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06
고서점에서 나온 백무명이 향한 곳은 인근에 있는 폐가였다.
폐가 안은 수풀이 우거지고 건물도 부서져 사람이 살 수 없었으나 조용히 수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백무명은 비급을 펼쳐놓고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했다.
그림대로 자세를 취하자 신기하게도 구결이 생각났다.
그것은 실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서점에서 있었던 현상이 일시적이 아님을 깨달은 백무명은 비급에 그려져 있는 모든 자세를 따라 했다.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결을 음미했다. 다행히 한번 떠오르자 더는 잊히지 않았다.
얼마 후 모든 자세를 암기하자 구결 또한 완성되었다.
기대대로 구결은 내공 심법과 관련된 것이었다.
더욱더 신기한 것은 심법의 이름까지 기억난다는 점이었다.
‘무명심법? 내 이름을 무명이라고 지어서 그런가 갑자기 심법 이름이 생각나는구나. 정말 이전에 내가 연마했던 심법이었는가.’
백무명이 의아해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심법에 따라 운공해 몸속 기운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시급했다.
‘일단 운공에 집중하자.’
백무명이 본격적으로 심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정식으로 일주천하자 내공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백무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운공을 했다.
일주천의 속도가 빨라지고 내공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몸속 기운의 양이 거의 무한대라는 점이었다.
‘설마 내가 절대 내공의 소유자였던가.’
백무명이 놀라면서도 차분하게 운공을 계속했다.
‘아무래도 밤을 새워야겠군.’
밤이 점점 깊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백무명은 가부좌 자세를 풀고 천천히 눈을 떴다.
밤새 운공을 통해 몸속 기운을 자기 것으로 만든 그의 눈빛은 마치 득도한 고승처럼 깊고 고요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구나. 나머지 기운은 차차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백무명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몸속 내공은 대략 오갑자 정도였다.
일갑자만 되어도 일류고수 소리를 듣는데 오갑자라니 말도 안 되는 내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백무명은 이 오갑자 내공 역시 그의 몸속 기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기운은 일반 내공이라기보다 특별한 힘 같은 것이었다.
‘끝없이 물이 솟아나는 샘터와 같은 핵심원천이 내 몸속에 있다. 하지만 일반 내공은 오갑자가 인간의 한계일 가능성이 크니,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고 나머지 기운은 차차 연구하기로 하자. 사실 내공은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니 그 기운을 질적인 완성도에 투입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내공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백무명이 눈을 빛냈다.
사실 그의 생각대로 오갑자 내공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내공의 최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이상의 내공을 보유할 수도 있긴 했다.
이론상으로는 십갑자 이상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오갑자를 넘어서게 되면 그때부터는 내공의 양보다는 질이 더 우선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깨달음의 영역이었다.
쉽게 말해 깨달음 덕분에 질적으로 우수해진 내공 오갑자를 지닌 고수가 단순히 십갑자 내공을 지닌 고수를 압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단전 역시 그 수용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갑자 내공 보유 자체가 무림 유사 이래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그러한 논의는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삼갑자만 되어도 절대 내공 소리를 듣는데 하루아침에 오갑자 내공을 갖게 되다니. 이전에 내가 무림인이었음이 틀림없구나. 으음, 이제 필요한 것은 실전무공인데 뭔가 생각이 날듯하다.’
백무명이 다시 눈을 감고 무명심법에 따른 실전무공을 떠올렸다.
물론 지금 바로 그 실전무공을 창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떠올리려는 것이다.
이는 그림을 통해 무명심법 구결을 기억해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연관성을 통한 기억 회복의 일환이었다.
흔히 뭔가 기억을 할 때 서로 연관성이 있게 되면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 거꾸로 연관성을 통해 기억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명심법과 달리 실전무공을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떠오른 것은 실전무공의 개수였다.
‘팔대무공?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덟 개의 실전무공이 있는 것 같다. 이거 참. 아예 생각이 안 나면 괜찮지만 생각날 듯 말 듯하니 미치겠구나.’
백무명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내공을 되찾아 이전보다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휴우!”
백무명이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어쩔 수 없이 실전무공에 관한 기억은 다음에 찾기로 한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반지가 들어왔다.
은은한 금빛이 나는 반지.
내공을 찾게 된 그가 자기도 모르게 반지에 손을 댔다.
살짝 내공을 일으켜 반지에 담으니 금빛 기운이 짙어졌다.
‘이 반지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마치 이 안에 물건들이 담겨있는 느낌이구나.’
백무명이 순간적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실전무공을 떠올렸다.
물론 무명심법에 따른 실전무공이었다.
‘혹시 내공을 좀 더 가하면 다른 변화가 있지 않을까.’
백무명이 여전히 실전무공을 생각하며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반지에서 금빛 기운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광이 커졌다.
얼마 후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백무명이 매우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 앞에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비급 한 권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급히 비권을 들어 제목을 보니 바로 ‘무명비급’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그의 짐작대로 팔대무공이 수록되어 있었다.
물론 무명심법에 기초한 것이었다.
백무명은 그 내용이 낯설지가 않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 결과 한번 읽는 것만으로도 모든 내용이 기억과 동시에 이해가 되었다.
아니 이번에도 이전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백무명이 다시 반지를 봤다.
‘분명 반지의 작용으로 이 비급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다른 물건들도 이 반지 안에 있는 게 아닐까. 그 물건들을 모두 보게 되면 나의 신세내력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백무명이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으나 더는 반지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 한 번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밖에 나가 바람이나 쐬자. 돈도 한 푼 없으니 아무 일이라도 해서 식사부터 해야 할 듯하구나.’
* * *
절대 내공과 무명심법, 그리고 무명비급까지.
단 하루 만에 대단한 성과를 얻은 백무명이었지만 막상 거리에 나와 돈을 벌려고 하니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대왕방 놈들과 만나지 않을까 모르겠구나.’
백무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부러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이살과 생사결을 벌였던 곳과 떨어진 저잣거리에 왔지만 혹시나 해서였다.
다행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어제 생사결 때 수백 명의 사람이 그에게 환호를 보내주긴 했지만, 그가 죽인 이살의 무공이 그렇게 강한 것이 아니었기에 소문이 퍼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강호에는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많기에 한번 본 사람을 쉽게 알아보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물론 성려화 같은 경우는 대번에 백무명을 알아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생각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자 백무명은 한결 여유를 가졌다.
그 때문에 저잣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대부분은 바로 새 무림맹주 선출에 관한 것이었다.
하기야 석 달 전 삼십만 무림 연합군을 결성해 기세 좋게 출정을 나갔지만 대패를 당한 이후 전환점이 필요했다.
‘구 의원께 들은 대로 무림이 상당히 어렵구나. 신임 무림맹주의 역할이 막중할 것 같다. 나도 기회가 되면 힘을 보태고 싶은데, 당장 밥 사 먹을 돈도 없으니.’
백무명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저잣거리를 한참 돌아다니던 어느 순간.
저잣거리 한구석 담장에 방문 같은 게 여러 개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백무명과 비슷한 사내들이 방문을 보기 위해 몰려 있었다.
백무명은 직감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임을 알았다.
‘인력 시장인가?’
백무명이 기뻐하며 담벼락 아래로 향했다.
얼마 후 도착한 그곳은 예상대로 일종의 인력 시장이었다.
백무명이 보니 구인 방문을 보는 사람들과 따로 모여 설명을 듣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백여 명 정도.
백무명은 일단 방문부터 보기로 했다.
방문은 생각보다 적었다.
십여 개 정도.
구직자 수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그 내용을 보니 대부분 막노동이었다.
백무명은 막노동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품삯도 적고 일하는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직접 일꾼을 구하는 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마침 중년인 한 명이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무림맹 총단 담장 보수를 할 사람들을 구하고 있소이다. 숙식 제공에 월 은자 한 냥이오. 파격적인 조건이니 많이들 지원하시오.”
‘으음, 무림맹 총단 방어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 같군. 하지만 품삯도 많지 않고 어쩐지 종일 일해야 할듯하구나.’
백무명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한 구석에 병장기를 찬 무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봤다.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그쪽으로 갔다.
처음에는 발견 못 했던 곳이었다.
도착해보니 방문 하나를 무인들이 보고 있었다.
방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쁘지 않군. 무림맹 무사들에게 식량이나 무기를 조달하는 임무 같은데, 숙식은 기본적으로 제공될 것이고 나에게 안성맞춤이군. 성 밖으로 자주 나갈 테니 대왕방 놈들을 일시 피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일단 이곳으로 가보자.’
백무명이 방문에 적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도착한 대륙표국 정문 앞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백무명이 잠시 보니 대부분 방문을 보고 찾아온 사람 같았다.
‘생각보다 많구나. 하기야 방문이 그곳에만 붙었을 리가 없었겠지.’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줄을 섰다.
그의 앞으로 많은 사람이 서 있었지만 여유가 있어 보이는 그였다.
하기야 굳이 대륙표국에 일자리를 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뭔지 몰라도 무림맹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맨 앞줄에서부터 소란이 일었다.
“그러니까 표사 자리는 다 찼다는 겁니까?”
지원자 중 한 명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소리쳤다.
면접관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쟁자수 자리는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일단 쟁자수로 일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아시다시피 지금 정마대전으로 인해 시국이 어수선하오. 그 때문에 정상적인 표물 운반이 어렵고 대부분 전쟁 물자 운송으로 바뀐 지 오래요. 운송 도중 표사 자리가 비면 즉시 쟁자수 중에서 무공이 뛰어난 분을 뽑도록 할 것이니 많은 지원을 바라겠소.”
면접관의 말에 지원자들이 웅성거렸다.
다들 불만 섞인 표정이었으나 그렇다고 돌아가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정마대전 영향으로 성내 일자리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백무명 역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단 쟁자수로 일해보는 수밖에 없겠군. 어쩌면 표사보다 개인적인 시간을 더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