 취급할 가능성이 크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뿐이네.”
“하지만 저 혼자 무슨 힘으로······.”
“자네라면 할 수 있네. 자신을 믿게. 조금 쉬었다가 나와 함께 거처를 옮기도록 하세. 흑반선들이 들이닥치면 나 또한 그들을 막기 힘드네.”
“저는 지금 바로 무림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수련은 무림에서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혹시 무림 상황을 알고 계십니까?”
“나도 모르네. 흑반선들이 방해를 놓아 천안통을 펼칠 수가 없었네. 한데 정말 무림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가?”
“네. 상황이 급박해 여기서 너무 지체하면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으음, 좋네. 하지만 지금 당장 돌아갈 수는 없을 걸세. 내가 도와줘도 특수이동 대법을 배우려면 최소 석 달은 걸릴 테니까.”
“지금 바로 갈 방법은 전혀 없는 겁니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네. 법보를 사용하면 가능하긴 한데, 마침 자네가 그 법보를 가지고 있긴 하군.”
평등반선이 백엽이 손가락에 끼고 있는 지존환을 가리켰다.
“이 지존환 말입니까?”
“그러하네. 벌써 이름까지 붙였군. 그 반지를 이용하면 무림으로 갈 수 있긴 하나, 특수이동 대법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후유증이 생길 가능성이 크네. 그래서 내가 추천하지 못하는 것이네. 그러니 내 말대로 석 달만 고생하게. 특수이동 대법만 터득하면 자네 힘으로 무림에 돌아갈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무림 상황을 알아봐 주십시오.”
“알겠네. 그럼 잠시 쉬고 있게.”
“네.”
백엽이 대답한 바로 그때였다.
동굴 입구 부근에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평등반선이 안색을 굳혔다.
“큰일 났네. 꼬리를 밟힌 것 같네. 흑반선들이 대거 쳐들어왔네. 자네를 보면 즉시 죽이려 할 것이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으음, 할 수 없군. 조금 전 자네 말대로 무림으로 돌아가 있게. 반지의 힘을 빌려 자네를 무림으로 보내주겠네.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후유증이 있을 가능성이 크네. 그래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고 나면 어르신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괜찮네. 신선계 내부에서 반선끼리의 싸움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공식적으로 전쟁 선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나를 죽일 수 없을 걸세. 시간이 없네. 일각 후면 동굴 입구에 내가 펼쳐 놓은 보호진이 뚫릴 걸세. 어서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내게 맡기게.”
“네.”
백엽이 눈을 감았다.
평등반선이 백엽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지존환에 손을 대고 금빛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백엽은 자신의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얼굴 역시 역용이 풀리며 본래 얼굴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잃기 직전 평등반선의 말이 들렸다.
“자네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는군. 무림으로 돌아가게 되면 신선비급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최대한 흑반선들을 피하도록 하게. 자네가 마신 신선주에는 천년 전 천계제일인이었던 지존천선(至尊天仙)이 남긴 힘이 들어가 있었으니, 신선비급을 모두 익히면 그 힘 역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걸세. 아무쪼록 무형검의 최고 경지인 지성에 도달해 지성자(至聖者)가 되기를 바라네. 무운을 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