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04
백무명의 만류에도 백의소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왕방 대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백의소녀의 무공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처음 기세와 달리 섣불리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계집! 똑똑히 말해라. 영웅무관의 일개 관원이 확실하냐?”
“그렇다. 내 이름은 성려화(成麗花)라고 한다.”
백의소녀, 성려화의 말에 주위에 있던 손님 한 명이 소리쳤다.
“성려화라면 얼마 전 돌아왔다던 관주 따님이 아니오? 화산파 출신이라고 하던데······.”
대왕방 대한들이 흠칫했다.
그들이 놀란 것은 백의소녀가 관주 딸이라는 것보다 화산파 출신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비록 최근 대왕방이 낙양성 내 흑도 중에서 가장 세력이 번창하고는 있지만, 아직 화산파와 대립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 때문에 대왕방주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멸문하지 않는 한 최대한 건드리지 말라는 명을 방도들에게 하달한 바 있었다.
“화산파 출신이라는 저자의 말이 사실이냐?”
“그렇다. 다만 지금은 관원으로 있다.”
“네 아비가 관주인 것도 사실이냐?”
“그렇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묻는 것이냐? 색마 주제에 그런 것을 물어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색마는 무슨. 좋다. 이번 한 번만은 봐주겠다. 그리고 네놈은 좋은 말할 때 최대한 빨리 먹고 사라져라.”
대한들이 감산도를 거두고 자리에 도로 앉았다.
성려화 역시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은지 백무명에게 말했다.
“공자님. 여기로 오세요. 마침 제 앞자리가 비어있으니까 오셔서 천천히 드세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여기서 먹겠습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무명이 그릇을 탁자에 놓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대왕방 무사들이 앉아 있었지만, 자기들이 한 말이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백무명이 만용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려화가 안전한 자리로 오라고 권했는데도 굳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왕방 무사들 또한 그 점을 느끼고 있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네놈이 저 여자를 믿고 지금 시위를 하는 것이냐? 지금 우리 인내도 한계에 달해있다. 조금 있으면 소방주께서 오실 것이니 이제 그만 일어나라. 소면도 거의 다 먹은 것 같으니까.”
“그것은 내가 결정할 일이오.”
백무명이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점소이가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잠깐 사이에 백무명의 기세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봉변을 피하려고 급히 자리를 옮기려 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왠지 여유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만두 한 접시 가져오시오.”
“아, 네. 만두 말씀입니까?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갔다.
대왕방 무사들이 발끈한 것은 물론이었다.
“네놈이! 미친 것이냐? 우리를 농락해? 저 여자가 화산파 제자라고 하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냐?”
“그대들은 조금 전 내 부모님을 모욕했소.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소.”
“하하하. 정말 미친놈이구나. 네놈이 가만있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성려화라고 했나? 지금 봤듯이 이놈이 우리에게 도발했다. 무림 관례에 따르더라도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은 간섭할 수 없다. 인정하느냐?”
“흥! 네놈들이 무슨 무림 관례를 말하느냐? 대왕방이 최근 양민들을 괴롭혀 그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저분을 건드리면 내가 개입할 것이다.”
성려화가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백무명의 행동에 우려를 표하는 눈빛이었다.
자신을 믿고 저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백무명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심은 달랐다.
아직 기억도 못 찾고 모든 게 불안정하지만 조금 전 부모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분노였다.
자신에게 가족이 있다면 결코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마침 분노 때문인지 단전에서 한 가닥 기운이 흘러나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자동으로 일주천을 한 것과 같은 효과였는데, 백무명은 주먹에 힘이 담기는 것을 느꼈다.
‘이놈들과 한번 겨뤄볼 만할 것 같다. 실전은 모르겠지만 지금 물러나면 평생 물러나는 인생이 될 것 같구나. 무엇보다 내 부모님을 모욕한 자를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성 소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자들이 제 부모님을 모욕했으니 자식 된 도리로 어찌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소저께서는 개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성려화가 의아해하며 다시 한번 백무명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자신을 믿고 만용을 부린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비록 내공이 느껴지지는 않으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좋아요. 조심하세요.”
성려화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근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마치 비무의 심판관처럼 백무명이 위험해지면 개입하려는 의도 같았다.
대왕방 무사 중 한 명이 말했다.
“네놈이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그래 내가 네놈 부모를 모욕했다고 하자.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우리와 한번 붙어보자는 것이냐?”
“그렇소. 정식 대결을 해 봅시다.”
“후후후! 좋다. 우리는 무조건 생사결이다. 죽어도 원망하지 마라.”
“내가 할 소리요. 지금 보니 대왕방이란 곳이 양민을 수탈하는 흑도 같은데 나 역시 봐주지 않겠소.”
“좋다. 나가자. 정식 대결을 하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
대왕방 무사들이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힐끗 성려화를 쳐다봤는데 아직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런 정식 대결을 벌일 이유가 없는 그들이었다.
백무명 역시 담담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성려화를 비롯한 객잔 손님들 수십 명이 따라 나갔다.
“병장기도 없으신데 괜찮겠어요? 무공을 익히신 분인가요?”
성려화가 백무명에게 다가와 물었다.
백무명이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데 정말 영웅무관주님의 여식입니까?”
“네. 얼마 전 무관으로 복귀했어요. 아시겠지만 화산 탈환 작전에 실패하고 저 역시 겨우 살아 돌아왔지요. 장문인께서 무관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보고 무관으로 돌아가 아버님을 돕도록 허락하셨어요. 물론 그렇다고 화산파를 정식으로 나온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 저를 믿고 이 정도에서 그만두세요. 저자들의 무공은 단순한 왈패 수준이 아니에요. 최소 이류에 가까운 무공을 지니고 있어요. 공자께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랍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죽게 되면 화장을 해서 산에 뿌려주십시오.”
“아······.”
성려화가 탄식했다.
죽음을 각오했다는 백무명의 말에 일이 잘못될 수 있다고 직감한 것이었다.
실제 백무명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직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으로 상대는 양민들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흑도들이었다.
무엇보다 이처럼 정식 생사결을 벌이면 성려화가 개입할 수도 없었다.
“후후후!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냐? 어서 와라. 네놈은 내가 죽여주마. 정식 대결이니 그 결과에 대하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대왕방 무사 두 명 중 한 명이 먼저 객잔 앞 공터에 서 있었다.
백무명이 담담한 표정으로 가서 그와 삼장 거리에 섰다.
자연스럽게 구경꾼들이 두 사람을 넓게 에워쌌다.
구경꾼들은 삽시간에 불어나 백여 명에 달했다.
다만 정식 생사결이기 때문에 사회자 겸 참관인이 필요했다.
참관인은 곧 증인이기도 한데 나중에 생사결 결과를 두고 있을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였다.
참관인은 금세 나타났다.
“내가 사회를 보겠소.”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나왔는데, 그는 유생으로 중년 정도의 나이였다.
“명륜서생(明倫書生)이라고 하오. 전문 참관인 자격을 가지고 있으니 소생이 보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이오.”
명륜서생의 등장에 중인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여러 번 참관을 한 적이 있어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여럿 되었다.
대왕방 무사들 또한 그를 알고 있었다. 정사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사회를 본다고 알고 있었기에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좋소. 어서 진행하시오. 거참 별 미친놈 하나 목을 자르는데 왜 이렇게 절차가 까다로운지.”
대결에 나선 무사가 투덜댔다.
그는 어깨 위로 감산도를 빙빙 돌려가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흉악한 인상 때문에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분의 명호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는 대왕방 대왕이살(大王二殺) 중 이살(二殺)이오.”
대왕방 무사가 먼저 자신의 명호를 밝혔다.
이름은 아닌 것 같고 별호 같았다.
하지만 그의 명호를 듣는 순간 중인들이 다시 한번 크게 술렁였다.
최근 낙양성 내에서 대왕이살의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이었다.
백무명과 붙게 된 이살과 관전하고 있는 일살(一殺) 두 사람 모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표정으로 봐서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악명을 더욱더 공고히 할 속셈 같았다.
하기야 대왕방의 행동대장인 그들 두 사람은 악명이 높을수록 일하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경우도 많았는데 마침 중인들 속에서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보고 부르짖었다.
“네놈들! 잘 만났다. 내 딸을 욕보인 후 그렇게 무참히 죽여놓고 무사할 줄 아느냐? 대협. 저놈들 손에 제 딸이 죽었습니다. 부디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초라한 행색의 중년인 한 명이 백무명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이살이 말했다.
“증거도 없이 무슨 헛소리냐? 네 딸년의 죽음과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천인공노할 놈. 증인이 수도 없이 있는데도 발뺌하느냐?”
“후후후! 우리가 그랬다면 또 어떻게 할 셈이냐? 자꾸 그러면 네놈과 네놈 이웃 모두 죽여주겠다.”
이살의 말에 중인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이전 같았으면 무림맹에서 처리를 해줬을 테지만 지금은 총단 방어에도 힘들어 그러지 못했다.
하기야 이런 사건은 대왕이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왕방 방도 전체가 마적처럼 양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백무명은 본의 아니게 대협 대우를 받고 있었다.
대왕방의 수탈에 대한 하소연이 끊임없이 나왔다.
백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단죄를 하겠습니다.”
와아아.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백무명의 무위에 대해 모르지만 자신 있는 그의 말에 기뻐하는 양민들이었다.
“저는 백무명이라 합니다.”
백무명의 말에 명륜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백무명 공자와 이살 두 분은 준비해주십시오. 생사결로 정해진 게 맞습니까?”
“그렇소.”
“네.”
이살과 백무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이살은 분위기가 좋지 못하자 단칼에 백무명의 목을 벨 생각이었다.
이살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감산도를 좀 더 높이 들었다.
그때였다.
성려화가 들고 있던 검을 백무명에게 던졌다.
“제 검을 사용하세요.”
“감사합니다.”
백무명이 가볍게 검을 받았다.
물론 성려화가 받기 쉽게 던졌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성려화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역시 허풍은 아니었어. 살짝 기대해도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