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07
대륙표국은 중원 십대표국 중 한 곳으로 오랫동안 무림맹과 우호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이곳 낙양에는 중원표국의 총단이 있었는데, 최근 표물 대부분이 전쟁 물자로 바뀌고 있었다.
그 전쟁은 칠마종과 무림맹 간의 정마대전이었다.
사실 정마대전이라고 하면 대부분 마교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처럼 칠마종이란 이름이 독립적으로 거론된 것은 석 달 전 있었던 전쟁에서 무림맹이 대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무림 연합군 삼십만 병력이 칠마종 병력에 의해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이후 그동안 소문으로만 치부했던 칠마종의 마교로부터의 독립이 사실로 밝혀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교에서 수차례 공식적으로 이번 정마대전에 자신들이 참전하지 않았음을 밝힌 바 있었다.
그런데도 칠마종의 배후에 마교가 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았는데, 이는 원래 칠마종이 마교의 휘하 세력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의문이었다.
한데 한 달 전 드디어 칠마종이 공식적으로 마교와의 단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신선계 반선들과의 동맹 관계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무력 증강에 반선들의 도움이 매우 컸음을 밝혔다.
그제야 무림맹 측에서도 자신들의 대패가 반선들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으로 칠마종이 무림맹보다 나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무림 정파 세력은 궤멸 수준으로 그 힘이 약해졌고, 중원 전 지역은 급속도로 칠마종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겨우 버티고 있는 지역이 하남성과 사천성 정도였다.
하지만 하남성 역시 칠마종의 공세에 위험해지고 있었다.
특히 무림맹 총단이 있어 정파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이곳 낙양이 무너진다면 하남성 전체가 칠마종 세력권으로 들어가고 말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간단한 근력 심사와 함께 대륙표국 쟁자수가 된 백무명이 다른 쟁자수들과 함께 가장 먼저 받은 교육이 바로 이러한 무림의 동향이었다.
의외로 무림 동향에 무지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쟁 물자 조달의 경우에는 적과 우군의 구별이 꼭 필요했다.
교육을 맡은 대륙표국 표두 진무릉(晉武凌)이 말했다.
“우리가 다른 표국보다 두 배의 임금을 주는 것은 그만큼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오. 지금이라도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만둬도 좋소. 하지만 일단 표행이 시작되면 함부로 떠날 수 없소. 지금이 마지막 기회요. 그만둘 사람은 일어나시오.”
진무릉의 말에 대륙표국 총단 연무장에 가득 모인 쟁자수 수백 명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진무릉의 말대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수십 명뿐이었다.
진무릉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소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무림맹 총단이 함락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는 꼭 그렇지만도 않소. 새 무림맹주 선출 계획이 발표된 후 천하 각지에서 고수들이 모여들고 있소. 사실 현재 중원 무림에서 안전한 곳은 사천성을 제외하고 하남성 정도요. 특히 이곳 낙양은 하남성의 중심으로 외곽에 방어 진지가 잘 구축되어 있소. 현재 일부 칠마종 놈들이 하남성 안으로 침투해 무림맹 무사들과 대치 중이나, 곧 놈들을 몰아낼 것이오. 질문 있는 분은 하시오.”
“표물을 운송할 곳이 정해졌습니까?”
“그렇소. 원래 표행 전에 밝히지 않는 게 관례이긴 하나 특별히 여러분께는 말씀드리겠소. 우리가 전쟁 물자를 운반할 곳은 바로 천중산(天中山)이오.”
천중산은 하남성 남동부에 있는 산으로 낙양과 제법 떨어져 있었다.
말을 달리면 사나흘 정도면 도달할 수 있으나 표행의 경우 넉넉잡고 열흘은 잡아야 했다.
“지금 천중산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렇소. 놈들이 감히 하남성 내부로 진입해 천중산 일대를 장악했소. 하지만 현재 낭인대 무사 일만이 가서 놈들과 싸우고 있으니 곧 승전보를 전해올 것이오. 물론 우리가 보낼 물자가 도착하면 그 승리는 더욱더 확실해질 것이오.”
“물자라 하면 식량과 병장기입니까?”
“표물 내용 역시 보안 사항이나 대충 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물론 그 외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물건들이 포함되어 있긴 하오. 여러분은 표물에 대해 너무 알려 할 필요 없이 최대한 빨리 운반될 수 있도록 시키는 대로 따라주기만 하면 되오. 또 다른 질문?”
“천중산 일대를 장악한 칠마종은 무슨 종입니까?”
“권마종이오. 놈들이 보급을 끊으려고 무사들을 보내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이 크나, 여러분은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오. 우리 대륙표국의 표사들이 대거 이번 표행에 참여할 테니까. 그뿐만 아니라 각 문파에서도 고수를 파견해주기로 했소. 그분들은 내일 아침 출발할 때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럼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 밤은 푹 자고 내일 아침 연무장에 모이도록 하시오. 해산!”
“해산!”
“해산!”
쟁자수들이 일제히 복창하며 표국 내 숙소로 마련된 전각으로 흩어졌다.
백무명 역시 그들 속에 묻혀 숙소로 향했다.
그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표두 진무릉의 말이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황이 유리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하지만 전쟁 물자 조달에 표국까지 동원되었다는 자체가 병력 부족을 말하는 것이지. 내 신분이 뭐였는지와 상관없이 칠마종의 악행이 극에 달한 것 같으니 기회가 되면 나도 도움을 줘야겠구나. 다만 신선계 반선이라는 자들이 마음에 걸리는군. 구 의원께 그들에 관해 처음 들었을 때 낯설지가 않았는데, 혹시 나와도 이미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백무명이 뭔가 기억이 날듯했으나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전각 안 숙소로 배정된 방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모든 것을 잊고 한숨 푹 자자. 표행이 시작되면 이렇게 편하게 자기는 어려울 테니까.’
* * *
다음 날 아침.
백무명을 비롯한 쟁자수들은 연무장에 모여 표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에서 보낸 전쟁 물자를 수레에 차곡차곡 실었다.
수레는 모두 삼백 대가량으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쟁자수 또한 수레 한 대에 네 명씩 배치되어 천 명이 훌쩍 넘었다.
아무래도 기존 쟁자수들 또한 총동원된 것 같았다.
아직 표사들과 함께 표행을 떠날 무사들은 오지 않은 상황.
백무명은 배정된 수레에 물자를 묵묵히 쌓았다.
수레에 담은 물건은 가지각색이었다.
식량도 있고, 병장기를 넣은 궤짝도 있고, 내용물을 전혀 알 수 없는 자루들도 있었다.
쟁자수들은 각자 맡은 수레에 물건을 쌓기만 했다.
백무명이 맡은 자리는 수레의 뒤쪽으로 다른 한 사람과 함께 밀어야 했다.
지리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는 수레 앞쪽 두 사람에 비해 비교적 신참들이 맡는 자리였다.
실제 백무명과 함께 수레 뒤쪽을 맡은 사내 역시 어제 들어온 신입이었다.
“반갑소이다. 나는 국문태(國門太)라고 하오. 형장도 어제 들어왔소?”
“그렇소. 나는 백무명이라고 하오. 표행 끝날 때까지 잘 지냅시다.”
“하하하. 물론이오. 쟁자수 일은 처음이오?”
“그렇소. 국 형은 경험이 있소?”
“그렇소. 이래 봬도 쟁자수 경력만 십 년이오. 고정적으로 일하던 표국이 망해 대륙표국에 왔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는구려.”
“잘되었구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겠소.”
“가르침은 무슨. 쟁자수는 수레를 끌거나 밀면 되는 것이오.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소. 다만 어제 경고도 들었겠지만, 이번 표행은 매우 위험할 것이오. 만약을 대비해 나처럼 검이라도 한 자루 준비하지 그랬소?”
국문태가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보여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쟁자수 절반 이상이 병장기를 차고 있었다.
원래 표사 자리를 지원했던 사람들의 경우 병장기 보유는 당연했지만, 그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일반 쟁자수 상당수가 무기를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쟁자수가 무기를 갖고 있어도 되는 것이오?”
“하하하. 역시 초짜시구려. 물론이오. 쟁자수가 무기를 갖고 있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소? 물론 일반 표행의 경우 표사들이 적을 막아줘서 병장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무림대란 중에는 필수라오.”
“그렇구려. 그러고 보니 국 형은 표사 자리도 은근히 노리고 있는 것 같소.”
“하하하. 눈치가 빠르구려. 쟁자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표사 자리에 욕심이 생겨 틈틈이 무관에서 무공을 배웠소. 영웅무관이라고 혹시 들어봤소?”
“아, 들어봤소이다.”
백무명이 낙양 성내에서 아는 유일한 무관이 바로 영웅무관이었다.
“쟁자수 생활을 하면 표행과 표행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간이 생기는데, 삼 년 전부터 틈틈이 영웅무관에서 무공을 배워 이제 내 몸 하나는 지킬 자신이 있게 되었소. 백 형도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꼭 무관에 등록해 무공을 배우시오.”
“알겠소. 참고하겠소. 한데 영웅무관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소? 듣자 하니 정마대전 때문에 운영이 어렵다던데······.”
“관원들이 많이 빠져나갔소. 석 달 전 차출된 사범과 관원들이 대부분 전사한 것이 치명적이었소. 그 이야기를 왜 묻는 것이오? 영웅무관에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소?”
“그건 아니오. 다만 영웅무관 분들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러오.”
“그게 누구요?”
“거기까지 말하는 것은 좀 그렇소. 다음에 말해주겠소.”
“하하하. 그러시오. 사실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만 이번 표행에 영웅무관 사범님들도 참여한다오.”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어젯밤 무관에 내 소지품을 가지러 갔다가 그 소식을 들었소. 무림맹 총단의 부탁으로 관주님을 비롯해 관주님 따님, 그리고 사범 두 분이 참여한다고 들었소.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오.”
“아! 그러면 무관 운영은?”
“남은 사범들이 최소한의 운영만 한다고 들었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번 표행에 도움을 주면 제2차 무림 연합군 차출에서 빼주기로 한 것 같았소.”
“으음, 그렇게 되었구려.”
백무명이 눈을 빛냈다.
‘어쩌면 황 사범과 성 소저를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구나.’
백무명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바로 그때.
연무장 안으로 일단의 무사들이 들어왔다.
그 수는 모두 오백여 명 정도.
이번 표행에 참여할 표사 수가 이백여 명 정도임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국문태가 맨 앞에서 오고 있는 무사 한 명이 들고 있는 깃발을 가리켰다.
“악양 영웅보 무사들인 것 같소. 이번 표행에 무림맹 소속 문파들이 지원 온다고 들었는데, 그곳 중 한 곳이 바로 영웅보일 줄이야.”
“영웅보?”
백무명이 의아해하며 깃발을 봤다.
왠지 눈에 익은 문양이었다.
그의 시선이 깃발 아래 천천히 말을 타고 오고 있는 지휘부 무사들에게 옮겨졌다.
국문태가 말했다.
“저분이 바로 영웅보주 백운목이오. 그 옆에 있는 소저들은 보주 따님인 백여희, 백여옥 소저요. 특히 백여희 소저는 무림맹 부군사로 이번 표행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소.”
“국 형은 어떻게 저분들을 아시오?”
“한 달 전인가. 저분들이 영웅무관에 온 것을 본 적이 있소. 관주님과 영웅보주님이 서로 막역한 사이로 알고 있소.”
“아, 그래서 무관과 문파 이름이 비슷한 것인가.”
백무명이 다시 한번 백운목과 그의 딸들을 쳐다봤다.
순간 형언하기 힘든 먹먹함이 느껴졌다.
‘이 기분은 대체 무엇이지? 이것도 하나의 병인가. 아니면 정말 나와 관련이 있는 분들인가.’